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한미일 삼각동맹과 지소미아 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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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한미일 삼각동맹과 지소미아 연장
  • 윤명철 기자
  • 승인 2019.11.24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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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통일은 굳건한 한미일 3각 동맹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한일 양국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과 한반도 통일은 굳건한 한미일 3각 동맹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진(좌)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반대에 나선 대학생들 사진제공=뉴시스
한일 양국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통일은 굳건한 한미일 3각 동맹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진(좌)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반대에 나선 대학생들 사진제공=뉴시스

20세기 중반 미국과 일본이 맞붙은 태평양전쟁은 4년간의 치열한 공반전을 펼친 결과, 미국의 핵폭탄 2방으로 끝났다. 승자 미국은 일본을 민주주의와 비군사화된 정상 국가로 만들고자 했다. 실질적인 총독 역할을 맡은 맥아더 장군은 이를 위해 일본군 무장 해제와 군사기구 폐지 및 재벌 해체를 통해 군수산업을 제거했다.

맥아더는 소련의 공산주의 확대를 매우 경계했다. 특히 중원 대륙에서 벌어진 국공내전을 주시했다. 맥아더는 일본의 공산화와 국수주의를 막기 위해 민주화를 추진했다. 시민의 자유권 확대와 종교의 자유 및 노동조합 결성을 장려했다.

하지만 중국의 공산화는 미국의 對日정책의 극적인 전환을 초래했다. 미국은 아시아의 공산화 방지를 위해서 일본의 재무장과 공업화를 추진했다. 중국과 소련도 이에 맞서 1950년 중소우호조약을 체결했다. 중소 양국이 군사동맹조약을 맺어 미국과 일본의 공격에 맞서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마침 한반도에서 6·25 전쟁이 터졌다. 미국은 일본과 미일안보조약을 체결했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기 위한 기지협정으로서 일본의 군사기지화에 착수했다. 일본으로선 재기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었다. 안보를 미국에 맡기고 경제부흥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됐고, 현재 일본의 경제대국에 우뚝 설 수 있게 된 가장 큰 원동력이 됐다.

또한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일본의 주권 회복과 독립이 승인됐다. 이로써 미국과 일본은 지난 태평양전쟁의 앙금을 씻고 아시아의 공산화 방지를 위한 동맹을 맺었다.  마침내 중국과 소련 및 북한의 공산 3각 대륙 동맹에 맞선 미일 해양동맹이 성립됐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국교정상화를 적극 추진했다. 한국은 일본의 지난 35년간 식민 지배를 잊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아시아에서의 냉전 승리가 더 중요했다. 미국은 한일 양국을 설득했다. 마침내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가 성립됐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한국에 5억달러의 경제협력자금을 제공했다.

미국은 일본과 한국의 국교정상화로 한미일 해양 3각 동맹을 완성해 아시아 냉전 구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미국은 한일 양국의 앙숙 관계를 동맹 관계로 전환시켰고, 한국과 일본은 경제와 안보협력을 통해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다.

지난 22일 문재인 정부는 한일 양국 간 첨예한 갈등을 초래했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해 사실상 '조건부 연기'하기로 했다. 우리 정부의 이번 결정은 미국의 역할이 매우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다수의 고위 관리들을 한국과 일본에 파견해 양국의 의견을 조율했다. 이 과정에서 심지어 주한 미 지상군의 한국 철수설까지 나돌며 지난 54년간 한미일 동맹 관계의 와해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한미일 동맹의 와해는 중화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과 한반도 적화의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있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다. 한일 양국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한반도 통일은 굳건한 한미일 3각 동맹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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