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용 설계’로 전락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총선용 설계’로 전락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11.0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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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집값 아니라 표심 잡나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문재인 정부가 서울 지역 27개동을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이하 분상제) 대상 지역으로 선정했다. 일부 부동산 전문가들의 공급 위축과 풍선효과 우려에도 최근 과열된 서울·수도권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도대체 집값을 잡겠다는 건지, 차기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잡겠다는 건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1년 간 분양가격 상승률이 높은 지역, 부동산 대책 이후에도 서울 집값 상승을 선도한 지역, 고분양가 책정 움직임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분상제 대상 지역을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굳이 통계를 인용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집값이 폭등한 양천구 목동, 과천, 성남 분당, 최근 재개발사업으로 부동산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동작구 흑석동 일대는 이번 명단에서 제외됐다. 

양천구 목동(양천갑), 과천, 성남 분당 등은 모두 전통적으로 현 야당의 텃밭으로 분류되는 곳이나, 지난 20대 총선에서 여권 인사들이 파란을 일으킨 지역들이다. 특히 양천갑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은 분양가 상한제에 대한 반대 의사를 적극적으로 피력한 인사이며, 의왕·과천에 민주당 신창현 의원은 지난해 과천을 비롯한 3기 신도시 택지 정보를 유출해 물의를 빚었던 인사다. 또한 동작구 흑석동은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인 나경원 의원의 지역구인 데다, 정몽준 전 의원이 당선(19대 총선)되기 전까진 현 여당의 텃밭이었던 만큼, 민주당이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는 곳이다.

더욱이 과천, 동작구 흑석동은 여권 인사들의 투기 의혹이 제기된 지역이기도 하다. 과천에서는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천 자이)과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천 푸르지오 써밋), 동작구 흑석동에서는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흑석9구역 상가 건물)이 각각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들은 이번에 과천과 동작구 흑석동이 분상제 대상 지역에서 제외된 데 따른 직간접적인 수혜를 누릴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시작부터 차기 총선을 염두에 두고 분상제를 준비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국토부는 지난 8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기준 개선 추진안'을 발표하고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들을 대상으로 분상제를 선별 적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경우에 따라선 서울 전역, 경기 과천, 성남 분당, 하남, 광명, 대구 수성, 세종 등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전국 31곳이 모두 분상제 대상 지역으로 선정될 수 있다는 의미로 시장은 받아들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부는 '동(洞)단위 핀셋 지정'이라는 구호를 들먹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지난 10월에는 '최근 부동산 시장 점검 결과·보완 방안'을 통해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았거나,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하고 시행령 시행 이후 6개월까지 입주자모집공고를 신청한 재개발·재건축 사업에는 분상제 적용을 제외키로 했다. 분상제 대상 지역을 입맛대로 선정한다면서도 6개월 유예 기간이라는 당근을 제시한 셈인데, 6개월 뒤는 공교롭게도 21대 총선이 열리는 오는 2020년 4월이다.

국민 주거권을 실현·보장하기 위해 내놓은 부동산 대책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을 실현·보장하기 위해 내놓은 정치공학적 설계가 아닌지 의문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분상제 대상 지역을 발표하면서 "시장 불안 움직임이 확대되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겠다"고 말했는데, 과연 무엇을 위한 총동원일까. 이젠 의뭉스럽기까지 하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재계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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