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사람 vs 시스템…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
스크롤 이동 상태바
[주간필담] 사람 vs 시스템…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9.01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의 바로 세운다’며 인적청산에 열 올리더니…조국 검증 국면에선 ‘시스템이 문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임명을 반대하는 서울대 학생들의 모습.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임명을 반대하는 서울대 학생들의 모습.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적폐(積弊)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는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폐단이 오랫동안 쌓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시스템이 잘못 설계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법적 행위가 반복돼 왔다면 법을 어겨도 그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일 테고, 위법(違法)은 아니지만 부정의(不正義)한 행위가 관습처럼 내려왔다면 법 자체에 구멍이 있어서일 가능성이 높다. 요컨대, 적폐란 ‘잘못된 시스템이 만든 폐습’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보면, ‘적폐청산’이 향해야 하는 방향은 명확하다. ‘시스템 보완’이다. ‘기회의 불평등, 과정의 불공정, 결과의 부정의’를 가져오게 만든 시스템의 허점을 파악해서 손질하는 것만이,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적폐청산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도입과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실시가 아직까지도 ‘성공한 개혁’으로 회자(膾炙)되는 것은 단순히 ‘사람’을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제도’를 혁신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에게 요구되는 적폐청산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불평등한 기회, 불공정한 과정, 부정의한 결과’를 낳게 만든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과 결별하고,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보장하는 ‘신 체제’를 수립해 달라는 것이 ‘촛불 정신’이었다.

하지만 취임 이후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은 ‘인적청산’에 집중됐다. 문재인 정부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기 전에, 상황에 맞춰 일신(一身)의 안위(安慰)만을 생각한 ‘기회주의자’들을 일벌백계(一罰百戒) 해야 정의(正義)로운 사회가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구 체제’의 빈틈을 요리조리 파고든 ‘법꾸라지’들을 잡는 데 긴 시간을 소모했다.

그런데 최근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대하는 정부여당의 태도를 보면, 어딘지 모를 위화감(違和感)이 느껴진다. 조 후보자와 관련해 제기되는 각종 의혹들을 ‘시스템 문제’로 몰아가는 듯한 분위기 탓이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8월 2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살펴볼수록 조 후보자가 아닌 입시제도와 교육, 직업 귀천 사회 현실의 문제”라고 썼다. 조 후보자 딸에 대한 ‘특혜’ 의혹이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시스템’의 문제라는 의미였다.

조 후보자 본인도 지난 25일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고 하더라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들과 청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줬다”고 사과했다. 표 의원과 마찬가지로, 문제는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었다는 뉘앙스의 해명이다.

표 의원과 조 후보자의 말에는 일리가 있다. 문제는 ‘내 편’과 ‘네 편’에게 적용하는 기준의 불일치(不一致)다. 앞서 언급했듯이, 문재인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시스템 보완보다 인적청산에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다. 비록 시스템에 허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부정의한 시스템을 악용(惡用)한 개인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는 논리였다.

반면 ‘내 편’인 조 후보자가 테이블에 오르자, 책임 소재에 대한 정부여당의 태도는 180도 달라졌다. ‘사람을 미워하기보다는,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는 데 집중하자’는 충고를, 이제야 자신들의 입으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시스템이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인적청산’이 불가피하다는 데 동의했다.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조 후보자에 대한 정부여당의 변론은, 인적청산의 목표가 진정 정의를 위해서였는지 의심하게 만들고 있다.

문재인 정권이 진심으로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면, 내 편 네 편을 가리지 않는 ‘공정함’부터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조 후보자를 대하는 정부여당의 태도에 국민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이유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