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를 가다⑧-성남분당] ‘제2의 강남’…진보세 강화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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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를 가다⑧-성남분당] ‘제2의 강남’…진보세 강화 ‘뚜렷’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11.19 16: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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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수요 분산 목적 건설…판교 신도시 완성 이후 진보세 강해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아파트단지와 녹지가 적절히 조화되고, 교통도 좋은 분당은 주거 환경이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시사오늘
아파트단지와 녹지가 적절히 조화되고, 교통도 편리한 분당은 주거 환경이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시사오늘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우리나라에는 부동산 광풍(狂風)이 불었다. 특히 서울 집값은 천정부지(天井不知)라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였다. 최초로 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하며 주택수요 자체가 많던 상황에서, 올림픽에 대비해 각종 기반시설까지 확충되자 집값은 매년 30~40%씩 치솟았다.

그 결과 부동산시장은 불안해졌고, 서민들의 불만도 쌓여갔다. 이처럼 집값 폭등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정권에도 악영향을 미치자, 결국 노태우 정부는 ‘공급 폭탄’ 카드를 꺼내들었다. 공급을 확대해 수요를 충족시키면 부동산시장도 안정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1988년에 중동·평촌·산본 신도시, 1989년에 분당·일산 신도시 건설 계획이 발표된 배경이다.

분당은 서울 강남지역의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강남과 가까운 성남 북쪽에 조성됐다. ⓒ성남시청
분당은 서울 강남지역의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강남과 가까운 성남 북쪽에 조성됐다. ⓒ성남시청

강남 수요 분산 위해 건설…‘제2의 강남’ 분당

특히 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분당 신도시는 가격 상승폭이 가장 컸던 서울 강남지역의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실제로 노태우 정부는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수 학군 조성’을 공언하는 등, 강남에 뒤지지 않는 주거환경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동과 고양군 일산읍에 대규모 주택도시가 건설된다. 정부는 성남시 분당동 일대 540만 평에 10만5000가구의 주택을 지어 4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주택도시를 건설하고, 고양군 일산면 일대 460만 평에는 7만5000가구분의 주택을 건설, 인구 30만의 전원도시를 만들기로 했다. (중략)
분당지구에는 중산층의 수요대상인 중형(전용면적 25.7평 초과) 이상 아파트를 대상으로 지어 공급, 서울 강남지역의 주택 수요를 흡수하며 강남 지역에 버금가는 교육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최신의 시설을 갖춘 초·중·고교를 건설하고 우수교사를 우선 배치하게 될 것이라고 박승 건설부장관은 설명했다.
또 전체면적 540만 평 가운데 45%인 243만 평만 주거용지로 개발하고 13%인 70만 평은 상업·위락단지로, 9%인 49만 평을 공원용지로 조성하는 등 상업·업무·교육·문화 등 자족적인 도시기능을 갖춘 전원도시로 가꾸기로 했다.
이와 함께 교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4600억 원을 들여 분당~잠실간 23km의 새로운 전철을 건설하고, 서울과 인접도시를 연결하는 5개 노선 36.5km의 도로를 2610억 원의 예산으로 건설하는 등 도로망 건설에만 7210억 원을 투자키로 했다. (후략)
1989년 4월 27일자 <경향신문> ‘성남 분당·고양 일산에 주택도시’

분당 신도시를 만들어 강남의 주택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정부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됐다. 강남까지 30분 내로 진입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은 분당의 가치를 높여놨고, 사람들은 분당을 강남의 대체재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신도시의 특성상, 교통과 주거환경이 좋다 보니 빡빡한 생활에 지친 강남 주민들까지 분당으로 빠져나왔다.

정부 의도가 맞아떨어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분당은, 한때 ‘천당 위에 분당’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집값 고공행진을 경험했다. 8일 <시사오늘>과 만난 이 지역 공인중개사는 “처음 분양 때만 해도 평당 200만 원 정도였는데,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 터지기 전에는 2000만 원까지 올랐다”면서 “그때는 강남보다 비싼 아파트도 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제2의 강남’으로 불리는 분당은 ‘강남 3구’ 못지않은 보수 성향을 보였다. ⓒ시사오늘
‘제2의 강남’으로 불리는 분당은 ‘강남 3구’ 못지않은 보수 성향을 보였다. ⓒ시사오늘

‘제2의 강남’ 분당…정치 성향도 강남과 유사

많은 인구, 높은 집값, 좋은 주거환경. 강남을 설명하던 수식어가 그대로 따라붙은 분당은 말 그대로 ‘제2의 강남’이 됐다. 애초에 도시 자체가 강남 주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설계된 만큼, 이는 자연스러운 수순이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분당은 정치 성향도 강남의 특성을 따라가는 경향이 강했다.

분당이 지금과 같은 갑·을 선거구로 나눠진 것은 2000년 제16대 총선부터다. 1996년 12월 신도시 사업이 완료된 후 인구가 불어나자, 분당은 판교를 끼고 있는 북부의 갑 선거구와 남부의 을 선거구로 분구(分區)됐다. 그리고 이때부터 분당은 ‘제2의 강남’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드러낸다.

제16대 총선에서 이른바 ‘강남 3구’는 6개 의석 중 5개 의석(송파 을 제외)을 한나라당에게 몰아줬다. 강남에서는 최병렬(갑)·오세훈(을), 서초에서는 박원홍(갑)·김덕룡(을), 송파에서는 맹형규(갑)가 당선증을 받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분당 역시 고흥길(갑)과 임태희(을)를 선택, 강남과 유사한 강한 보수세를 증명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역풍(逆風)’이 몰아쳤던 제17대 총선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이 선거에서 강남은 이종구(갑)·공성진(을), 서초는 이혜훈(갑)·김덕룡(을), 송파는 맹형규(갑)·박계동(을)을 당선시키며 6개 의석을 모두 한나라당에게 몰아줬는데, 분당에서도 고흥길(갑)과 임태희(을)라는 한나라당 후보가 모두 당선되는 일이 벌어진다. 당시 한나라당이 경기도의 총 의석수 49석 가운데 불과 14석을 가져가는 데 그쳤다는 점을 고려하면, 분당의 보수세는 주목해볼 필요가 있었다.

제18·19대 총선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두 번의 선거에서 강남이 모든 선거구를 한나라당·새누리당에 선물한 것처럼, 분당 역시 모든 의석을 보수 정당에 내주는 완벽한 보수 우위 구도를 나타냈다. 강남이 그렇듯 분당도 전반적인 선거 판세와는 관계없이 ‘보수 텃밭’ 역할을 해왔던 셈이다.

판교 신도시가 들어서며 젊은층이 대거 유입된 데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여파가 영향을 미치면서 분당의 정치 성향은 급격히 진보화된 모양새다. ⓒ시사오늘
판교 신도시가 들어서며 젊은층이 대거 유입된 데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여파가 영향을 미치면서 분당의 정치 성향은 급격히 진보화된 모양새다. ⓒ시사오늘

판교로 젊은층 대거 유입…격전지 된 분당

그러나 제20대 총선부터 이런 판도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원인은 판교 신도시 건설이었다. 전형적인 베드타운(bed town)형 신도시였던 일산이나 분당과 달리, 판교는 경제적 자립이 가능한 자족도시를 목표로 건설됐다. 그 일환으로 판교에는 업무지구인 판교테크노밸리가 들어섰으며, 안랩, 한글과컴퓨터, 다음카카오, NC소프트, 넥슨 코리아, NHN엔터테인먼트, 웹젠, 위메이드, 스마일게이트 등 국내 유수의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입주하기 시작했다. 이러자 소프트웨어 기업들에 근무하는 근로자들이 하나둘 판교 신도시로 보금자리를 옮겼고, IT기업에 종사하는 젊은층이 늘어나면서 진보세도 점차 강화됐다.

실제로 판교 신도시를 포함하고 있는 분당 갑 선거구는 이제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이 백중세를 이루는 ‘격전지’로 분류된다. 제20대 총선에서는 민주당 김병관 후보(6만3698표)가 새누리당 권혁세 후보(5만2160표)를 1만 표 이상의 차이로 눌렀고, 제19대 대선에서도 서현동·이매동·야탑동·판교동·삼평동·박현동·운중동 등 모든 행정동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1위를 기록했다. 제7회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한국당 남경필 후보에게 완승을 거뒀다. 2016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를 거둔 것이다.

다만 분당 을 선거구는 조금 더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제20대 총선에서 민주당 김병욱 후보가 승리를 거두기는 했지만, 분당 을에서 3선을 한 이명박 전 대통령 비서실장 출신 임태희 후보가 공천 탈락 후 무소속 출마하면서 보수 표를 분산시킨 덕을 봤기 때문이다. 13일 <시사오늘>과 만난 한국당 관계자도 “지난 선거(제20대 총선)에서는 보수가 분열되는 바람에 민주당이 이겼는데, 보수 표가 합쳐졌으면 어떻게 됐을지 몰랐다”면서 “예전에 비해서 보수세가 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히 민주당 우위로 보기는 좀 어렵다”고 말했다.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 재획정이 이뤄진 것도 분당 을의 정치 성향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앞선 관계자는 “서현동, 수내동 이쪽이 경기도의 강남으로 불리는 그 지역인데, 지난 총선 전에 수내동이 분당 을로 들어왔다”면서 “대선이나 지방선거에서는 탄핵 여파 때문에 민주당이 이겼지만, 총선은 문재인 정권 심판론으로 치러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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