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肉山 숲길을 걷는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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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肉山 숲길을 걷는 즐거움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19.10.06 1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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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예봉산에서 운길산 수종사까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우리나라의 산을 크게 육산(肉山)과 골산(骨山)으로 구분한다. 육산은 흙이 많고, 골산은 바위가 많다. 육산과 골산을 구분하기 모호한 산도 많지만, 지리산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육산이고, 설악산이 전형적인 골산이다. 

산을 타다 보면 한 개 봉우리만 올랐다가 다시 내려가는 것이 아쉽다. 그래서 몇 개의 봉우리를 연결하는 능선 길을 따라 걷는 종주산행에 도전하곤 한다. 지리산 주능선이나 설악산 서북릉 등이 우리나라 산꾼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대표적인 종주 산행 코스다. 

그러나 그렇게 힘든 종주산행 말고도 수도권 근교에는 아담한 몇 개의 봉우리를 연결하여 걸을 수 있는 당일치기 종주능선길이 꽤 많다. 남양주에 있는 예봉산~적갑산~운길산을 잇는 약 13km 코스는 한강 두물머리의 풍광을 보며 육산의 부드러운 숲길을 걸을 수 있는 종주 등산길 중 하나다. 산을 빠르게 타는 사람이라면 6시간 정도면 주파할 수 있고, 나처럼 사진도 찍고 먹을 것 배불리 먹어가며 슬슬 산행을 하는 사람이라도 7시간대면 충분하다. 그리고 지하철 경의중앙선이 생기며 팔당역이나 운길산역에서 바로 산길이 이어지는 것도 편하다.

예봉산 정상에서 본 운무의 모습. 바람이 없던 이날 구름은 예봉산 밑에 그대로 고여 있었다 ⓒ 최기영
예봉산 정상에서 본 운무의 모습. 바람이 없던 이날 구름은 예봉산 밑에 그대로 고여 있었다 ⓒ 최기영

이날 함께 산을 타기 위해 우리는 상봉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휴일 용문 방향으로 가는 경의중앙선 전철 시간표를 미리 확인하고 약속 시간을 잡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예봉산을 오르기 위해 우리 일행은 팔당역에서 내렸다. 팔당역에서 예봉산 등산로 이정표를 따라 팔당2리에 있는 들머리를 찾아 산행을 시작했다. 

초입부터 예봉산 정상까지는 2km 정도의 그리 길지 않는 길이지만 이날 코스 중 가장 가파른 곳이다. 산행을 시작하면 어느 산에 오르든 처음이 항상 힘들다. 힘든 산길에 내 몸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이날도 가파른 산길이 몹시 힘에 부쳤다. 그러다가 전망대가 나오고 한강과 강 너머에 있는 검단산이 보이며 시야가 트이자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다시 가파른 고바위를 다시 한 번 치고 오르자 드디어 예봉산 정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날 구름은 산자락을 넘지 못했던 모양이다. 예봉산이 있는 천마지맥 아래 그대로 구름이 미동도 없이 고여 있는 것이었다. 뜻하지 않은 운무의 장관이었다. 산을 타다 보면 이렇게 뜻하지 않은 절경을 행운처럼 만나곤 한다. 

예봉산(683m)은 옛날 영서지방을 오가던 길손들이 삼각산(지금의 북한산)이 보이는 이곳에서 임금님에 대한 예를 갖췄다고 해서 이름이 유래됐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인 정약용의 생가인 여유당은 예봉산과 이어지는 남양주시 능내리에 위치해 있다. 정약용은 그의 형제들과 바로 이곳 예봉산자락에서 태어나 이곳을 오르내리며 학문을 익혔다고 전해진다. 

적갑산으로 가는 길에는 활공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본 일망무제의 풍광이 기가 막히다. 산우 한명이 그 풍광을 동영상으로 담고 있다 ⓒ 최기영
적갑산으로 가는 길에는 활공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본 일망무제의 풍광이 기가 막히다. 산우 한명이 그 풍광을 동영상으로 담고 있다 ⓒ 최기영
다정한 숲길을 걷다 보면 적갑산 표지석이 왼쪽 언덕바지에 있다 ⓒ 최기영
다정한 숲길을 걷다 보면 적갑산 표지석이 왼쪽 언덕바지에 있다 ⓒ 최기영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말이 있듯이 이날 가장 힘든 코스를 일찌감치 해치운 우리 일행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워졌다. 예봉산에서부터는 그야말로 정겨운 육산의 흙길이 이어진다. 적갑산으로 가는 길에 억새군락지도 있고 조금만 더 가면 항공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너른 활공장이 나온다. 그리고 한강과 도시가 어우러진 장관이 그대로 눈 앞에 펼쳐진다. 그곳을 향해 몸을 던져 하늘을 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운길산으로 가는 다정한 산길을 걷다 보면 왼쪽 작은 언덕바지 같은 것이 있는데 그 위에 아담하게 적갑산 정상 표지석이 서 있다. 앞만 보고 길만 쫓아 걸으면 놓칠 수 있을 것 같다. 어찌 됐건 이날 종주산행의 두 번째 봉우리를 만나니 반가운 마음에 인증샷을 찍고 일행은 숲길을 계속 걸었다. 새재를 지나면 다소 급한 오르막길이 나오기도 하지만 운길산까지는 그렇게 포근한 흙으로 덮힌 숲길이 이어진다. 

운길산 정상 표지석 ⓒ 최기영
운길산 정상 표지석 ⓒ 최기영

드디어 운길산 정상에 섰다. 운길산은 구름이 지나가다 정상 봉우리에 걸려 멈춰 선다는 의미다. 정상에서 본 팔당호의 모습, 한강, 그리고 겹겹이 쌓인 산세가 일품이다. 어느 방향으로든 풍광이 좋고 탁 트여 있어서 운길산 정상은 해돋이 명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운길산에는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하나 있다. 정상에서 1km 정도를 걸어 내려오면 만날 수 있는 수종사다. 뭐니뭐니해도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의 거대한 강물이 한곳에서 만나는 두물머리(양수리)의 아름다운 풍광이 압권이다. 두물머리 풍경은 어디서 봐도 아름답지만, 이곳이 진짜다. 특히 가을과 겨울의 풍경이 빼어나다. 중국의 서거정도 '수종사에서 바라본 강물 풍경은 동방에서 제일'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운길산의 명소 수종사 ⓒ 최기영
운길산의 명소 수종사 ⓒ 최기영

가을이 오매 경치가 구슬퍼지기 쉬운데/ 묵은 밤비가 아침까지 계속하니 물이 언덕을 치네/ 하계(下界)에서는 연기와 티끌을 피할 곳이 없건만/ 상방(上方, 절) 누각은 하늘과 가지런하네/ 흰 구름은 자욱한데 뉘게 줄거나/ 누런 잎이 휘날리니 길이 아득하네
-양수리 수종사, 서거정 지음

운길산을 내려와 수종사로 들어가는 입구에 돌계단이 있는데 그곳엔 약수가 하나 있다. 돌 틈으로 맑은 물이 흘러나와 떨어질 때 종소리가 나서 수종사라 했다고 한다. 같은 사물을 보고도 옛 선인들의 발상은 정말 놀랍다. 그리고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까지 긴 여운으로 남을 수 있는 건 운길산과 두물머리가 어우러진 이곳의 아름다움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수종사에 있는 500년 은행나무 보호수 옆에서 한강 두물머리 방향으로 바라 본 모습. 두물머리는 어디에서 보아도 아름답지만 이곳이 진짜다 ⓒ 최기영
수종사에 있는 500년 은행나무 보호수 옆에서 한강 두물머리 방향으로 바라 본 모습. 두물머리는 어디에서 보아도 아름답지만 이곳이 진짜다 ⓒ 최기영

운길산역에서 종주산행을 시작하기도 하는데 예봉산으로 내려오면 팔당역 근처에는 민물매운탕 맛집이 많고, 이날 우리처럼 운길산역으로 내려오면 장어 맛집도 많다. 아침 일찍이 서둘러서 산행을 시작했지만 볼 것, 먹을 것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챙겨가며 제법 길게 산을 탄 탓에 운길산을 다 내려오니 늦은 오후가 돼 있었다. 서거정의 그것에 비하기에는 어림도 없겠지만 해거름 녘이 되자 두물머리의 풍류에 취했던 건지 장어 맛에 도취된 건지 우리는 '딱 한 잔만 더!'를 외치고 있었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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