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비박'(Biwak)은 독일어다. 우리말로는 '노숙'(露宿) 정도로 해석된다. 비박산행은 산을 타다가 해가 넘어가면 적당한 곳을 찾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잠을 자고 다음 날 다시 산행하는 것을 말한다.
내게는 15년 가깝게 산을 함께 타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 오랜만에 비박산행을 하자는 약속을 했었다. 비박을 해도 아무 산에서나 하는 것은 아니다. 마니아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는 좋은 비박 사이트가 있다. 정선에 있는 가리왕산도 그중 하나다. 우리는 텐트며 침낭 등 비박을 위한 장비들을 챙겨 토요일 아침 일찍 만나 가리왕산이 있는 정선으로 향했다.
잘 뚫린 길을 신나게 달리다가 주문진과 오대산 방향으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굽이굽이 한참을 가다 보면 정선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일주문처럼 가리왕산이 서 있다. 우리는 숙암리에 있는 장구목이골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했다.
누군가 '산'은 그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이라고 정의했다면 가리왕산은 그 말 곧이곧대로 생긴 산이다. 육중하고 묵직하게 생긴 가리왕산을 오르는 길에는 우리나라 산이면 어디에나 있는 암자는 고사하고 그 흔한 쉼터나 전망대 하나 없다. 산행 초입부터 산길 옆으로 계곡을 두고 가파른 돌길을 걸어 올라가기만 해야 한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다 보면 계곡물 소리가 멀어지면서 좁은 임도(林道)가 나온다. 거기서부터는 더 고된 구릉지가 이어진다. 오르다 보면 정상까지 700m가 남았다는 표지판이 하나 나오는데 그 맞은편으로 숲을 헤치며 50m 정도를 걸어가면 조그만 샘물이 하나 나온다. 그곳에서 물을 보충해야 한다. 가방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하는 비박 산행길에서 만나는 샘물은 정말 고마운 단비와도 같다.
원래 장구목이에서 정상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면 오를 수 있는 길이다. 하지만 먹을 물이며 음식 그리고 침낭과 텐트, 두툼한 옷가지 등을 넣은 묵직한 배낭을 짊어진 탓에 우리는 이날 다섯 시간이 걸려서야 정상에 올라섰다. 어차피 오늘은 이곳에서 잠을 자려고 온 것이니 짐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고 그만큼 여유도 있었다.
드디어 가리왕산(1561m) 정상에 도착했다. 오르는 길에는 온몸에 땀이 흘렀는데 정상에 서니 차가운 칼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가리왕산의 정상은 헬기장도 있을 만큼 널찍하다. 그렇게 매서운 바람을 1년 내내 맞고 있으니 그리도 널찍하고 둥글둥글하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쉘터를 세우고 각자의 텐트를 설치해야 한다. 그렇게 뚝딱뚝딱 노숙을 위한 안식처가 완성됐다. 그리고 우리만의 만찬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술을 좋아하는 나의 비박 가방은 다른 사람들의 그것보다 훨씬 무겁다. 그러나 정상에서 그 거센 바람 소리를 들으며 좁고 아늑한 쉘터 안에서 도란도란 술잔을 기울이며 먹는 술맛은 그 수고로움을 보상받고도 남는다. 이날도 우리 동갑내기 산 친구들과 그렇게 술잔을 기울이며 가리왕산의 밤을 맞았다. 즐겁고 편안했던 저녁을 먹고 난 후 밖으로 나와 보니 쏟아질 듯한 수많은 별이 빛나고 있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났더니 침낭 옆에 두고 잤던 생수에 살얼음이 얼어있었다. 텐트 지퍼를 열고 밖으로 나가자 차가운 냉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곧 동이 트려고 그러는지 온 산야는 붉게 예열돼 있었고 그 아래로는 구름이 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가리왕산은 그렇게 구름바다에 둘러싸인 채 태양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 광활한 운해 속에서 벌건 태양이 떠올랐다. 태양이 떠오르자 운해는 더욱더 하얗게 빛이 났고 거품을 내며 바위섬을 때려대는 파도처럼 산자락에 부딪히며 넘실거렸다.
아침을 먹기 위해 우리는 라면을 끓였다. 일출과 운해의 장관에 혼이 빼앗겨 잠시 잊었던 몸속 한기가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자 금세 녹아내렸다. 그리고 우리는 산에서 내려가기 위해 짐을 챙겨야 한다. 그렇게도 어지럽게 펼쳐져 있던 우리의 짐이 다시 우리 가방으로 몽땅 다시 들어갔지만, 배낭은 한결 가벼워졌다.
하산을 위해 가방을 다시 짊어졌는데도 우리의 발걸음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고여 있는 운해가 자꾸 눈에 밟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금만 더 있다가 가자고 말했다. 포근하고 아늑했던 가리왕산의 정상에서 우리는 다시 또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가리왕산은 조선 초에는 산삼을 채취하는 산으로 출입을 통제할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전쟁통에는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가 석탄 산업이 호황일 때 이곳에는 유독 탄광이 많았다. 최근에는 평창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산을 깎아 스키장을 만들기도 했다.
가리왕산은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그렇게 가만히 서 있는데 사람들은 그곳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러한 구구절절한 사연은 봉우리마다 맺혀 있었고 운해가 되고 정선의 아라리가 돼 가리왕산의 봉우리들을 넘어 다니고 있는 듯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막바지 단풍 행락객들의 차량이 몰리며 어지간히도 길이 막혔다. 하지만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의 산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또 비박산행을 위해 뭉치기로 기약을 한 뒤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