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를 그려내는 화가, 강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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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그려내는 화가, 강형구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1.09.08 18: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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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얼굴에 사회를 담고
그것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더부룩하지만 구저분하지 않은 수염, 희끗한 장발의 머리를 말끔하게 넘겨 묶은 남자. 하얀 털의 이미지에도 그가 풍기는 아우라는 그의 넘치는 에너지와 젊음을 말한다. 과히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그림의 창조자이기에 충분하다. 한 사람의 얼굴에 시대와 사상과 문화를 반영하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 강형구(58) 화백이다.

그림으로 소통하다

강 화백의 그림에는 전두환, 박정희 등 한국의 역대 대통령뿐만 아니라 빈센트 반 고흐, 테레사 수녀, 아브라함 링컨 등 각양각색의 인물이 등장한다. 이러한 그림을 일컬어 인물화라고 한다. 그러나 강 화백은 이를 ‘사회화’라고 말한다.

▲ 강형구 화백
“평생 그린 것이 몇 점 안되면 인물화를 그리는 사람이라고 불려도 괜찮겠지만 그 많은 사람을 그렸을 때는 사회를 그린 것이지 인물을 그린 것은 아닙니다. 늘 관심사는 사회입니다. 세상을 표현하고자 하니 그 사람의 얼굴을 그린 것이지, 대상을 정해놓고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닙니다.”

전두환의 얼굴에는 보안사령관의 얼굴이 담겨있다. 박정희의 얼굴 속에는 유신정권의 비민주성을 표현했고 손기정 선수를 그려 나라가 없던 시대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강 화백에게 있어서 그리는 인물의 표피, 머리카락은 이차적인 문제다. 그림의 모든 소재는 바로 사회다. 오늘날은 극사실주의로 표현되는 그림 속에 담긴 허구성이다.

그는 화단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기도 했다. 마피아 보스 알 카포네, 공산권지도자 스탈린 등의 얼굴을 그려내니 오해받을 만도 했다. 대학 시절에는 체게바라를 그려 파출소에 연행되는 일도 있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한 것들을 그려낼까. 강 화백은 여기서 예술을 말한다. 

“예술은 학문이나 이론이 아닙니다. 관객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소통하는 것, 그것이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화가도 이야기꾼이 돼야 합니다. 그림을 보는 대중과 소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중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사회입니다. 사회 안에는 역사 종교 정치 등 인간의 모든 삶이 내포돼 있습니다.”

제2의 인생을 위해

강 화백이 이러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은 타고난 것만은 아니다. 솔개가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부리를 깨고 발톱을 뽑듯이 그도 사회를 그려낼 수 있는 화가가 되기 위해 인고의 세월을 거쳤다. 대학을 졸업하고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며 예술가의 독선을 빼냈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에도 10년에 걸친 무명 세월동안 돈과 타협하지 않는 훈련을 했다. 

“직장을 다니던 시절은 예술가들이 갖기 쉬운 독선을 빼내고 예술가의 민주성, 보편성을 공부한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예술가들은 자기 아집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자기만의 믿음을 타인에게 강요합니다. ‘내가 말하면 예술이다’고 하는 사기성도 있는 것 같구요.(웃음) 이것은 다소 무능력을 추상으로 포장하거나 자기 이론을 예술에 끼워 맞추려는 예술가들의 독선입니다. 예술가는 세상 사람들의 하수인이지, 나의 창조성으로 내가 창조물을 만들었다는 주인의식을 갖는 것은 굉장한 오만입니다. 일반 직장을 경험하면서 그런 것을 배웠습니다.”

서른여덟의 나이 다시 그림을 시작하고도 10년 동안은 오직 작품 활동만 했다. 단 한 번의 발표도 없었다. 그의 그림은 인기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물화에 대한 예술성이 높이 평가되지 않았고 게다가 강 화백은 본인의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인물화를 그리는 탓에 상업성을 띨 것이라는 오해를 피하고 싶었던 것. 같은 이유로 그의 그림에는 경제인의 얼굴이 거의 없기도 하다. 그렇게 가난한 시간 동안 신념을 지켰다. 그러기에 자유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이순신 장군이 ‘살기를 바라는 자 죽을 것이요 죽기를 바라는 자 살 것이다’고 했는데, 그 분이 아마 화가였다면 ‘팔리기를 바라는 자 안팔릴 것이요 안팔려고 하는 자 팔릴 것이다’고 했을 것입니다.(웃음) 아무리 어려워도 라면 먹을 돈만 있으면 양심을 팔면 안됩니다” 

▲ Marilyn Monroe in the night sky,2010,oil on aluminum,240x240cm 그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인·영화배우·예술가 등 많은 유명인들을 그리고 있다. 한 사람의 얼굴은 그가 살아온 삶, 그가 살고 있는 시대를 담고 있다는 신념으로 시대의 아이콘이라 할 만한 사람들의 얼굴에 몰두한다. 마릴린 먼로, 앤디 워홀, 오드리 헵번, 반 고흐, 에이브러햄 링컨 등 당대 이슈가 된 인물을 확대해 대형 캔버스에 극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다만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으로 그려내어 그 당시의 모습이 아닌 21세기의 얼굴을 새로이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작가가 바라 본 시선으로 강조와 왜곡을 통해 초상화의 한계를 넘어서는 미술사적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이미지다. 또 그 인물이 품고 있는 시대와 역사도 함께 이야기한다. 작가는 자신이 알려지는 것보다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시대적 인물들에 애환을 주의깊게 봐주길 바라고 있다. <백은성 갤러리클럽 큐레이터>

다시 인간을 그리는 사람. 강형구

이제 그의 그림을 본다. 그림에 대한 그의 강인한 신념, 그림 또한 그의 용맹함을 닮았다. 벽채만한 크기의 얼굴이 관객을 노려본다. 그리고 그 눈빛은 살아있다. 그것에 생명이 있으니 그림 앞에 최대한 착한 작가가 되고 싶다고.

“저는 그림에 눈빛을 특히 살립니다. 그림과 교감하려면 눈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가장 좋기 때문이죠. 부담스러우리만큼 관객과 눈을 마주칩니다. 작업실에 혼자 있을 때는 그림을 보고 무서울 때도 있어요.(웃음) 제가 그림을 그리지만 그림이 완성돼갈수록 그림 속의 눈이 저를 쳐다봅니다. 제가 그림 속의 사람에게 감상을 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행동과 모든 것을 조심해야죠.”

그림을 그리지 못한 시간동안 그림에 대한 욕망을 꾹꾹 눌러가며, 쉽지만은 않은 예술의 길을 고수하며, 비로소 ‘사회화’를 그리는 화가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을 터. 그의 그림이 세상에 드러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은 이제 그의 순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인물화의 가치가 인정받지 못했던 한국현대미술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래도 여전히 남은 숙제가 있다고.

“평생 인물에만 집착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얼굴에 대한 못 다한 숙제가 있어 당분간은 인물화를 더 연구할겁니다. 지금까지 제 그림에는 서구적인 이미지가 지배적이어서 동양적 이미지에 도전하고 싶고 웃는 얼굴도 좀 더 표현해 보고 싶습니다. 또 시대와 상관없는 전설 속의 인물, 메두사의 얼굴 비너스의 얼굴 등도 그려보려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리스 신화를 읽고 연구하고 있죠. 작업 시간 외에도 화가의 생활은 그림을 위한 예술입니다.”

‘내가 사랑한 사람은 나를 싫어했고, 내가 좋아한 작품은 남들이 싫어했다’ - 빈센트 반 고흐

강 화백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세상으로부터 선택받지 못하고 지독한 고독 속에 살았다. 그 외로움과 끔찍한 가난 속에서도 멈출 수 없었던 한 가지, 광기어린 붓질. 고흐의 그것을 강 화백은 닮았다. 그러나 강 화백이 고흐보다 불행하지 않은 것은 그의 광기가 사랑받을 수 있는 시대를 만난 탓이다. 시대의 혜택을 받은 자가, 그러지 못하고 죽어간 자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세상을 그림 속에 나타냄으로써 이제 그를 위로한다. 인간을 위로한다. 사회를 그리는 강 화백은 다시 인간을 그리는 사람이다. 
 

▲ Warhol inAstonishment,2010,oil on aluminum,240x240cm 강형구 화백의 작품에는 특정한 상황이나 배경이 드러나지 않고 사람의 얼굴만 정밀하게 묘사돼 있다. 관람자는 작품 속 얼굴들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작품에서의 응시는 상호교감적인 반응이며 이는 작품의 인물과 관람객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에 관람객 개개인에게 다양한 경험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 사람이 지은 표정 하나 하나가 모여 주름을 만들고 그렇게 형성된 주름 한 줄 한 줄이 그 사람의 얼굴 인상을 만들어 내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인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사람의 성품, 내심까지 어느 정도 가늠하게 해준다. (작품설명: 갤러리클럽 백은성 큐레이터)

 

▲ 윤두서 Oil on canvas, 311x194cm, 2010 동양인을 더 많이 그려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그는 그의 작품에서 보기 드문 동양인 인물인 '윤두서 자화상'을 그려냈다. 조선시대 대표적 문인화가로서 자화상을 그렸던 윤두서를 강형구 화백도 자화상을 그리는 작가로서 윤두서 자화상을 재현한 것이다. 과거 선배에 대한 존경이자 현시대 작가로서의 그에 대한 도전이기도 한 이 작품을 통해 눈빛(눈동자)에 대한 표현이 정점에 이르러 더 깊어졌고 강렬함을 더한 계기가 되었다. 자화상 속 깊어진 까만 눈동자의 이미지가 눈길을 끈다. <백은성 갤러리클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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