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를 가다⑦-성남중원] 전통적 진보 강세 지역…단일화가 변수
[지역구를 가다⑦-성남중원] 전통적 진보 강세 지역…단일화가 변수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10.02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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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이유로 진보세 강해…단일화 실패로 보수 후보 어부지리 많았던 곳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진호 기자)

성남 중원은 진보의 초강세 지역으로 분류된다. ⓒ시사오늘
성남 중원은 진보의 초강세 지역으로 분류된다. ⓒ시사오늘

박정희 정권이 중반부를 지나던 1960년대 말. 서울은 ‘희망의 땅’이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뤄진 개발 정책은 대한민국의 부(富)를 서울로 집중시켰고, 사람들은 꿈을 좇아 하나 둘 서울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이촌향도(離村向都) 경향이 강해지면서, 서울은 세계적인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들이 겪었던 고민을 그대로 떠안게 된다. 바로 무허가 빈민촌이 여기저기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몰려들었지만, 당시만 해도 노동법이 제대로 정비돼 있지 않았던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들이 저임금에 시달리며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대도시에는 이곳저곳에 하위 계층들이 모여 사는 거주지가 형성됐다. 1960~70년대 서울의 모습이 그랬다.

1960년대 서울 청계천 판자촌의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1960년대 서울 청계천 판자촌의 모습. ⓒ서울역사박물관

하지만 군사독재정권이었던 박정희 정권은 무허가 빈민촌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1960년대 말, 서울시는 서울에 자리 잡은 무허가 빈민촌을 정리하고, 그곳에 살던 주민들에게는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일대(現 성남시 수정구·중원구 일대) 새로운 주거지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개념만 놓고 보면 신도시 건설과 유사했지만, 실제 양상은 우리가 상상하는 신도시와는 전혀 달랐다.

1971년, 서울시는 청계천과 서울역 일대에 살던 철거민들에게 광주 주택단지로의 이주를 종용(慫慂)했다. 이때 10만여 명의 사람들이 광주로 보금자리를 옮긴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주택단지의 상태였다. 말만 주택단지였을 뿐, 변변한 건물조차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수도나 전기, 교통 등 생활에 필요한 인프라가 없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경제생활을 영위(營爲)하기 위한 기본적 상권이나 업무시설도 형성돼 있지 않았다.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선(先) 입주 후(後) 건설 도시계획이었던 셈. 그야말로 땅만 제공하고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식으로 던져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광주대단지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2002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의 인터뷰에서 “먹을 게 없어서 남한산성에 올라가서 칡 캐는 사람들, 풀뿌리 찾아서 파먹고 닭 사료로 죽을 끓여먹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회고하며 “아무리 철거민이지만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인데, 정부가 우리를 쓰레기 버리듯이 버린 것”이라고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

광주대단지 사건 당시의 모습. ⓒ성남시
광주대단지 사건 당시의 모습. ⓒ성남시

이런 상황에서, 이주민들의 분노가 임계점(臨界點)을 넘게 만드는 일이 발생한다. 관할 행정당국인 경기도청이 주민들에게 처음 약속했던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의 토지대금을 납부하라는 고지서를 발부한 것이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 따르면, 정부는 평당 2000원 하던 땅값을 8배까지 올리고 두 달 안에 일시불 상환하라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분노가 폭발한 대단지 이주민들은 1971년 8월 10일, 정부에 반기를 들며 봉기(蜂起)했다.

그 결과, 주민들은 서울시로부터 모든 요구를 수용한다는 약속과 사과를 받아낸다. 이것이 바로 ‘광주대단지 사건’이다. 이후 광주대단지는 시로 승격하는 등 발전을 시작했다. 하지만 대가가 만만치 않았다. 봉기로 인해 광주대단지에 덧씌워진 ‘폭력’ 이미지가 이주민들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광주대단지는 성남시로 승격됐지만, ‘우범(虞犯) 지역’이라는 낙인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하동근 전 광주대단지 사건 20/3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에 따르면, 광주대단지 주민들은 회사에 이력서를 낼 때 주소를 성남으로 기재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성남에는 ‘저항의 정서’가 자리 잡는다. 오랜 기간 차별받았던 호남에 한(恨)의 정서가 있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차별과 배제에 저항하던 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은 하나 둘 성남으로 모여들어 반(反) 정부 투쟁에 열을 올렸다. 여기에 지역 개발 과정에서 신흥동과 상대원동 일대에 성남공업단지가 조성되며, 성남은 호남에 버금갈 정도로 진보적 색채를 띤 지역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성남 중원은 진보 강세 지역이지만, 단일화 실패로 인해 보수 정당이 어부지리를 챙기는 경우가 많았다. ⓒ시사오늘
성남 중원은 진보 강세 지역이지만, 단일화 실패로 인해 보수 정당이 어부지리를 챙기는 경우가 많았다. ⓒ시사오늘

이 같은 경향은 역대 투표 결과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분당 신도시가 들어서며 분당구가 중원구에서 분리된 1990년대 후반 이후, 성남 중원은 진보 진영의 압도적 우위가 드러나는 선거구였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는 국민회의 조성준 후보(4만22표)가 신한국당 정완립 후보(2만7355표)를 여유 있게 누르고 당선증을 거머쥐었으며,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도 민주당 조성준 후보(4만187표)가 한나라당 김일주 후보(2만3123표)를 손쉽게 제쳤다.

특히 제16대 총선에서는 민주노동당 정형주 후보가 무려 1만9781표를 얻었는데, 앞서 언급했듯이 성남 중원이 과거 강성(強性) 운동권 대학생들의 영향을 크게 받은 지역이라는 점과 관련이 있다.

민주노동당 계열 정당의 강세는 다음 선거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제17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 이상락 후보(4만2770표)가 금배지를 달긴 했으나, 민주노동당 정형주 후보(2만2640표)는 한나라당 신상진 후보(2만7032표) 못지않은 득표율을 과시하면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2005년 재보궐선거 때부터는 한나라당 신상진 후보가 다섯 번의 선거 중 네 번의 선거에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이는 착시 효과였을 뿐 실제로는 진보 강세가 이어졌다. 2005년 재보궐선거에서 한나라당 신상진 후보가 얻은 표는 2만435표였는데, 2위 민주노동당 정형주 후보(1만6120표)와 3위 열린우리당 조성준 후보(1만2717표)의 득표수 합계는 2만8837표에 달했기 때문이다. 진보 진영이 후보를 단일화했다면, 승패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도 있었다.

제18대 총선에서도 마찬가지 양상이 벌어졌다. 2위 통합민주당 조성준 후보(2만9446표)와 3위 민주노동당 정형주 후보(1만941표)의 표를 합치면 4만387표로 한나라당 신상진 후보의 3만4546표를 훌쩍 넘어선다. ‘진보 단일화는 필승’이라는 가설이 맞아떨어진 선거가 바로 제19대 총선으로, 이 선거에서 통합진보당 김미희 후보는 4만6062표를 획득, 4만5408표에 그친 한나라당 신상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다.

제20대 총선에서 잠시 보수 바람이 불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다시 진보세가 강해진 분위기다. ⓒ시사오늘
제20대 총선에서 잠시 보수 바람이 불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다시 진보세가 강해진 분위기다. ⓒ시사오늘

그러던 와중, 성남 중원의 정치 성향에 변화가 생기는 사건이 발생한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가 정부가 청구한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및 정당 활동 정지 가처분 신청사건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린 것. 이 일을 계기로 ‘진보의 성지’ 중 하나였던 성남에서의 진보세는 급격히 약화되기 시작한다. 그 결과,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공석이 된 성남 중원 국회의원 자리는 새누리당 신상진 후보에게로 돌아간다.

이듬해 치러진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도 새누리당 신상진 후보가 4만9714표를 획득해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후보(4만4546표)에게 승리를 거뒀으며, 통합진보당이 제19대 총선에서 15.4%의 비례대표 득표율을 올렸던 것과 달리 정의당은 제20대 총선에서 5.23%를 받는 데 그친다. 통합진보당 해산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성남 중원의 진보세는 다시 살아나는 분위기다. 그도 그럴 것이 제20대 총선에서의 보수 강세는 인구 구성 변동에 따른 근본적 변화가 아닌 일시적 ‘바람’의 성격이 강해, 상황이 바뀌면 언제든 진보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았다. 10월 1일 <시사오늘>과 만난 자유한국당 관계자도 “성남은 호남향우회가 전국에서 제일 센 곳이고, 공단도 있어서 인구 구성 자체가 진보 쪽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지역”이라며 “진보가 통합만 돼서 나오면 보수가 이기기 어려운 곳”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제19대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성남 중원구에 포함된 모든 행정동에서 승리를 거뒀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도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를 누르고 4위에 오르며 선전했다. 반면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단 한 곳에서도 1위 혹은 2위를 기록하지 못하고 모든 지역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밀리는 굴욕을 맛봤다.

제7회 지방선거에서도 성남 중원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무려 64.18%의 득표율을 선물했다. 자유한국당 남경필 후보의 득표율은 29.81%에 불과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잠시 보수 쪽으로 기울었던 민심이 다시 진보 쪽으로 되돌아선 셈이다.

성남하이테크밸리를 비롯해 일자리가 많은 성남 중원은 노동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곳이다. ⓒ시사오늘
성남하이테크밸리를 비롯해 일자리가 많은 성남 중원은 노동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곳이다. ⓒ시사오늘

당분간은 이러한 경향성이 계속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광주대단지 사건의 여파가 남아 있는 데다, 호남 출신이 많고 공단이 위치한 지역적 특성까지 진보 진영에 유리한 까닭이다. 앞선 한국당 관계자는 “신상진 의원이 4선을 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워낙 신 의원이 지역구 관리를 잘한데다가 진보 쪽이 분열됐던 덕도 있었다”면서 “신 의원이 개인기가 좋은 분이라 충분히 승산은 있겠지만, 진보 진영이 통합해서 나오면 아무래도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다만 성남 중원이 이전만큼 진보 진영에 압도적으로 유리한 지역구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관측도 존재한다. 지난달 말 <시사오늘>과 만난 이 지역 언론인은 “제18대 대선에 비해 제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얻은 득표율이 크게 낮아졌다”면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여론이 상당히 나빠졌고 성남 중원의 지역 특성상 젊은층 유입이 많지 않아서, 과거보다는 보수세가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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