[현장에서] 서울대 2차 촛불집회…“부조리 일삼는 조국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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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서울대 2차 촛불집회…“부조리 일삼는 조국이 부끄럽다”
  • 조서영 기자
  • 승인 2019.08.28 22: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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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생회 주최 서울대 2차 촛불집회
하루도 안 돼 뜯겨나간 K씨 대자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28일 서울시 관악구 서울대학교 아크로 광장에서 제61회 서울대 총학생회 주관으로 2차 촛불 집회가 열렸다. 이날 열린 촛불 집회는 지난 23일 고려대·서울대에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사퇴에 대한 1차 촛불 집회가 열린지 5일 만이었다.

집회 입장이 시작되기 1시간 전인 6시 30분, 주최 측은 현수막 설치를 포함한 서울대생 여부 확인을 위한 준비를 마무리했다. 이윽고 6시 40분이 되자 언론사뿐만 아니라 강용석 변호사의 ‘가로세로연구소’ 등 많은 유튜버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7시까지만 해도 참가자들이 3명밖에 모이지 않아, 기자들 사이에서 ‘1차보다 더 적게 모일 것 같다’는 볼멘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20분 쯤 흐르자 한 손에는 촛불을, 다른 한 손에는 피켓을 든 서울대 학생 및 동문들이 검정 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최 측의 설명에 따르면 1차와는 달리 2차 촛불 집회는 마스크가 무료 배부되지 않아 집회 참가자들은 개인적으로 매점에서 마스크를 구매해야 했다. 

주최 측은 집회 시작을 앞두고 “서울대학교 학생회 주최로 재학생 및 졸업생이 만들어가는 촛불 집회”라는 점을 강조하며 “정치적 목적을 갖고 오신 분이나 정치적 성향을 나타내는 피켓 등을 가지고 오신 분은 나가주시길 부탁한다”고 반복해 공지했다.

28일 오후 8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에서 2차 촛불 집회가 열렸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28일 오후 8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아르코 광장에서 2차 촛불 집회가 열렸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앞서 공지된 집회 시간인 오후 8시에 맞춰 시작된 2차 촛불 집회는, 서울대 제61회 부총학생회장인 김다민(16학번·조선해양공학)의 구호와 함께 시작됐다. 서울대 커뮤니티 투표를 통해 결정된 대표 구호는 1차와 마찬가지로 ‘법무장과 자격없다 지금당장 사퇴하라’였다. 

주최 측에 따르면 2차 촛불 집회 참가자는 1차와 마찬가지로 500여 명에 달했다. 집회에 참여하기 전 거쳐야 하는 서울대생 신분 확인은 아크로 광장 앞쪽과 뒤쪽에서 진행됐는데, 집회가 시작된 이후에도 뒤쪽에서 진행된 신분 확인 줄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이번 2차 집회를 주최한 서울대 제61대 총학생회장 도정근(15학번·물리천문학과)은 기조발언에서 “서울대 학생들 저네를 적폐 집단, 편법에 기승해 대학에 입학한 사람들로 매도하는 목소리가 있는 상황”이라며 “서울대 총학생회는 서울대 학생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주최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그는 “서울대 학생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특정 정당의 정파적 이해관계를 위해서도 아니고, 학생들이 보수화돼서도 아니다”며 “(3년 전) 그 때 우리가 분노했던 이유, 그리고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 사회가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원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는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문제들은 우리 사회의 소위 진보와 보수라는 구분을 넘어 우리 사회의 사회적 불평등이 어떻게 대물림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며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한에서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불평등을 세습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모습에 우리는 분노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울대 학생회의 기조 발언 후엔 10분씩 네 명의 사전 신청자 발언이 이어졌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서울대 학생회의 기조 발언 후엔 10분씩 네 명의 사전 신청자 발언이 이어졌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법무장관 자격없다 지금당장 사퇴하라
학생들의 명령이다 지금당장 사퇴하라

기조 발언 후엔 10분씩 네 명의 사전 신청자 발언이 이어졌다. 

첫 번째 신청자는 경제C반 학생회장 강동훈(17학번·경제학)으로, 그는 발언에 앞서 지난 이틀간 들었던 “야 이놈아, 제정신이냐. 세상 무서운 줄 알아라. 너는 뒤쪽으로 빠져라”는 말을 소개했다. 

그는 “진보적인 학생이거나 보수적인 학생이라서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학생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섰다”고 설명한 뒤, ‘우병우와 김기춘을 선배로 둔 학교답다’는 비난을 두고 “멀리는 박종철 선배가, 가까이는 불과 3년 전 촛불을 들었던 선배들이 있다. 그리고 지금 촛불을 든 우리의 신념은 그들과 다르지 않다”고 반박했다.

두 번째 사전 신청자 발언을 앞두고, ‘학생들의 명령이다 지금당장 사퇴하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이어 주최 측은 8시 30분 경 집회 참가자는 700여 명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 발언을 맡은 공과대학 학생회장 임지현은 “밤늦게까지 서울대 도서관의 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 공부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냐?”고 질문한 뒤, “노력한 만큼 되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공부한 만큼 대가를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원동력이지만 조 후보자 덕분에 깨져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학비를 위해, 생계를 위해 알바를 하며 돈을 버는 대학생은 곳곳에 있다”며 2년 동안 장학금을 수혜한 조 후보자의 딸을 비판했다.

한 참가자가 든 피켓에는 '조국이 부끄럽다'는 글귀가 적혀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한 참가자가 든 피켓에는 '조국이 부끄럽다'는 글귀가 적혀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고교자녀 논문특혜 지금당장 사퇴하라
납득불가 장학수혜 지금당장 반환하라

세 번째 발언자인 전 부총학생회장 박성호(13학번)는 “본인이 아니면 사회 개혁이 불가능한 것처럼 말하지만 이미 국민의 57%가 반대하고 있다”며 “국민의 절반이 적폐일리도, 자유한국당일리도, 보수 우파일리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아직 시간이 있다”며 “진실을 만나자”고 외쳤다.

마지막 발언자이자 1차 촛불 집회의 주최자였던 홍진우(14학번·화학생명공학 석박사 통합 1년차)는 “1차 촛불 집회에 이어 2차 촛불 집회에 참가한 서울대생들이 자랑스럽다”면서도 동시에 “앞에서는 정의를 외치면서 뒤에서는 온갖 부조리함을 일삼던 조국 교수가 우리 학교 교수라서 부끄럽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조 후보자의 딸이 쓴 논문을 꺼내며 “읽으려고 논문을 인쇄했지만 전문부터 이해할 수 없었다”며 “석사 1년차가 고등학생이 제1저자로 들어간 논문을 부끄럽지만 읽을 수가 없었다. 제가 멍청해서 그런 것이냐?”고 말해 집회 참가자들로부터 웃음과 함께 큰 박수를 받았다.

또한 그는 “내용이 이해되질 않아 인용한 논문을 소개한 레퍼런스(reference)를 봤다”고 언급 후, 논문 뭉치를 꺼내들며 “무려 30페이지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생이 실험 논문을 작성을 2주 만에 완료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냐?”고 물으며 “이는 조국을 부모로 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답했다.

네 명의 사전 신청 발언자들은 공통적으로 조 후보자 딸의 논문 제1저자 의혹과 2년 연속 장학금 수혜 논란을 언급하며 후보직 사퇴를 요구했다.

이날 집회가 끝난 후 서울대 버스 정류장 앞, 64학번이라고 밝힌 한 서울대 동문은 2차 촛불 집회 참여 계기에 대한 질문에 “침묵하는 자가 가장 매국노”라는 답변을 건넸다.

촛불 집회가 열린 아크로 광장을 향하는 게시판에는, K라는 이름으로 27일 게시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 자리에 새 자보가 붙어 있었다.ⓒ시사오늘 조서영 기자
촛불 집회가 열린 아크로 광장을 향하는 게시판에는, K라는 이름으로 27일 게시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 자리에 새 자보가 붙어 있었다.ⓒ시사오늘 조서영 기자

한편 촛불 집회가 열린 아크로 광장을 향하는 게시판에는, K라는 이름으로 27일 게시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 자리에 새 자보가 붙어 있었다. 27일에 게시된 자보에는 “조 후보를 향해 외치는 정의는 과연 어떤 정의냐”고 물으며 “‘청년 세대의 정의감’을 얘기하기에는 우리가 못 본 체했으며 모른 체 해온, 최소한의 사회적 정의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청년들’이 너무나 많지 않냐”고 적혀 있었다.

이날 새롭게 부착된 K씨의 대자보에는 “(자보가) 하루도 안 돼 뜯겨 나갔다”며 “대체 무엇이 그리 당당치 못해 현실의 글 하나를 못 견디고 뜯어내야 했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담겼다. 

이어 그는 “과연 지금 우리가 외치는 정의가 자기 연민을 넘어 다른 이들에게도 뻗어나갈 수 있는 정의인가”라며 “적어도 우리만큼은 소소한 이득을 얻어온 능력주의와 경쟁주의 현 체제를 더욱 빈틈없이 강화하기 위한 외침이 지금 우리가 외치는 정의는 아니냐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물었다.

새로운 자보에는 “어느 날 고궁을 나서다가도 문득 부끄러워했다는 시인도 한 때는 있었다는데, 지금 우리는 스스로 돌아봄은 없이 너무 당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냐는 自問(자문)”이라며 글을 마무리했다.

자보의 마지막에 담긴 말은 김수영 시인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로, 시는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는 시작으로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고 물으며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는 자기 반성과 자괴감을 표현했다. 아래는 시의 일부 구절이다.

정말 얼마큼 작으냐.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중략)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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