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결산/재계] ‘세대교체’ 바람 속 ‘세습경영’ 비판여론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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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결산/재계] ‘세대교체’ 바람 속 ‘세습경영’ 비판여론 확산
  • 박근홍 기자
  • 승인 2019.12.23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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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2019년 연말 결산 특집 재계편 ⓒ 시사오늘
2019년 연말 결산 특집 재계편 ⓒ 시사오늘

2019년이 저물어 간다. 〈시사오늘〉은 '2019 결산' 특집을 통해 올 한해 각 분야별 주요 이슈들을 돌아보고, 이 같은 이슈들이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와 과제를 남겼는지 짚어본다. 

막 오른 재벌 3·4세 시대
대내외 불투명성 심화…세대교체로 위기탈출 포석

올해 국내 재계의 화두는 '세대교체'다. 지속되는 내수 경기 침체, 미중 무역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 등 대내외 경영환경이 악화되는 가운데 세대교체로 위기 극복을 위한 포석을 뒀다는 평가다. 또한 4차 산업혁명 등 급변하는 시대 흐름에 발빠르게 대처하고자 젊은 인재들을 전진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구광모 LG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등 재벌 4세 경영인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3세 경영인을 동일인(총수)으로 새로 지정해 재계 3·4세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당시 공정위는 총 34개 기업집단을 대기업 규제를 적용하는 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지정·통보했는데, 이중 총수가 오너일가 2·3·4세인 곳은 24개로 전체의 70%를 넘는다.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사실상 총수 권한을 행사하는 3·4세 경영인들도 여럿 있다. 재벌 3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연초 그룹 시무식을 부친 정몽구 회장 대신 최초로 직접 주재한 데 이어, 지난 3월 현대자동차·현대모비스 대표이사로 선임되면서 올해가 자신의 경영체제가 수립된 원년임을 천명했다. 이해욱 대림그룹 회장도 지난 1월 회장으로 승진해 3세 경영 축포를 스스로 쐈다.

이처럼 세대교체를 통해 총수로 자리매김한 젊은 경영인들은 자신만의 색채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인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구광모 엘지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허윤홍 지에스건설 사장, 김동관 한화큐셀 부사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 각 사(社) 제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구광모 엘지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허윤홍 지에스건설 사장, 김동관 한화큐셀 부사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 ⓒ 각 사(社) 제공

LG그룹은 당초 예상보다 더 파격적이고 더 젊은 2020년 임원인사를 실시했다. 이번 인사에서 LG그룹은 신규 임원 106명을 선임했는데,  LG생활건강 심미진 상무(1985년생), 임이란 상무(1981년생), LG전자 김수현 수석전문위원(1980년생) 등 30대 젊은 여성 임원들의 도약이 눈에 띄었다. '고졸 신화'를 쓴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이 용퇴하고 그 자리를 50대 권봉석 사장이 채운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구광모 회장이 성과와 역량에 기반을 둔 인사를 통해 미래준비를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냄과 동시에 젊은 CEO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킨 모양새다.

최근 주력 계열사들의 연이은 실적 부진으로 속앓이를 했던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도 연말인사를 통해 분위기 쇄신에 나섰다. 두산그룹은 지난 19일 두산중공업 신임 COO(운영총괄) 사장에 정영인 관리부문장 부사장을 승진 선임한다고 밝혔다. 두산중공업 COO 자리는 지난해 3월 정지택 전 부회장(1950년생)이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난 이후 1년 넘게 공석이었다. 정영인 신임 COO는 50대(1963년생) 엔지니어 출신 기업인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역시 취임 후 첫 임원인사에서 세대교체를 모색했다. 부친인 故 조양호 회장이 중용했던 1940년대생 임원들이 대거 퇴진하고 1960년대생 임원들이 그 자리를 꿰찬 것이다. 특히 조양호 회장의 복심이라 불리는 석태수 대한항공 부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점이 눈에 띈다. 이와 함께 조원태 회장은 사장 이하 임원 직위 체계를 기존 6단계에서 4단계로 개편하는 등 임원 규모를 대거 축소함으로써 신속한 의사결정을 위한 시스템도 구축했다.

이밖에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부친인 정몽구 회장의 측근인 우유철 현대로템 부회장의 용퇴를 이끌어내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세대교체를 추진했다.

올해 연말 인사를 통해 새롭게 경영전면에 선 재벌 3·4세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한화그룹은 지난 2일 임원 인사를 단행하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가 부사장으로 승진됐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김 부사장이 한화그룹 3형제 가운데 경영권 승계에 있어 가장 앞서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화큐셀은 오는 2020년 1월 한화케미칼과 합병할 예정이다. 김 부사장은 합병 법인의 전략부문장을 맡게 된다. 한화그룹의 주력사업인 화학, 태양광 사업을 김 부사장이 관리하게 되는 것이다.

GS그룹은 허창수 회장이 용퇴하는 대신 그의 동생인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을 새로운 그룹 회장으로 추대했다. 이와 함께 GS그룹은 허창수 회장의 아들인 허윤홍 GS건설 부사장을 GS건설 신사업부문대표 사장으로 선임했다. 아버지의 퇴장과 아들의 전면 등장은 GS그룹의 세대교체를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평가다.

세습경영, 부의 대물림의 공고화
재벌 오너家 고속승진·마약 이슈 등 겹쳐 비판여론↑

이 같은 재계의 세대교체에 대해 일각에서는 자본권력과 기득권의 유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나온다. 일반인들과는 다른 기준과 잣대로 재벌 오너일가들이 고속승진을 일삼고, 세대교체라는 명분으로 세습경영을 고착시켜 부의 대물림을 공고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김동관 한화큐셀 부사장은 2010년 한화그룹에 입사하고 불과 4년 만에 상무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바로 전무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다시 4년 만에 부사장 직을 수행하게 됐다. 허윤홍 GS건설 사장도 2013년 상무, 2015년 전무, 2019년 부사장, 이번에 사장에 이르기까지 대기업 오너일가의 전형적인 초고속 승진길을 밟았다.

또한 허세홍 GS칼텍스 사장의 경우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해외출장을 이유로 증인 명단에서 제외됐지만 해외에서 골프를 즐기는 장면이 포착돼 물의를 빚은 데다, 실적 부진까지 겹쳤음에도 사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전문경영인이라면 진작 해임됐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위부터) 씨제이그룹 장남 이선호씨, 남양유업 외손녀 황하나씨, SK그룹 3세 최영근씨 ⓒ 뉴시스
(위부터) 씨제이그룹 장남 이선호씨, 에스케이그룹 3세 최영근씨, 남양유업 외손녀 황하나씨 ⓒ 뉴시스

세습경영에 대한 비판여론은 최근 사회 분위기 변화와 맞물려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올해에는 마약 사건에 연루된 재벌 오너일가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법원 판단으로 속속 풀려나 부정적 여론이 더 급증하는 양상이다.

남양유업 외손녀인 황하나씨는 필로폰 투약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과거가 있음에도 1심과 2심에서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났고, SK그룹 3세 최영근씨와 현대가 3세 정현선씨도 각각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은 현장에서 변종대마 등 마약이 적발됐음에도 입건 후 구속조치 등 봐주기 수사에 결국 집행유예 4년을 받고 풀려나 논란이 됐다. 현재 CJ그룹은 이선호 부장에 대한 경영권 승계작업에 착수한 상황이다.

또한 이달에는 애경그룹 2세 채승석 애경개발 대표가 프로포폴 투약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채 대표는 사건이 터지자 애경개발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한진그룹 오너일가들의 갑질 사건, 올해 버닝썬 사건과 재벌 오너가들의 마약 이슈 등으로 재벌들에 대한 국민여론이 최악이다. 여기에 경기 침체도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세습경영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진국에서는 대기업의 소유와 경영이 엄격히 분리돼 있다. 경영권 세습 사례 자체가 드물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0%도 안 되는 지분으로 소수의 재벌 오너일가들이 대기업을 거느리는 데다, 선진국과는 달리 세습 경영인에 대한 이사회의 독립적인 감시나 견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여서 더 비판여론이 거센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정치권과 재계,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천웅 CFA(국제공인재무분석사)한국협회장은 얼마 전 한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에서는 아직도 성공한 기업의 경영권을 자식들에게 물려준다. 상장사가 소유권도 아니고 경영권까지 세습하는 건 대단히 이상한 현상"이라며 "한국 기업 거버넌스에서 가장 취약한 요소는 경영권 승계다.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코리아 디스카운트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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