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영화의 얼굴…“이거 정치 영화 아니야?”
[주간필담] 영화의 얼굴…“이거 정치 영화 아니야?”
  • 윤진석 기자
  • 승인 2019.10.06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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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무의식에 기초한
시대적 배경과 영화 이야기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진석 기자)

세월호 참사가 있던 2014년 영화 명량이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시사오늘
세월호 참사가 있던 2014년 영화 명량이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시사오늘

 

히틀러 나치 시대의 선전선동 술로 악명을 떨친 괴벨스. 그에게 라디오, 신문, 영화 등은 체제 유지 전략에 필요한 효과적인 도구였다. 그 중 괴벨스는 영화만큼 인간의 무의식에 영향을 끼치는 대중선동매체는 없다고 했다.

19세기 과학기술의 총아라 불리는 영화의 출현 이후 ‘선전영화’ ‘정치 영화’라는 용어가 등장할 만큼 영화와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지식백과 등에 따르면 냉전 시대에 뛰어든 독일·미국·프랑스·영국·소련 등도 정치와 영화의 시너지를 알기에 선전 영화를 통해 자국의 활약상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주목했다.

정치 영화는 파시즘 등 전체주의와 독재 체제가 만연할수록 대중 우민화 정책 수단으로 깊숙이 활용됐다. 소비에트 혁명 선전의 대표적 영화 <전함 포텐킨>(소련, 1925), 나치의 선전 영화 <돌격대원 브란트>(독일, 1933) 모택동 지시의 군사 영화 <상감령>(중국, 1956), 박정희 개발독재 선전 영화 <쌀>(우리나라, 1963), 수령 찬양의 <조선의 별>(북한,1973) 등을 꼽을 수 있다.

어쩌면 요즘도, 또 앞으로도 권력층의 정치적 의도와 계산에 의해 제작되는 군중 장악용 영화는 등장할는지 모른다. 우리 역시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이거 정치 영화 아니야?"라며 의문을 가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는 일부일 뿐, 보통은 영화야말로 인간의 집단 무의식을 반영하는 사회상, 시대정신을 반영해주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논리다. 흥행이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 의식의 흐름별 트렌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잘 감지해내는 산업이 영화이기에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결국 그것은 대중이 만들어낸 주체적 선택의 결과물로 요약된다. 박근혜 정부 임기 첫 해인 2013년, 대중의 한편에서는 국정교과서 논란 등 역사적 퇴보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다시 민주주의 가치에 대해 돌아보는 심리부터 양극화 사회에 대한 우려 등 정치적 쟁점이 높아지던 때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인권변호사 시절을 다룬 <변호인>, 신자유주의 비판이 연상된 <설국열차>, 수양대군의 역모를 다룬 영화 <관상> 등이 모두 그해 2,3,4위 관객순위를 기록하던 것들이다.

세월호 참사로 정국이 패닉 상태에 빠졌던 2014년. 그해는 영화 <명량>이 엄청난 흥행을 일으켰다. 바다 위에서 열두 척의 배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적의 함대로부터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였다. 세월호를 구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와 비교되며 진정한 리더란 무엇인지에 대해 회자되는 계기였다. 지금까지도 역대 관객 누적순위 1위라는 타이틀을 기록 중에 있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가 말해주듯 대중의 향수를 자극하는 복고풍 열풍은 그 시기 대중 저변의 또 다른 주류 트렌드 중 하나였다. 산업화 세대의 감수성을 자극한 영화 <국제시장>이 같은 해 개봉되며 <명량>에 이어 2위를 기록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지금도 <국제시장>은 누적 관객 순위 4위를 차지하며 천만 이상 흥행의 대표작으로 남아있다.

2015년에는 임시정부 당시의 독립운동을 다룬 <암살>을 비롯해 이병헌, 조승우, 백윤식 주연 영화 <내부자들>이 단연 돋보였다. 특히 <내부자들>은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악조건임에도 불구하고 19금 흥행영화의 역사를 새로 쓰며 700만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았다. 정치와 경제, 언론의 유착관계를 다룬 영화는 훗날 최순실 국정농단과 고영태 내부고발 등과 맞물리며 다시금 세간의 화제에 오른 바 있다.

메르스 사태의 공포가 횡행했던 2016년에는 좀비가 되고 마는 <부산행>이 그해 1위 영화의 종지부를 찍었다. 비슷한 시기 흥행한 재난 사고의 <터널>, <판도라>를 비롯해 <부산행> 모두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등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안 심리가 반영됐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박근혜 정부 탄핵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던 2017년. 이 해는 죄와 벌을 다룬 판타지 감성의 <신과 함께>도 있었지만, 시대사 영화가 파죽지세로 등장한 해였다. 광주 민주화 항쟁의 <택시운전사>, 남한 형사(유해진)와 북한 형사(현빈)의 파트너십이 돋보인 <공조>, 6월 항쟁의 <1987>, 일제강제징용 참상의 <군함도>, 검찰의 비리를 다룬 <더 킹>, 남북한 협력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얻게 되는 <강철비> 등이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그런가 하면, 2018년부터는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주로 대중의 선택을 받고 있다. <신과 함께2>를 비롯해 <어벤져스> <보헤미안 랩소디> <미션임파서블> 등 오락 영화가 다섯 손가락 순위에 들며 강세를 입증했다. 한편으로 그에 뒤처지기는 했지만 리얼한 전투신으로 호평을 얻은 <안시성>(7위), 남북한 첩보요원 등의 우정을 다룬 <공작>(12위), IMF 시절의 <국가부도의 날>(16위) 등이 관심을 얻었다.

올해는 코미디 영화 <극한직업>이 일약 대박을 터트렸다. 입소문을 타며 흥행순위를 갈아치우더니, 역대 관객순위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몇 년에 걸쳐 무겁고 굵직한 시대사를 다룬 영화가 줄을 잇자, 관객의 피로감으로 돌아와, 그에 반대되는 가볍고 유쾌한 영화 쪽으로 극장가가 붐볐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사회적, 시대사적 영화는 여전히 극장가 흥행의 한 줄기를 차지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계급 사회상을 꿰뚫은 문제작이자 칸 영화제 수상작인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천만 영화에 들며 대중에 각인됐다. 한일 갈등이 치솟던 시기 개봉한 무장 항일 투쟁의  <봉오동 전투>도 470만 명을 동원하며 순항을 탔다.

또 최근에는 개봉관이 많지 않음에도 일주일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던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 장기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의 학도병 희생을 다룬 영화로 감동을 안기며 관객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일련의 영화적 트렌드를 거쳐 <장사리>에 대중의 시선이 모아지는 이유 역시 ‘집단 무의식에 기초한다’는 것이 전문가의 견해다.

리얼리즘의 거장 이장호 감독은 지난 4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집단 무의식이란 게 있다. 시기에 따라, 사회적 변화에 따라 대중의 집단 무의식도 달라진다”며 운을 뗐다. 이어 “<명량> 때는 세월호를 통해 정부에 실망했던 국민들이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에 쏠렸듯 영화 <장사리>는 사회가 북한에 의지하고 있는 실정에 생긴 반발심이 아닐까 싶다”고 짐작했다.

한국영화평론가협회의 정민아 영화평론가는 “복고풍 유행에서 한 발 나아가 역사적 문제에 관심을 두고 사회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단의식의 연장선”으로 봤다.

정 평론가는 통화에서 “촛불집회를 거치고 시민이 직접 정치를 바꾼 경험이 생기면서 역사적 관심이 이전보다 높아진 추세”라고 전제했다. 아울러 “전 정부의 헬조선 담론, 88만원 세대 담론 등을 접하며 개인적 문제를 떠나 구조적 문제라고 인식한 대중은 역사적 되짚기를 통해 어떤 문제가 있고, 해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점검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고 해석했다.

즉 “일련의 영화는 물론 근래의 봉오동전투, 장사리 등도 모두 그 같은 흐름의 일환”이라며 “제작자 입장에서 장사가 되는 한 관련 코드의 영화들은 계속 만들어질 것”이라는 얘기였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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