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한·중·일 정상외교 명암(明暗), 무엇을 남겼나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병도의 時代架橋] 한·중·일 정상외교 명암(明暗), 무엇을 남겼나
  • 이병도 주필
  • 승인 2019.12.28 12: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화' 약속, 실사구시 성과가 관건
北비핵화 · 한일관계 시각차 엄존
'강제징용' 등 논쟁점 기존 입장 반복
갈등 근원 북핵 해결 난망(難望)
사드·北核 말도 못 꺼낸 文대통령
회담 왜곡...숙제 더 많은 한·중 관계
日, 수출 규제 풀어 상생의 길 열어야
3국 포괄적 FTA 모색...동북아 발전 계기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동북아 정세 변화의 중대 분수령이 될 한·중·일 정상의 삼각 외교전 막이 올랐다. 

이번 정상 회담은 꼬일 대로 꼬인 한·중, 한·일관계를 회복할 중요한 기회였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소원해진 한중관계와 궤도를 이탈한 한일 관계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좋은 기회였다. 한반도 긴장과 한일 갈등을 풀 주요 변곡점이 되어 나가수 있을지 주목됐다. 

한·중 정상회담에선 당장 북한의 ‘도발적 행동’을 막는 문제가, 한-일 정상회담에선 일본 무역규제와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문제 해결이 핵심 의제가 됐다. 

일단 총론적으로는, 외형상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북미 비핵화 대화의 조속한 재개에 뜻을 같이했고, 경제, 사회, 환경, 문화, 스포츠 분야의 교류 협력 확대에도 의견을 함께했다. 

특히, 핵심현안은 경제 협력 문제다. 

여전한 시각차가 확인된 안보 현안들과는 달리, 한·중·일 정상이 개방적·호혜적 무역환경 조성에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 크다. 3국 간 FTA 체결 필요성에 뜻을 같이했기 때문이다. FTA 협상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세계 경제가 보호무역주의로 몸살을 앓는 가운데,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에 이어 자유무역을 위한 또 하나의 안전판이 마련된다면 실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이 또한 명암(明暗)은 크게 엇갈린다. 

과연, 제대로 된 FTA를 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한·중·일은 기업 간 분업과 협력에서 보듯, 분리하기 어려운 가치사슬로 얽혀 있다. 이를 바탕으로 3국 간 경제협력을 강화하려면 무엇보다 투자와 교역의 불확실성을 없애야 한다. 사드 보복 같은 일이 일어나고, 수출규제 조치가 가해지는 FTA라면 의미가 없다. 

중국, 남북한 간 등거리 유지

이번 연쇄 정상회담은 북한의 핵 협상 궤도 이탈을 막고 중국·일본과 관계회복의 디딤돌을 놓을 수 있는 분수령이 될 수도 있었다. 북한의 비핵화 궤도 이탈을 막으려면 중국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에서 가진 정상회담이었다.

정상회담 결과 발표에서 구체적인 내용까지 제시되진 않았지만. 북미 관계가 악화일로인 상황에서 한중 정상이 북한 문제를 논의했다는 사실 자체가 주는 상징성과 영향력이 결코 작지 않았다. 북한이 추가 도발을 감행할 경우 핵협상의 판은 깨지고 한반도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해야 할 말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은 너무 많이 한 형국이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적극적으로 화답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했지만, 남북 간 등거리를 유지하면서 한·미 동맹 강화를 경계하는 속내도 그대로였다. 

북한 겨냥 ‘평화경제’ 구상 우려 

한·중 정상회담 주요 의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한국 배치를 둘러싸고 촉발된 양국 갈등 해소 및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방안이었다. 

이런 때에 한중 정상이 만나 협력을 다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지역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한중정상회담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하다. 양국 사이 여러 숙제들을 그대로 남겨놓았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중국 방문 기간 중 연일 대북 제재완화와 북한을 겨냥한 이른바 ‘평화경제’ 구상부터 밝힌 것은 문제가 많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한·미 동맹은 물론 한·미·일 안보 협력 체제의 균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빌미 삼아 한국을 집요하게 공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러시아와 손잡고 핵무기를 지닌 북한을 후원하고 있다. 중국의 이런 이중적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한중 협력도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대북제재를 둘러싼 한·미 공조에 균열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러시아가 최근 유엔에 대북 제재완화 결의안을 제출했고, 미국은 공개적으로 이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대북정책에서 자칫 한국이 중국 러시아와 한편에 서서 미국 일본과 맞서는 형국이 될 수도 있다.

27일 오후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위헌확인 심판 청구를 각하 결정했다.ⓒ뉴시스
27일 오후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위헌확인 심판 청구를 각하 결정했다.ⓒ뉴시스

과거사 근본 인식차 확인

냉정히 평가할 때, 이번 회담에서 거둔 성과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게 사실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양국 갈등의 근원지인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의 입장 차를 확인하는 데 그쳤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강제징용' 해법에 있어서는 가해자의 사과와 반성, 그리고 피해자의 수용과 용서를 바탕으로 과거의 수렁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하는데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널려 있다. 그러나, 두 정상은 이번에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고 평행선을 달렸다. 

이번에도 확연한 입장차가 확인됐다. 정상회담에 앞서 열린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장관은 징용 소송과 관련한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라고 요구했고, 강경화 장관은 강하게 반론을 제기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징용 배상 문제는 끝났다는 일본과, 대법원의 사법 판단에 개입할 수 없다는 우리 입장은 계속 그대로 맞섰다.

이 문제가 한-일 과거사에 대한 인식과 근본적으로 맞닿아 있어 해결이 쉽지 않은 사안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법원 결정으로 압류된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이 현금화될 경우 일본의 강력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언제까지나 뒤로 미룰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국내정치 이용말고 해빙의 길로

한국과 일본은 서로 경계하고 경쟁하지만 마냥 그럴 수 없는 수많은 연결고리에 묶여 있다. 과거의 걸림돌이 여전히 커다란 존재감을 갖고 있다.

정부간 대화가 오랫동안 단절되고 역사인식에서 현격한 차이가 존재하기에, 이번 정상회담으로 두 나라 관계가 정상화되리라 기대하긴 어렵다. 일련의 상호 성의와 긍정적인 변화의 움직임을 토대로 간극은 좁혀가고 이해의 폭은 넓혀가는 노력이 긴요하다. 

가야 할 길이 멀다. 양국 지도자의 정치적 용기와 설득의 리더십이 계속 요구된다. 양 정상은 더 이상 국내 지지 세력을 의식해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흐름을 역행해서는 안 된다. 반일 감정과 혐한 감정을 각자의 국내정치에 이용함으로써 양국 관계, 나아가 국익을 해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지난 1년여 한·일 갈등을 반추하며 해빙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박근혜정부의 위안부 해법처럼 불행한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의 초석을 놓아야만 한다.

안보 견해차 해소 실패...사드 문제에 발목 

이번 한·중회담은 그 결과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했다.

지금 한중 양국은 서로 협력해서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시켜야 하는 중대과제에 직면해 있다. 북한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켜 버리면 한국은 물론, 중국 역시 전략적 손실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이번 문재인-시진핑 회담이 꺼져가는 미북대화를 살리는 모멘텀이 될 수 있도록 해야만 했다.

김정은이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공언하며 핵·ICBM 도발 움직임을 구체화하는 가운데 열린 회담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북핵 폭주를 어떻게 막느냐가 최대 관심사였다. 

한중 양국의 유화 일변도로는 북핵 해결은커녕 한중관계의 발전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돌이켜보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도 북핵 방어용 미군 무기의 배치에서 비롯돼 미중 신경전과 한중 갈등으로 나타난 것이다.

따라서, 한중 간에는 북미 비핵화 협상에 대한 중국의 긍정적인 역할, 사드 한국 배치를 둘러싼 갈등 등 두 가지 대형 현안이 있다. 

특히 중국이 북한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후견국임을 고려하면, 이번 회담을 계기로 북한을 상대로 도발 자제 유도와 같은 역할에 나설지가 최대 관심사였다. 

그러나, 견해차는 해소되지 못했다. 한국이 2016년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을 내린 이후 중국이 진행 중인 경제·문화 보복 조치는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2017년10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모든 교류 협력을 정상 궤도로 조속히 회복한다"고 공동 발표했지만, 한중 관계는 여전히 사드 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안보 주권 포기 비판론

북미 대화가 끊긴 상황에서 북한의 무리수를 막으려면 북한의 '뒷배'로 통하는 중국을 통해 견제하는 게 가장 유효한 방식일 것이다. 중국의 적극적인 행동을 끌어내기 위한 외교적 노력을 집중해야 할 이유였다.

그러나, 한국은 안보 주권만 포기한 셈이 됐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중·러 주도의 대북 제재 완화 시도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고 밝혀 한국이 북·중·러 편에 섰다는 인상까지 줬다. 유엔 결의에 따른 중국의 북한 노동자 추방 시한이 지났음에도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중국이 북한의 안하무인 행태를 감싸고 있는 것도 문제다. 당장 유엔 안보리 제재에 따른 북한의 해외 노동자 송환 시한이 지난 22일 끝났지만 중국은 송환을 미루고 있다. 중국은 북한에 대한 소극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깨려는 북한에 강력히 경고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의 면담 내용은 실로 문제다. 시 주석이 “사드 문제의 타당한 해결”을 언급한 데 대해 문 대통령은 사드 보복 철회를 공식 요구하지 못했다. 문 정부는 2017년 10월 ‘3불 합의’후 사드 문제 해결됐다고 했는데, 이 역시 안보 주권 포기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한편, 경제협력 방안과 관련,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의 가속화를 비롯해 경제·통상·환경·문화 분야에서의 협력을 넓힌다는 데 공감한 것은 성과라면 성과라고 하겠다.

'강제동원' 배상 판결 입장차 고수 

한편, 이번 한·일 정상회담은 양국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갈등도 고조됐다가 겨우 접점을 찾아 이뤄진 자리다. 

한-일 관계 악화에 따른 피해는 두 나라 모두가 겪었다. 한국은 부품 조달의 불확실성에 시달렸고, 일본도 불매운동과 관광객 감소 등의 역풍을 맞았다.

지난 6월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에는 호스트 격인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을 만나주지 않으며 한국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그 때에 비하면 우여곡절 끝에 두 정상의 회담이 이뤄진 것만으로도 진전이라 할 수 있다. 

한·일 관계 경색의 원인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한국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단초였다. 이는 한국 산업의 동맥인 반도체 소재 수급 문제를 촉발했고, 우리 정부와 기업이 일본의 수출 규제를 훌륭하게 방어해 일본도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갈등의 진원지인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를 둘러싼 입장차는 이번 정상회담에서도 여전했다. 문 대통령은 ‘행정부가 사법부 판단에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아베 총리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 문제가 해결됐다’며 한국의 전향적 결단을 촉구했다. 

한·일 관계 난망...아베 후속 결단 있어야

한·일 관계 복원은 난망이다. 근본 원인이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 판결에 있어 해결이 쉽지 않다. 단시일 내에 해결될 사안도 아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조항 해석에 차이의 여지가 있고 법원 판결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한계에도, 아베 정부는 국가 간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만 되풀이하며 아직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 문제는 뒤로 미루고 일본의 수출 규제 및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문제를 우선적으로 매듭짓는 게 현명하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시나브로 일본이 더 손해라는 게 여러 통계로 이미 입증됐다. 수출 규제를 당장 푸는 게 양국 모두에 이익이다. 아베 총리의 후속 결단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근거가 빈약한 수출규제 조치의 완전 철회다. 일본이 규제를 일부 완화한 만큼 당국 간 대화를 통해 원상 복귀시키고, 이와 연계해 한국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정상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강제징용 해법 조속한 돌파구를

악화된 한일관계를 반전시킬 계기 마련이 아직도 절실하다. 북핵 해결에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랄 판에 한일관계가 더 이상 삐걱거려서는 안 된다.

우리 쪽도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 해당 일본 기업의 압류된 자산 현금화를 미루고 양국 정부와 기업을 참여시키는 배상방안 등 해법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

한·일 기업과 국민이 자발적 성금과 기부금으로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자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법안(1+1+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일부 피해자와 유족·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일본 재계의 반응도 시큰둥하지만, 양국 정부와 민간 부문이 지혜를 모으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양국 정상이 대화의 물꼬를 튼 만큼, 서로 입장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절충할 지점을 찾는 논의를 지금부터라도 밀도있게 진행해야 한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굴곡이 많은 한·일 간에는 만남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긴요하다.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는 게 양국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이를 위해 걸림돌을 낮추고 제어하는 일은 양국 정치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한반도 평화 물거품 중대 국면

현 시점에서 동북아 정세와 한반도 안보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고조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위협에 동북아와 한반도 안보를 위한 한·미·일 공조는 중요해지고 있다. 

지금 우리 외교·안보는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북한은 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시곗바늘을 미·북 싱가포르 합의 이전으로 돌려놓으려 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 한반도 주변국들도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다. 

북한이 연말 또는 연초에 ICBM 시험발사를 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 당국자들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가 임박했다고 보면서, 이를 막을 수 있는 좋은 방도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하면, 미국은 더욱 강력한 경제 제재로 대응할 게 분명하다. 

미국은 지금보다 더 강력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카드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다.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2년 가까이 이어온 한반도 평화 무드가 일거에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중대 국면이다.

주한 미 특수전사령부는 지난달 우리 군 특전대원들과 함께 북한군 기지를 습격해 가상의 요인을 생포하는 훈련을 했다. 북한군 수뇌부를 제거하는 일종의 참수작전 훈련을 한 것인데 미 국방부는 이례적으로 훈련사진까지 공개했다. 

북한은 미국의 경고를 엄중히 받아들이고 한·중 정상이 발신한 메시지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중·러, 김정은 정권 안정 우선시

실제, 한반도 정세는 매우 복잡하다. 중·러는 얼마 전 북 노동력을 포함해 섬유·수산물 수출 금지를 풀어주자는 결의안을 유엔 안보리에 제출했다. 자국 내 북 노동자를 전부 돌려보내야 했지만 온갖 꼼수를 동원해 수만 명을 안고 있다. 중·러는 북핵 폐기보다 김정은 정권 안정을 우선시한다. 

국제사회의 흐름과 배치되는 이같은 움직임은 북한의 오판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미 대화를 거부하고 자위적 국방력 강화를 운운하고 나선 것도 중국의 최근 움직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북한은 노동당 전원회의를 거쳐 협상 중단 선언이나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유예' 취소 등 고강도 메시지를 발신한 뒤 행동 수위를 높여갈 가능성이 있다. 미국은 대화의 문을 열어 놓으면서도 주력 정찰기들을 한반도 상공에 띄우고 고위 관리들의 입을 통해 대북 압박을 강화하는 투트랙 행보를 보인다. 북한의 전략무기 시위와 미국의 무력 대응 등 파국이 초래되면 중국에도 엄청난 긴장 요인과 손실이 된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간의 긴장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방안이 시급하다. 잘못되면 북한의 도발과 미국의 제재가 반복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핵협상은 영영 물 건너 갈 수도 있다. 북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나라는 중국이 거의 유일하다.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도 문 대통령에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그렇지만, 문 대통령은 이번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핵 폐기 원칙에 대해선 언급 없이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만 강조했다. 특히 시 주석이 언급한 “핵심 이익에 대한 배려”는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동아시아 배치 가능성에 대한 사전 경고로 읽히기 까지 한다. 

‘한한령(한류금지령)’ 문제 적극 제기해야

더욱이, 문 대통령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중국 청두에서 열린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 연설에서 “평화가 경제가 되고 경제가 평화를 이루는 평화경제를 아시아 전체에서 실현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며 전날에 이어 ‘동북아 철도공동체’ 구상을 거론했다.

동북아 철도공동체는 문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시한 구상으로 남북 철도 연결을 통해 한반도와 유라시아를 잇는 사업에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골 등이 참여하자는 것이다. 

지금 가장 우선해야 하는 것은 경제 협력이 아니라, 북한을 비핵화 협상 테이블로 불러들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미·일 간 물샐틈없는 대북 공조가 절실하다. 북한 비핵화가 이뤄지면 제재완화와 평화경제는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또한, 한중간 현안이 된 사드는 2017년 한국이 ‘3불(사드 추가 배치 중단, 미국 미사일방어체계 참여 중단, 한미일 군사동맹 발전 중단)’ 약속을 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중국은 그 후에도 끊임없이 거론해왔다. 그러나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기 위한 조치로 우리의 안보와도 직결되는 문제다. 

중국이 북핵 개발을 막았다면 사드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중국이 해제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한령(한류금지령)’ 문제를 적극 제기해야 함에도 문 대통령은 이를 경시했다. 

시 주석 한국 방문 - 시시비비(是是非非) 계기로  

한중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북미 대화의 유지와 비핵화 달성이 한반도와 동북아 안정에 필요하다는 데에는 의견의 일치를 봤지만, 북한의 도발 우려에 대해서는 중국 측으로부터 특별한 메시지가 나오지 않아 실망스러웠다.

두 정상은 북핵 해결을 위한 대북 압박보다는 회유에 집중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싱가포르 합의의 동시적, 병행적 이행’을 강조했다. 한국도 거꾸로 한미 간 균열을 낳을 수 있는, 중·러의 제재 완화에 동조한다는 뜻이다.

한중 간에는 사드와 한한령(限韓令)으로 인한 앙금을 푸는 일이 현안이다. 우리로서는 사드 추가 배치에 신중할 필요가 있고, 중국은 이미 배치된 사드를 더 문제삼지 말고 한한령을 남김 없이 풀어 공동 번영을 도모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달 초 한국을 찾은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주한미군 사드 배치가 한중 관계에 영향을 줬다"며 기존에 불편했던 심기를 그대로 드러낸 바 있다. 

중국이 총론적으로 연쇄회담에서 한중 관계 복원의 실마리를 보인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시 주석이 협력동반자 관계를 심화, 발전시키고 양국의 공동된 이익을 수호하고 넓혀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을 의식한 발언이라 할 수 있으나, 내년 봄 시 주석의 한국 방문이 성사되면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려, 완전한 관계 복원을 이루도록 해야 할 것이다. 

중국 이익 침해여부 납득시켜야 

역시 핵심 현안은 북핵 문제다. 북핵을 없앨 수 있는 유일하고 현실적인 방법은 제재뿐이다. 김정은이 '핵을 껴안고 있다가는 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할 때만 한국은 '북핵 인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중·러는 북 노동력에 뒷문을 열어준 데 이어 대북 관광과 국경 밀무역 등을 풀어주고 있다. 대북 제재 망이 뚫리면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이유는 더욱 없어지게 될 것이다. 

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중국 측의 발표는 실로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중국 언론들은 “문 대통령이 홍콩이나 신장은 중국 내정이라고 발언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중국 외교부도 “틀린 것이 없다”며 사실상 보도 내용을 확인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시 주석이 ‘홍콩과 신장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라고 설명했고,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시 주석의 언급을 잘 들었다’는 취지로 발언했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중국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정상회담으로 자국의 인권문제 논란 등을 덮으려는 것인데, 이처럼 정상들 간의 발언조차 왜곡한다면 한중일 간의 협력은 요원하게 될 것이다.

비록 한·중 관계가 사드 배치 직후에 비해 개선됐다고 하나, 중국 정부의 한한령(限韓令)이 완전히 풀린 건 아니다.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의구심을 제거하는 게 급선무다. 사드가 북한 도발에 대비한 것이고, 결코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점을 납득시킨다면 중국도 한한령을 지속할 명분도, 필요도 없다.

시진핑 정부 대북제재 엇박자 중지를

비핵화 협상의 모멘텀을 유지하려면,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등 강경 행동을 자제하는 게 당장 절실하다. 과거에 비해 약해졌다고는 하지만 주변국들 가운데 그래도 북한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큰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북한을 설득하는 등 적극적인 중간자 역할을 해낸다면 돌파구가 열릴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 비핵화가 물 건너가면 중국도 결국 타격을 입게 된다. 북한 핵무장은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와 대중국 봉쇄로 이어질 것이고, 한·일 핵무장 등 동북아시아의 ‘핵 도미노’를 촉발할 소지도 있다. 이 지역의 혼란을 막아야 하는 중국의 전략적 이해와도 충돌한다.

북한의 비핵화협상 테이블로 돌아오게 하는 지렛대는 현재로선 물샐틈없는 대북제재뿐이다. 시진핑 정부가 더는 대북제재에 엇박자를 내서는 안 될 까닭이다.

이제, 선택은 북한에 달렸다. 평화로운 비핵화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목숨을 건 대결의 길로 갈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북한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추가 도발을 한다면 고립을 자초할 뿐이다.

한일, 대화 통한 해결 공감대

한일 관계에 있어서는, 양국 정상이 만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일단, 평가할 만하다.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한일, 한미일 간 공조 중요성을 재확인한 것도 성과다.

이 회담을 위해 양국은 조금씩 양보했다. 한국은 지소미아(GSOMIA) 종료를 유보했고, 일본은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일부 철회했다.

두 정상은 한국 대법원의 일제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해선 입장차를 확인했지만, 대화를 통한 해결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이뤘다. 이번 회담이 관계 복원을 향한 본격 출발점이 되도록 논의를 발전시켜나가야 할 시점이다.

한일은 정상회담 직전에 외교장관 회담을 별도로 가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은 수출 규제와 징용 배상 판결을 둘러싸고 근본적인 입장차를 좁히진 못했지만, 외교 당국 간 소통과 협의를 계속하기로 하는 등 진전된 분위기를 보이기는 했다.

물론, 이런 정도로 지금의 상황이 풀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변화가 큰 흐름을 바꿔 놓는 촉매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아베 정부의 잘못된 역사인식에서 비롯한 한일 갈등을 단기간에 풀기는 어려운 만큼, 이런 작은 변화를 토대로 대화의 폭을 넓혀나가는 게 바람직하다. 한일 관계 개선은 북한 문제를 풀어가는 데도 좀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다.

국민 의견 수렴, 한일 관계 복원 나서야 

앞으로 한국과 일본 정부는 더 많은 대화를 통해 징용 피해 배상 문제와 수출규제에 대해 공감대를 넓히고 접점을 찾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달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조건부 연장 발표 시 보였던 자국민들을 향한 아전인수 격 발표도 자제해야 한다.

엉클어진 양국의 경제 협력이나 문화 관광 및 인력 교류는 실사구시 차원에서 속히 정상화돼야 할 것이다. 

일본은 불화수소와 폴리이미드 등 2개 품목에 대한 한국 규제가 남아 있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간소화 우대국 명단)에서 배제한 조처도 여전하다. 

한일관계 해법에 있어서는, 그동안 일본 정치권을 중심으로 문희상 국회의장의 해법을 반기는 분위기도 있으나, 문 대통령을 포함한 한국 정부나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이 모두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어 ‘문희상 안’의 향방은 불투명하다. 

결국은 양국 국민 의견을 수렴한 결과를 토대로 외교 당국 간 또는 양국 정상의 위임을 받은 인사들 간의 협의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한국을 다시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 포함시키는 등 수출 규제 이전으로 되돌려 놓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지소미아 연장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다.

내년에는 도쿄 올림픽과 한국이 개최 순번인 한·중·일 정상회의 등 자연스러운 상호 방문의 기회도 열려 있다. 문 대통령의 국빈 방일, 아베 총리의 국빈 방한이 성사될 때 양국 관계는 정상화의 궤도에 오를 계기가 더 확충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국 정상이 지금보다 더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다가서야 한다.

양국은 경제협력을 지렛대 삼아 실사구시 차원의 협상으로 빠른 시일 안에 관계 복원에 나서기 바란다.

한·중·일 FTA, 신(新)산업 협력 과제 

경제협력 강화가 신호탄이 돼야 한다. 3국 간 FTA 진전이 그 교두보가 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에서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진전시키자”고 제안했고, 리커창 중국 총리도 “FTA로 3국의 협력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역시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 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확인했다. 

한·중·일 포괄적 FTA는 정상회의에 앞서 열린 통상장관회의에서도 공동 과제로 제시됐다. 

3국 간 FTA 진전 필요성은 한·중·일 정상회의가 시작된 1999년에 비해 교역은 5배, 투자는 12배 증가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세계 경제에서 한·중·일 위상도 크게 달라졌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 교역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3국의 경제 규모와 상호관계로 보면 FTA가 없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한·중·일 FTA가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신산업 협력이다. 3국이 지식재산권을 존중하면서 데이터, 인공지능, 헬스케어, 환경 분야 등에서 힘을 모으면 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다.

후속 조치 만전 기해야

이번 한·중·일 정상회담은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과거를 넘어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는 초석을 놓는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반도의 기류를 ‘대결’에서 ‘대화’로 바꾸고, 한-일 관계 복원의 기반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과거사 문제와 각종 현안들에 대한 인식차가 일조일석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마음을 열어놓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다보면 그 인식의 차이는 극복되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외교 역시 앞으로 꼬인 매듭을 확실히 풀어 난국을 돌파해 나가야 한다.

이번 정상회담이 관계 복원을 위해서 함께 노력하는 전기가 되도록 후속 조치에 만전을 기해 나갈 것을 요구한다. 동아시아 발전과 평화를 위해서도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미래를 열어갈 때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