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對기업 투트랙 전략…헷갈리는 재계
문재인 정부, 對기업 투트랙 전략…헷갈리는 재계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10.16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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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얼굴로 손목 비틀어”…그 배경은?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문재인 정부가 친기업 행보와 반기업 행보를 동시에 보이고 있다. 그 배경을 짚어본다 ⓒ 시사오늘
문재인 정부가 친기업 행보와 반기업 행보를 동시에 보이고 있다. 그 배경을 짚어본다 ⓒ 시사오늘

겉으로는 친기업 행보를 보이면서 속으로는 반기업 전략을 수립한 듯한 문재인 정부의 움직임에 재계가 혼란스러운 모양새다.

16일 한국경영자총회(경총)는 지난달 입법예고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개정안'(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전면 철회를 요구하는 내용이 담긴 건의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동 안의 핵심은 주식 대량보유 주주에 대한 보고 요건(5%)을 완화하는 것이다. 동 안이 시행될 경우 앞으로 대량보유 주주들은 주주권리를 보다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다. 현행법에서 '경영개입'으로 규정하는 일부 주주활동을 시행 개정안에서는 '경영권에 영향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동 안에서 '경영권에 영향이 없는 것'으로 보는 주주권은 △회사나 임원의 위법행위에 대한 상법상 주주권 △국민연금이 행사하는 기업의 지배구조 관련 정관변경 △배당 관련 주주제안 △시장과 기업에 대한 단순 의견전달 또는 대외적 의사표시 등이다. 국민연금이나 해외 투기자본, 기관투자자 등 대량보유 주주들이 민간기업 임원의 해임을 요청해도 경영개입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특히 국민연금의 경우 정관의 변경까지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경총은 "경영개입 범위 축소의 혜택이 모든 기관투자자라고는 하나, 현실적으로 주요기업의 지분을 5% 이상 대량 보유한 투자자는 국민연금과 외국계 투기펀드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결국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하려는 주된 목적은 국민연금의 민간기업 경영개입을 용이하게 하려는 것"이라며 "기업 경영권과 경영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을 경영개입이 아니라고 분류하는 자체가 논리적·개념적·실체적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민간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건 글로벌 스탠다드에 역행한다. 또한 경영권 방어수단이 취약한 국내 기업 현실에서 해외 투기자본 경영권 공격을 강화하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시행령 개정으로 기업의 경영개입, 통제를 도모할 게 아니라 국민 노후생활 보장을 위해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독립성과 전문성을 보장해 수익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계에서는 정부의 이번 방침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재벌 대기업 총수들과의 스킨십을 확대하고 규제 완화를 주문했음에도, 조국 정국으로 시끄러운 와중에 기업 경영활동을 저해하는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 10일 삼성디스플레이 아산공장을 방문해 13조 원 규모의 신규투자를 결정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격려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준 이 부회장에게 감사하다"며 이 부회장에게 직접 덕담을 건넸다. 이어 그는 지난 15일 경기 화성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를 찾아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을 만나고 전기차·수소차 사업 육성을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청와대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정부는 기업 목소리를 경청하고 애로사항을 해소하는 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규제 혁신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데이터 3법 등 핵심 법안 입법이 지연되는 상황이 안타깝다. 당정 협의와 국회 설득 등을 통한 조속한 입법에 최선을 다해달라"며 국회에 견제구를 날린 반면, 기업에는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한 대기업 대관팀 관계자는 "정부여당의 의중을 헤아리기 힘들다. 국내외 경제 불투명성이 짙어지고 있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웃는 얼굴로 손목을 비틀고 있다"며 "정치권과 기업인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도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시기에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궁금하다. 기업들을 풀어주겠다는 건지, 때리겠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고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단체 관계자도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서 투자해서 고맙다고,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규제를 풀겠다고 말만 해놓고 정작 하는 일은 민간기업의 경영활동을 통제하는 거다. 이래서 경제활성화가 되겠느냐"며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서로 다른 생각을 같은 생각으로 만들면 된다. 그런데 앞 다르고 뒤 다른 상대하고 그런 합의를 할 수 있겠느냐. 신뢰 없는 합의는 없지 않느냐"고 꼬집었다.

“현 상황서 불가피한 투트랙 전략” vs. “달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나”
“두 마리 토끼 다 잡으려고만 해…경제 잡으면 선거 따라온다는 점 잊어”

지난 10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위), 지난 15일 경기 화성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만난 문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 뉴시스
지난 10일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서 만난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위), 지난 15일 경기 화성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만난 문 대통령과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 뉴시스

정치권과 재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이 같은 행보가 정교한 계산이 깔린 일종의 투트랙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현재 정부여당은 차기 총선을 앞두고 터진 조국 사태로 급격한 지지율 하락 현상을 겪고 있다.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7~8일과 지난 10~11일 전국 2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평가와 부정평가는 각각 41.4%, 56.1%로 최저치와 최고치를 경신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35.3%)과 자유한국당(34.4%)의 지지율은 현 정권 출범 이후 최소 격차로 좁혀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문제로 여론이 악화됐다는 분석이다.

이 가운데 정부는 여론의 시선을 당분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또한 디플레이션까지 거론되는 마당에 경제 문제도 더는 낙관론을 고수할 수 없는 실정이다. 같은 진영(정의당)과 지지층의 반발을 감수한 채 문 대통령이 재벌 대기업 총수들을 연이어 만나고 규제 완화를 주문하는 등 친기업 행보를 보인 배경으로 풀이된다. 이는 동시에 조국 사태 이후 한국당으로 흡수된 중도층 표심을 달래기 위한 전략으로도 해석된다.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등 반기업 행보는 표면적으로는 재계를 겨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야권에 견제구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 관련 법 등 이른바 패스트트랙 법안에 협조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을 택할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지난 8일 국무회의에서 기업 규제 완화를 강조하면서 "국회 입법 없이 정부가 할 수 있는 대책을 미리 모색하기 바란다"고 주문한 바 있다. 이는 나아가 향후 본격적으로 선거정국이 펼쳐지면 경제 문제에 대한 책임을 야권 등 국회에 돌리는 무기가 될 여지가 있다.

아울러, 반기업 행보는 조국 사태로 흩어진 집토끼를 다시 결집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의 경우 차기 총선 직전 개막하는 주주총회 시즌에서 정부여당이 재벌개혁 구호를 외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을 통해 정국 상황에 따라 재계에 직간접적으로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부분도 빼먹어선 안 되는 대목이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현 정권의 대(對)기업 전략은 지극히 선거공학적으로 불가피한 투트랙 전략"이라며 "경제 낙관론이 힘을 잃고 있는 상황에서 지지율까지 떨어졌으니 꺼낼 수 있는 카드가 이것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두 마리 토끼(선거, 경제)를 다 잡으려는 것 같다. 그런데 현실은 경제를 잡으면 선거는 따라오게 돼 있다. 그 점을 잊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 13일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몇몇 언론들이 이재용 부회장만 부각해 문 대통령이 왜 그곳까지 갔는지 전달이 안 되는 것 같다. 대통령이 직접 간 이유는 대기업인 삼성과 중소기업 간 협약 체결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는 것 같다. 한국 경제 체질을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노력은 쭉 계속된다"고 전했다.

한편, 앞서 인용한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p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재계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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