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벙개’ 산행의 요람, 북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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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벙개’ 산행의 요람, 북한산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19.09.29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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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맛과 즐거움 모두 담은 도심 속 종합선물세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백운대로 향하는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며 돌아보니 만경대와 서울 도심이 어우러진 모습이 장관이다 ⓒ 최기영
백운대로 향하는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며 돌아보니 만경대와 서울 도심이 어우러진 모습이 장관이다 ⓒ 최기영

예고돼 있지 않고 급하게 잡힌 모임을 흔히들 '벙개'(번개)라고 한다. 주로 카페나 밴드 등에서 소통하는 산악회에서도 누군가 갑자기 산행을 공지하거나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즉석에서 산행 약속을 잡기도 하는데 이른바 '벙개산행'이다. 그 벙개산행을 주도하고 산길을 리딩하는 사람을 '벙주'라고 부른다. 

벙개산행은 주로 도시 근교에 있는 산에서 많이 이루어진다. 서울에 있는 북한산국립공원은 이런 벙개산행의 요람이다. 버스나 지하철로 산행 들머리와 날머리가 모두 닿아 있어 오가기가 편하고, 주변으로는 먹거리도 풍부하다. 그래서 매년 연인원 800여만 명 이상이 북한산을 찾는다. 세계에서 단위면적당 탐방객이 가장 많은 산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돼 있을 정도다. 산림청이 선정한 우리나라 인기명산 순위에서는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3위이고, 인터넷과 SNS 검색어 순위로 따진다면 북한산은 단연 1위다. 

이렇듯 북한산은 누구나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곳이지만 산행도 만만하리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예부터 북한산은 백두산, 금강산, 묘향산, 지리산과 함께 우리나라 오악(五岳) 중 하나로 꼽힐 만큼 크고 험한 산이다. 암벽 등반가들이 국내 최고의 암벽 산행지로 꼽는 곳도 바로 이곳 북한산일 만큼 위험한 암봉과 바윗길이 많다. 그 때문에 북한산은 인명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쉽게 생각하고 북한산을 오른다면 정말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백운대에서 본 인수봉이다. 인수봉은 전문 암벽 등반인들 만이 오를 수 있는 곳이다 ⓒ 최기영
백운대에서 본 인수봉이다. 인수봉은 전문 암벽 등반인들 만이 오를 수 있는 곳이다 ⓒ 최기영

지난주 나는 벙주가 되어 북한산 벙개산행을 하자고 했다. 그리고 약속된 날 아침 일찍 북한산우이역 2번 출구에서 산우들을 만나 도선사를 향하며 산행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출발하면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까지 가장 빠르게 오를 수 있다. 비가 예보돼 있었던 탓인지 평소보다 주말 산길은 한적했고, 잔뜩 흐린 하늘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우리는 하루재를 지나 백운산장을 거쳐 위문까지 쉬엄쉬엄 올랐다. 그리고 위문을 지나 계단으로 단장된 급경사 바윗길을 오른 후 거대하고 가파른 바위에 매달리듯 설치된 난간을 있는 힘을 다해 꽉 쥐고 조심조심 다리를 디디며 오르면 드디어 백운대가 나온다. 뒤를 돌아보니 무시무시한 바위 낭떠러지와 함께 서울 시가지가 어우러진 모습이 정말 아찔하다. 그렇게 우리는 백운대에 올랐다. 

북한산 백운대 정상이다. 평소 주말 같으면 사람들이 많아 줄을 지어 기다려야만 정상 인증사진을 겨우 찍을 수 있었지만 이날 우리 일행은 북한산 백운대를 마음껏 즐겼다 ⓒ 최기영
북한산 백운대 정상이다. 평소 주말 같으면 사람들이 많아 줄을 지어 기다려야만 정상 인증사진을 겨우 찍을 수 있었지만 이날 우리 일행은 북한산 백운대를 마음껏 즐겼다 ⓒ 최기영

이날 백운대는 흐린 날씨에도 시야가 너무도 좋아 저 멀리 서해바다를 볼 수 있었다. 원래 북한산의 이름은 삼각산이다. 먼 옛날 송악(개성)에서 한양을 향해 바라보니 백운대(836m), 인수봉(810m), 만경대(799m)가 솟아나 있는 모습이 마치 삼각뿔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 맑은 날 백운대에 서면 북녘의 산까지 볼 수 있는 것이다. 평소 같으면 백운대 정상표지 바위와 함께 인증사진을 찍으려고 긴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지만, 우리 일행은 이날 백운대 정상을 독차지하며 탁 트인 조망과 서울 도심을 품고 있는 북한산의 멋들어진 산세를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백운대의 아찔한 난간 길을 다시 엉금엉금 내려와 위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위 문(위문)을 통과한 뒤 만경대를 우회하는 산길을 타고 용암문 쪽으로 길을 잡았다. 용암문부터는 주 능선을 따라 세워진 북한산성이 산길과 나란히 뻗어 있다. 북한산의 주요 등산로는 북한산성 길을 따라 나 있다. 그 중에 북한산에 있는 14개의 모든 성문을 따라 걷는 길은 꼬박 하루가 걸린다.

이날 벙개산행을 함께했던 산우들은 올 봄, 그 힘든 성문 종주 길을 같이 걸었던 멤버들이다. 우리는 그날의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느새 추억처럼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중간에 너른 곳을 찾아 도시락과 간식을 먹기도 하고 성곽에 앉아 발아래에 놓인 서울을 보며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이날 오랜만에 만난 세 사람은 한적했던 산성 길을 그렇게 함께 걸었다. 

백운대를 내려와 위문을 거쳐 용암문에 이르면 그때부터 주 능선을 따라 세워진 북한산성이 산길과 나란히 뻗어 있다. 우리는 산길 대신 옛 병사들이 걸었던 산성 순찰 길을 따라 대동문으로 향했다 ⓒ 최기영
백운대를 내려와 위문을 거쳐 용암문에 이르면 그때부터 주 능선을 따라 세워진 북한산성이 산길과 나란히 뻗어 있다. 우리는 산길 대신 옛 병사들이 걸었던 산성 순찰 길을 따라 대동문으로 향했다 ⓒ 최기영

예보됐던 비는 여태 내리지 않았다. 대동문을 지나 우리 일행은 산성길을 조금 더 걷다가 칼바위 능선 쪽으로 길을 잡아 하산을 시작했다. 비가 내렸다면 다른 길로 하산하려 했었다. 예전 칼바위의 악명은 정말 대단했다. 지금은 위험한 곳마다 목조계단이 설치돼 있어 다행이지만 처음 산을 탔을 때 나의 두 손은 발이 되었고, 공포에 벌벌 떨며 그곳을 기어올랐다. 지금도 눈비가 내리는 날에는 아예 칼바위는 피하는 것이 낫다. 하지만 칼바위능선에서 삼각 봉우리와 함께 이어지는 북한산의 스카이라인을 보면 북한산이 왜 서울의 진산인지를 알 수 있다. 

두 발이 네 발이 되는 것도 모자라 엉덩이까지 바위에 붙여가며 조심스럽게 칼바위능선을 다 내려오면 수유리와 정릉, 칼바위탐방지원센터 등으로 이어지는 세 갈래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리는 정릉 쪽으로 하산했다. 시원하게 펼쳐진 정릉계곡의 숲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북한산 하산길이기도 하다. 

산성 길에서 본 북한산 칼바위능선의 모습이다. 마치 칼날을 세워놓은 듯 날카롭다 ⓒ 최기영
산성 길에서 본 북한산 칼바위능선의 모습이다. 마치 칼날을 세워놓은 듯 날카롭다 ⓒ 최기영

바위산의 위엄을 느끼며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을 발아래에 두고 조망할 수 있고, 짙고 싱그러운 숲과 청정한 계곡을 걸을 수도 있고 우리 민족의 역사를 품은 북한산성까지…. 북한산은 실로 산행의 맛과 즐거움을 모두 담고 있는 종합선물세트였다. 

다 내려와서 맛 집을 골라 이날 산행의 뒤풀이를 시작하자 스산한 가을비가 그제야 내리기 시작했다. 근교에 있는 적당한 산길을 골라 산을 탄 뒤 좋은 사람들과 즐기는 한잔 술은 벙개산행의 또 다른 묘미다. 우리는 운치 가득했던 북한산 아래 정릉에서 그렇게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주말 오후를 함께 보냈었다. 

이날 벙개산행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을 산우들과 함께 남겼다 ⓒ 최기영
이날 벙개산행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을 산우들과 함께 남겼다 ⓒ 최기영

요즘 들어 유난히 어지러운 우리나라 수도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이 바로 곁에 있다는 것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겐 어쩌면 축복일 것이다. 아직 북한산에 가보지 않았다면 이번 주 좋은 사람들과 함께 북한산을 꼬옥! 올라보시길.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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