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이후 달라진 분노 포인트와 저항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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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이후 달라진 분노 포인트와 저항 키워드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9.09.03 16: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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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집회도 시대별 트렌드가 있다
거대 담론 넘어 민생 이슈로 전환
광우병, 세월호, 이대 정유라, 조국
안전, 불공정 이어 위선에 저항하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87 전후 광장 집회의 변화된 키워드에 주목해 본다.ⓒ뉴시스
87 전후 광장 집회의 변화된 키워드에 주목해 본다.ⓒ뉴시스

 

87, 또 이후의 시민들은
어떤 이유로 거리로 나왔나
 
 
87년 6월 항쟁 전후 달라진 분노 포인트들을 짚어본다.

<87>

‘독재타도, 호헌 철폐.’

반독재, 군정 종식, 민주주의 시대에 대한 열망.  

바로 이 점이 87년 6월 항쟁 당시 시민들이 거리에 나온 이유였다.

거국적 담론의 크기는 넘쳐났고, 무게는 거창했다. 

누르는 힘이 클수록 튀어 오르는 용수철의 힘이 큰 법이라고, 민주주의 흐름도 그와 같다고 혹자는 말했다.

87년 그해 박종철 열사 물고문 치사 사건, 이한열 열사 최루탄 사건을 접한 시민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단지 군사독재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거리에 나왔다는 이유로, 학생운동 지인이라는 이유로, 전도유망하고 앞길이 창창한 청년들이 공안당국에 희생돼 죽어나가는 것에 많은 이들은 치를 떨었다. 청년을 나라가 죽이고 마는 현실에 절망했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이 선택한 것은 외면이었다. 민심의 임계점이 다다른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기 뜻대로 강행하면 다시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를 방증한 것이 민심을 역행한 4월의 호헌 조치였다. 분노한 민심은 거리로 쏟아졌고, 아스팔트를 달궜다. 몇 개월이 못가 군정은 항복을 선언했다. 6‧29선언이었다.
 

87체제까지는 거대 담론이 집회의 불을 지폈다면, 그 이후는 민생 이슈로 옮겨온 측면이 있다.ⓒ뉴시스
87체제까지는 거대 담론이 집회의 불을 지폈다면, 그 이후는 민생 이슈로 옮겨온 측면이 있다.ⓒ뉴시스

 

<87 後>

87이후 민주화 시대를 맞이하면서 광장의 트렌드도 변화했다. 분노의 포인트, 저항의 키워드도 달라졌다. 민주주의 담론에서 먹거리, 안전, 교육, 생활, 생계, 불공정 등 민생 이슈 담론으로 변화되고 있다. 

어떻게 흘러왔을까.

2008년 MB(이명박) 정부 때였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 관련해 광우병, 일명 미친소 공포가 대두되면서 사회적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갔다.

지금이야 미국산 수입 소고기도 잘 먹고, 국내 수입 소 중 광우병 사례 한건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그때의 대중적 심리는 실재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미친 소는 못 먹어.’ ‘우리 아이 건강이 걸린 문제다’ ‘학교 급식에 미친소가 나온다면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겠어’ 등등.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의 목소리는 오랜만의 범시민적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5월 초부터 시작돼 2만 명에서 많게는 5만 명, 혹은 그 이상. 2달 가까이 매일 매일 반대 집회가 광장을 메웠다. 식탁 이슈는 각 가정과 학교를 뒤흔들어놨고, 청소년부터 학부형들까지 자발적으로 나오는 계기가 됐다. 6월 항쟁 이후 범대중적 집회로 확산된 것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게 유모차 부대였다. 87년 6월 항쟁에서 넥타이 부대가 있었다면 광우병 촛불집회 때는 아이의 미래를 걱정한 엄마들이 거리로 나온 것이다.

유모차, 넥타이 등 일련의 상징 체는 엄청난 파급력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힘이 됐다. 만약 야당, 재야, 노동계, 학생들만으로 구성됐다면 정부에서 정치 논리로 매도하기 쉬웠겠지만, 일반 시민이 참여하면서 판세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광우병 촛불집회 경우 근거 없는 괴담, 일부의 왜곡된 조장, 정치적 선동의 문제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정부의 불통과 일방통행식 대처였다.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이해시키는 데 소극적이었다. 밀어붙이는데 집중했다.

이 점은 국정 부담으로 돌아왔다. 국민 불신은 교육, 4대강 사업, 민영화 문제 등 전 범위 정책으로 확산됐다. 불신의 풍향계는 정권교체 바람으로 전이됐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의 여당 참패는 이를 방증했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진실을 인양하라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이 박근혜 정부 내내 따라다녔다.ⓒ뉴시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진실을 인양하라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이 박근혜 정부 내내 따라다녔다.ⓒ뉴시스

 

세월호 참사
재난 안전 시스템의 부재를 묻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 사고는 두고두고 온 나라를 슬픔의 도가니로 빠트린 대참사였다. 희생자 중 다수는 안산시 단원고 학생들이었다.

특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국민적 문구가 말해주듯 최악의 인재라는 혹평이 쇄도했다. 살릴 수 있었는데, 정부의 부실대응 때문에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었다. 속절없이 침몰되는 과정을 지켜본 국민의 분노는 들끓었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궁색한 변명조차 내는 데 인색했고, 자기합리화하기 바빴다는 인식을 국민에 줬다. 이는 괴담 수준의 의혹 확산에 불을 지피는 격이었다. 정부에 대한 총체적 불신으로 번져나갔다.

진실을 인양하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촛불집회는 정부 집권 4년을 따라다녔다. 정부의 불통 일관이 자처했다는 평가다.

2016년 정국은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게이트로 혼돈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 그의 딸 정유라의 이대 부정입학 의혹은 국기 문란 사건으로 커지며, 탄핵 국면의 도화선이 됐다.

능력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 라는 발언이 알려지면서 국민 분노에 기름을 부으며, 대규모 촛불집회로 번져나갔다.

흙수저 금수저 대비를 극명하게 드리우며 공정 사회를 향한 꿈은 곧 시대정신의 이정표가 된 듯했다. 또 이는 다음 장미 대선의 주요 화두가 됐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를 약속한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 19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조국 정국
내로남불, 위선에 대한 분노로

불공정 분노와 함께 최근 두드러진 분노 포인트는 내로남불, 위선에 대한 반감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최순실 국정 농단 때는 정유라 부정입학에 대한 이대 학생들의 시위가 촛불집회의 동력이 된 바 있다.

마찬가지로 이번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딸에 대한 논문 의혹 등이 서울대, 고대, 부산대 촛불 집회로 연동되고 있다. 여기에는 학종, 고용세습 등과 연계된 현대판 음서제에 대한 불공정 화두가 다시금 회자되며 청년 분노를 키우는 것도 한몫하고 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 조 후보자가 SNS를 통해 강조했던 가치들이 정작 스스로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듯 보인다는 점, 공정을 약속한 진보 진영의 정부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는 듯한 모습에 내로남불·위선 논란에 대한 분노가 추가된 것이다.
 

고대, 서울대로 이어진 촛불집회는 부산대 촛불집회로 확산되고 있다.ⓒ뉴시스
고대, 서울대로 이어진 촛불집회는 부산대 촛불집회로 확산되고 있다.ⓒ뉴시스

 

이 같은 청년층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글이 1일 서울대 익명 게시판 대자보숲에 게재돼 개략해 옮겨본다.

“누구보다도 정의를 부르짖던 이들이, 공정한 사회를 부르짖던 이들이 갑자기 신중론을 내세운다.
‘살아있는 권력’에도 칼을 뽑아야 한다고 말하던 이들이, 그걸 실천한 검찰을 ‘엄히 꾸짖는다’.
비선실세의 딸에게 주어지던 특혜에 대해서는 분노하던 이들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의 입시에 달려있는 꼬리표들에 대해서는 후보자의 해명을 듣기 전까지는 비난을 자제하라고 말한다.
그들의 해명을 듣고자 청문회에 가족을 증인으로 채택하려고 하니, 인권 탄압이라며 반대한다.
전 대통령 친인척의 비리에 대해서는 통렬히 비판하던 이들이, 후보자 가족의 문제를 후보자 개인과 연결시키지 말라고 한다.
그런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동안 당신들이 들이밀던 잣대들의 본질은 정의인가, 이권 다툼인가?
이제 국민들은 그들이 그동안 해왔던 언행의 진정성에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쓰레기 위선자들의 민낯이 까발려지고, 그들도 청산해야 할 ‘적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됐다.
그들도 그들이 비판하던 이들과 하등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말이다.
제 밥그릇 지키기에 급급한 개만도 못한 인간쓰레기 XX들."

한편, 앞서 공지영 작가는 ‘위선’이라는 ‘신종 악’에 대한 키워드가 앞으로의 시대적 개혁 과제가 될 것임을 지난해 여름 신간 <해리> 출간 기념회를 통해 예고한 바 있어 그 또한 재조명되고 있다.

공 작가는 “앞으로 몇 십년간의 악은 민주주의 탈을 쓰고 엄청난 위선을 행하는 무리일 것임을 작가로서 감지했다"며 "수많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위선을 행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돈을 긁어모으는 위선들이 등장한다. 이런 것들이 소위 막말을 하는 극우적 정치인보다 우리들을 훨씬 더 혼란스럽게 한다는 문제인식을 갖게 됐다”고 한 바 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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