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선거철, 전문가의 잘못된 ‘필승법’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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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선거철, 전문가의 잘못된 ‘필승법’이 넘쳐난다
  • 한설희 기자
  • 승인 2020.02.03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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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노 구속, 97대선 패배 원인일까?… 15대총선 여당 약진 설명 못해
보수여당, '구보수'로 회귀했기에 선거에서 패배
선거철, 미디어 속 '정치 전문가' 역할 돌아봐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지난달 26일 방송에서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선거 연합의 틀을 깨지 않아야 선거에서 승리한다”며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하나의 ‘실패사례’로 꼽았다. 3당합당을 통해 당선된 YS가 JP를 내쫓고 전·노(전두환·노태우) 구속으로 (민정당계와) 갈라지면서 여당이 선거에서 패했다는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kbs 홈페이지 제공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지난달 26일 방송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하나의 ‘실패사례’로 꼽았다. 3당합당을 통해 당선된 YS가 전·노(전두환·노태우) 구속으로 민정당계와 갈라지면서 여당이 선거에서 패했다는 주장이다. 과연 사실일까. ⓒkbs 홈페이지 제공

한국엔 다섯 개의 계절이 있다. 봄철, 여름철, 가을철, 겨울철, 그리고 ‘선거철’. 

봄 벚꽃, 여름 무더위, 가을의 단풍과 겨울 한파를 통해 우리는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다. 선거철이 왔음을 확인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정치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매체에 나와 저마다 역대 선거를 분석하면서 필승법을 선전한다면, 그 때가 바로 선거철인 것이다.

바야흐로 선거철인 모양이다. 각종 전문가들이 선거 양상을 예측하는 시사프로그램이 우후죽순 탄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첫 선을 보인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정치합시다>도 그 흐름을 따라 지난 1월26일 ‘2020 총선 전망’을 꺼내놓았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박형준 동아대 교수와 함께 이날 방송에 출연한 박성민 정치컨설턴트(정치컨설팅그룹 민 대표)는 “선거 연합의 틀을 깨지 않아야 선거에서 승리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는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하나의 ‘실패사례’로 꼽았다. 다음은 선거공학 관련 도서만 연이어 출판했다는 자칭·타칭 ‘정치 전문가’의 발언이다.

“역대 정권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면, 외부 공격이나 여당 정책 실패로 무너진 것이 아니었다. 선거연합의 틀을 깨서 무너진 것이다. 3당합당을 통해 당선된 YS가 JP를 내쫓고 전·노(전두환·노태우) 구속으로 (민정당계와) 갈라지면서 여당이 선거에서 패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대선 패배(1997년)’라는 결과에 ‘전·노 구속(1995년)’이라는 사건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나 다름없다. 세간은 이런 사고체계를 ‘억측’이라고 부른다. 

그의 인과관계 속엔 YS 집권 말기 시행된 ‘15대 총선(1996년)’이 본인 편의대로 빠져 있다. 전·노 구속으로 3당 선거연합 틀이 무너진 상황에서, 당시 집권 여당이 상당한 성과를 얻었던 현상은 무엇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15대 총선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YS의 혁신공천’에 있었다. 여당이 구보수와 제대로 작별한 덕분에 중도층 표심을 얻었으며, ‘레임덕 정국’에서도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김영삼민주센터
15대 총선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YS의 혁신공천’에 있었다. 여당이 구보수와 제대로 작별한 덕분에 중도층 표심을 얻었으며, ‘레임덕 정국’에서도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김영삼민주센터

전·노 구속 덕분에 총선서 승리… 대선 패배는 昌의 구보수 회귀 때문

15대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총 139석을 얻어 원내1당을 유지했다. 제1야당인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새정치국민회의가 얻은 79석을 훌쩍 웃도는 수치다. 특히 수도권에선 전체의석 96석 중 54석, 과반이 넘는 56%의 의석을 차지했다.

15대 총선의 일등공신은 누가 뭐래도 ‘YS의 혁신공천’에 있었다. YS는 구 민정계 인사들과 하나회 등 지금까지 정통여당을 이끌어 왔던 주류세력을 대거 낙천시켰고, 김문수·이재오·홍준표·이찬진 등 정파 밖 인사들을 수도권 공천후보로 낙점했다. 다시 말해 여당이 구보수와 제대로 작별한 덕분에 중도층 표심을 얻었으며, ‘레임덕 정국’에서도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박 대표가 ‘실패의 결과’로 꼽는 97년 대선은 도리어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가 민정계와 손을 잡고 과거 보수정권(구보수)으로 회귀하려 했기 때문에 민심으로부터 버림받은 결과다. 

대권주자 자리를 놓고 상도동계와 갈등하던 이회창은 YS에게 앙심을 품은 민정계와 결합해 경북 포항에서 ‘YS 화형식’을 집행하는 등 일명 ‘극우보수’ 쪽과 결탁하게 된다. 그 결과 온건 중도층은 도리어 제3당의 이인제 후보에게 몰렸고, 신한국당은 1.6%의 아주 근소한 차이로 민주당에게 정권을 뺏기게 된다. 

당시 ‘이회창 캠프’에 합류해 이 후보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유한열 전 의원도 2011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패배요인을 “이회창이 YS와 완전히 등을 졌기 때문”이라고 냉철하게 비판한 바 있다. 

“내가 이회창 후보 만나서 ‘YS와 만나 도움을 받으라’는 메시지를 넣었습니다. 그런데 이회창은 ‘YS와 손잡으면 표가 떨어진다는데요’라고 말합디다. 그래서 내가 표가 절대로 달아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중략) 그러고 나서 이틀이 지난 후 김윤도 변호사한테 전화가 왔어요. ‘이회창 후보가 YS 만나는 것,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저쪽(이회창)에서 전갈이 왔습니다’고. 그때 내가 생각했지. 이제 대통령은 김대중이구나.” -유한열, 2011년 〈시사오늘〉 인터뷰 中

‘대선 패배(1997년)’라는 결과에 ‘전·노 구속(1995년)’이라는 사건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나 다름없다. 세간은 이런 사고체계를 ‘억측’이라고 부른다. ⓒ김영삼민주센터
‘대선 패배(1997년)’라는 결과에 ‘전·노 구속(1995년)’이라는 하나의 현상을 결과에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나 다름없다. 세간은 이런 사고체계를 ‘억측’이라고 부른다. ⓒ김영삼민주센터

실패의 원인을 도출하는 과정은 늘 어렵다. 똑같은 성공요인을 넣는다고 해도 국내외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결과 값이 달라지는 것이 선거다. ‘선거 공학’에서 개연성의 오류는 누구나 범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어떻게든 현상의 원인을 찾아보겠다는 것에 천착해 억지춘향격 ‘짜맞추기’를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또한 해당 발언이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력이 당장 눈앞의 작은 표에 집착해 대권을 놓치는 ‘소탐대실(小貪大失)’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라면, 더욱 엄격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지상파 TV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공적 영역에 있어서의 방송의 역할을 가장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미디어 정치'의 시대에선, 특히 선거를 앞두고 정치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2월이다. 꽃샘추위와 함께 선거철이 다가왔다. 온갖 미디어에선 정치 전문가들의 '총선전망론'과 '선거필승법'이 분다. 

담당업무 : 통신 및 전기전자 담당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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