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야당 투쟁의 역사…‘성공의 조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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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야당 투쟁의 역사…‘성공의 조건’은?
  • 김병묵 기자
  • 승인 2019.09.22 17: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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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군정종식’ 내건 단식투쟁으로 성공
정치권 내 지엽적 이슈엔 오히려 역풍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병묵 기자]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와 광화문광장에서 각 당의 주최로 열린 집회에 참석해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뉴시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와 광화문광장에서 각 당의 주최로 열린 집회에 참석해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왼쪽)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뉴시스

한국 정치사는 야당 투쟁의 역사다.

서울대 정치학과 강원택 교수는 지난 2014년 국민대학교 <북악포럼> 강연에서 "한국 정치는 야당의 투쟁 속에서 점진적으로 발전해왔다"고 평가했다. 건국 이래 야당 지도자들은 성명·시위·삭발·단식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정치적·사회적 소신을 관철시키려 해왔으며, 때론 성공하고 때론 실패했다.

절대적 법칙이라고 하긴 어렵지만, 과거의 사례를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바로 당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을 내걸었던 이들은 여론의 지지를 받으며 성공했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실패했다. 또한 상대가 진영에 얽매이지 않고 대의를 생각한 경우, 이를 관철시킬 수 있었다. 

시대정신을 관통한 경우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정치생활 대부분을 야당 인사로 보냈던 YS의 투쟁 중심엔 항상 '군정(軍政)종식'이 있었다. 유신으로인해 박정희 군사정권에 대한 여론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고, 이 상황에서 지속적으로 군정종식을 외치며 투쟁했던 YS가 1979년 총재직에 이어 국회의원직까지 제명되자 이는 부마 민주화 항쟁으로 이어져 박정희 정권이 종말을 맞았다. YS의 측근이었던 정객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장은 지난 2016년 기자와 만나 "지금은 민주화가 됐기 때문에 체감하기 어렵지만, 당시 군정종식을 위한 열망은 정치권과 대학가뿐 아니라 전국적이었다"고 전했다.

박정희 정권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다시 군부인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자, YS는 1983년 5월 18일부터 23일간의 단식투쟁을 통해 가택연금을 풀고 꺼져가던 민주화 운동에 다시 숨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성공한 야당투쟁의 효시가 됐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1990년 단식도 지방자치제 실시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서 성공한 투쟁으로 평가받는다. DJ 단식투쟁 중단 조건으로 지방자치제 부활을 약속한 YS는 1995년 문민정부의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이를 지켰다. 이는 DJ가 내건 '지방자치제'가 시대정신에 완벽히 부합했다기 보다는, 카운터파트너였던 YS가 진영논리보다는 대의를 지킬줄 아는 정치인이었기에 가능했다.

김덕룡 전 민주평통수석부의장은 2016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YS는 진영논리보다는 대의를 지킬줄 아는 지도자였다"며 "일례로 5·18민주묘역 조성이나 5·18특별법 제정은 진영논리로는 풀 수 없는 일이었다. 지자체 부활 약속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하면 된다"고 전했다.

YS와 DJ 이후에도 '야당'의 투쟁은 이어졌다. 그러나 삭발이나 단식 등이 '남발'되면서, 실패사례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실패사례 대부분은 지나치게 지엽적인 명분을 내세웠거나, 혹은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2013년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새정치민주연합은 김한길 대표를 중심으로 국정원 대선개입의혹 규명 요구, 남북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비판 등을 내걸고 장외투쟁에 돌입했다. 서울광장에 천막을 쳤으나 여론의 공감대를 얻는 데는 실패했으며, 오히려 당의 지지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54일 만에 "조건없이 등원"이라며 백기를 들고 투쟁을 멈췄다.

같은 해 통합진보당 현역 의원들은 해산 청구에 항의하면서 삭발했지만, 범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데는 실패했다. 이와 관련 통합진보당 당직자 출신 민중당의 한 관계자는 21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당시엔 '빨갱이' 낙인이 찍혀있는 상태라서 우리(통합진보당)가 정말로 그런 정당인줄 아는 분들이 많았다. 잘 해산됐다는 비난도 많았다"고 회고했다.

지난 2016년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국회 운영을 비판하며 '정 의장 사퇴 촉구' 단식을 했다. 그러나 이미 '최순실 게이트' 등으로 정부여당에 분노한 민심은 오히려 이 전 대표를 성토했고, 결국 역풍을 맞은 이 전 대표는 7일만에 단식을 중단했다.

야당의 투쟁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바른미래당 등이 합세, 대여 투쟁을 높이고 있다. 제1야당의 대표가 최초로 삭발을 하고 장외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이는 등 점점 그 압박 강도는 올라가고 있다. 

지금까지 야당 투쟁史의 성패를 토대로 예측해보면, 조 장관 사퇴 주장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지다. 또한 문재인 정부나 민주당 지도부가 진영논리가 아닌 YS식 대의정치를 펼칠 수 있는지도 성패를 좌우한다.

 

담당업무 : 게임·공기업 / 국회 정무위원회
좌우명 :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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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자 2019-09-23 08:46:23
근래 장외투쟁은 가짜에서부터 나온 것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