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語文 단상] 의미 중복…‘역전앞’에서 ‘역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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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文 단상] 의미 중복…‘역전앞’에서 ‘역 앞’으로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9.10.18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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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웅식 기자]

요즈음 ‘역전앞’보다 많이 쓰이는 말은 ‘역앞’입니다. ‘역앞’은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데, ‘역 앞’으로 띄어 써야 할 말입니다. 이 말은 인터넷에서 ‘역앞 리모델링 싼 방’, ‘둔촌동 역앞 왕만두집’ 등과 같이 ‘역전, 역전앞’에 비해 압도적으로 널리 쓰입니다.  ⓒ인터넷커뮤니티
요즈음 ‘역전앞’보다 많이 쓰이는 말은 ‘역앞’입니다. ‘역앞’은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데, ‘역 앞’으로 띄어 써야 할 말입니다. 이 말은 인터넷에서 ‘역앞 리모델링 싼 방’, ‘둔촌동 역앞 왕만두집’ 등과 같이 ‘역전, 역전앞’에 비해 압도적으로 널리 쓰입니다. ⓒ인터넷커뮤니티

신문사 교열기자로 일할 때이니 벌써 10여 년 전입니다. 당시 의미 중복 표현이 나오면 다른 말로 고쳐야 했습니다. 의미를 굳이 두 번 이상 중복해 표현하는 것은 언어사용의 경제성 측면에서도 올바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고치고 또 고치는 무한 반복은 신문에서의 일이었고 현실은 달랐습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중복 표현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입에 익숙해진 표현이다 보니 그만큼 바로잡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국어사전에서 ‘역전앞’을 찾아보면 ‘역전’의 잘못된 말이라고 나옵니다. ‘역전’의 ‘전(前)’이 앞이라는 뜻이므로 ‘앞’이라는 말을 더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사일’도 같은 예로서 ‘가사’의 ‘사(事)’가 일이라는 뜻이므로 ‘일’이라는 말을 덧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의미가 중복되었다고 해서 모두 잘못된 말은 아닙니다. 의미가 중복되기로는 ‘처갓집, 상갓집, 해변가, 술주정’ 같은 단어도 마찬가지지만 어엿한 표준어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이 단어들의 ‘처가, 상가, 해변, 주정’에 이미 ‘집, 가, 술’의 뜻이 있으므로 뒤의 말은 그저 덧붙은 말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이 말들이 표준어로 인정받는 것은 의미의 중복 여부를 떠나 대중이 많이 쓰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야밤’도 의미가 중복된 말이지만 표준어로, ‘박수치다’도 ‘박수’에 치다는 의미가 있지만 역시 표준어로 인정받습니다. 

인터넷에 의미 중복이 잘못이라는 설명이 적지 않지만, 의미가 중복됐다고 해서 무조건 잘못된 말이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언어를 지나치게 논리적으로 따지면 대중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처갓집, 해변가’ 등이 잘못된 말인 양 인터넷에 떠도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요즈음 ‘역전앞’보다 많이 쓰이는 말은 ‘역앞’입니다. ‘역앞’은 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데, ‘역 앞’으로 띄어 써야 할 말입니다. 이 말은 인터넷에서 ‘역앞 리모델링 싼 방’, ‘둔촌동 역앞 왕만두집’ 등과 같이 ‘역전, 역전앞’에 비해 압도적으로 널리 쓰입니다. 인터넷 블로그만 검색해 봐도 ‘역전앞’이 7천여 건 검색되는 데 비해, ‘역앞’은 9백만여 건이 검색됩니다. ‘역앞’이 ‘역전, 역전앞’을 거의 대체해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 허철구 <공부도 인생도 국어에 답이 있다>

담당업무 : 논설위원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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