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와 한국의 386
[역사로 보는 정치]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와 한국의 386
  • 윤명철 기자
  • 승인 2019.08.31 2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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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보다 더 중요한 이념은 없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국민보다 더 중요한 이념은 없다. 사진제공=뉴시스
국민보다 더 중요한 이념은 없다. 사진제공=뉴시스

프랑스 대혁명은 근대 시민혁명의 완결판이다. 영국의 청교도·명예혁명, 미국의 독립전쟁과 함께 근대 민주주의를 완성시킨 인류사의 쾌거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은 처절한 피의 대가를 치렀다. 특히 로베스피에르가 집권했던 국민의회 시절은 이른바 ‘공포정치’라는 극단적인 통치가 펼쳐졌다. 로베스피에르 세력은 자신들이 문명 세계를 완전히 뒤집어놓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루이 16세의 재판을 강행했다.
 
프랑스 혁명 연구의 권위자 귀스타브 르 봉의 <프랑스 혁명과 혁명의 심리학>에 따르면 로베스피에스 세력의 국왕 처형은 엄청난 비극을 잉태했다.
 
귀스타브 르 봉은 “순전히 공리학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국왕을 처형한 것은 프랑스 혁명의 실수였다. 국왕 처형은 내전을 낳았고, 또 유럽이 프랑스에 맞서 무장하도록 만들었다. 왕의 죽음은 국민의회 안에서도 투쟁을 낳았으며, 이 투쟁이 결과적으로 산악파의 승리와 지롱드파의 추방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에 의해 전개된 내전은 늙은이와 여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죽음을 당했으며, 마을과 농작물이 불태워졌고, 방데에서만 사망자가 50만에서 100만 명으로 추산될 정도로 아주 포악하게 전개됐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국민의회의 공포정치에 경악한 유럽의 제왕들은 프랑스와의 전쟁을 불사했다. 내전과 외국과의 전쟁은 프랑스 혁명이 추구하던 자유와 평등, 박애와는 거리가 먼 비극이었다. 프랑스 혁명 이전 시대보다 더 많은 억울한 희생자가 발생했다.
 
르 봉은 “프랑스 혁명을 숭배하는 랑보는 ‘어떤 강한 확신이 이 힘든 과업을 벌이는 국민의회를 떠받쳐주었다. 국민의회는 혁명의 원칙들을 법으로 공식화하면 적들이 당황해하거나 전향하게 될 것이며, 정의의 출현이 반란 세력들을 무장해제 시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라고 썼다”고 전한다.
 
하늘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를 징벌키로 했다. 그토록 단두대를 신봉하며 반대파와 애꿎은 국민들을 처형했던 로베스피에르도 결국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르 봉은 개인의 독창력과 책임을 집단 독창력과 책임으로 대체하려는 로베스피에르 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인류는 인간 가치의 척도에서 몇 단계 뒤로 물러서게 될 것이고, “만일 프랑스인들이 내부 투쟁과 파벌들 간의 경쟁, 비열한 종교박해 때문에 단결력을 계속 깨뜨린다면, 세계에서 프랑스가 맡은 역할은 곧 종식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한민국 권력의 중심이 된 여권의 386 정치인들은 ‘적폐청산’과 ‘항일’을 이슈로 삼아 그들만의 혁명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최근 정국을 강타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사태와 문재인 정부의 대미·대일 외교를 지켜보면 르 봉이 경고한 집단 독창력과 책임이 낳은 비극을 잊은 듯하다. 국민보다 더 중요한 이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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