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일본 제국주의 통치와 형식적 법치주의
[역사로 보는 정치] 일본 제국주의 통치와 형식적 법치주의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0.01.12 12: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서의 법은 자멸의 지름길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정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서의 법은 자멸의 지름길이다. 사진(좌) 제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아베 유부노키 조선 총독 사진(우)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제공=뉴시스
정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서의 법은 자멸의 지름길이다. 사진(좌) 제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아베 노부유키 조선 총독 사진(우)문재인 대통령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사진제공=뉴시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희생양이 된 한민족은 일제 강점기를 맞아 혹독한 고난을 겪었다. 일제는 치밀했다. 이들은 한민족의 대응과 자신들의 세계정복 대전략에 따라 통치방식을 변경했다.

일제가 최초로 선택한 통치방식은 헌병에 의한 무단통치였다. 이들은 한민족의 독립운동을 막고자 정치 참여를 철저히 배제했다. 일제는 교활했다. 형식적 법치주의를 최대한 악용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한민족을 처절하게 탄압했다.
 
일제는 보안법을 신설해 각종 결사와 정치 집회의 해산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게 했다. 대한제국 말기 활발한 민족 운동을 펼쳤던 대한협회, 서북 학회가 사라졌다. 심지어 한일합방을 건의했던 친일단체인 일진회도 보안법의 희생양이 됐다. 또한 한민족의 입을 막고자 신문지법, 출판법 등을 잇달아 공포하며 언론에 재갈을 물렸다.
 
지배자의 최고 무기는 역시 공포심이다. 나라를 뺏긴 약소민족에게 무자비한 무력을 과시해 공포심을 조장함으로써 저항 의지를 짓밟고자 했다. 조선의 실질적 지배자인 총독에 육군 대장을 임명했다. 치안을 담당한 경무총감은 헌병 대장이 맡았고, 경찰 업무는 군대의 경찰인 헌병이 맡았다. 이들도 역시 법을 악용했다. 헌병 경찰은 즉결 처분권을 통해 한민족의 저항 의지를 말살시키고자 했다.
 
5천 년 역사상 외세의 지배를 단 한 차례도 허용하지 않았던 한민족의 자존심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300여 년 전 임진·정묘 전쟁 당시에도 히데요시의 침략을 무너뜨린 힘의 원천은 문화 우월성이었다. 한민족 저항의식에 불을 붙인 것은 바로 일제 스스로의 통치방식이다.
 
한민족의 분노가 폭발했다. 마침내 3·1운동이 터졌다. 일제는 무자비한 탄압으로 일관했다. 전국 곳곳에서 수많은 조선인들이 희생됐다. 국제사회도 일제의 탄압에 분노했고,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일제는 더욱 교활해졌다. 일제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잠재우고자 헌병 무단통치를 접었다. 이들의 속내는 기만 통치였다. 한민족의 최대 약점인 분열주의에 주목했다. 독립운동 세력의 이간 및 분열을 위해 ‘조선에서 문화의 발달과 민력의 충실’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문화 통치를 실시했다.
 
일제는 문관 총독 허용, 보통 경찰제,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 부분적 허용, 조선인의 교육 기회 확대 등 당근책을 제시했다. 하지만 일제는 단 한 번도 문관 총독을 임명하지 않았고, 보통경찰의 무장력 증강, 잦은 정간과 폐간을 통해 더욱 교활한 언론 탄압을 감행했다.
 
또한 자치권을 내세워 민족주의자의 분열을 획책했다. 민족주의 진영은 자치권을 원하는 타협적 민족주의 계열과 일제와의 타협을 전면 거부하는 비타협적 민족주의 계열로 분열됐다. 후일 이광수, 최남선 등 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은 친일파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일제는 1930년대가 되자 대륙침략을 감행했다. 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을 잇달아 일으켰다. 중국 대륙을 단시간 내에 정복하고자 했으나 미국과 영국 등 서방세계는 일본의 침략을 분쇄하고자 중국을 지원했다. 일제의 침략 계획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일제는 조선과 타이완 등 기존의 식민지의 인적·물적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국가 총동원법’을 만들었다. 징용과 징병, 위안부 등 현재 한일 갈등의 주원인들이 이때 발생했다. 결국 광기에 가까운 발악을 일삼던 일제는 미국의 원폭 두 방에 철저히 패망했다.
 
일제는 조선 통치를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법치주의를 최대한 악용했다. 조선 민족을 위한 법이 아닌 일제의 침략 도구로서의 형식적 법치주의가 한반도를 점령했지만,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불태운 최고의 자양분이 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8일 대검찰청 검사급 이상 고위 간부 32명에 대한 신규 보임 및 전보 인사를 단행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사태와 유재수 전 부산 경제부시장 의혹, 그리고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 문재인 정부에 악재로 될 수 있는 검찰수사의 주요 책임자들이 전격 교체됐다.
 
윤 총장의 최측근인 대검 강남일 차장은 대전고검장으로,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은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박찬호 공공수사부장은 제주지검장으로 이동됐다. 정계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좌천성 인사라는 혹평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처럼 현 정권의 국정운영은 법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말 4+1이라는 합의체로 공수처법과 연동형 선거법 통과를 감행했다. 공수처법은 현 정권에 위협적인 검찰 무력화 시도라는 비판과 자신들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고, 국민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연동형 선거법은 4+1 듣보잡 합의체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선거법 게리멘더링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여론도 존재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민족의 독립을 저지하고자 각종 법을 신설하며 형식적 법치주의를 남발했지만, 그 결과는 자신들의 패망이었다.
 
만약 정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서의 법을 활용한다면, 자멸의 지름길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