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그림자④] 4차 산업혁명·신성장동력, ‘스톡데일 패러독스’인가
[시대의 그림자④] 4차 산업혁명·신성장동력, ‘스톡데일 패러독스’인가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10.1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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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않은 미래, 암울한 현재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월남전에 참전한 미군 장교 제임스 스톡데일은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베트콩의 포로 신세였다. 함께 포로가 된 수많은 동료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빛을 볼 수 있었다. 그 비결은 합리적인 낙관주의였다. 동료들은 '크리스마스에는 나갈 거야, 부활절 전에는 나갈 수 있을 거야'라며 막연한 희망에 사로잡혀 실망을 반복한 반면, 스톡데일은 '여기서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건강부터 챙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석방의 그날을 묵묵히 준비한 것이다. 낙관하되 현실을 직시하라, 이를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한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 pixabay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 pixabay

4차 산업혁명과 신성장동력에 대한 정부 정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내외 경제 침체가 심화되는 상황인 만큼, 장밋빛 낙관론만 내세울 게 아니라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반대로 가는 고용지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을 기반으로 한 기술혁명이 우리의 생활 방식과 업무 방식,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까지 완전히 뒤바꿀 것이다." 2016년 1월 클라우스 슈밥 다보스포럼 회장은 4차 산업혁명을 시대 화두로 꺼내며 이 같이 설명했다. 국내 정치권은 탄핵 정국, 조기대선 정국 등으로 혼란한 와중에도 여야를 가릴 것 없이 4차 산업혁명을 구호로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도 4차산업혁명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신설하는 등 시대에 뒤처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하지만 정치권과는 달리, 학계와 시민사회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다.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지만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이 고용생태계의 지각변동이다. 실제로 클라우스 슈밥 회장이 4차 산업혁명을 언급했던 그해 다보스포럼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경제 규모 상위 15개국의 일자리 500만 개가 5년 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인자동화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잉여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국민들의 인식도 비슷했다. 같은 해 시행된 '한국인의 미래사회 전망 및 정책욕구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년 후 발생할 사회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 중 42.1%가 '인공지능 및 로봇의 인간 일자리 대체로 인한 대량실업'을 꼽았다. 또한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결합하면서 '고용 없는 성장'이 지속되면 양극화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소득 수준 하락과 극심한 부의 양극화, 18.9%)가 그 뒤를 이었다.

이 같은 우려가 이어지자 정부는 2017년 말 4차 산업혁명 대응을 선도할 13개 혁신성장동력 분야(빅데이터, 차세대통신,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드론, 헬스케어, 스마트시티, 가상증강현실, 지능형로봇, 지능형반도체, 첨단소재, 혁신신약, 신재생에너지)을 선정해 집중 육성하는 내용이 담긴 '과학기술·ICT를 통한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 구현' 방안을 공개했다. 당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해당 정책을 통해 향후 5년 간 9조 원 규모의 정부 차원 R&D 투자로 총 55만 개(오는 2025년 목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리고 지난 5월 청와대는 4차 산업혁명 대응 정책이 효과를 보면서 고용 상황이 지난해보다 개선돼 희망적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태호 당시 일자리수석은 '4월 고용동향'을 인용하면서 "올해 들어 취업자 증가 수는 2월 26만 명, 3월 25만 명, 4월 17만 명 등으로 지난해와 비교하면 획기적인 변화"라며 "취업자 수는 신사업·신기술 분야와 사회서비스 분야가 쌍두마차로 끌어가고 있다.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정책의 결과라고 본다. 어렵지만 희망이 있다"고 설명했다.

낙관론은 최근에도 지속됐다. 황덕순 현 일자리수석은 지난달 브리핑에서 "전반적으로 고용 회복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현재 흐름을 고려하면 올해 취업자 증가 규모는 20만 명을 상회할 것"이라며 "창업·벤처 활성화 및 자영업 대책, 청년일자리 대책, 고용안전망 강화 등 정부 정책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경기상황은 수출과 투자 중심으로 어렵지만 경기에 비해 고용지표가 좋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고용지표는 낙관론과 다소 거리가 있는 실정이다. 8월 고용동향에서 '산업별 취업자'를 살펴보면 4차 산업혁명 대응 정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정보통신업' 취업자 수는 전년 동월 대비 2.2% 줄었고, '제조업' 취업자 수도 0.5% 감소했다. 또한 전체 증가한 취업자 45만2000명 중 39만1000명이 60세 이상 노인인 반면, 30대 취업자 수는 1만 명, 40대 취업자 수는 12만7000명 전년 동월보다 각각 줄었다 같은 기간 '전문 과학 및 기술서비스업' 취업자 수가 5.5% 증가한 건 유일한 위안거리다.

업계에서는 4차 산업혁명 대응 정책과 고용지표가 반대로 가는 주된 원인으로 정부의 안일함을 꼽는다. 낙관론을 줄곧 내세운 것과 달리, 일선현장에서는 업무추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같은 비판은 집권여당에서도 제기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지난 2일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의 뚜렷한 성과를 찾아보기 어렵다. 전국을 다니면서 세미나만 하면서 무위도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최기영 과기정통부 장관은 "4차 산업혁명은 범부처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사안이다. 이를 위해 타 부처와 열심히 협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지난 7월 기준 4차산업혁명위 정부위원 가운데 장관 5명의 평균 회의 출석률은 34.6%에 그쳤다. 또한 올해부터 부활한 과기관계장관회의의 장관 출석률도 24%에 불과하다. 일자리위원회의 장관 출석률의 경우 90% 이상임을 감안하면 지극히 낮은 수준이다.

4차 산업혁명 대처 미흡→신성장동력 암초로 작용
이낙연 총리 “노동문제와 동시 타개해야”…늦은 후회

지난 1월 전국경제투어 '대전의 꿈, 4차 산업혁명 특별시'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 뉴시스
지난 1월 전국경제투어 '대전의 꿈, 4차 산업혁명 특별시'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 뉴시스

이런 가운데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부작용도 하나둘씩 속출하고 있다. 각 산업 현장에서 고용 문제로 인한 노사갈등이 올해 들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타워크레인 노조 파업 사태, 고속도로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동자 논란이다. 타워크레인 노조는 지난 6월 리모컨으로 작동되는 소형 타워크레인의 안전성 문제를 명분으로 내세워 파업에 돌입했다. 무인장비들이 도입되면서 현장 노동자들이 설 자리가 급격히 축소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톨게이트 수납원 노동자들의 궐기도 표면적으로는 정규직 전환 이슈이나 속을 들여다보면 하이패스가 전면 도입되면서 이들의 노동의 가치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문제는 이 같은 갈등이 우리나라가 미래 먹거리로 삼은 신성장동력 산업군에서도 발생할 여지가 상당하다는 데에 있다.

현대자동차 노사 외부 자문위원들은 지난 4일 울산공장에서 열린 고용안정위원회 본회의에서 미래 자동차 산업 중심이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동하고, 디지털화가 가속화되면서 최소 20%에서 최대 40%에 달하는 자동차 제조업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현재 현대차 노사가 공감대를 형성한 감축 규모(20%)보다 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실현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향후 이로 인한 노사갈등이 구체화될 경우 자율주행차, 수소경제 등 신성장동력이 타격을 입을 공산이 있다.

최근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간 점도 4차 산업혁명 시대 진입에 따른 산업 구조 변화에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4차 산업혁명 영향으로 기술이 빠르게 진보하면서 기술인력의 수명이 짧아졌다는 것이다. 현재 삼성디스플레이는 LCD 생산라인 가동을 중단하고, 대신 13조 원 규모의 QD-OLED 시설 투자를 추진할 예정이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 광저우 등에서 이미 OLED 본격 양산에 들어간 상황이다. 본사는 물론, 수많은 하청업체 직원들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에서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정부의 대처가 미흡해 신성장동력의 암초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자리 문제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부작용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손을 놓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나라 중 하나인 독일은 2015년 4차 산업혁명 대책인 '인더스트리 4.0'을 내놓았으며, 그 부작용을 희석시킬 수 있는 일자리 창출 정책 '노동 4.0', 중소기업 육성 정책 '중소기업 4.0' 등을 함께 수립했다. 이 같은 종합 대책을 준비하는 데에는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한 것이다. 또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경제계가 주장하는 노동유연성은 물론, 노동계가 요구하는 사회보장까지 확보할 수 있는 사회정책도 준비 중이다.

이 같은 불안감이 높아지자 정부는 최근 기존 낙관론에서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한 경제 컨퍼런스에서 "노동개혁이라는 묵은 현안을 안고 있는 터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벅찬 도전을 받고 있다.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타개해야 한다"며 "4차 산업혁명은 많은 일자리를 없애면서 새 일자리를 만들고 일자리의 수명을 단축할 것이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에 부응하는 노동을 공급하고 재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업계의 한 관계자는 "4차 산업혁명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낙관적 전망이 우세하든, 비관적 전망이 우세하든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국제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다만, 아무런 준비 없이 미래를 맞는 건 그야말로 '스톡데일 패러독스'"라며 "다른 나라들은 노동인구의 감소는 불가피하다는 가정 하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구비하고 그 시나리오에 맞게 대비하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근거 없는 낙관론에 매몰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미 주요 선진국들은 4차 산업혁명 이후 자리잡을 신성장동력과 제조업 등 기존 산업을 매끄럽게 연결시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노동유연화와 함께 사회보험 확대, 평생 직업교육, 직업능력 강화, 전직훈련 등 사회안전망 확충을 동시에 추진하는 독일의 노동 4.0이 대표적인 예"라며 "외국의 사례를 그대로 따를 게 아니라 산업 구조, 노동 구조, 지정학적 위치 등을 모두 고려해 우리나라만의 장기적인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한다. 많이 늦었다"고 덧붙였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정부는 어떻게든 고용지표를 끌어올리려고 노인 일자리, 공무원 확충 등 일자리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이게 과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방식인지 의문"이라며 "공공서비스도 시대의 변화에 맞춰서 인공지능, 빅데이터, 자동화 등 기술을 통해 시민의 편의성을 높여야 하는데, 저출산 고령화 속에서 공무원을 늘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은 지난 8월 국회에서 개최된 '4차 산업혁명 파워코리아 대전'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단순히 구조조정이나 인력 구조 개편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새로운 고용시장을 형성한다는 점에 주목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산업이 동력으로 작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급격한 세계 경제의 변화는 대응하기 쉽지 않고, 산업 구조의 변화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이겨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재계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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