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지록위마’
집값 ‘지록위마’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0.01.02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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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文정부, 부동산 정책 패착 인정해야 사회적 갈등 해소할 수 있다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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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국내 대학 교수들은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꼽았다. 지록위마는 중국 역사서 사기 진시황본기에 등장하는 사자성어로, 윗사람을 농락해 권세를 휘두르는 경우를 뜻한다.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진시황이 숨을 거두자 환관 조고는 진시황의 유서를 날조해 어린 호해(진시황의 18번째 아들)를 황제로 내세워 일인자로 군림했다. 조고는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좋은 말 한 마리를 드린다"라고 거짓말을 했고, 호해는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오"(指鹿爲馬)라며 주변 신하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조고의 권력이 두려웠던 신하들은 대부분 말이 맞다고 답했으며, 말이 아니라고 대답한 몇몇 신하들은 후에 모두 숙청을 당했다.

지록위마를 2014년 당시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교수들은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뀐 한 해였다. 온갖 거짓이 진실인양 우리 사회를 강타해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정치권의 갈등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렸고, 대통령 스스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 형국이다. 정부 스스로가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사슴을 사슴이라고 말하는 시민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광장으로 나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일컫는 자들을 촛불의 힘으로 규탄했다. 이들의 용기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파면되는 혁명적 결과를 낳았고, 그렇게 지록위마의 시대는 저무는듯했다. 하지만 3년이 흐른 지금도 지록위마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다. 특히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 현 정권은 사슴을 갖다 놓고 말이라며 지독히 우겨대는 모양새다.

지난달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12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2019년 11월 12일~12월 9일)에 살펴보면 지난해 12월 전국 주택 종합 매매가격은 전월 대비 0.38% 상승했다. 2015년 6월 이후 4년 6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값은 전월보다 1.24% 올랐다. 9·13 부동산대책 이후 월간 단위로는 최대 상승폭이다. 역대급 규제도 약발이 안 듣는 눈치다. KB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기준(12·16 부동산대책 일부 반영)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 변동률은 전주 대비 0.11% 올랐다. 특히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워진 서울 비강남권, 경기 수원, 대전 등 지역에서 상승폭이 컸다.

그러나 대통령은 스스로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임기 대부분 기간 동안 부동산 가격을 잡아왔고 전국적으로는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하락했을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무부처 장관도 무엇이 두려웠는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020년 신년사에서 "실수요자가 주택시장의 중심이 되는 제도적 혁신이 있었다. 부동산 투기 수요를 차단하고 공평과세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 대책을 시행했다. 청약시장이 무주택 서민 중심으로 개편됐다"고 말했다.

온 나라 온 국민의 관심이 연일 가파른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미친 집값'에 쏠려있는데 어떻게 이런 자화자찬을 늘어놓을 수 있는지, 호해의 눈과 귀를 가린 환관 조고와 같은 존재가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이다. "주변에 간신들이 너무 많다"는 어느 유명 논객의 발언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처럼 정부 스스로가 본질을 호도하고 왜곡하자, 집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도 증폭되는 양상이다. 다주택자와 무주택·1주택자, 집을 자산으로 가진 중년·노년세대와 그렇지 못한 청년세대, 집을 '사는'(live) 개념으로 인식하려는 자와 '사는'(buy) 개념으로 인식하는 자 간 대립이 온·오프라인상에서 극심해졌다. '네가 산 집 가격이 올라서 배가 아프다', '그렇게 평생 개가붕(개천의 가재·붕어)으로 살아라'는 식의 말초적 신경전이 전부가 됐다. 이 같은 갈등 속에서 사슴이 맞느냐, 말이 맞느냐는 본질적 물음은 잊힌지 오래다. 집에 대한 욕망에 사회 전체가 매몰돼 버렸고, 이로 인한 암 덩어리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대학 교수들은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꼽았다. 공명지조는 여러 불교 경전에서 등장하는 사자성어다. 〈잡보잡경〉에 나오는 공명조(共命鳥, 목숨을 공유하는 새)는 머리가 둘이고 몸은 하나인 새다. 어느날 한 머리가 잠에 든 사이 다른 머리가 맛있는 먹이를 혼자 독차지했고, 이에 먹이를 먹지 못해 격분한 머리는 다른 머리가 잠들자 독이 든 먹이를 삼킨다. 결국 두 머리 모두 목숨을 잃고야 만다.

공명지조를 2019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교수들은 "한국의 현재 상황은 상징적으로 마치 공명조를 바라보는 것만 같다. 서로를 이기려고 하고,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 쪽이 사라지면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공명지조 다음으로 많은 추천을 받은 사자성어는 진짜(진주)와 가짜(물고기눈)가 섞여 무엇이 진짜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상태를 의미하는 '어목혼주'(魚目混珠)였다.

부동산 정책에 정답은 없다. 국민들의 자산 대부분이 집인 우리 사회 특성상 어느 역대 정부에서나 부동산 대책을 시행하면 부작용이 있었고, 그때마다 사회적 갈등이 발생했다. 그만큼 참 어려운 문제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부동산 대책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경기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확장적 재정정책이 요구되는 상황인 만큼, 세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종합부동산세 인상 등이 필요한 게 지금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하지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않고는 아예 문제를 풀 수 없다. 집값이 올랐는데 주택시장이 안정화됐다고 자평하는 역대 정부는 본 적이 없다. 자신들이 펼친 부동산 대책에 따른 부작용으로 집값 폭등 현상이 발생했음에도 '부동산 문제는 자신있다고 장담하고 싶다'는 대통령, 되레 투기세력의 놀이터를 만들었음에도 '실수요자가 주택시장의 중심이 되는 제도적 혁신이 있었다'는 주무부처 장관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이로 인해 촉발된 사회적 갈등은 마치 욕망과 분노에 휩싸인 공명조처럼 우리 사회를 공멸의 길로 몰아붙이고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말이 아니라 사슴이었다고 고쳐 말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의 패착을 인정하고 올바르게 해명해야 더 큰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이 과정 없이는 앞으로 어떤 대책을 내놓아도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실패 원인을 투명하고 면밀하게 분석해 수정·보완된 대책을 내놓음으로써 장기적인 주택시장 안정화를 도모해야 한다.

2020년 새해, 새로운 100년의 첫 출발이다. 문 대통령은 올해 첫 공식 일정으로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방명록에 "새로운 100년의 첫 출발 '확실한 변화'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이제 국민들에게 가짜 사슴이 아닌 진짜 좋은 말 한 마리를 드릴 때가 됐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재계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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