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빠진’ 남자들> 메일 가짜여성에 189명 ‘낚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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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빠진’ 남자들> 메일 가짜여성에 189명 ‘낚였다’
  • 유재현 기자
  • 승인 2009.10.12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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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23세 여성인데 교제하자”, 남성들 의심없이 메일로 교제
“병원비 필요하다”며 돈요구에 생각없이 돈 송금…하지만 사기
아르바이트 고용해 쪽지 보내, 동생병원비 명목으로 3천만원 뜯어


마포구 성산동에 사는 김모(45)씨는 지난 5월 자신의 컴퓨터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메일 한통을 받았다.
메일 내용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23세 여성입니다. e메일로 이성 교체할 남자를 찾습니다.”
지난 2003년 배우자와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던 김씨는 이 편지를 그냥 스쳐 보낼 수 없었다.
‘누군가 장난으로 보낸 메일이 아닐까’란 생각도 했지만 답장을 피하기에는 독수공방한 세월이 너무 길었다.

김씨는 바로 답장 메일을 보냈다.
“어디에 사는 누구십니까? 얼굴이 궁금합니다.”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보냈던 메일에 바로 답장이 왔다.

“제 사진은 첨부 파일로 보냈습니다. 일단 이메일로 서로를 알아 갔으면 합니다. 만나는 것은 좀 더 친해진 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답장을 받은 김씨는 첨부된 미모의 여성 사진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곧바로 김씨는 답장 메일을 띄웠다.

“제 사진도 보냅니다. 저도 사실 외로운 사람입니다….”
이런 식으로 수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은 김씨는 박모씨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이 여성과 만나고 싶어졌다.

“제가 한 번 만나고 싶습니다. 시간을 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김씨가 보낸 메일에 답장이 왔다.

“저도 만나고 싶었습니다. X월 X일 12시에 홍대 앞 X카페에서 만나기로 하죠.”
김씨는 뛸 듯이 기뻤다. 이혼 후 6년간 제대로 된 여자를 만나보지 못한 그는 나이에 맞지 않게 작은 설레임까지 느꼈다. 특히 사진으로 본 박씨가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웠기에 김씨는 만남에 대해 작은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만나기로 한 하루 전날. 박씨로부터 이메일 한통을 받았다.
“내일 나가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동생이 뺑소니를 당해 병원에 있어야 합니다.”
메일을 받은 김씨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마치 자신의 가족이 당한 일처럼 느껴졌다. 곧바로 답장을 했다.

“동생은 괜찮습니까?”
김씨의 답장에 재답장이 날아왔다.
“예 다행이 크게 다치지 않았습니다. 다만 병원비가 부족합니다. 만나뵙지도 못하고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되는지…. 한 30만원정도 입금해 주실 수 있습니까. 입금해 주신 돈은 직접 만나서 갚겠습니다.”

김씨는 박씨의 재 답장에 아무런 의심 없이 돈 30만원을 부쳤다. 그러나 이것이 김씨와 박씨의 마지막 서신이었다.

이런 메일은 김씨에게만 뿌려진 게 아니었다. 한 웹사이트의 20,30대 더 나아가 40대 남성 회원들에게 이런 ‘쪽지’가 지난 5월부터 무더기로 배달되기 시작한 것.

스팸메일이라고 생각한 남성들은 이 쪽지를 쉽게 휴지통에 버렸지만 호기심을 갖고 답장한 남성한테는 바로 답장이 왔다.

또한 남성들은 메일에 첨부된 미모의 여성에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고, 몇 차례 메일이 오가면 서로 만날 시간과 약속장소를 정했다.
하지만 약속장소에서 두 사람간의 만남은 단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여성은 만나기 하루 이틀 전 메일을 보내 “동생이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했다. 병원비가 부족하니 30만원 만 입금해 주면 만나서 갚겠다”고 했던 것.
여성을 만날 기회라고 생각한 뭇 남성들은 지정된 은행계좌로 적게는 5만원부터 많게는 50만원까지 돈을 보냈다.

남성 189명이 이 여성에게 보낸 돈은 총 3000만원에 달했다.
하지만 가련한 미모의 ‘e메일 연인’의 정체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 편모씨(24?무직)였다.
편씨는 “1만 건을 발송해주면 15만원을 주겠다”며 10명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문제의 쪽지를 10만통이나 발송했다.

편씨는 대포통장에 입금된 돈을 인출해 유흥비로 탕진했다.
피해자의 신고를 받은 서울 도봉경찰서는 편씨를 검거해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조사 결과 편씨의 사기행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

편씨는 2006년에도 인터넷에서 여성으로 가장해 “낙태수술 비용이 없다”는 거짓말로 700여명에게서 1억 2000여만을 뜯어낸 뒤 검거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돈을 보낸 남성들은 나중에 돈을 돌려받을 때 미모의 여성을 직접 만날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뺑소니 교통사고에 동정심이 일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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