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瑞雪’이 내렸던 아차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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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瑞雪’이 내렸던 아차산에서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20.01.05 1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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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영의 山戰酒戰〉 2020년 새해 첫 산행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매일매일 떠오르고 저무는 태양이지만 한 해를 보내며 새롭게 맞이하는 태양은 왠지 모르게 뭉클하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차디찬 산 정상에 올라 덜덜 떨며 기다렸던 해돋이의 순간에서 오는 감동과 환희는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경험했을 것이다. 

나 역시 매년 산을 골라 해돋이를 보기 위해 새벽부터 산을 오르는 것으로 한 해를 시작한다. 그런데 연말연시 이래저래 일이 많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산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가까이에 있는 아차산에 오르자고 했다. 

아차산 해맞이 광장.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해돋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 최기영
아차산 해맞이 광장.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해돋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 최기영

우리 일행은 지하철 5호선 광나루역 1번 출구에서 6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다. 이날 예보된 서울의 일출 시간은 7시 47분이었다. 아차산은 어느 코스로 오르든 그리 부담이 되지 않는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매서웠던 세밑 한파가 아직도 가시지 않은 차가운 새벽이었지만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광나루역에서 광장중학교, 그리고 생태공원, 공영주차장을 지나자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사람들이 한곳으로 모이더니 아차산 입구에서는 거대한 인파를 이뤘다. 

이날 아차산에서는 해맞이 행사가 한창이었다. 시민들의 새해 소원을 적어 놓은 카드가 한쪽에 빼곡하게 걸려 있었고,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얼굴을 알리러 온 예비 후보자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사람들과 얽혀 아차산성 길을 지나 해맞이 광장에 도착했더니 그 넓던 곳에는 발조차 디딜 틈이 없었다. 수많은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차산 보루 길을 걸으며. 눈 내리는 보루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 최기영
아차산 보루 길을 걸으며. 눈 내리는 보루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 최기영

우리는 그곳을 지나쳐 조금 한적한 곳을 찾기로 하고 산행을 이어갔다. 그리고 해가 떠오르기로 한 시간보다 30여 분 전에 아차산 보루에 올라 준비해갔던 컵라면으로 허기를 달래며 해돋이를 기다렸다. 

아차산 일대에는 보루가 여기저기 참 많다. 보루는 군사적인 요충지에 구축한 진지다. 그리고 그것은 이곳이 고구려 땅이었음을 보여주는 유적지이기도 하다. 고구려 최고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장수왕 시절, 고구려는 백제를 몰아내고 한강 유역을 지배하며 이곳에 보루를 쌓았다. 그 뒤 1000년이 흘러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우리 국군은 인민군의 남하를 막아내기 위해 아차산 보루가 있던 곳에 참호를 건설했다. 

아차산 일대의 해발고도는 200~300m밖에 되지 않지만, 동으로는 서울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포함해 한강 이남 지역을, 북으로는 중랑천과 왕숙천 일대를 넓게 조망할 수 있다. 아차산에 오르면 한강과 어우러진 서울 도심의 멋들어진 모습을 온전하게 다 볼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을 나 같은 사람도 하는데 나라를 지켜 내야 하는 절박했던 상황에서 서울이 한눈에 보이는 아차산이야말로 얼마나 중요한 군사적·전략적 요충지였을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서설(瑞雪)이었다.  ⓒ 최기영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서설(瑞雪)이었다. ⓒ 최기영

따뜻한 컵라면이 몸을 녹이자 어느덧 동이 터 있었다. 그러나 어딘가에 있을 태양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이 구름에 덮여 잔뜩 흐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새해 첫날 내리는 '서설'(瑞雪)이었다. 나는 태양 대신 맞았던 눈발에 더욱 신이 났다. 올 한해 대박이 날 것이라며 우리는 서로에게 덕담을 건넸다. 

일행은 산을 더 타기 위해 용마산 쪽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눈이 흩날렸다. 아주 옅게 눈이 쌓이며 길이 몹시도 미끄러워 위험하다면서 용마산 정상을 찍자마자 하산길을 잡아 내려왔다. 그렇게 올해 첫 산행을 마쳤다.  

용마산 정상 표지석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용마산역 이정표를 보며 하산했다. ⓒ 최기영
용마산 정상 표지석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용마산역 이정표를 보며 하산했다. ⓒ 최기영

여기저기 지하철이 이어져 있고 풍광마저 최고인 아차산은 서울 시민들에게는 도심 속 선물과도 같은 곳이다. 나 역시 일상이 바빠 멀리 갈 수 없어 아쉬운 터에 아차산으로 향했고 뜻하지 않게 기분 좋은 서설까지 맞았다. 그래서인지 마치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은 듯 설레기도 했다. 그렇게 나의 새해 첫날은 시작됐다. 

우리 일행은 몸이나 녹이자며 국밥집을 골라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에는 TV가 켜져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아차산을 다녀갔다는 뉴스가 나왔다. '아~~!' 모두는 탄성을 질렀다. 뉴스를 보니 대통령은 7시부터 산을 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우리가 대통령 일행보다 약 30분 정도를 앞서서 산을 탄 것이다. 대통령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간발의 차로 보지 못했다며 일행들은 나를 원망했다. 내가 아차산으로 가자고 했고, 사람이 많으니 빨리 올라가서 자리 잡아 일출 보고 일찌감치 내려와서 한잔하는 것이 낫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대통령이 아차산에 오실 것이라고 미리 알 수 있는 사람이면 그렇게 했겠냐'고 맞서며 우리의 즐거운 실랑이가 한동안 이어졌다. 

아차산 입구에 걸려있는 소원카드들. 시민들은 이곳에 한해를 맞이하며 자신의 소원을 적어 놓았다. 모든 소원이 이뤄지는 한해가 되길 바라며 ⓒ 최기영
아차산 입구에 걸려있는 소원카드들. 시민들은 이곳에 한해를 맞이하며 자신의 소원을 적어 놓았다. 모든 소원이 이뤄지는 한해가 되길 바라며 ⓒ 최기영

얼마 전 연말, 이사를 했다. 오랜만의 이사였던 지라, 짐을 정리하자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잡동사니와 옷가지들이 나왔다. 버려진 짐으로 한 살림을 차려도 될 듯했다. 새것을 얻었으면서도 그동안 써왔던 것을 선뜻 버리지 못하고 그렇게 쌓아 묵혀두고 있었다. 버리고 비우는 것도 큰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새로운 것을 두려움이 아닌 희망으로 맞이할 수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한 살 한 살 먹어가는 것이 어느새 두려운 나이가 돼 버렸다. 하지만 올해는 왠지 모를 설렘이 큰 것은 새해 첫날 산 위에서 서설(瑞雪)을 맞고 가까운 곳에 계셨던 대통령의 기운을 느껴서였을까? 

나도 그리고 나의 모든 인연이 2020년에는 더욱 'Fighting!!' 하기를 기원한다.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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