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그림자③] 국가의 원로가 사라진 어둠의 시대
[시대의 그림자③] 국가의 원로가 사라진 어둠의 시대
  • 윤명철 기자
  • 승인 2019.10.1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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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버릴 줄 모르는 국가 원로가 국민의 존경을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③(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자신을 버릴 줄 모르는 국가 원로가 국민의 존경을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사진제공=뉴시스
자신을 버릴 줄 모르는 국가 원로가 국민의 존경을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사진제공=뉴시스

국가가 위기에 빠지면 국가 원로들이 나서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치의 미덕이 있었다. 이들은 편안한 노후를 선택하기 보다는 국민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군주에게 직언을 해서 국가의 위기를 잠재우곤 했다. 조선이 519년의 긴 역사를 유지했던 이유도 국가 원로들의 충심어린 상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로 사상 유례없는 극단적인 분열이 난무하는 국민을 위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용기가 있는 국가 원로가 필요한 때다.

김일손, 목숨을 건 직언의 대명사

조선의 선비들은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백성을 위한 바른 정치를 위해 국왕에게 서슴지 않고 직언을 하곤 했다.

15세기 조선은 세종과 성종의 치세를 거쳐 국가의 기틀이 완성되고 있었다. 건국 초 2차례의 왕자의 난과 무력으로 단종을 폐위시킨 계유정란과 같은 정변이 발생하긴 했지만 무난히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고 동아시아의 신흥 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는 법, 계유정란을 통해 실용주의노선으로 개혁을 추구하던 훈구파는 점차 기득권 세력으로 변질됐고, 세조 사후 신하들이 군주를 선택하는 이른바 ‘택군(擇君)’의 시대를 열었다.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군주를 자기 입맛대로 골라서 즉위시키는 정의롭지 못한 시대를 연 정치세력이 훈구파였다.

하지만 성종은 여말선초 당시 조선 건국에 반대해 향촌에 은거하며 자신들의 시대가 오기를 묵묵히 기다린 사림세력을 적극 등용해서 훈구파에 맞섰다. 김종직과 그 제자인 김일손과 같은 의기있는 선비들이 그들이었다.

성종이 폐비윤씨 소생인 연산군을 내치지 못하고 붕어하자, 대권을 물려받은 연산군은 대의명분을 중시하며 도의정치를 외치던 사림세력이 싫었다. 이에 김일손과 같은 사림세력은 연산군에게 쓴소리를 하기로 작정했다.

<연산군일기> 연산 1년 5월 28일 기사는 “충청도 도사 김일손이 시국에 관한 이익과 병폐 26조목으로 상소하다”라고 전한다. 김일손은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서 활동하며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등과 함께 초기 사림의 대표적 인물로 역사는 기억하고 있다.

김일손은 이 상소에서 “전하께서 가언·선정을 듣고자 하시어, 듣고 나서 뜻에 두지 않으신다면, 듣는 보람이 없을 것이요, 민간의 이익과 병폐를 알고자 하시어, 알고 나서도 시행하지 않으신다면, 아시는 보람이 없을 것이오니 듣고서는 실천하고 알고서는 실행한다면, 요(堯)·순(舜)이 되기도 어렵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요·순을 성인이라 하는 까닭은 자기를 버리고 남을 쫓았기 때문”이라며 “만약 자기 사사로운 뜻을 고집해 아랫사람들에게 임(臨)하신다면, 가언·선정이 날마다 아뢰어지고 민간의 이익과 병폐가 날마다 들리더라도, 이것이 모두 나는 벌레 소리와 지나가는 까마귀 소리 같아서, 한갓 전하의 총명을 어지럽게 할 뿐”이라고 직언했다.

하지만 한민족 역사상 희대의 폭군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연산군은 김일손의 직언을 무시했고, 오히려 김일손이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남긴 것을 문제 삼아 ‘무오사화’를 통해 능지처참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충신을 무참히 살해한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강제 폐위됐다. 후일 김일손은 중종반정이후 신원을 회복해 만고의 충신으로 역사에 남았다.

국가 원로가 사라진 어두운 시대를 맞이하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용기에 대한 스페인 속담이다. 조국 법무부장관 가족 파문으로 빚어진 대한민국 국론분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선 누군가는 김일손처럼 용기를 내서 국민과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언을 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2019년 하반기 조국 사태가 벌어진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국가원로다운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문희상 국회의장을 보자. 대통령 비서실장, 청와대 정무수석, 국회 부의장을 거친 6선의 원로로서 대표적인 의회주의자로 알려진 정치권의 큰 어른이다. 우리 나이로 75세인 문 의장은 군부정권 당시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인물로 여야를 초월해 존경받는 얼마 안 되는 정치인이다.

하지만 문희상 의장은 조국 사태가 악화되고 있는 데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일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극단적인 국론분열의 참극이 펼쳐지면서 여야 정치권은 극단적 증오와 저주의 늪에 빠져있는 데도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우리 정치권은 국회의장으로 선출되면 당적을 포기한다. 그 이유는 국회의 최고 수장으로서 특정 당파의 이익이 아닌 중립적인 위치에서 국회를 운영하기 위해서다. 이는 문 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자유로운 위치라는 이야기도 된다.

하지만 문희상 의장이 조국 사태가 악화되고 있는 데도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언을 했다는 뉴스를 들어보지 못했다. 단지 문희상 의장은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당대표 정례 오찬회동 ‘초월회’ 인사말을 통해 “국민의 뜻은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에 충분히 전달됐다고 저는 생각한다”며 자신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문 의장이 더불어민주당 소속이 아닌 대한민국 국회의 최고 수장이라면 국가 원로로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여기도 옳고, 저기도 옳다는 생각은 현재의 극단적인 분열의 정치를 종식시켜야 할 국가 원로로서 너무 안일한 생각이 아닐까 싶다.

보수 야권도 마찬가지다. 전직 국회의장, 국무 총리 등 다수의 국가 원로들이 있다. 여야 지도부가 극단적인 대결 구도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여권의 원로들과 자리를 마련해 국정운영의 노하우를 전달해야 할 것이다. 자신을 버릴 줄 모르는 국가 원로가 국민의 존경을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이 아닐까?

 

담당업무 : 산업1부를 맡고 있습니다.
좌우명 : 人百己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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