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눈꽃이 아쉬웠던 태백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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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눈꽃이 아쉬웠던 태백산에서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19.12.15 16: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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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겨울산, 눈과 태양이 만든 아름다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천제단에 있는 태백산의 표지석 ⓒ 최기영
천제단에 있는 태백산의 표지석 ⓒ 최기영

우리나라 국립공원은 몇 개가 있을까? 1967년 처음으로 지정된 지리산이 국립공원 1호 맏형이다. 그리고 2013년 광주 무등산이 국립공원으로 승격했고, 2016년 가장 최근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이 바로 태백산이다. 이로써 우리나라 국립공원은 모두 22개다. 

태백산은 전형적인 육산(肉山)이다. 1500m가 넘는 고봉이지만 흙길이 많고 험하지 않다. 정상부가 널찍하고 주위에 높은 산봉우리들이 능선으로 이어진 모습을 사방으로 볼 수 있어 마치 선계(仙界)에 서 있는 듯 신비감마저 든다. 

산을 타는 사람들 사이에서 태백산은 한겨울 아름다운 눈꽃 산행지로 유명하다. 태백산 장군봉으로 오르는 길에 군데군데 나타나는 주목 군락지는 겨울철 아름다운 설경을 담고자 하는 사진 애호가들에게는 최고의 포토존이다. 나 역시 얼마 전 강원 지역에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그 멋진 설경을 기대하며 태백산으로 향했다. 

태백산에는 토속신앙의 기도처가 많다. 화방재에서 사길령을 지나 유일사로 가기 전에 있는 신령각의 모습이다 ⓒ 최기영
태백산에는 토속신앙의 기도처가 많다. 화방재에서 사길령을 지나 유일사로 가기 전에 있는 신령각의 모습이다 ⓒ 최기영

산행은 태백 혈동에 있는 화방재라는 고개에서 시작했다. 화방재는 도로 하나를 사이로 함백산과 이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겨울산을 좋아한다면 날이 너무 푹해도 달갑지만은 않다. 나무가지마다 눈부시게 피어있는 하얀 눈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서릿발이 나무에 매달려 있으려면 기온도 그만큼 떨어져야 하는데 태백산을 갔던 이 날은 겨울날 치고는 너무도 온화했다. 하지만 산길에 쌓여 있는 눈을 밟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하며 산행을 시작했다. 

화방재에서 사길령을 지나고 신령각이라는 조그마한 기도처가 나올 때까지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그리고 나서 유일사를 지나 장군봉으로 향하는 길이 가장 가파르지만 그리 길지는 않다. 그리고 주목 군락지가 나온다. 태백의 거센 바람결을 따라 가지를 뻗고 있는 아름다운 주목의 상고대와 겹겹이 쌓인 산세가 어우러진 한겨울 태백의 모습은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다. 비록 이날 상고대는 없었지만 그 위용과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태백산 주목의 모습이다. 한겨울 태백산의 주목에 피어있는 상고대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다 ⓒ 최기영
태백산 주목의 모습이다. 한겨울 태백산의 주목에 피어있는 상고대의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다 ⓒ 최기영

주목군락지를 지나면 장군봉이 나온다. 천제단과 태백산 표지석이 있는 너른 곳이 정상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만 태백산에서 가장 높은 주봉은 장군봉(1567m)이다. 장군봉을 지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멋진 조망을 보며 조금만 걸어가면 자연석을 쌓아 만든 천제단(1561m)이 나온다. 

태백산 천제단이다. 태백산은 예로부터 하늘에 가장 큰 천제를 지내는 곳이었다 ⓒ 최기영
태백산 천제단이다. 태백산은 예로부터 하늘에 가장 큰 천제를 지내는 곳이었다 ⓒ 최기영

태백산은 이름부터 제천의식과 관련이 있다. 하늘에 제를 올리는 산을 '밝은산'(白山) 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이름에서 유추해 볼 때 태백산(太白山)은 가장 큰 천제 장소였고 소백산(小白山)은 규모가 작은 제사를 올리는 곳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단군께서도 강화도 마니산과 함께 이곳 강원도 태백산에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셨다고 하니 예로부터 태백산을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산으로 여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천제단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백운산, 운탄고도, 만항재, 함백산, 매봉산 등 높은 봉우리가 성처럼 사방으로 둘러싸고 있어 왠지 모를 신비한 영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렇게 천제단에서 산세를 구경하며 준비해갔던 도시락과 간식을 먹고 나는 문수봉 쪽으로 길을 잡아 산행을 이어갔다. 산길은 편하고 좋다. 부쇠봉(1547m)을 지나 1km 정도를 더 걸으면 문수봉(1517m)이 나온다. 태백산은 전형적인 흑산인데 문수봉은 너덜바위가 많다. 하지만  문수봉에서 천제단 방향으로 바라본 모습과 함백산 등의 조망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거기에서 조금만 더 가면 소문수봉이 나오고 그곳에서 당골광장 쪽으로 하산하며 산행을 마쳤다. 

천제단에서 문수봉 쪽으로 뻗은 산세의 모습이다 ⓒ 최기영
천제단에서 문수봉 쪽으로 뻗은 산세의 모습이다 ⓒ 최기영
문수봉에서 천제단 쪽으로 바라본 모습 ⓒ 최기영
문수봉에서 천제단 쪽으로 바라본 모습 ⓒ 최기영

겨울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도 많고 그만큼 힘도 더 많이 든다. 산길을 걷고 있을 때 눈보라가 몰아친다면 위험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눈보라가 그치고 구름이 걷힌 뒤 태양이 떠오른다. 가을을 지나며 이미 힘을 잃은 태양은 산을 덮은 하얀 눈과 가지마다 피어오른 아름다운 눈꽃 모양에 반해 정신을 빼앗긴다. 세상을 이글거리게 했던 태양은 자신의 본분을 잊고 그렇게 하얀 눈꽃만을 영롱하게 비추는 것이다. 

명리학에서는 그러한 모습을 화(火) 기운과 금(金) 기운이 합을 이루는 병신합(丙辛合)이라고 한다. 정신을 잃을 정도의 아름다움이고 꺾을 수 없는 위엄을 의미한다. 그래서 겨울산은 세찬 눈보라가 그치고 태양이 떠 있으면서도 세찬 바람이 불거나 몹시도 추운 날에 올라야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태백산을 올랐던 그 날은 태양의 힘이 강해 그 아름다운 장면을 온전하게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아쉬움이 눈꽃을 보기 위해 다시 또 나는 태백산을 찾을 것이다. 그렇게도 매서운 추위와 바람을 견디어내고 산에서 눈과 태양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취해 우리는 그 혹독한 추위의 고통도 잊을 정도로 넋을 빼앗긴다. 그것이 바로 겨울산을 찾는 이유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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