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한민국에는 ‘산나 마린’이 없을까?
왜 대한민국에는 ‘산나 마린’이 없을까?
  • 조서영 기자
  • 승인 2019.12.12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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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국에 젊은 지도자가 없는 이유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조서영 기자)

현지시간으로 8일 핀란드에서 역대 최연소 총리가 선출됐다. 그 주인공은 1985년생 만 34세의 산나 미렐라 마린(Sanna Mirella Marin)이다. 산나 마린 총리는 10일부터 행정부 수반으로서 핀란드를 이끌어가게 됐다.

30대 젊은 지도자 당선은 비단 핀란드만의 이례적인 사건은 아니다. 취임을 앞두고 있는 1986년생 오스트리아의 제바스티안 쿠르츠(Sebastian Kurz) 총리, 1984년생 우크라이나의 알렉세이 곤차룩 총리, 1980년생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Jacinda Ardern) 총리 등이 바로 그 증거다. 이외에도 프랑스, 아이슬란드, 그리스, 폴란드, 스페인, 캐나다 역시 40대 지도자를 두고 있다.

이처럼 지구촌 곳곳에서 30‧40대의 지도자 움직임이 있는 것과는 달리, 여전히 대한민국 국회는 평균연령 58.7세에 멈춰있다. 역대 대통령의 평균 연령을 계산해도 56.6세로 비등한 실정이다. 그렇다면 왜 대한민국에는 산나 마린과 같은 젊은 정치인, 젊은 지도자가 없는 것일까.

현지시간으로 8일 핀란드에서 역대 최연소 총리가 선출됐다.ⓒ뉴시스
현지시간으로 8일 핀란드에서 역대 최연소 총리가 선출됐다.ⓒ뉴시스

가설 하나. 한국 사회 고유의 특징

첫 번째 가설은 한국 사회의 특징에 기인(起因)한다.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는 지난 4일 과거와는 달리 지금 한국은 가방 끈이 길고(대학 진학률도 높고) 높은 실업률로 인해, 사회에 정착해 정치에 도전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설명했다.

이는 강 대표가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40대 기수론을 언급하며 1970년대와 2019년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는 “1970년대 한국은 30~40대가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당권, 대권까지도 도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의 40대에게 앞서 말한 세력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주장의 근거로 말했다.

이렇듯 40대가 대통령 선거에 나가기도 했던 1970년대와 2019년 지금 사이에는 50년의 격차가 있다. 따라서 1970년의 40대와 2019년의 40대는 같은 나이라도 다른 사회적 나이를 갖게 됐다. 하지만 이는 과거에 많던 정치권의 젊은 지도자들이 지금은 없는 이유는 설명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타 국가와 비교하기엔 적합하지 않다. 

한편 지난 6월에 만난 정의당 서진원 청년 부대변인은 ‘Friday For Future’를 들며, 10대 때부터 정당에 가입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독일의 정치와 한국을 비교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에서는 정당에 가입하는 것 자체를 흔하지 않은 일로 바라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정당 가입이 생활화 돼있는 국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의 정치 진출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가설 둘. 폐쇄적인 정치 구조

두 번째 가설은 폐쇄적인 정치 구조에 근거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기자가 종종 청년 정치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씁쓸한 순간을 꺼내본다. 그 순간은 다름 아닌 청년들이 586세대를 향해 쓴 소리를 내뱉다가 멈칫하는 순간이다. 그들은 인터뷰 도중 혹은 모든 취재 일정이 끝난 후 기자에게 머쓱해하며 말하곤 했다.

“이런 말(586세대 비판)은 빼고 넣어주세요.”
“이 내용이 들어가면 저희 입장이 난처해져서요.”

그들이 말하는 ‘난처함’은 결국 청년들이 한 정당에 몸 담을 수 있게 하고, 또 가까운 미래에 정치를 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이 586세대기 때문에 생겨난다. 그때마다 기자는 차마 담아낼 수 없었던 청년 정치인들의 속마음을 안타까워하며, 두루뭉술한 말들만 내보내곤 했다.

이처럼 권력이 한 세력에 집중돼있는 정당뿐만 아니라 정부 형태가 또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앞서 위에서 언급한 30‧40대 수반을 가진 10개 모든 국가는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정치 체제다. 어느 곳도 대통령 중심제를 택한 나라는 없다. 

대통령이 국가 원수이면서 동시에 행정부 수반으로 하는 대통령제는 국가 원수의 권한과 함께 행정부 수반의 권한도 모두 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반면 의원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의 경우 국가 원수로서의 역할과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역할을 대통령 또는 군주와 총리가 나누어 갖게 된다. 

이로써 대통령제는 대통령 한 사람이 강력한 집행권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반대로 그 힘이 한 곳에만 집중된다는 문제에 직면한다. 만약 이러한 특징이 여전히 유교 사회의 영향 아래 있는 한국 사회 고유의 특징과 결합하면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한국의 경우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연장자를 대통령으로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강 대표의 표현을 빌려 ‘세(勢)를 가진 사람’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세력을 가지려면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일정 수준의 궤도 위에 올라야 한다. 하지만 그 궤도에 오르기까지의 시간은 한국 사회에서 30년으로는 부족하다.

“저는 나이나 성별에 대해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라고 답변한 산나 마린 총리의 말을 떠올려본다. 우리나라에게도 나이와 성별에 구애받지 않는 미래가 올 수 있을까.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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