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창업 1세대 신격호 회장, 롯데 남기고 역사 뒤안길로
마지막 창업 1세대 신격호 회장, 롯데 남기고 역사 뒤안길로
  • 안지예 기자
  • 승인 2020.01.20 1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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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안지예 기자)

맨손으로 롯데를 재계 5위 그룹으로 일궈낸 창업주 신격호 명예회장이 지난 19일 별세했다. ⓒ시사오늘 김유종

신격호(99) 롯데그룹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한국 산업계의 큰 별이 졌다. 신격호 회장은 일제강점기 혈혈단신으로 일본에 넘어가 고학 끝에 사업에 발을 딛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껌 장사로 시작해 식품, 유통, 관광, 석유화학 등을 아우르는 롯데를 키워냈다. 신 명예회장의 별세로 국내 대기업 창업 1세대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됐다.

서울아산병원 빈소에 정·재계 인사 조문 행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고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뒤 나서고 있다. (오른쪽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20일 롯데그룹에 따르면 신 명예회장은 지난 19일 오후 4시 30분께 향년 99세로 별세했다. 신 명예회장은 지난 18일 밤 병세가 급격하게 악화돼 서울 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상태였다. 이 소식을 듣고 일본 출장 중이던 신동빈 롯데 회장도 급히 귀국해 가족들과 함께 임종을 지켰다.

신 명예회장은 최근 들어 건강이 악화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해왔다. 지난달에는 탈수 증세로 2주간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뒤 건강 상태가 다소 회복돼 소공동 거소로 돌아갔지만 불과 8일 만에 다시 서울아산병원에 재입원하기도 했다.

이날 찾은 신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이른 오전부터 국내 정재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시작으로 손경식 CJ그룹 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김광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등이 신 명예회장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오후 들어서도 조문 행렬은 계속됐다. 오후 1시경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빈소를 찾았고, 1시 52분경에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 1시 58분경에는 이재현 CJ그룹 회장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0일 오후 1시 52분경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빈소를 찾았다. ⓒ시사오늘 안지예 기자

이 전 총리는 10분 간의 조문을 마친 뒤 나와 취재진에 “고인의 생애와 한국경제가 같은 궤적을 그렸던 시기가 있다. 빈손으로 일어나서 고도성장을 이루고 기적 같은 성취를 한 것인데 고인의 생애도 그러하고 한국경제도 그랬다”면서 “한국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주역들 가운데 한 분이셨는데 주역들 가운데 가장 오래 사시고 또 그 어른마저 떠나시게 돼 그에 대한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유가족을 조문하는 자리에서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하신 거인을 잃게돼 안타깝다”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

장례는 롯데그룹의 창업주인 고인을 기리고자 오는 22일까지 그룹장으로 진행된다. 명예장례위원장은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이, 장례위원장은 황각규 롯데지주 대표이사, 송용덕 롯데지주 대표이사가 맡을 예정이다. 상주 자리는 신 명예회장의 아들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지키고 있다.

남다른 선구안과 성실함…맨손으로 롯데 일궈

신 명예회장의 젊은시절 모습 ⓒ롯데

국내 창업 1세대로 불리는 신 명예회장은 맨손으로 재계 5위 롯데를 키워낸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신 회장은 1921년 10월 4일(음력) 경남 울산에서 5남 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에 배움을 열망하던 청년 신격호는 1942년 부관 연락선을 타고 도일해 신문과 우유배달 등으로 고학생활을 시작했다. 남다른 부지런함으로 외지에서 문학도의 꿈을 불태우던 청년 신격호는 ‘조선인’이라는 불리한 여건을 성실과 신용으로 극복하고, 평소 그의 성실성을 눈여겨 보아온 한 일본인 투자자의 출자로 1944년 커팅 오일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우면서 경영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장은 가동해 보지도 못한 채 폭격으로 전소됐지만 신 회장은 허물어진 군수공장에서 비누를 만들어내면서 진정한 사업가의 길에 들어선다. 이때 번 돈으로 청년 신격호는 타고난 사업 감각으로 껌 사업에 뛰어들었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자 껌이 갑자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다. 껌 사업으로 성공한 신 명예회장은 자본금 100만 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를 만들게 된다. 이때 탄생한 회사 이름이 ‘롯데’다. 문학에 심취했던 청년 신격호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롯데라는 이름을 따왔다.

1961년 신 명예회장은 일본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가 초콜릿으로 대체될 기미가 보이자 초콜릿 생산을 결단했다.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오면서 초콜릿 시장을 장악하고 이것이 롯데가 종합메이커로 부상하는 밑거름이 됐다.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신 명예회장은 조국 대한민국에 기업을 설립하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시작했다. 신 명예회장은 기업보국(企業報國) 이라는 기치 아래 폐허의 조국 어린이들에게 풍요로운 꿈을 심어주겠다는 각오로 한·일 수교 이후 한국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했다.

롯데제과에 이어 롯데그룹은 1970년대에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현 롯데푸드)으로 국내 최대 식품기업으로 발전했으며 롯데호텔과 롯데쇼핑을 설립해 당시에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유통·관광 산업의 현대화 토대를 구축했다. 또 호남석유화학(現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 등으로 국가 기간산업에도 본격 진출했다.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개점 기념식에 참석한 신격호 명예회장 내외 신동빈회장 1991.05.04
1991년 5월 4일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개점 기념식에 참석한 신격호 명예회장 내외와 신동빈 회장 ⓒ롯데

특히 1973년 당시 동양 최대의 특급호텔로 장장 6년간의 공사 끝에 문을 연 롯데호텔에는 ‘한국의 마천루!’라는 찬사가 따라붙었다. 1976년 시작해 1979년 완공한 롯데쇼핑센터(現 롯데백화점 본점)는 유통업을 대표하는 백화점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국민소득이 향상되면서 커진 소비 욕구와 다양해진 구매 패턴을 겨냥했고 이후 롯데백화점은 국내 1위로 거듭났다.

2011년에는 신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었던 제2 롯데월드타워 건축 허가가 최종 승인됐다. 신 명예회장은 1982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롯데물산을 설립하고 1988년 서울시로부터 부지 8만6000여㎡를 사들였다. 그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 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지어 새로운 한국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꿈을 가지고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지상 123층, 높이 555m의 초고층빌딩을 포함해 80만 5782㎡에 이르는 제2 롯데월드타워는 지난 2017년 그랜드 오픈했다. 30여 년에 걸친 신 명예회장의 집념이 결실을 맺은 순간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말년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보냈다. 지난 2015년 그룹 경영권을 두고 신 회장과 신 전 부회장 사이에서 이른바 ‘형제의 난’이 벌어지면서 신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2018년 6월 법원 결정에 따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레지던스에서 소공동 롯데호텔로 거처를 옮긴 뒤 건강이 악화했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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