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문 대통령 후반기-책임과 과제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병도의 時代架橋] 문 대통령 후반기-책임과 과제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9.11.16 08: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책 대전환 국정 대쇄신 해야
초심 새기며 국민통합 노력을
전반기 성적표 수준 미달
경제ㆍ외교ㆍ안보 비상
한미동맹 복원, '안보' 정상화 중요
역대 최악 경제 성적표
바닥 경기 청와대만 몰라
경제·민생, 여건 악화 속 실책 거듭
‘소통 출발’ 기조 변화로 정치 복원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로 들어섰다.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는 2년 반 만에 반토막이 났다.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남겼는가. 이뤄야 할 책임은 무엇이며, 과제는 무엇인가. 

광장의 촛불이 이끈 역대 첫 현직 대통령 파면을 거쳐 탄생한 정부는 헌정사에 일찍이 없었던 사건이었고, 앞으로도 반복을 상상하기 힘든 역사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 2년 반은 넘어야 할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전환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 

이 정부 들어 한국경제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침체되고, 일자리가 사라졌으며, 북한의 가짜 비핵화는 이제 진실의 순간을 맞고 있다. 임기 절반의 성적표는 낙제점 수준이다. 무엇보다 민생·경제 실패가 지지율을 결정적으로 끌어내렸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같은 소득주도성장과 기업 옥죄기 등 기존 경제정책을 고수하는 한, 민생·경제 회복은 불가능하다. 

정권은 선의로 포장한 신념윤리가 아니라 결과로 말하는 책임윤리가 지배하는 곳이다. 말 보다는 실적으로 증거해야 한다. 임기 반환점은 다시 출발선에 선 것과 같다. 그동안 변화에 집중했다면, 후반기는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야 한다. 시민들은 허망한 말보다 유능한 정부를 원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로 들어섰다.ⓒ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로 들어섰다.ⓒ뉴시스

경제·외교안보·사회 정책 실패 

박근혜 정권에 대한 탄핵정국 당시 시민들의 일치된 질문은 '이게 나라냐'였고, 새 정부의 국정은 이 도전적 물음에 응답하는 과정이었다. 그건 이 정부 모토처럼 인식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명제로 응축됐다.

그러나, 전임 대통령 탄핵의 상처를 딛고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것”이라던 약속은 안타깝게도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추락하는 성장잠재력과 국가적 난제를 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상 네 번째로 낮은 경제성장률, 일방적 유화정책에도 핵 폐기에는 미동도 않는 북한 문제, 최악으로 치닫는 한일관계와 그로 인한 한미동맹의 균열, 수월성 교육을 포기하는 '제2 고교평준화' 정책 등 문재인 정부는 경제·외교안보·사회 어느 한 분야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정책 실패는 실로 참담하다. ‘일자리 정부’라는 구호가 창피할 정도로 최저임금 과속과 무차별 주 52시간제 등으로 좋은 일자리는 사라지고, ‘가짜 일자리’만 늘어났다. 외환·금융 위기가 아닌데도 올해 경제성장률은 1%대를 예고하고 있다. 기업들의 사기도 바닥에 떨어져 탈(脫)한국을 고심하고 있는 지경이다. 

총체적 경제 난맥상의 배경에는 ‘방향착오 공약’이 도사리고 있다. 시장에 대한 무지와 편향된 이념에 갇혀, 산업구조 전환과 4차 산업혁명의 큰 흐름을 거꾸로 읽어 모두를 피해자로 만들고 있는 형국이다. 

후반기 레임덕...각고의 노력을

남북·미북 회담으로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켰다는 자화자찬과 반대로 북핵 폐기는 더 멀어졌고, 한·미 불신과 한·일 관계 악화 등 안보 환경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문 대통령과 우리 정부를 향한 북측의 비방과 무시는 갈수록 강도를 더해가는 가운데 급기야 김정은은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 한미 간 균열이 더 커질 경우 김정은은 한국 무시를 넘어 협박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걸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미동맹을 더 강고하게 복원하는 것 뿐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앞으로다. 내년 경제는 올해보다 힘겨울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무역전쟁에다 영국의 브렉시트, 독일 경제의 부진 등 세계 경제가 불투명하다. 한국은 일본과 무역전쟁 중이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더 험난하고 해결 과제도 산적해 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비상한 각오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위기에 준하는 특단의 대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경제 활성화를 국정의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단임 대통령으로서 후반기에는 레임덕이라는 장벽 또한 마주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전반의 실정(失政)을 만회하고 간과했던 핵심 정책을 찾아 추스르는데 더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리스크 관리 최대 과제

전반기,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이뤄진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은 가슴 떨리는 감동을 낳으며 ‘전쟁과 핵 없는 한반도’를 성큼 앞당기는 듯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이를 위한 북미 비핵화 협상과 남북관계 진전 프로세스도 실속(失速), 돌파구를 열어야 할 기로에 서게 됐다. 

북한은 비핵화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내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발사 등을 암시하고 있어 2020년에는 한반도에 다시 암운이 드리울 가능성이 적지 않다. 고조될 한반도 리스크를 관리하는 게 향후 2년 반의 최대 과제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플랜B도 준비해야 한다.

사회에 만연한 불공정 이슈를 수면 위로 밀어 올린 '조국 사태'도 뼈 아팠다. '기회 평등·과정 공정·결과 정의' 명제는 퇴색되어 정부에 큰 상처를 남겼고, 공정 개혁을 특별한 국정 과제로 안겼다.

문 대통령은 “2년반 동안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토대가 구축됐다”며 “정부는 일관성을 갖고 흔들림 없이 달려가겠다”고 했다. 임기 후반기에도 ‘마이웨이’를 고수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임기 반환점을 맞아 후반기 국정 대전환을 기대했던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말이다. 진단을 제대로 해야 올바른 처방이 나온다. 

박근혜 전임 정부의 몰락을 재촉한 결정적인 원인 중 하나로 '불통'이 꼽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현 정부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한 기본기와 초심에 충실하게 돌아와야만 한다. 

문 대통령이 임기 후반에 풀어야 할 최대 과제는 역시 경제와 민생 문제다. 취임사 초심을 좇아 인사와 정책을 전면 쇄신하는 국정 대전환이 급하다.

사면초가 경제 

촛불민심이 탄핵을 이뤄냈다면, 촛불에 담긴 시민의 갈망을 법적·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전적으로 새 정부의 몫이었다. 그러나 논란만 무성했고 성과는 부족했다.

문 정부는 성장과 분배를 모두 놓쳤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아시아에서 가장 급진적인 좌파 정책”이라 평한 소득주도 성장을 비롯해 반기업·친노조 일변도 정책이 빚은 참극이다. 

정부는 ‘사람 중심 경제’를 표방하며 소득주도성장, 공정경제, 혁신성장을 3대 목표로 내세웠다. 대기업-중소기업 상생과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통해 모든 사람이 골고루 성장의 혜택을 누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정부 들어 아동수당과 실업수당 인상, 고용보험 확대, 문재인 케어 등으로 사회안전망이 많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허지만, 임기 절반의 성적표는 참담하다. ‘3%의 성장을 갖춘 경제’를 약속했지만, 첫해만 3.2%였을 뿐 다음해에는 2.7%로 하락했고, 올해는 2%마저 붕괴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위기가 아닌 경우 성장률이 2%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미·중 무역갈등, 보호무역주의 확산, 제조업 경기 위축 등으로 세계경기가 급격히 둔화한 데 따른 영향이 크다지만, 환경 탓만 하기엔 엄중한 상황이다. 

물가상승률이 지난 8월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장기 불황의 전조 현상인 디플레이션 우려까지 낳고 있다. 설비투자는 11개월째 감소하고 있고 부동산 규제 여파로 건설경기도 1년 가까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수출마저 11개월 연속 감소하며 그야말로 한국 경제는 사면초가에 처했다.

바닥 경기 직격탄

직장인이 밀집한 서울 도심의 오래된 식당조차 저녁엔 손님 구경하기 어려워진 지 오래다. 주52시간제 도입으로 직장인 단체 회식이 크게 줄어든 탓도 있지만, 바닥 경기가 식은 게 더 큰 요인이다.

실제로 문 정부의 어설픈 정책 실험 탓에 자영업자는 직격탄을 맞았다. 급속한 주 52시간제 도입과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와중에 수요 부진으로 매출은 오히려 꺾이면서, 빚으로 연명하는 자영업자가 적지 않다. 자영업자의 대출 잠재부실률(30일 이상 연체 비율) 상승이 이를 말해 준다. 

청와대의 현실 인식은 이런 바닥 민심과 달리 한가하기 그지없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 정부가 잘못한 게 뭐냐”는 질문에 “언뜻 생각나지 않는다”고 답해 비난을 받더니,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고용률이 올랐는데 청년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건 알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여론조사에도 나타났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6명이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2023년엔 나랏빚이 1000조원을 넘는다. 2013년 490조원에서 10년 만에 두 배 넘게 증가한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가 성장률보다 훨씬 빠르다.

그야말로, 성장에 중심을 두는 쪽으로 정책 기조를 유턴해야 한다. 경제5단체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기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성장률 상승은 나랏빚 걱정까지 덜 수 있는 길이다. 이를 외면하고 부작용투성이 소득주도 성장을 고집하는 한 한국 경제는 이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성장'으로 패러다임 바꿔야

일각에선 문 정부가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지적한다. 정권 출범 초반 검찰개혁·경제개혁 과제를 힘있게 밀어붙이지 못한 채 실기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악성재고만 잔뜩 쌓인 채 자금이 없어 아우성을 치고 있다. 그런데도 책임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친노동·반기업 정책을 고수하고 있으니 경제가 되살아날 리 만무하다. 

정권 출범 이후 재벌 중심 선단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저성장 뉴노멀 시대를 헤쳐나가는 과업은 공정경제에 터 잡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기조로 방향이 잡혀 '혁신적 포용국가' 비전으로 구체화했지만, 문제점은 심각하다.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며 고용을 늘린다고 늘렸지만, 고용의 질은 나빴고 소득 불평등은 심화했다. 결국 민간기업 투자를 유도하고 제조업 강화를 촉진하며 혁신성장을 막는 규제 혁파에 나서라는 처방이 요구된다. 문재인정부의 J노믹스는 이제 수정돼야 한다. 시장친화적인 성장 정책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특히 제조업의 국제 경쟁력 약화로 좋은 일자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적으로 최고의 학력과 스펙을 가진 젊은층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문제다. 566만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들의 고통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정책 곳곳 파열음, 민생·경제 악화

정책도 곳곳에서 파열음을 냈다. 정책 정합성을 면밀히 따져보지 않고 의욕만 앞세운 결과 이해당사자의 충돌로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소득 불평등은 확대됐으며, 성장은 뒷걸음치고 혁신은 실종됐다. 일자리 정부라는 말도 무색해졌다. 

사상 최대의 통합재정수지 적자는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이 부른 재앙이다. 복지를 내걸고 각종 현금 보조금이 살포되고 있다. 게다가 각종 보조금은 관리조차 되지않는 실정이다.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정책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 같아 우려된다. 일본식 장기불황이 우려되는 지금, 재정건전성을 제고하지 않으면 자칫 '빚더미 국가'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선심성 정책을 자제하면서 재정건전성 제고에 적극 나서야 한다.

민생·경제 실패가 문 대통령 지지율 하락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여론조사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7월 대통령 지지율이 70% 아래로 떨어졌을 때 부정 평가의 주요 요인은 민생·경제 실패였다. 

지난해 9월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졌을 때도 부정 평가의 이유는 민생·경제 문제 해결 부족, 최저임금 인상, 부동산 정책 등 모두 경제 관련 항목이었다. 지난달 지지율이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졌을 때도 부정 평가 응답층은 그 이유로 민생·경제 문제 해결 부족을 가장 많이 꼽았다.

노동 개혁 시급성 

경제에 있어서는, 식어가는 성장엔진을 다시 돌리기 위해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야만 한다. 데이터 3법을 비롯해 혁신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를 과감하게 풀고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국회에 묶여 있는 경제 활성화 법안의 입법화도 서둘러야 한다. 법인세율 인하 등 기업 투자를 촉진할 정책을 적극 검토하고,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안같이 기업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을 신속히 제거해야 한다. 

친노동 정책 과속으로 인한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과감한 노동개혁에 나서야 한다. 여론조사에서도 집권 하반기 문재인정부가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노동개혁'이 꼽혔다. 현 정부 들어 노동개혁은 사실상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어렵게 도입한 저성과자 해고와 성과연봉제 도입에 관한 '양대 노동지침'을 폐기하며 노동시장 경직성은 더 악화됐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올해 한국은 13위에 올랐지만, 해고 비용 116위, 고용 및 해고 유연성 102위, 노사 협력 130위 등 노동 분야는 순위가 더 떨어졌다. 노동시장 경직성이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비슷한 시기에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행보는 달랐다. 노동 존중을 강조한 문 대통령과 달리 마크롱 대통령은 과도한 노조 기득권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임금 근로 조건에 대한 노조의 협상권을 축소하고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등 노동개혁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실업률은 낮아지고 정규직 비중도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문 대통령도 마크롱 대통령처럼 단호해져야 한다. 지금 경제 상황은 노동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만큼 절박하다.

통합과 소통, 더 노력해야

역시, 국민과의 '소통'이 큰 문제점으로 드러났다. 문 정부는 집권 초부터 소통의 가치를 중시했고, 그 덕분에 인기도 높았다. 하지만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소통은 어느덧 '먹통'으로 변했다는 따가운 비난까지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문 대통령의 그간 국정수행 평가는 국정지지율 폭락이 말해준다. 과거 정부에서 누적된 적폐를 도려내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등 노동 존중 사회를 실현하며 탈원전을 구체화하는 개혁을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이는 동안 지지율은 한때 80%를 넘나들었다. 이제, 40%대 초반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으니 반쪽이 됐다. 

모처럼의 소통 행보가 일회성 '깜짝 이벤트'에 그쳐선 안 되고 뉴노멀로 확고히 자리 잡아야 한다. 강기정 정무수석의 '국회 스탠딩 버럭 발언' 같은 일이 재발한다면 청와대 소통 노력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통합과 소통에 더 노력해야 한다. 시민들 간에도 지지 정파에 따라 대립과 갈등이 갈수록 격렬해지고 있다. 걱정스럽다. 

야당도 달라져야 한다. 야당의 힘은 한편은 정치적 명분, 다른 한편은 정책 대안에서 나온다. 여권이 여러 번 실책을 거듭했는데도 야당 지지율도 조국 사태 이전으로 돌아갔다. 여당 못지않게 야당도 자살골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치적 명분은 명분대로, 정책 대안은 대안대로 지리멸렬하다. 그 결과는 국민이 기댈 데가 없다는 것이다. 

팬덤 정치 극복을

문 대통령이 '우리 이니'를 외치는 지지층 눈치를 보며 외골수 국정 운영을 하게 되면 조기 레임덕을 불러올 공산이 크다.

현 정권이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는 '팬덤(fandom) 정치'에 빠지면서 이념·세대·지역 간 반목과 대립이 심해지고, 이로 인해 민심이 왜곡돼 민주주의 정치가 후퇴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지금이라도 팬덤 정치에서 벗어나 중심을 잡고 진정한 설득과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독일의 헬무트 콜 전 총리는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는 타협에 대한 명확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기 후반을 맞아 진정한 국민통합의 시대를 열려면 대통령이 불통 대신 소통, 강요 대신 설득, 독선 대신 상생의 리더십을 발휘하고, 초당적 자세로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국민까지 보듬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여권은 당·정·청의 일체감과 응집력을 높이고 여러 우당(友黨), 나아가 보수 야당까지 포함한 의회와 끈기 있게 소통하고 타협하여 개혁 입법의 성공률을 높여야 한다. 입법과 그에 준하는 제도화 없이 행정 조처로 하는 개혁은 언제든 원점 회귀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국정 쇄신은 인사가 만사라는 틀에서 진행해야 한다. 12월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안 처리가 끝나면 국무총리를 포함한 개각과 청와대 보좌진 개편으로 일신한 청와대와 정부를 국민에게 제시해야 한다. 전반기에 벌어진 '인사 참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통합과 협치의 정신으로 내각을 일신해야 한다.

국정운영 독주 파장 

전반기 문 정부의 실패는 '이념 편향 정책'의 결과다. 문 대통령에 투표하지 않은 60%의 국민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 지지층만 끌어안으려 했다. 

무당층 지지율은 한때 69%까지 치솟았다가 22%로 급락한 상황이다. 대통령이 상생과 통합보다는 진영 논리에 따른 정책과 인사를 밀어붙이면서 다수 민심이 이탈한 결과다.

반시장, 반기업 국가 개입주의적 '소득주도성장정책'은 경제참사를 낳았다. 2년에 29% 과속 인상한 최저임금과 근로시간을 강제한 주52시간근무제는 올 상반기 사상 최대의 기업 해외유출로 나타났다. 1, 2분위 저소득층의 소득 감소 내지 정체를 가져와 빈부격차를 심화했다. 투자·생산·소비·수출이 모두 마이너스로 돌아서 한국경제는 '마이너스 경제'라는 비아냥까지 받고 있다.

특히 2년간 최저임금을 29%나 올린 것은 경제에 찬물을 끼얹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서민들 소득이 늘어나 소비가 살아나고 기업 투자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실은 정반대 쪽으로 흘렀다.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한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이 인력을 축소하거나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가 줄고 소비가 위축됐다. 

정부 출범 시 4년 임기 동안의 경제 마스터플랜을 짜고 사후관리를 해야 하는데 이 부분도 허술했다. 소득주도성장 등 주목할 만한 새로운 정책을 여럿 내놨지만, 돌발변수로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경제상황에 대한 오판도 한 요인이었다. 정부 출범 후 곧바로 경기하강 국면을 맞았으나 오히려 긴축정책을 폈다. ‘반도체 착시’로 경기상황이 좋은 것으로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그동안의 국정 운영은 청와대 독주로 이어져 ‘청와대 정부’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민감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비롯해 주요 외교안보 사안은 청와대가 주도했고, 주무부처인 외교·국방부 주변에선 청와대의 하명 사항을 이행하는 역할에 만족해야 한다는 자조가 파다하다. 

더불어민주당이라도 민심의 소리를 들어 청와대 독주를 견제해야 할 텐데, 그보다는 청와대와 코드를 맞추는 데 급급한 모습이었다. 남은 절반의 임기에는 청와대가 정부와 여당에 권한을 분산해야 국정이 물 흐르듯 흘러갈 수 있을 것이다.

국회 협치 붕괴, 법안 산적 

개혁의 성과는 결국 제도로 일궈내지 않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 온갖 개혁입법들이 국회에서 꽉 막힌 상태다. 

국민 통합이 무너지면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 협치 또한 붕괴됐다. 국회 예산결산특위 보고서에 따르면 내년도 정부 예산에 반영됐지만 법안 심사가 이뤄지지 못해 차질을 빚을 사업이 총 13개, 14조여 원 규모다. 그나마 관련 법안 통과를 전제로 짜 놓은 예산이 이 정도인데, 국회 파행으로 아예 손을 놓고 있는 민생 경제 법안은 이보다 훨씬 많다. 야당의 비협조도 문제지만 원만한 국회 운영을 이끌어내지 못한 집권세력의 책임이 더 크다.

국민 전체의 이익과 소비자 편익을 중심에 놓고 반대세력을 설득할 용기가 있어야 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각종 규제를 철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여야 대치는 늘 있어왔지만, 서로의 존재론적 근거까지 공격하는 지경에 이른 것은 독재정권 시절에도 없었던 현상이다. 

정치는 야당과의 협치 대신 정쟁으로 채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년 총선이 다가올수록 야당은 더 강경한 입장을 취할 공산이 크다. 그렇다고 야당 탓만 하며 손 놓고 있기에는 국회에 발목 잡혀 있는 개혁과제와 민생 입법이 너무 중하고 급하다. 

더불어민주당이 올 4월 야3당과 손잡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설치법, 검경수사권조정법안, 선거법개정안을 패스트트랙법안(신속처리안건)에 포함한 것도 통합의 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패스트트랙의 경우 민주당으로선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뒷받침하고 국정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하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것은 집권여당의 독주로 비칠 수 있다. 

2017년 9월 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가 현안을 논의할 '국정상설협의체 구성'을 합의해 놓고도 제대로 가동하지 않는 것 또한 여야 협치가 실종됐다는 증표이다.

여소야대의 한계를 간과한 ‘청와대 정치’로 협치는커녕 여야의 극한대립이 일상화됐고, 제도 개혁과 민생을 뒷받침할 입법도 번번이 길을 잃었다.

무엇보다 중도층에 다가가는 국정 운영을 해야 할 것이다. 무조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극단적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사안별로 옳고 그름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는 중도적인 민심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임기 내내 코드 인사를 고집하는 것도 무능한 정부로 가는 지름길이다.

제1 야당 한국당의 책임

야당의 자세 변화도 촉구하지 않을 수 없다. 제1 야당인 한국당도 반정부 투쟁 일변도의 발목잡기만 매달리지 말고 따질 건 따지고, 협력할 건 협력하는 전향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민주주의 본령은 의회정치에 있다. 의회에서 만드는 법이 곧 국가의 작동시스템이 된다. 의회에서 각 당은 정확하게 의석수만큼의 정치적 책임을 갖는다. 여소야대인 지금 국회에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당의 책임이 결코 여당에 비해 가볍다고 할 수 없다. 여당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은 야당 본연의 역할이지만 의회 안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록 전언 형태라고는 하지만,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년 안에 죽을 것'이라는 등 범여권의 평정심을 흔드는 도발적이고 비상식적인 구태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현재 야당의 정부 비판은 온통 거대담론에만 머무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5단체는 주52시간 근무제 보완 법안, 데이터 규제 완화 법안, 화학물질 관련 규제 완화 법안 등 3개 법안만이라도 올해 안에 처리해 줄것을 국회에 호소했다. 

이른바 '친기업, 친시장'을 표방한다는 한국당은 이런 절규가 나올 때까지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여당이 이런 문제에 관심이 없다면 공론장으로 끌어내야 하고, 입법에 미적댄다면 재촉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이들 법안에 대해 여당만 한 관심도 없어 보인다. 대부분 이렇다 할 당론도 없다. 한국당은 탈원전을 말로만 비판할 뿐, 이를 막기 위한 여론 조성과 법적 대응은 일부 시민단체와 원자력전문가들에게 맡겨 두는 지경에 있다. 

J노믹스, 예상 궤도 크게 이탈

경제 실정은 실로 심각하다. 올해 1%대 성장이 기정사실화됐다. 석유파동·외환위기·금융위기를 빼고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성장률이다. 내년 역시 1%대 성장에 머물거란 관측을 국내외 기관들이 잇따라 내놓고 있다. 

세계 평균 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 격차마저 점점 벌어지는 실정이다. 올해 성장률은 경기 과열 없이 이룰 수 있는 ‘잠재성장률’(OECD 추정 2.72%)에도 한참 못 미친다. 

수출은 마이너스의 함정에 빠졌다. 이 마당에 물가까지 마이너스를 넘나들며 디플레이션 우려를 낳고 있다. 문 대통령의 경제정책, 곧 J노믹스는 예상 궤도를 크게 이탈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은 오히려 영세 사업장의 고용 능력을 떨어뜨려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온갖 규제와 반(反)기업 정서, 경직된 강성 노동운동 등으로 인해 기업인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경제를 파국으로 내몬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는다면 국민을 헛된 말로 호도하는 것일 뿐이다. 청와대는 더 늦기 전에 실패를 인정하고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 

애초 소득주도성장은 한국에 맞는 전략이 아니었다. 소득주도 성장의 원전 격인 2012년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도 이 점을 인정했다. 수출주도형 개방경제는 소득주도 성장이 먹히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소득주도 성장을 밀어붙였다. 그래서 돌아온 건 사라진 일자리, 문 닫은 가게, 수렁에 빠진 경제다.

민생·경제 지표들과 재정 악화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양극화와 불평등의 경제를 사람중심 경제로 전환하여 함께 잘 사는 기반을 구축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고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도 어제 기자간담회에서 “혁신·포용·공정을 토대로 한 경제 패러다임 대전환 노력에 집중했다”고 했다. 그제 청와대 ‘3실장’의 브리핑 내용도 마찬가지다. 전반기 경제 상황을 되돌아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억지주장이 대부분이다. 

문 정부의 민생·경제 실패를 증명하는 지표들은 넘친다. 문 정부의 성장률, 취업자 수 등 10개 주요 경제지표를 노무현 정부 이후와 비교한 결과 역대 최악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 정부의 3년간 성장률은 연평균 2.6%에 그쳐 노무현 정부 4.2%, 이명박 정부 3.5%, 박근혜 정부 3.1%보다 낮았다. 취업자 수는 노 정부 때 연평균 27만 명 증가했고 이 정부 때 28만 명, 박 정부 때 37만 명 늘었으나 문 정부는 증가 폭이 20만 명으로 떨어졌다.

우리는 특히 저성장과 저물가가 동시에 닥치는 디플레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웃 일본을 보라. 잃어버린 10년은 20년이 됐고, 다시 30년으로 접어들고 있다. 한때 세계 1위 미국을 위협하던 일본 경제는 중국에 훌쩍 추월당했다. 지난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거의 중국의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일본 사례에서 보듯 디플레는 예방이 최선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정부의 역할은 경제주체들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규제혁파 등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어야지, 원가·임금·분양가 등 시장가격에 개입하고 민간의 창의와 혁신을 규제하는 것이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이는 그리스 베네수엘라 등 숱한 ‘정부 실패’ 사례도 잘 보여준다.

재정 건전성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 경제의 최대 강점 중 하나였다. 온갖 유혹 속에서도 역대 정부는 씀씀이를 최대한 억제한다는 원칙을 지켜왔고, 그 덕에 1997년 외환위기나 2007년 글로벌 금융 위기도 무사히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할 줄 아는 것은 세금 퍼붓는 것밖에 없는 정권이 등장했다. 이 정부 들어 매년 증가율 10% 안팎의 초대형 예산을 편성하고 온갖 곳에 세금 퍼붓는 정책을 펴면서 재정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대통령 지시 한마디에 국가채무를 GDP의 40% 이내로 억제한다는 '40%룰'의 불문율이 깨지고 가짜 일자리 대책에만 70조원을 퍼붓는 등 '묻지 마 세금 살포'가 횡행하고 있다. 

일자리 정책 역부족

이와 관련, 대한상의 등 경제 5단체는 최근 정부와 국회에 경제혁신법 처리를 촉구하면서 "경제활력을 위한 법안 개정 없이는 일본식 장기 불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일본이 디플레에 빠진 원인은 크게 두가지로 분석된다. 하나는 인구구조의 변화, 곧 고령화·저출산이고 다른 하나는 구조개혁 실패다. 이 중 고령화·저출산은 당분간 추세를 바꾸기 어렵다. 남은 선택지는 구조개혁뿐이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정부’를 자임했지만 결과는 취업포기자, 비정규직의 급증이다. 

청년들도 4명 중 1명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아우성이다.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만든 비정규직 노인층 일자리가 늘어나며 고용지표에 착시가 일어나고 있다.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악화되며 계층별 소득 격차는 더 벌어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2분기 2인 이상 가구의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3배로 2003년 이래 최고치를 찍었다.

혁신성장을 막는 규제를 혁파해 혁신경제 쪽에서 일자리를 늘리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고령자 취업 증가로 고용률이 버티고 있지만 30·40대 고용이 감소하고 있어 일자리 정책은 역부족이다. 또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가 지난 8월 153만 5000명으로 1년 전보다 11만 6000여명 감소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폭이다. 

당장 내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가는 50∼299인 사업장의 주 52시간제에 대한 부작용을 고려해 수정 적용도 고려해 봐야 한다. 탄력근로제 도입도 중요하지만, 우선 150~299인 사업장에만 단계적으로 시행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제조업이 한계에 달한 한국의 산업 생태계는 새로운 산업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신산업에서 일자리가 생기고 미래도 기약할 수 있다. 혁신성장, 노동·사회구조개혁이 공회전만 거듭하는 것도 문제다. 이들 분야가 경제와 조화를 이루면서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방안을 짜내야 한다.

국가 안보, 실질적 진전 없어

안보도 되돌아 봐야 한다. '평화의 한반도'는 문재인정부 국정기조 중에서도 최중심에 위치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세 차례 만났고 4·27 판문점선언, 9·19 평양선언 등 남북 간 긴장완화 방안을 담은 문서에 서명했다. 남북 간 평화 무드는 김정은이 미·북 정상회담 등 비핵화 대화에 나서게 하는 데 촉매 역할을 했을 것이다. 문 정부 스스로도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을 제거한 것을 최대 치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안보 역시 실질적 진전은 없다. 9·19 군사합의 이후 남북 간에 군사적 긴장이 완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 문제인 북핵은 그대로 있다. 지난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비핵화 논의는 사실상 중단됐고, 북한은 5월 이후 12차례 미사일을 쏘아올렸다. 

미국이 주한미군 주둔비 5배 인상, 지소미아 종료 번복을 공개 요구할 만큼 한·미 동맹도 흔들리고 있다. 한·일 관계는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한·미·일의 균열을 틈타 중국·러시아 전투기가 우리 방공식별 구역을 휘젓고 다니고, 중국에 사드 추가 배치 불가 등 '3불(不) 약속'까지 건넸지만 돌아온 것은 사드 보복뿐이다. 그야말로 국가 안보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에 몰아넣었다.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의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교착 국면을 이어가면서 벅찬 감동은 빛이 바랬다. 남북관계도 북-미 관계와 연동돼 발이 묶인데다 ‘금강산 남쪽 시설 철거’ 논란 등 최근에는 뒷걸음질 치는 듯한 모습마저 보인다. 

정부는 집권 초기 강력하게 밀어붙였던 북-미 협상의 촉진자·중재자 구실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남북관계도 과감한 발상과 새로운 상상력을 발동시켜 돌파해야 한다.

소통 행보 살려가야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다" "주요 사안은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는 등 '소통 대통령'을 공약했다. 그러나 임기 전반기 문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은 소통은커녕 '불통(不通) 대통령' 그 자체였다. 

광화문 공약은 철회했고 직접 언론 브리핑도 거의 없었다. 소통 부재는 '조국 사태'와 같은 오만·독선적인 국정 운영으로 이어졌고, 결국 싸움만 벌이다 길거리로 나가 진영 대결하는 것으로 전반기 임기를 끝내고 말았다.

불통의 국정 운영은 내각 임명에서도 드러난다. 현 정부 들어 야당의 반대로 국회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이 강행된 장관급 공직자만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 김연철 통일부 장관 등 22명으로 역대 정부 중 가장 많다.

문 정부가 후반기 들어 소통에 방점을 두는 것은 일단은, 평가할 만하다. 특히 대통령의 핵심 참모인 ‘3실장’이 경제·안보 등 현 상황에 대한 평가와 향후 추진 과제들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고, 한·미, 한·일 동맹이 흔들리고, ‘조국 사태’ 후유증으로 민심이 두 동강 난 상황에서 국정 기조 변화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하지만, 이 행보가 일회성으로 그치거나 이벤트성 행사가 돼선 안 된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펼치는 전략적 행보여도 안된다. 적극적인 소통 행보를 살려가되 쓴소리와 반대편의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여야 한다. 

소통을 막고 정쟁을 부추기는 청와대와 정부 인사들은 과감히 교체하고, 정권 창출에 기여하지 않았더라도 역량과 자질을 갖춘 유능한 인재들을 발탁해 국정을 맡겨야 한다. 일부 친문그룹의 기강을 바로잡고 야당과의 소통 의지를 보여주려면 청와대 인적쇄신과 탕평인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김우식 연세대 총장을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하고, 진대제 삼성전자 대표를 정보통신부 장관에 발탁해 국정에 활력을 불어넣은 전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정치에선 지지층만 바라보는 진영 정치, 반쪽 통치에서 벗어나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 외교·안보에서도 북한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행태에서 벗어나 일본과의 갈등을 끝내고 적극적인 대미 외교를 펼쳐야 한다. 

개각, 국정기조 변화 계기로 

국정운영의 일대 쇄신이 필요하다. 인적 개편은 국정의 고삐를 새롭게 죄고 각오를 다지는 계기가 돼야 한다. 내각에 권한과 자율성을 더 부여하고, 청와대 비서실엔 부처 간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조정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기용되어야 한다. 

탕평 인사는 절실하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다”고 했다. 이 약속이 지켜졌다고 보긴 어렵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법무부 장관 외의 개각은 예정하지 않고 있다던 청와대가 개각을 언급한 것은 조국 사태, 보수 통합 추진 등 달라진 정치지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 외교 안보 부동산 일자리 등 전 분야에 걸쳐 국정 기조 쇄신의 필요성이 높다. 

개각을 총선 출마자를 위한 빈자리 채우기가 아닌 지금까지의 정책 기조를 냉철하게 점검하고, 과감하게 국정 기조를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무능과 오만하다는 지적을 받아온 청와대 참모진도 면모를 일신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 하반기의 첫 개각은 엄정한 검증과 통합·협치 개각이 되어야 한다. 

취임 당시 초심(初心)으로 

문 대통령의 남은 2년 반은 더한 험로가 예상된다. 세계 경제는 미중 무역갈등과 보호무역주의의 영향이 본격화되면서 침체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과감한 규제 혁파로 민간의 활력을 살리고 미래 산업에 대한 투자로 성장 잠재력을 높여야 한다. 

대한민국이 직면한 위기를 돌파하려면 흐트러진 국민의 역량을 하나로 모으는 국력 결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야당 등 비판 세력을 비롯해 시장·기업 등과 교감하고, 국민과의 진정한 소통을 바탕으로 통합의 국정 운영을 실현해야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전반기 국정의 전제와 좌표가 잘못됐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임기를 같은 시기 시작한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친시장적 통합적 행보에서 배워야 한다. 정책 대전환과 국정 대쇄신 없이는 문 대통령은 역사상 가장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남길지도 모른다.

이제 문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은 자꾸 줄어들고 있다. 어쩌면 후반부는 전반부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지나갈지도 모른다. 정말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 노력했던 대통령으로 기억되고자 한다면, 지금이라도 취임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민생 개선과 평화 증진에 복무하는 반듯한 나라를 만들라는 촛불의 '명령'을 떠올리며 초심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냉정하고 처절한 반성과 성찰이 절실한 때다. 원칙을 지키며 실책을 반복하지 않는 주도면밀한 전략으로 2년 6개월 임기 후반기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길 바란다. 집권 후반기, 문 대통령의 용단을 기대해 본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