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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山되짚기(9)>신하철 전 국회의원
˝3당 합당 없었으면 YS, 대통령 못됐다˝
2011년 09월 27일 (화) 윤종희 기자 yjh_1120@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종희 기자)

민주화와 군정종식을 위해 투쟁해온 민주산악회(민산)는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1990년 3당(민정·공화·민주) 합당 결단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3당 합당과 관련 당시 민주당 총재였던 YS는 "나는 아침에 결심 했다가도 저녁에 다시 마음이 돌아섰다. 그러다 자고 일어나면 또 결심이 변했다"며 자신의 고뇌를 밝힌 바 있다.

겉으로 내세운 3당 합당 명분은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을 함께 나누며 정책노선을 같이하는 정치 세력이 뭉쳐 당파적 이해로 분열·대결하는 정치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언론은 '한지붕 세가족'이라고 표현하는 등 군부세력과 민주세력의 화학적 결합이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YS는 변절자라는 비난과 야유 속에 많은 수모를 겪어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야당 유력 정치인이 여당 유력 정치인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부터 민산의 투쟁은 더욱 가열차게 이뤄줬다. 민산은 여당이 아닌 여전히 야당이었다. 그러면서 YS의 속마음인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를 실현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와 관련, 민산 초창기부터 활동한 신하철 전 의원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봤다. 신 전 의원은 3당 합당 당시 국회의원으로서 당시 정치 상황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다.

그는 "민정계의 YS 견제가 너무 심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2011년 9월 20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 <시사오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 신하철 전 국회의원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민정계, 너희들은 왜 YS에 대해 반말조로 하느냐"

-3당 합당 이후 민자당 내 분위기는 어떠했나요.

"민정·공화·민주 3당 통합 이후 민정계에서는 계속해서 YS에게 당 대표를 주지 않으려는 물밑 작업이 진행됐습니다. 민정계에서는 민주계에 허점만 있으면 그 내용이 신문에 나가도록 했습니다. 민주계를 약화시키려는 작업이 계속된 것입니다. 그리고 민정계는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싸울 때는 우리 민주계를 내세웠습니다. 그들은 DJ와 싸우는 것을 꺼려했습니다. 그래서 민주계에서는 '왜 어려운 일은 우리가 해야하는가'하고 불만을 터뜨리고는 했습니다. 또 제가 민정계에게 '너희들은 전두환 총재, 노태우 총재라고 부르면서 YS에 대해서는 반말조로 하느냐'고 따진 적도 있습니다."

-YS에 대한 민정계의 견제가 언제까지 계속 됐나요.

"민정계가 YS가 대통령이 되는 것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1992년 대선 선거운동이 늦게 시작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선거일이 12월 21일인데 11월 15일까지 선거운동을 안했습니다. 민정계는 계속해서 여론을 보다가 YS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으면 끌어내리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11월 11일에 이르러서도 여론이 YS에게로 기울자 별 수 없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실제로 YS 대세론이 유지됐습니다. 그 때부터 선거운동에 들어가게 됩니다."

"민정계, DJ와 상대하기 꺼려해…민주계에 다 맡겨"

-당시 원내부총무를 맡으셨지요.

"민정계의 견제가 심하던 중에 YS의 최측근인 김동영 원내총무가 제게 '지금 사람들 중에 믿을 사람이 없는데 당신이 부총무를 맡으라'고 했습니다. 김동영 원내총무는 그 때 몸이 안 좋았습니다. 김 원내총무는 '자칫 잘못하다가는 YS가 공천을 못 받을 수 있다'는 얘기까지 했습니다."

-원내부총무 당시 기억 나는 비화가 있나요.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워낙 민정계의 견제가 심했기에 저는 YS와 민주계를 위한 희생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 역할을 맡았습니다. 1992년 쯤으로 생각됩니다. 당시 정부가 언론법안을 냈는데 노태우 대통령이 꼭 통과시켜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법안에는 언론을 약간 억제시키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나는 그 때 YS가 꼭 (대통령) 공천을 받아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그리고 민정계의 민주계 약화 작업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민주계의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평민당을 상대로 투쟁해 그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의원님이 평민당을 상대로 싸운 것에 대해 YS는 아무런 말도 안했나요.

"YS는 제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 같이 야당 했던 동지들 아닌가'라고 말씀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DJ가 보기 싫어서 그렇게 한 게 아니었습니다. 민정계가 너무나 YS와 민주계를 약화시키려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민정계에서는 이런 저를 보고 '신하철이 민정계라면…. 저렇게 오야붕을 섬기는 사람이 민정계라면….'이라고 말하고는 했습니다. 한번은 술자리에서 당시 안기부 차장도 이런 말을 했습니다."

"김윤환, 반대 무릅쓰고 노태우에게 3당합당 설득"

-민정계에서 YS에게 기운 사람은 없었나요.

"바로 김윤환입니다. 김윤환이가 '반대를 무릅쓰고 YS와 합당해야 한다고 노태우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제게 자주 얘기하고는 했습니다. 노태우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김윤환은 합당 이후에도 YS를 위해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김윤환이가 'YS가 나를 푸대접한다'고 제게 말하고는 했지요. 그런데 나중에 이회창이 김윤환에게 공천을 안줬습니다. 그래서 김윤환과 제가 민국당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직도 3당 합당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있는데요.

"3당 합당이 흠이라면 흠인데, 3당 합당 안했으면 YS는 대통령이 못됐습니다. 그 걸 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됐고 소신을 펼 수 있었습니다."

-YS가 민산을 해체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YS는 하나회를 해체하면서 민산도 함께 해체했습니다. 민산을 해체하지 않으면 형평성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250만 민산 조직을 살렸으면 그 뒤에 누가 (대통령 선거에) 나와도 됐습니다. 하지만 YS는 올바른 정치를 해야한다는 판단에서 민산을 해체시켰습니다. 250만 민산 회원들이 순식간에 지리멸렬하게 된 것입니다."

"민산해체, YS 업적임에 틀림없어…역사에 기록해야"

-당시 민산을 해체하지 말자는 주장은 없었나요.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민산 해체 전에 '민산을 국민운동세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YS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YS의 장점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 때 민산을 해체하더라도 뒤로는 그 것을 이어가는 조직을 만들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YS는 해체한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는 민산 해체가 잘 된 일입니다. YS 업적임에 틀림없습니다."

-YS가 대통령이 된 후에 민산 회원들을 기용하지 않았나요.

"YS는 대통령이 되어서 인물을 골고루 등용했습니다. 자기 사람만 등용하지 않았습니다. YS의 정치능력이 있든 없든 간에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인재를 골고루 등용한 것은 평가 받아야 합니다. 민산 회원들은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는 정부 각 기관 요소요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사장됐습니다. 민산 회원 몇명만 기용했을 뿐이고 나머지는 실직자가 됐습니다. 만약, YS가 DJ처럼 했다면, 즉 자기 사람들을 각 기관 요소에 심었다면 아직도 그 뿌리가 여전해 뽑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YS가 사심에 치우치지 않고 올바른 인사를 한 것은 역사에 기록돼야 합니다. 우리가 본 받아야 합니다. YS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독재가 무너지고 군정이 종식됐습니다. YS가 과거 정권에 충성한 사람들을 숙청시켜도 아무도 말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YS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민산을 해체하지 않았다면 DJ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요.

"민산을 계속 유지했다면 DJ는 정권을 못잡았습니다. 노무현도 정권을 못잡았습니다. 만약 민산이 살아있었다면 최형우가 나와도 대통령이 됐습니다. 민주계에서 누가 나와도 대통령이 됐을 것입니다. 김대중은 자기 사람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습니다. YS도 욕심이 있었다면 자기 사람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1997년 대선에서 YS가 사실상 DJ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으로 봐야 합니다."

"민산 살아있었다면 DJ·盧, 대통령 될 수 없었다"

-인재 등용에 있어서 YS와 DJ의 차이점이 있나요.

"DJ는 사람 쓰는 기술이 뛰어났어요. 자기 사람을 잘 썼습니다. DJ가 사람 찾는 건 절묘했습니다. 노무현을 찾아낸 건 정말 대단했습니다.하지만, YS는 자기 사람은 생각 안 하고 보편 타당성에 맡게 사람을 썼습니다. 국민들에게 눈을 맞췄습니다. YS는 자기 사람을 기용 못했습니다."

-YS와 DJ가 이념 정체성에서 다른가요.

"YS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주의자입니다. DJ는 개혁적이고 사회주의성을 띄었습니다."

-민산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 신하철 전 의원은 김영삼 대통령과 관련해 자신이 직접 쓴 책을 이날 보여줬다
"민산은 민주화에 사실상 기여한 주력 세력입니다. 민산은 민주화 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거대한 세력으로 등장했고 민주화를 이룬 뒤 사라진 조직입니다. 그리고 민산은 과학성을 가지고 움직이려고 했습니다. 그냥 단순히 주먹구구식으로 움직인 게 아닙니다. 민산과 민추협이 함께 했습니다. 학생운동이 있었지만 거대한 정치세력이 없으면 그냥 운동으로 끝날 공산이 큽니다. 민산과 민추협이 있어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었습니다."

"학생운동만으로는 역부족 민산 ·민추협 있어 실질적 변화 가능"

-민산 활동은 언제부터 하셨나요.

"먼저 저는 YH 사건 때 신민당에 들어갔고 그 때부터 YS를 도왔습니다. 민산은 초창기 때부터 활동했습니다. 그 때 저는 중국 장개석이 일본과 싸울 때 모택동과 함께 한 '국공합작론'과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깃발 아래 보수와 진보가 다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민주화 운동 불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빨리 민산을 정예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민산 지부를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민산 안양 지부를 만든 것입니다. 민산 활동 자체가 정치 활동이었습니다."

-민산 자금조달은 어떻게 했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민산 자금 조달은 회원 각자의 주머니에서 나왔습니다. 또 지부장이 자신의 주머니를 털었습니다. 누가 돈을 대 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전부 자기 돈을 털어서 했습니다. 기가 막힌 조직입니다. 그 사람들의 정신이 지금도 그대로 입니다. 지금도 각자 회비 내서 밥을 먹습니다."

"민산, 한달 안에 10만 다시 모을 수 있어"

-향후 민산이 정치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지금도 민산을 재건한다면 100만명을 다시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민산이 나이가 많아서 단번에 100만명을 추스릴 수는 없지만 한달 안에 10만명은 모을 수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민산 회원들이 살아있습니다. 민산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김덕룡처럼 YS계에서 대통령 후보가 나오면 우리가 다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YS가 특정 인사를 민다고 해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YS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쿠데타 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YS가 박정희를 쿠데타 세력이라고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박정희가 쿠데타 세력 아닙니까."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박근혜, YS 가볍게 여기면 끝난다"

-차기 대권주자로 유력한 박근혜 전 대표가 YS와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해야 할까요.

"박근혜가 YS를 가볍게 여기면 끝납니다. YS의 조직이 없는 것처럼 비치지만 지금도 그 뿌리가 여전합니다. 요즘도 우리들끼리 한달에 한번 씩 만납니다. 여타 세력들보다 강합니다. 민주동지회가 신년회를 하면 500여명이 모입니다. 사실 지금의 한나라당 조직보다 더 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국민들이 한나라당에서 많이 이탈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지도력 부재에 직면했습니다. 한나라당은 지금 깨져가는 세력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박근혜…, 대통령이 되면 자기가 하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지금 지지율이 높은데 그 건 우리나라 국민들이 '박근혜' 이름을 아니까 그런 것 아닌가요. 저는 박근혜의 정치 철학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별 관심도 없구요. 대통령으론…." 

-지난 2007년 대선에서 민주계가 이명박(MB) 대통령을 지원했지요.

"지난 대선에서 YS와 민주계가 도와줬는데 MB는 실제적으로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MB는 YS를 하나의 '액세서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아마도 1995년 (서울시장 선거 때) 정원식을 내보내고 MB는 못나오게 한 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987년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기억나시는 게 있나요.

"그 해 6월 항쟁 당시 서의석이라는 노동운동가가 있었습니다. 통일원에 있다가 민주화운동을 위해 튀어나왔는데 안양에서 데모를 주동하다 감옥에 갔고 매 맞아 다친 후유증으로 6·29 선언 이후 세상이 어느 정도 안정될 즈음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아마 민주화보상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과거사위가 편파적이라는 지적이 많아요. 그런데 6월 항쟁 때 제가 데모 동원자금을 수원으로 가는 길에 있는 한 고개에서 차를 타고 가면서 전달했어요. 제 돈 200만원을. 정보기관의 감시가 심했기에 그런 방법을 썼습니다. 그 것을 시발로 안양에서 데모가 커졌습니다. 그러다 안양과 서울의 데모 세력이 만나 그 규모가 엄청 커졌습니다."
 

윤종희 기자 yjh_1120@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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