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문석균은 공천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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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문석균은 공천을 받을 수 있을까?
  • 한설희 기자
  • 승인 2020.01.19 1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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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 필사(必死)’이라는 유령이 정계를 떠돌고 있다
노태우(노재헌)-YS(김현철)의 세습불발
선거는 기세다… 판세 흔들리는 순간 승부 결정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노태우·김영삼 시절부터 하나의 유령이 정계를 떠돌고 있다. 바로 ‘세습 필사(必死)’이라는 유령이다. 
노태우·김영삼 시절부터 하나의 유령이 정계를 떠돌고 있다. 바로 ‘세습 필사(必死)’이라는 유령이다. ⓒ뉴시스

하나의 유령이 정계를 떠돌고 있다. 바로 ‘세습 필사(必死)’이라는 유령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7일 15곳의 지역을 전략공천 대상지로 확정했다. 여기엔 세습 논란이 일고 있는 문희상 국회의장의 지역구(경기 의정부갑)도 포함됐다. 정치권에선 미관상 문 의장의 아들인 문석균 의정부갑 상임 부위원장에게 전략공천까지 내려주진 않을 것이라는 설(說)이 유력하다. 덕분에 “문희상만 토사구팽 당했다”는 동정론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아직까진 야당이 입을 모아 “지금은 비난을 피해 눈치 보는 척하지만 결국 문석균을 공천할 것”이라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지만, 대한민국 정치사를 살펴보면 아들 또는 직계에 대한 공천 세습은 대개 불발됐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노태우와 김영삼의 아들, 노재헌과 김현철의 사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은 민주자유당 소속 박준규 전 국회의장의 비서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박 전 의장은 “때가 되면 노재헌에게 내 지역구를 물려주겠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노재헌은 박 전 의장 지역구(대구 동구을)를 물려받고 15대 총선 출마 준비에 나섰다. 

대구 동구는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에게 70%가 넘는 압도적 지지를 보냈던 곳으로, 이는 사실상 지금의 ‘지역구 세습’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민자당은 노재헌 영입 이후 지속적으로 ‘세습 공천’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자 민자당 내부에서도 그의 출마를 만류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지역구 내 주민들의 반발도 거셌다. ‘보수의 상징’이자 여당의 전략적 요충지(要衝地)인 TK 지역에서 승기를 잡지 못한다면 선거에서 필패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당시 선거전은 3당 통합으로 만들어진 민자당(신한국당 전신)과 DJ의 새정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의 3자 구도였다. 이 과정에서 ‘3김 정치 청산’ 및 ‘개혁정치 실현’에 대한 요구가 커지자, 노재헌 공천을 밀어붙이는 여당에 대한 정당 지지율도 점차 악화됐다.

실제 94년 12월에 간행된 신문들을 살펴보면 “노태우씨가 정치발판을 위해 얻어둔 대구시내 아파트에 계란세례가 쏟아졌다”, “내년 봄이면 기승을 부릴 학생들의 반(反)노태우 정서도 두렵다”, “역풍이 우려된다”는 내용의 기사가 주를 이룬다.

『민자당으로서도 노 씨를 입당시키는데 부담과 내부 비판이 적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문민정부가 구정권을 비판하고, 특히 6共과의 단절을 시도하는 마당에 군부통치의 상징인 노태우 씨 아들을 영입하는 것은 논리상 모순이 아니냐는 당연한 지적 때문이다. 개혁을 우선하는 민주계의 한 중진이 “의석 하나 보다 명분과 철학이 중요하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는 것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 매일경제신문, 1994년 12월 27일자 신문 발췌 

『노씨가 지구당조직책을 맡은 지난 27일 직후 민자당에 접수된 동향보고에 따르면 T.K지역 주민들이 노씨 입당에 의외로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 관계자는 전언. 이 관계자는 “노씨의 지구당조직책 임명을 계기로 현 정부에 비판적인 대구·경북지역과 구여권의 지지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결과는 오히려 거꾸로 나타나고 있다”며 “내년 지자체 선거 등에서 오히려 역작용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고 걱정. 

당 주변에서는 이 같은 비판적 여론은 정치가 젊어지는 것도 좋지만 나이 30도 안된 젊은이에게 표를 던져야 하는 비감한 현실에 대한 지역구민들의 외면도 작용한 게 아니냐는 분석들. 심지어 일부 의원들은 “노 씨가 대구 동구을을 위해 한 게 뭐가 있느냐”며 “민주당을 호남당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우리 스스로 먼저 뒤를 돌아봐야 하는 게 아니냐”고 자조적 비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2월 30일자 신문 발췌

그러던 중 1995년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노재헌은 위원장직에서 사퇴한 후 정계 은퇴의 길을 밟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부친 문제 때문이었지만, 노재헌의 존재가 전체 선거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당의 우려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두 유력 정치가의 아들은 본인의 참여 의사가 확고했음에도 당의 만류로 공천을 받지 못했다. 특정인의 문제 혹은 특정 지역구의 부정적 영향이 전체 선거의 판세를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뉴시스
두 유력 정치가의 아들은 본인의 참여 의사가 확고했음에도 당의 만류로 공천을 받지 못했다. 특정인의 문제 혹은 특정 지역구의 부정적 영향이 전체 선거의 판세를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뉴시스

김영삼 대통령(YS)의 차남 김현철도 이와 비슷한 경우다. 

김현철은 1996년 15대 총선에서 YS의 고향인 경상남도 거제 지역 출마를 추진했다. 이에 여당 신한국당은 경남 거제 지역구를 갖고 있던 김봉조를 경남지사로 보내고 김현철을 거제 지역으로 전략공천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김봉조를 필두로 한 당내 반대와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결국 이를 무산시켰다.

일명 ‘아들 공천’이 국정 운영의 갈림길이 되는 총선에서 부정적 영향을 줄까 염려했던 YS는 김현철을 찾아가 출마를 말리고, 노태우 정부 시절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을 지냈던 김기춘을 거제 지역에 공천하도록 지시했다. 

“나는 나가야겠다고 했다. 그런데 언론에서 대통령 아들이 국회의원 출마한다고 반대 목소리가 나오더라. 거기에 동조한 사람들이 누구겠느냐. 야당은 이미 DJ(故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이 나왔으니까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내부의 반대가 심했다. 내가 정치적으로 워낙 개혁적인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에 위협을 느끼던 사람들이 있었다.

솔직히 아버지가 나섰으면 안 될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입장은 분명했다. 아버지는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했다. 나의 출마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가 돌자, 아버지는 내게 나가지 말라고 했다. (중략) DJ는 아들의 정치입문을 위해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기존 사람을 뽑아내고 자기 아들을 꽂지 않았는가. 상도동은 분위기가 그렇지 않았다. 너무 민주적이었다.”

-김현철, 2015년 〈시사오늘〉 인터뷰

결국 두 유력 정치가의 아들은 본인의 참여 의사가 확고했음에도 당의 만류로 공천을 받지 못했다. 특정인의 문제 혹은 특정 지역구의 부정적 영향이 전체 선거의 판세를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세계적 호평을 받고 있는 영화 ‘기생충’의 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선거는 ‘기세’다. 만약 민주당이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은 문석균 부위원장에게 전략공천까지 내려준다면, 선거전 초반부터 완전 엉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거란 무엇인가. 기세를 몰아 ‘수도권 바람’을 일으켜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이다. 그 흐름을, 리듬을 놓치는 순간 ‘민심 전쟁’에서 패배한다. 결국 ‘세습 공천’ 문제는 의정부갑 지역의 형평성 문제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은 선거 전체를 대하는 정당의 태도에 가장 큰 관심을 가진다. 선거를 성전(聖戰)과 같이 경건하게 대하는지, 혹은 약간의 얼룩은 개인기로 격파하려는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을 테다. 모 예비후보 말대로 모든 것은 민심에 달렸겠지만, 시작부터 기세가 엉킬 싸움은 피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노태우·김영삼 시절부터 정계를 방랑하던 유령이 이제 민주당 근처를 떠돌고 있다—세습 불발(不發)이라는 유령이.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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