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강형구>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이지수 갤러리클럽 대표
스크롤 이동 상태바
<내가 본 강형구>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이지수 갤러리클럽 대표
  • 김신애 기자
  • 승인 2011.09.08 1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드라운 빵'에 구애받지 않는 창조성
해외시장서 한국 대표작가로 국위선양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신애 기자]

강형구 화백을 만난 이태원의 갤러리클럽. 멋진 남자와 함께 또 한 명의 멋진 여자가 자리했다. 갤러리클럽의 이지수 대표 마음이 강 화백의 ‘뜻’과 통했을까. 비즈니스가 아닌 같은 곳을 바라보는 친구로, 또는 닮고 싶은 사람으로 두 사람의 인연은 이어진다. 이지수 대표(42)가 본 강 화백의 모습은 이러하다.

“선생님, 카리스마가 대단하죠. 근데 괴짜에요. 어려서부터 일반인 같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쨌든 굉장히 독특해요.(웃음)”

강 화백의 작업장에 있다는 ‘별판’으로도 알 수 있다. 육군사관학교와 미대의 꿈을 함께 품고 있던 그는 육사 진학에 실패한 후 누구보다 평생 장교처럼 살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실제 장교로 진급하며 27세에 대위, 32세에 소령이 됐고 40대에는 ‘원스타’를 달았다. 어떻게? 황학동 시장에서 계급장을 사와 스스로에게 달아줬다고. 자기 멋에 사는 사나이다. 

▲ 이지수 갤러리클럽 대표 ⓒ 권희정 기자
강 화백에 대한 이지수 대표의 말 속에는 한 사람에 대한 경의가 진하게 묻어난다. 이 대표는 음악을 전공하고 그것을 미술과 접목시켜 화랑을 운영하면서 뒤늦게 만나게 된 한국작가들에게 때로는 실망도 많았다고 한다. 돈을 따라가는 그들의 그림이 안타까웠다고. 그렇기 때문에 강 화백의 신념이 더 소중한지도 모르겠다.

“배가 너무 고프다가 물질이 조금 들어가면 색깔이 완전 바뀐다고나 할까요. 많은 한국 작가들이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어 내듯 잘 팔리는 성향의 그림을 찍어내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는 것 같아요. 근데 강 선생님은 그렇지가 않더라구요.

강형구 작가는 한국보다 해외 페어에서 먼저 유명해 졌습니다. 선생님 작품이 홍콩 크리스티에서 5억 원이 넘는 금액에 낙찰되면서 일약 스타가 되고 이후 재계 정계 인사들의 많은 요청이 있었지만 선생님은 한 번도 그들을 그린 적이 없어요. 그래서 굉장히 존경합니다.

강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눈물 젖은 빵이 아니라 뽀송뽀송한 빵을 옆에 두고도 그것을 절제하는 것은 없어서 못 먹는 것 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이제는 우리나라가 배고픔의 한이 서린 시대는 지났고 물질적인 풍요로움 속에 있기 때문에 예술가들도 물질 앞에서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강 화백의 작품 속에 오롯이 사회에 대한 관심이 묻어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 화백은 대법관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다. 그리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통해 세계무대에서 국위선양 하는 길을 택했다.

“크리스티나 소더비 등 세계 최대 경매시장에서 한국작가를 인정한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선생님은 평생 그리고 싶은 그림을 통해 나라의 위상을 세우고 싶은 거죠. 해외 시장에서 한국의 대표 작가로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한국의 입지를 굳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의 꿈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림에서도 그런 게 보이죠. 보통 인물화가 관객을 응시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선생님은 똑바로 쳐다보는 그림을 그리면서 한국의 뿌리를 찾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훌륭하고 흔치 않은 사람입니다. 외국 친구들에게도 한국의 대표작가로 자신 있게 강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 Self-portrait, 2007, Oil on canvas, 193[1].9x259.1cm 그에게 있어 자화상은 '나'라는 고유명사를 그린 것이 아니라 남들 속에 같이 존재하는 '나'라는 대명사를 그린 것이다. “내가 그림속의 얼굴을 감상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그림속의 얼굴이 나를 감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극사실주의적 인물작품은 서로가 서로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감상하는 것이다”고 말하는 그는 자화상을 그림으로써 타인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 <백은성 갤러리클럽 큐레이터>

이러한 애국심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두 사람의 인연을 잇고 있다. 이 대표 역시 갤러리를 운영하며 예술에 대한 계몽과 함께 소외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식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한다. 이것이 바로 강 화백과 이 대표가 사업적인 관계를 맺지 않으면서도 친분을 유지할 수 있는 연결고리다.

“매년 전시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방식으로 소외된 이들을 돕고 있죠. 갤러리의 수익으로 도움을 주는 것은 아티스트와 갤러리스트, 컬렉터가 함께 하는 기부입니다. 이 삼각구조 안에 있는 사회를 돕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모두가 할 수 있어요.

저의 궁극적인 목표도 그렇습니다. 최고의 갤러리가 되기보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구조가 잘 정책돼 소외받는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롤모델이 되고 싶어요. 일부 회원을 대상으로 하는 갤러리인 만큼 음성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이 영역에서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예술을 알리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강 선생님도 그 자리에서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는 리더 역할을 오래 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앞으로 한국의 미술시장이 붐을 일으켜서 지금의 차이나 버블이 한국에도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강하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