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식의 正論직구] 맞춤식 통계와 여론조작
[김웅식의 正論직구] 맞춤식 통계와 여론조작
  • 김웅식 기자
  • 승인 2019.11.29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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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김웅식 기자)

여론조사는 표본 선정과 설문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통계치가 나올 수 있다. 그 내용을 잘 모르는 국민은 결과만을 그대로 믿기 십상이다. 조작된 여론조사는 잠시 여론을 호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자충수’라는 걸 드러내게 된다. ⓒ인터넷커뮤니티
여론조사는 표본 선정과 설문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통계치가 나올 수 있다. 그 내용을 잘 모르는 국민은 결과만을 그대로 믿기 십상이다. 조작된 여론조사는 잠시 여론을 호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자충수’라는 걸 드러내게 된다. ⓒ인터넷커뮤니티

언제부터인가 여론조사를 믿지 못하게 돼 버렸다. 아무리 조사 방법이나 표본에 따라 오차가 있다고 하지만, 발표되는 결과는 조사마다 들쭉날쭉하고, 체감하는 여론과도 거리가 멀다. 여론은 민주주의를 키우는 자양분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왜곡 양산되는 여론조사 결과는 자양분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죽이는 극약이다. 

인터넷 여론을 조작한 ‘드루킹 사건’ 역시 결코 가볍게 넘길 사건이 아니다. 인터넷 공론장에 독약을 풀어 자유로운 의견의 흐름을 끊고 사람들의 생각을 오도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한 민주주의는 절대 온전할 수 없다.

통계 수치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문제는 아전인수 격 해석으로 관점을 흐트러뜨리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이다. 권력을 잡고 있는 쪽에서는 아무래도 정권 유지에 유리한 내용에 더 솔깃해진다. 청와대 인사들은 좋은 통계만 보려 하고 나쁜 통계는 애써 외면하거나 덮으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취업자 수 증가 세부 내역을 보면 이런 사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정부에서는 지난달 취업자 수가 작년 10월보다 40만명 이상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고용률은 상승하고 실업률은 하락해 고용지표가 개선된 듯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임시방편으로 만든 단기 알바 일자리로 고용 상황이 좋아진 점을 자랑한다. 의도된 숫자로 자화자찬(自畵自讚)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통계청이 현 정부의 삶의 질 개선 정책에 맞춰 ‘맞춤 통계’를 내놨다는 비판을 쏟아낸다.

고용 상황이 개선된 듯하지만 속은 정반대다. 새로 늘어난 일자리의 거의 전부가 60대 이상 일자리인데, 상당수가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아르바이트성 노인 일자리이다. 공원의 잡초 뽑기나 전통시장 청소 같은 고령자 대상 1~2개월짜리 공공 일자리를 정부가 대폭 늘렸는데, 그로 인해 전체 취업자 수가 증가한 것이다. 

결국 고용 개선은 착시(錯視)라는 것이다. 지표상으로는 고용 참사에서 벗어났지만 현실은 작년과 비교해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고용 부진이 해소될 전망도 잘 보이지 않는다. 국가 경제성장을 이끌어야 하는 30, 40대 취업자가 각각 5만명, 14만6000명 줄어들어 30, 40대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제조업 취업자도 8만명 이상 줄어들었다. 

게다가 전체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중이 36.4%로 1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정규직은 1년 전보다 35만3천명이 줄어든 데 반해 비정규직은 86만7천명이 늘었다. 통계청장까지 나서 “급증한 비정규직 근로자 중 35만~50만명은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으로 통계조사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그런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비정규직이 최소 36만명 이상 늘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론조사는 중요한 정치도구이자 산업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어쩌면 정치는 여론을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여론조사’를 먹고 산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때론 여론조사가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여론조사는 표본 선정과 설문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통계치가 나올 수 있다. 그 내용을 잘 모르는 국민은 결과만을 그대로 믿기 십상이다. 조작된 여론조사는 잠시 여론을 호도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국 ‘자충수’라는 걸 드러내게 된다. 국민은 여론조사 결과를 불신하고, 마침내 실제 여론과 정반대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지난 4월 패스트트랙 강행 처리 때 여당에서는 ‘공수처에 대한 국민 찬성률이 80%에 이르고, 선거제 개혁도 여론조사를 했더니 찬반이 58대 21’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당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공수처 법안과 선거법 개정안에 대한 여론조사 설문문항이 특정 응답을 유도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여론조사가 오용과 남용을 넘어선 듯하다.   

최근 한 언론매체의 보도를 통해 여론조작의 실상이 폭로되기도 했다. 여론조사 경력 6년 차인 조사원이 2016년 총선 때 한 중소 여론조사업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참여했다 겪은 충격적인 일을 소개했다. 핵심내용은 외부엔 RDD(Random Digit Dialing: 기계가 생성하는 무작위 번호로 전화 걸기)를 활용한 조사인 것처럼 속이고, 실제론 업체에서 미리 확보해 둔 명부를 활용해 여론조사를 했다는 것이었다. 

조사원은 “이 업체가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오도록 조작하려고 이런 꼼수를 썼던 것 아니겠냐”며 “그 전까진 실시간 감청을 통해 조사 과정 자체를 모니터링 하는 대형업체에서만 일했기 때문에 이렇게 엉터리 조사를 하는 곳이 있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조작된 통계수치와 여론은 불신을 받고 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러기에 ‘통계의 함정’에 빠지거나 통계를 악용해 억지 주장을 펼쳐서는 안 된다. 어느 정치인의 다음과 같은 논평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는다. 다만 숫자를 만지는 사람이 거짓말을 할 뿐이다.” 

담당업무 : 산업부 소속으로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2004년 <시사문단> 수필 신인상
좌우명 : 안 되면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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