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시계 제로 한국경제와 ‘초(超)슈퍼 예산’
[이병도의 時代架橋] 시계 제로 한국경제와 ‘초(超)슈퍼 예산’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9.10.26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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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팽창예산 '재정중독' 역풍 경고
‘세금 뿌려 일자리 만든다’는 발상
현미경 심사로 퍼주기 혈세 낭비 막아야
경제활성화, 구조개혁 없이는 안 된다
빚더미 에도 잔치 벌이는 공기업들
문 대통령, 경제 위기의식 안보여
예산국회, 정쟁 극복 경제 살리기 집중을
국회 ‘5대 구태’ 버릴 때...민생 최우선 심사해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이병도 주필)

국가 예산을 이번처럼 대규모 팽창으로 편성, 집행해도 되는 것인가.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500조 원을 넘는 ‘초(超)슈퍼예산안’을 제출했고, 국회가 본격적인 심사에 들어갔다. 

내년 예산안은 올해보다 43조9000억원(9.3%) 늘어난 513조5000억 원으로, 이런 식의 확장적 재정은 금융위기 때인 2009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이다. 세입이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팽창예산을 감당하기 위한 적자 국채 발행 규모도 올해(33조8천억원)의 갑절 가까이 불어났다.

'재정중독'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국채를 동원한 대규모 확장 예산이어서 그 당위성과 사용처를 둘러싼 치열한 여야 공방이 예상된다.

예산은 한 정부의 성격을 웅변하는 최적 지표다. 여당은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최대한 원안을 고수하려 하고, 야당은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선심성 예산'과 '재정중독' 저지를 위해 현미경 심사를 내걸고 있다. 

현재 우리 경제의 대내외 여건은 엄혹하다. 국회의 치밀한 예산안 심사가 전례없이 중요하다. 국회예산정책처 까지도 2028년 나랏빚이 1490조원까지 늘고, 국가채무비율은 56.7%까지 급상승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당위성과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쓰느냐는 별개 문제다. 경기 회복과 민생 안정에 필요한 예산은 충분히 확보해야 하지만, 성과가 없는데도 관성적으로 편성된 낭비성 사업은 걸러내야 한다. 국회가 이번만큼은 ‘졸속 심사’ ‘밀실 심사’ ‘쪽지 예산’ ‘정쟁 연계’ ‘지각 처리’ 등 이른바 ‘5대 구태’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국가경제 운용에 또다른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2020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잘못된 예산 몰아주기

이번 예산안은 국가경제가 사면초가 상태지만, 슈퍼 예산에 담긴 ‘재정 확장’ 외에는 뾰족한 처방이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소비가 부진하고 기업이 투자와 고용을 꺼리는 경기 침체는 민간 경제 활동이 극도로 위축돼 있음을 뜻한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7%로 잡았다가 얼마 전 2.2%로 낮췄지만, 이마저 불투명한 상황이다. 1%대로 추락할 수 있다는 예측까지 나오는 터라 내년은 더 걱정스럽다. 

국책연구원인 산업연구원(KIET)이 제조업체 1051곳을 조사한 결과 4분기 경기실사지수(BSI)도 분야를 가리지 않고 모두 곤두박질했다. 

문 대통령은 “소득 여건이 개선되고 일자리가 회복세”라고 했지만, 올해 경제성장률은 세계 금융위기 중이던 2009년 이후 최저치인 2.0%도 달성할까 말까인 데다 인구의 허리인 40대 제조업 일자리가 격감하고 있다. 그야말로 비상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이 경제회복의 디딤돌이 되려면 예산을 실질적으로 집행하는 정부의 치밀하고도 효율적인 정책적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민 혈세는 일회성 복지혜택이 아니라 성장 잠재력을 높이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드는 데 집중돼야 한다. 이런데도 정부는 이번 예산안에서 내년 총선을 앞두고 청년수당·노인수당 등 복지 퍼주기도 모자라 특정지역에 대한 예산과 국책사업 몰아주기에 골몰하는 형국이다. 

시급하지 않은 사업인데도 표를 의식해 혈세가 투입된다면 경제 살리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국가 재정에 부담만 줄 뿐이다.

공기업 ‘모럴 해저드’

문 정부는 지난 2년여 동안 이전 정부들보다 훨씬 적극적인 재정 풀기에 나섰지만, 거의 모든 지표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우리 경제의 중심축인 수출만 봐도 이달 들어 전년 대비 19.5%나 급감했는데, 감소세는 벌써 11개월째 이어지는 중이다. 

최근 공기업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 문제도 다시 불거졌다. 주요 공기업들이 대규모 적자를 내는 등 경영 부실에도 불구하고 임원들이 두둑한 성과급을 챙기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부의 정책 목표를 얼마나 잘 따라줬느냐를 공기업 평가의 잣대로 삼은 것이다. 정부는 탈원전 에너지 정책,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사회 보장성 확대 등에 공기업을 동원했다. ‘코드 정책’ 전선에 내몰리며 공기업 경영은 멍이 들고 말았다. 

그런데도 정부가 진지한 반성없이 이번 예산안에서 더 많은 나랏돈을 요구한 것을 정도(正道)라고 보기 힘들다. 늘어난 재정이 복지라는 이름 아래 비생산적인 온갖 시혜성 수당으로 빠져나가고, 지역에 선거용으로 뿌려질 것이란 우려부터 불식시키는 게 순서일 것이다.

재정적자 지속 구축효과

가파른 재정지출 증가세와 재정건전성을 우려하는 전문가들의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23일에는 국책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조차 “중기적 관점에서는 재정 여력이 불충분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다간 2021년 이후엔 건전성에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가채무비율도 2021년 40%대에 도달한 후 2023년까지 40%대 중반 수준으로 계속 증가할 것으로 우려했다. 배경은 세수 악화 가능성이다. 2021년 이후 재정수입 증가율은 연 5% 수준으로 전망되지만, 경기에 따라 세수가 훨씬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전직 경제 장관들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건전재정포럼’은 “최근 3년간 재정지출 증가율이 명목 경제성장률의 2배를 크게 초과하는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등 3차례에 불과했다고 경고했다. 

재정적자 지속은 구축효과를 통해 민간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위험도 크다. 구축효과는 정부가 재원을 늘리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면 채권 이자율이 올라 민간 투자가 줄어드는 현상이다. 재정정책 효과를 당연시하다 중장기 성장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점을 새겨야만 한다. 

일자리 정책 실상

경제의 주축인 30·40대와 미래의 주역인 청년들이 당면한 구조적 실업 문제도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그동안 문 정부는 국민 혈세로 일자리 만들기에 나선 덕분에 고용 시장은 양적으로는 2017년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제조업 일자리와 30·40대 일자리가 감소하는 등 고용 사정이 최악이다. 

기업 살리기를 통해 제대로 된 일자리를 만들지는 못하고, 세금을 퍼부어 일자리라 하기도 부끄러운 초단기 일자리를 만들어 고용지표 향상을 도모하는 게 문 정부의 일자리 정책 실상이다.

정부는 내년에는 25조원을 풀어 재정지원 일자리 95만5000개를 만들겠다고 한다. 임시 일자리를 만든다고 ‘추락하는 경제’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우리나라가 경제 낙제생으로 변한 것은 반기업·친노조 정책으로 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비용의 무덤’에 빠졌기 때문이다.

나랏돈을 쏟아붓는데도 2% 성장조차 장담하지 못하고, 40대 가장들이 실직의 눈물을 흘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따라서 국회는 이번에 ‘민생’의 관점에서 효율적 예산 분배를 따지는 데 주력해야 한다. 총액 삭감을 놓고 힘겨루기를 할 게 아니라 불요불급한 예산부터 솎아내는 등 민생회복을 제1순위에 두는 심의를 해야 한다. 여야 모두 빈사 상태인 경제를 살리는 대의를 좇으란 뜻이다. 

성장잠재력 외면

국회 예산심의는 22일 정부 측 시정연설로 시작해 부처별 심의와 소위 논의를 마치고, 다음달 29일 예결위 전체회의 의결, 12월 2일 본회의 처리 시한으로 이어지는 일정이니 갈 길이 멀다. 

정부가 제출한 새해 예산안은 사면초가에 처한 어려운 경제 현실을 고려한 슈퍼예산으로 올해 본예산보다 약 43조9천억원(9.3%) 증가한 513조5천억 원으로 편성됐다. 

전년 대비 증가폭이나 절대 규모에서 초(超)슈퍼예산으로 불릴 만하다. 일자리 사업 25조8000억원, 연구개발(R&D) 24조1000억원, 사회간접자본(SOC) 22조3000억원 등에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예산을 포함한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부문 23조9000억원 등이 주된 항목이다.

문제는 올해보다 늘어난 예산 가운데 47%가 일회성·경직성이 강한 보건·복지와 노동 분야에 몰려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단기 노인 일자리만 양산했다는 지적을 받는 일자리 예산은 역대 최대인 25조7,000억원으로 올해(21조2,374억원)보다 21.3%나 많이 배정됐다. 

반면 생산성 향상과 직결된 연구개발(R&D) 분야에는 기껏해야 증가분의 8%만 배정됐을 뿐이다. 정부와 여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퍼주기에만 골몰, 땜질식 일자리 늘리기에 매달리고 있을 뿐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역대 최대 규모인 일자리예산 등 일부 항목에서 불길한 그림자가 어른대는 게 문제다. 최근 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40% 아래로 떨어진 여론조사(한국갤럽)에서 '경제·민생 문제 해결 부족'이 부정평가 이유 1위에 올랐다. 올해 대규모 추경까지 편성해 일자리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질 낮은 노인 알바일자리 외에 성과가 없었음을 국민이 체감한 결과일 게다. 

재정을 쏟아부어 만든 일자리도 60대 이상 노인층과 36시간 미만에서만 늘어날 뿐, 경제허리인 40대에서는 20개월째 감소세다. 그나마 경제를 뒷받침해주던 소비도 부진해지고 있으니,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진은 '한국 경제가 탄탄하다'거나 '대외 여건을 감안하면 선방하고 있다'는 인식을 고수하고 있다. 성과를 내세울 유리한 부분만 떼내 강조하거나 부각하는 식의 해석은 곤란하다. 

잘못된 정부 자세는 공기업들의 분탕질에서도 그대로 검증된다. 지난해 339개 공공기관이 거둔 총 순익은 1년 전보다 85%나 급감했다. 이런 급격한 부실화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충격적인 결과다. 실적이 악화되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정상인데 정반대로 정규직 전환 2만4000명을 포함해 직원은 3만6000명이나 늘렸다.

이들이 이런 '분탕질'을 하고 있는 것은 국민 세금으로 지원받는 공기업이어서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소강상태를 보이는 가운데 남북협력기금을 올해보다 10%나 늘린 것도 논란거리다. 정부가 경제 부문에서 성과가 부진하자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총선 득표율을 올리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단기 일자리 ‘재정중독’

물론,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독일 네덜란드에 재정 확대를 권했을 만큼, 대내외 환경이 나쁠 때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재정을 확대할 필요도 있다. 

경제 성장률 침몰 예상때문에 슈퍼예산이 필요하다는 정부·여당의 입장은 일면 이해된다. 미·중 무역전쟁의 유탄을 맞은 수출기업들에 대한 재정투입이 그런 범주에 든다고 본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국내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키울 예산도 불가피하다.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를 치유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으로서 재정의 역할도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재정은 ‘보완재’가 돼야지, 만병통치약이 돼서는 곤란하다. 한 해에 예산을 9.3%나 늘리는, 그것도 “어르신의 단기 일자리를 13만개 더해 74만개로 늘리겠다”며 복지 분야에 집중하는 지금의 현상은 한마디로 ‘재정중독’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재정 확장 속도가 너무 빠르다. 게다가 예산 증가분의 47%는 1회성과 경직성이 강한 노동 보건 복지 분야다. 

이때문에 "내년 확장 예산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의 그제 시정연설이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을 남겼다. ‘초(超)슈퍼 예산’의 배경과 당위성 설명에 연설의 3분의 2 정도를 할애하면서 “재정이 대외충격의 파고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동의하지 않는 전문가가 많다. 쉽게 돌파하기 힘든 복합위기가 닥쳤는데도, ‘재정만이 해법’이고, 재정을 풀면 술술 풀릴 것이란 장담은 누구도 할 수 없다.

과거 경제위기로 인한 재정 악화는 경기가 회복되면 금방 해소됐지만, 앞으로는 단기간 내 해소가 어렵다는 점도 걱정이다. 문 정부 들어 기초연금 아동수당 누리과정 문재인케어 등 복지를 크게 늘렸는데 이를 다시 줄이기는 어려운 요인도 있다.

성장 초과 재정지출 증가

경기 부진으로 세수 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의 재정정책은 참으로 위험하다. 중장기 재정 우려에 대해 정부는 신뢰할 만한 답변을 내놔야 한다.

문 대통령은 ‘고용률 최고’를 자랑했지만, 세금으로 만든 ‘노인 알바’가 새 일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은 숱하게 지적돼 온 터다. 

‘과속 복지’와 가파른 고령화로 가만 있어도 10여 년 뒤에는 부채비율이 급증하게 된다. 독일 덴마크 스웨덴 등 선진국들이 지금의 한국처럼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비중 14%)로 막 진입할 당시 국가채무비율은 모두 30% 아래였다. 비대한 공기업들이 많은 빚을 지고 있는 한국적 특수성까지 고려하면 국가부채는 이미 위험수위라는 견해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을 지낸 박형수 서울시립대 교수는 “재정이 위험 상태로 진입하고 있다”는 경고를 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총재정지출 증가율은 2015~2017년 평균 4%를 기록해 경상성장률 5.5%보다 낮았다. 하지만 지난해엔 7.1%로 경상성장률(3.1%)의 2.2배였고, 올해와 내년 배율도 각각 3.6배, 2.1배에 이른다.

성장을 훨씬 초과하는 재정지출 증가는 재정 위기 위험을 높일 수밖에 없다.

재정만으론 경기를 살리는 데 분명히 한계가 있다. 20년 장기 불황 극복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퍼부은 일본이 거울이다. 일본은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정책)로 겨우 숨통을 텄는데, 법인세 인하, 노동·환경 규제 완화, 엔화 약세를 통한 수출 확대가 경제회복의 주 내용이자 수단이었다. 재정 지출 확대는 필요조건일 수 있어도 충분조건은 결코 아니다.

강력한 재정준칙 세워야

그렇지만, 문 대통령 연설에선 위기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되레 “지난 2년 반 동안 재정의 많은 역할로 혁신적 포용국가의 초석을 놓았다”고 자화자찬했다. 경제의 어려움도 미중 무역분쟁 등 외부 요인 탓으로 돌렸을 뿐 소득주도성장 등 정책의 실패에 대해선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경제를 살리려면 민간 부문의 투자와 고용 창출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려면 소주성 정책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정책 전환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늦을수록 경제는 더 어려워질 뿐이다. 

이와 관련, 조세재정연구원 윤성주 연구위원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정책조합이 중요하다. 특히 구조개혁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고 했다. 일본 사례에서 보듯 규제와 진입장벽 완화, 노동시장 제도 개선 등의 구조개혁이 수반되지 않은 재정지출 확대는 높은 수준의 국가부채만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기업 부채는 대통령이나 장관 돈이 아니라 요금이나 세금 인상 등 국민 부담으로 메워야 한다. 최근 일부 공기업들이 빚더미 속에 혈세(血稅)로 펼치는 성과급 잔치는 국민 등골을 빼먹는 행위나 다름없다. 반드시 직권남용과 배임 등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베네수엘라 사례에서 보듯 선심성 재정은 되레 경제를 망친다. 이는 가난한 이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 뿐이다. 포퓰리즘을 방지하려면 먼저 강력한 재정준칙을 세워야 한다. 현행 국가재정법은 "정부는 건전재정을 유지하고 국가채무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86조)할 뿐 강제 조항은 없다. 법을 바꿔 구체적으로 국가채무 비율을 숫자로 적시할 필요가 있다. 법률에 밑그림이 그려져 있으면 재정을 늘릴 때마다 불필요한 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낭비적 요소 세밀한 검증을

국회가 이제 본격적인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 돌입했다. 28~29일 종합정책질의, 30일과 다음 달 4일 경제부처 예산 심사, 5~6일 비경제부처 예산 심사를 벌인 후 각 상임위별 심사를 거쳐 다음 달 29일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예산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보호주의 강화 등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적 재정운용이 불가피하다며 예산안이 원안대로 통과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당은 사상 처음으로 500조 원이 넘는 초슈퍼 예산안이 편성된 것은 심각한 재정 중독 때문이라며 현미경심사로 대폭 삭감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바른미래당 역시 포퓰리즘적 성격의 예산 편성은 걸러낸다는 방침이다. 

야당들은 1조 원이 넘는 남북협력기금 등을 ‘현미경 심사’ 하겠다고 밝혔는데, 약속대로 정부 예산안 가운데 낭비적인 요소를 세밀히 걸러내야 한다. 정쟁에 몰두하다 막판에 졸속 심사와 쪽지 예산으로 세금을 낭비하는 구태를 반복해선 안 된다.

예산이 정부가 목표로 하는 성장 잠재력이나 경기 활성화 등 성장 경로 회복에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배분이 됐는지 철저히 따져 낭비 요인이 없도록 해야 하는 것은 오롯이 국회의 책무다. 

혈세 낭비요인 철저히 차단해야

국회는 할 일이 태산이다. 경기 회복과 성장 지원에 잘 배분돼 있는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효과적으로 쓰여 낭비는 없는지, 예산을 꼼꼼히 심사해야 한다. 정략적 발목 잡기나 밀실에서 주고받는 ‘깜깜이’ 심사 관행은 더는 되풀이되선 안 된다. 

이번 만큼은 현미경 심사로 불요불급한 예산을 쳐내 진짜 예산이 필요한 부분으로 돌리는 등 혈세 낭비 요인을 철저하게 검증함으로써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길 기대한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위한 투자도 시급하다. 재정이 마중물이 돼 1000조원이 넘는 부동자금의 투자처가 될 수 있는 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예산안과 함께 신산업에 대한 투자를 막고 있는 규제의 완화 법안도 같이 통과시키는 유연함도 필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은 중위소득 50% 미만 소득자 비율인 빈곤율이 17.4%(2017년 기준)로 OECD 회원국 중 5번째로 높다. 중복·편법수령 등 부정수급 가능성이 큰 항목을 걸러내되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를 통한 생계급여 지원, ‘노노(老老) 부양’ 해결을 위한 복지센터 건설 등은 더욱 늘려야 한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인 합계출산율이 1.0명이 안 되는 초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한 신혼부부 주거 지원, 공공보육 확대 등도 더욱 늘어나야 한다.

북핵 국제제재 국면에 올해보다 10.3% 늘어난 남북협력기금(1조2200억원)도 꼼꼼히 따져봐야 할 항목이다. 여야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성격의 '눈먼 예산'은 반드시 걸러내기 바란다. 여야는 거리정치와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고 경제 살리기를 위한 제 할 일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국회 심의 우려

20대 국회는 법안 통과율이 역대 최저인 30.5%로 ‘일 안 하는 국회’였다. 세비 반납은 물론 국회의원 국민소환제 요구가 20대 국회에서 유독 뜨거운 현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여야 정당이 국가 경영과 경제 챙기기를 위해 국회에서 전력을 기울여도 모자랄 판이다. ‘일본식 장기불황’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에서 시급하지도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곳에 혈세가 뿌려진다면 여야 모두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여당은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복지 퍼주기 등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선심성 예산 불가’를 외치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들도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정치권이 여야를 떠나 ‘쪽지 예산’ 끼워넣기 등 물밑 흥정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포퓰리즘 경쟁’을 벌여온 게 지금까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행태를 보면 여야는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하다가 막판에 ‘벼락치기 심사’를 했다. 야당은 시장에서 물건값 깎듯 ‘몇조원 감액’ 식의 ‘칼질 삭감’을 주장하고 여당은 정부 원안 통과로 맞선다. 그러다 적당히 절충한다. 한푼 한푼이 국민 세금인 예산을 이런 식으로 다뤄서는 곤란하다. 국회의 권능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정치적 흥정 졸속 심사 구태 벗어야 

이제는 나라살림이 당리당략과 정치적 흥정거리로 전락하는 구태를 벗어야 한다. 

예년의 행태를 돌이켜볼 때 제대로 예산 심의가 이뤄질지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국회는 툭하면 예산과 관계없는 정치적 사안을 예산안 처리와 연동하거나 밀실 주고받기로 '깜깜이 심사'를 관행처럼 되풀이해 왔고, 그도 모자라 예산안 법정처리시한을 넘기기 일쑤였다. 

예산안 처리 시한은 지켜야 한다. 내년도 예산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 법정 시한은 12월 2일이다. 헌법은 국회가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으나 지난해에도 법정시한을 6일 넘긴 12월8일 새벽 가까스로 통과됐다. 

2014년 국회선진화법에 ‘예산안 자동 부의 제도’가 도입됐는데도, 첫해를 제외하고는 법정시한을 지킨 적이 한번도 없다. ‘늑장 처리’가 일상화됐다. 올해도 선거제 개편안, 사법개혁안 등을 둘러싼 여야 입장이 달라 법정 시한 내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예산안 처리가 늦어지면 집행에 차질을 빚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예산안은 국회를 통과·확정돼야 정부가 집행을 시작한다. 조기 재정집행을 독려해도 예산이 실제 수혜자에게까지 닿기에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법정 시한 내의 통과가 중요하다.

또한, 작년의 경우 정작 예산 심사는 얼렁뚱땅하면서 세비를 올리는가 하면, 지역구 예산을 따내기 위한 '쪽지 예산 품앗이'를 하는 등 자신들의 이해가 걸린 예산 늘리기에는 죽이 척척 맞는 행태로 비판을 받았다. 내년에는 총선이 예정돼 있어 국회의원들의 예산 따내기 '잿밥 전쟁'이 벌써 우려된다.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여야 지도부와 실세 의원들이 지역구 예산을 끼워넣는 쪽지 예산을 없애야 한다. 요즘은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해 ‘카톡 예산’으로도 불린다. 이렇게 예산을 따낸 뒤 마치 전리품인 양 지역구에 홍보를 한다. 염치없는 짓이다. 

졸속 심사가 반복되다 보니 예결특위 소위 안의 ‘소소위’가 막판에 중요한 사안들을 결정하는 게 관행이 됐다. 그런데도 소소위는 회의를 공개하지 않고 깜깜이로 진행한다. 밀실 심사다. 올해부터는 소소위도 회의를 공개하고 회의록을 남겨야 한다.

잘못된 청와대와 정부 인식

이번 예산안 심의와 관련, 그동안 문 정부가 보여준 정책 자세를 돌이켜 보지 않을 수 없다.

국가경제가 시계 제로인 상황에서, 문 정부가 고용지표를 끌어올리려 '국가 비상금'인 예비비까지 쏟아부어 초단기 일자리를 만든 것으로 드러났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한 문 정부가 고용 참사를 가져온 것도 모자라 막대한 세금을 들여 '일자리 부풀리기'를 한 것은 국민 혈세 낭비 등 여러모로 문제가 많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정부는 작년 10·12월 국무회의에서 예비비 561억4천600만원을 지출 의결해 10개 정부 기관을 통해 초단기 일자리 1만8천859개를 만들었다. 국가재정법에 의하면 예비비는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 또는 예산 초과 지출에 충당하게 돼 있다. 천재지변 같은 급한 상황에 쓰려고 떼어 둔 비상금을 정부가 마치 쌈짓돈처럼 일자리 부풀리기에 조직적으로 가져다 쓴 셈이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우리나라 재정과 경제는 매우 건전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규제와 강성 노조에 질려 해외이탈이 최대치에 이른 기업들의 상처를 해소할 방안은 제시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향한 혁신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는 안이한 낙관론을 되풀이했다. 진단이 이러니 국민들이 처방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는, 정부가 민간 투자 활성화를 견인하고 민간 부문의 활력을 높이는 정책 방안을 구체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 불황기의 투자가 경기침체 이후 시장지배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당장 내년부터 중소기업에도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에 들어가려다 6개월 정도 유예를 검토 중이라는데 일선에서 감당할 수 있는 유연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미 시행 중인 기업에 마련할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도 업종별 특성을 고려해 정해야 할 것이다.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도 과감하게 완화해야 한다. 혁신 클러스터를 위한 수도권 규제 완화나 일자리 창출의 보고인 서비스 분야 규제 개혁도 절실하다. 노조에 편향된 정책이라는 지적도 줄어들도록 정책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공기업들 '분탕질'은 국민 부담

그동안 잘못된 정부 자세는 공기업 사장들의 분탕질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난다. 

한국전력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경우 부채가 3조∼5조 원 넘게 늘고 수조 원의 적자를 냈지만, 임원들은 3억 원 이상의 성과급을 받았다. 문 정부 들어 공기업 경영평가 방식을 실적보다는 ‘사회적 책임’ 부문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확 바꿨기 때문이다. 

지난해 공공기관의 정규직 신규 채용은 50%나 폭증했고, 정부가 지난해 부실 공공기관에 쏟아부은 지원금만 2조 원에 육박한다. 공기업을 ‘코드 정책’의 총알받이로 앞장세우는 정부가 근원적 문제다. 500명을 훌쩍 넘어선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는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한국전력의 경우 지난해 탈원전 및 신재생에너지 정책 등의 여파로 부채가 5조원 이상 늘고 적자는 1조원이 넘었다. 하지만 경영 평가에선 B등급을 받아 임원 6명이 성과급 3억2700만원을 받았다. 

탈원전 정책의 직격탄을 맞았던 한국수력원자력, ‘문재인 케어’의 영향을 받았던 건강보험공단 역시 실적 악화에도 성과급 봉투는 두둑했다. 이 정도면 경영진 책임을 물어야 할 정도인데도, 오히려 돈 잔치를 벌였다. 상시 구조조정 압력에 시달리는 민간 직장인에게는 상대적 박탈감까지 안겨 주고 있다. 

이와 관련, 한전 주가는 문 정부 출범 이후 40%나 하락했고, 한때 1조원 넘게 배당을 했던 한전은 올해 40여만명 주주에 대한 배당을 한 푼도 못했다. 한전은 내년 전기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건보공단은 보험료 인상 폭을 과거보다 더 높이겠다고 한다. 대통령의 엉터리 공약에 앞장서다가 기업을 엉망으로 망치고 국민·주주에게 손실을 끼쳐놓고도 수천만원씩 보너스를 받아 챙겼다. 모두 배임 혐의로 법정에 세워야 마땅하다.

이같은 현상은 문재인 정부가 정부 정책에 총대를 잘 메는 공공기관에 높은 점수를 주도록 평가 방식을 바꿨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나 신규 채용 확대처럼 정부 정책에 얼마나 잘 협조하느냐에 따라 성적을 매기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경영을 엉망으로 하고도 높은 평가를 받아 수천만원씩 보너스를 챙겨 가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공기업의 손실과 도덕적 해이는 결국 장기적으로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정부가 지난해 부실 공공기관에 투입한 지원금만 2조원에 달한다. 생색은 정권이 내고, 부담은 국민이 진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반드시 감사원 등 관계 기관의 엄중한 조사와 개선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경제활력 디딤돌 마련해야

임기 반환점을 맞는 문 대통령의 성적표는 실로 초라하다. 경제는 물론 정치, 외교·안보, 대북 문제 등 어느 하나 잘했다고 딱히 내세울 게 없다. 80%를 넘던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한 까닭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실용적인 경제 정책으로 경기를 회복시키고 진영을 뛰어넘는 포용과 협치로 국민통합을 이뤄야 할 것이다.  

재정 확대보다 훨씬 더 절박하고 시급한 건 시장 스스로의 작동역량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기조를 전환하는 일이다.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 ‘머지않은 미래에 진짜 큰 비용’을 치르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고비용구조 개선이나 규제 혁파에는 입을 다물고, 세금으로 임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발상으로는 위기를 이겨낼 수 없다.

한국 경제에 미래가 안보이는 것은 현실과 맞지않는 정책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늦기 전에 정책 방향을 확 틀어야 성장률 추락을 막을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정책 폐기가 시급하다. 최저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규제를 혁파하며 노동·고용 시장을 개선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정책기조를 바꾸는 것이 경기 활성화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따라서, 여야는 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내년도 예산안을 꼼꼼히 따져 취약계층의 복지수준을 높이고 경제활력의 디딤돌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소중한 혈세가 성장 동력을 회복하고 경제를 살리는데 도움이 되도록 당리당략을 떠나 이번만은 예산안을 제대로 심의해야 한다. 그래야만 내년 총선에서 표를 부탁할 자격이 있다. 

국민들도 여야 의원들의 예산안 심사 행태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내년 총선에서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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