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이념 프레임 허상과 기득권 프레임 전환
[주간필담] 이념 프레임 허상과 기득권 프레임 전환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09.15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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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 프레임은 생명력 잃어…민주화 이후 대한민국 병폐는 기득권-비기득권의 문제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이번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검증 논란은 그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해왔던 보수-진보 ‘이념 프레임’이 허상(虛像)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폭로한 사건이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이번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검증 논란은 그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해왔던 보수-진보 ‘이념 프레임’이 허상(虛像)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폭로한 사건이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이번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검증 논란은 그동안 대한민국을 지배해왔던 보수-진보 ‘이념 프레임’이 허상(虛像)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폭로한 사건이었다. ‘SNS의 조국’과 ‘현실의 조국’이 따로 존재했다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만큼 말과 행동이 달랐던 조 후보자 본인은 물론, 공정(公正)와 정의(正義)를 외치다가도 ‘우리 편’에 대해서는 ‘불법만 아니면 된다’고 옹호하던 진보 지식인들의 모습은 ‘진보는 서민의 편’일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의 기대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그런데 사실 국민들의 진보에 대한 실망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의 개념은 오래 전에 무너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진보 진영의 핵심 세력인 586(50대 나이, 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이 진보적 성향을 띠었던 시기는 전두환 정권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벌인 1980년대였다. ‘진보’라는 단어의 의미 그대로, 이들은 독재 체제를 민주주의 체제로 변화시키는 데 온몸을 바쳤고, 이때의 성과를 바탕으로 586은 1990년대부터 사회의 주류로 올라서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에는 권력과 맞서는 비주류였지만, 민주화 이후 정치적·사회적·문화적으로 주류가 된 586은 빠른 속도로 기득권에 편입해갔다. 하지만 이들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투쟁을 내면화한 세대였고, 그것을 무기로 이름을 알린 세대였다. 내부적으로 얼마나 권력과 부(富)를 축적했느냐와 별개로, 외부적으로는 ‘혁명가’이자 ‘투사’여야만 했던 셈이다. 586이 본격적으로 국정에 참여했던 참여정부 이후, 진보의 표리부동(表裏不同) 논란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이런 이유다.

때문에 학계(學界)에서는 보수-진보 프레임에 종언(終焉)을 고하고, 기득권-비기득권 프레임을 새로운 사회 현상의 해석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금의 진보 세력으로는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차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판사 출신으로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낸 신평 변호사도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나누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과 그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로 나누면 희한하게 잘 보인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약속했던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는 모두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격차를 좁혀야 가능한 과제들이다. 부모의 사회적 자본이 자녀의 ‘스펙’으로 치환되면서 기회조차 불평등해지는 문제, 권력과 부(富)의 존재 여부에 따라 불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는 문제 등은 기득권이 비기득권을 배제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한 데 따른 병폐(病弊)들인 까닭이다. 이는 ‘보수 기득권’과 ‘진보 기득권’이 평생을 다퉈도 실질적 개선책을 내놓기 어려운 이슈다.

물론 비기득권의 정치세력화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비기득권이 정치세력화에 성공하려면 물리적·사회적 자본이 필요하고, 이는 그 자체로 기득권으로의 편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보수냐 진보냐’에서 ‘기득권이냐 비기득권이냐’로 전환된다면 논의의 방향은 지금보다 건설적이고 유의미한 쪽으로 흘러갈 수 있다. 조 후보자를 둘러싼 이번 논란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 혹은 진보 진영의 문제로 치부하기보다, 현 시대에 맞는 새로운 프레임으로의 전환을 고민해 봐야 하는 이유다.

담당업무 : 국회 및 자유한국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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