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정치상식] YS가 단식 때 ‘보름달 빵’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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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정치상식] YS가 단식 때 ‘보름달 빵’을 먹었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19.12.24 2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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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간 단식 투쟁 때 ‘보름달 빵’ 먹었다는 소문, 사실과 달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이 23일간의 단식 투쟁 중 빵과 우유를 섭취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김영삼 자서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23일간의 단식 투쟁 중 빵과 우유를 섭취했다는 소문이 퍼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김영삼 자서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단식 8일 만에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이송된 날, 인터넷에서는 때 아닌 ‘YS(김영삼 전 대통령) 단식’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한 누리꾼이 황 대표의 병원행(病院行)을 보고 “YS는 23일 동안 단식을 했는데 겨우 8일 만에 쓰러지나”라고 말한 게 발단이었다. 1983년 가택 연금 상태였던 YS가 독재에 항거하며 23일간 단식을 했던 사례를 황 대표와 비교한 것이다.

이러자 다른 누리꾼이 “보름달 빵이라고 들어는 봤나. 단식 중 몰래 빵 먹다가 들킨 사람이 YS”라고 반박하며 논쟁이 시작됐다. 이른바 ‘보름달 빵 사건’의 진위(眞僞)를 두고 벌어진 격론이었다. ‘보름달 빵 사건’이란, 23일간의 단식 투쟁 당시 YS를 걱정한 문익환 목사가 사전 연락 없이 YS 가택을 방문했더니 침대 옆에 미처 치우지 못한 보름달 빵과 우유가 있었다는 소문을 말한다. 즉, ‘YS가 단식 투쟁을 하면서 몰래 빵과 우유를 먹고 있더라’라는 게 소문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비현실적인 부분이 많다. 우선 문 목사가 연락 없이 YS 가택을 방문했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 YS가 단식을 하던 1983년에는 ‘서울에 도둑이 없는 동네가 두 곳 있는데, 바로 상도동과 동교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민주화운동 쌍두마차’였던 YS와 DJ(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에는 수십, 수백 명의 전경이 배치돼 삼엄한 감시를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또 한 사람의 민주화 투사인 문 목사가 YS 자택을 예고 없이 방문한다는 것이 가능할 리 없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가택연금을 해제한 5월 29일 이후 ‘보름달 빵 사건’이 일어난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의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5월 29일은 이미 YS가 단식 투쟁을 시작한 지 11일째 되는 날이었다. 의사들은 11일 동안 아무것도 섭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빵과 우유를 먹었다가는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겨 자칫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고 말한다. 장기간의 단식 이후에는 묽은 죽부터 천천히 먹는 음식의 종류를 늘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보름달 빵 사건’은 그 어디에도 출처가 존재하지 않는 사건이다. YS가 신군부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YS가 빵과 우유를 섭취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을 경우 여러 경로를 통해 이를 알리려 했을 것이다.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YS가 단식 중 빵과 우유를 먹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민주화 진영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어떤 기록에도 ‘보름달 빵 사건’에 대한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심지어 문 목사 아들인 문성근 씨도 팟캐스트 <이이제이>에 출연해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은 있는데 문 목사께 여쭤보지도 않았고 문 목사께서도 제게 어땠다라고 얘기해주신 적도 없다”고 했다. 결국 이 사건이 진실이 되려면, 전두환 정권이 서울대병원 관계자들을 포함해 이 일과 관련된 사람들을 포섭해 입을 막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전두환 정권이 ‘눈엣가시’인 YS를 위해 그런 일을 했을 리 만무하지만 말이다.

Fact – YS의 ‘보름달 빵 사건’은 근거 없는 헛소문이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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