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법원 판결까지 간섭"…정치권·시민단체의 도넘은 사법권 침해
[데스크칼럼] "법원 판결까지 간섭"…정치권·시민단체의 도넘은 사법권 침해
  • 김기범 기자
  • 승인 2020.02.05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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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김기범 기자)

지난달 9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에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이  초대 위원장 수락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한편, 공식 출범을 선언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서초타워에 마련한 사무실에서 첫 회의를 열 계획이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지난달 9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사무실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에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가운데 연단 위)이 초대 위원장 수락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한편, 공식 출범을 선언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서초타워에 마련한 사무실에서 첫 회의를 열 계획이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사회풍자로 유명한 시드니 루멧이 1957년 처음 연출한 영화 <12인의 성난사람들>(12 Angry Men)은 현재에도 회자되는 법정드라마의 백미(白眉)다.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법정에 선 소년을 바라보는 배심원 12명의 이야기다. 한정된 공간에 갇힌 배심원들이 유죄가 확실시되는 소년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에 도달하는 지난한 여정을 그렸다.

미국 배심원 제도의 허점을 그리면서도, 한편으론 격렬한 토론을 통해 갈등을 이겨내고 만장일치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관객의 공감대를 형성한다. 동시에 사법제도 일부로 기능하는 미국 시민사회의 일면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럼에도 판사의 권위나 사법권 독립이라는 주제의식은 선명하다. 누구나 납득할 만한 냉철한 이성과 전문지식이 감정에 치우친 논리적 결함을 메울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이는 민주국가에서 요구되는 3권 분립과 법관의 정치적 독립 기반이기도 하다.

지난달 17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파기환송심 4차 공판 이후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각의 파상공세가 거세다.

공판에 이은 21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34명과 정의당 국회의원 6명이 중심이 된 범여권 정치인 43명은 공동성명을 내고 파기환송심 재판부를 비판했다.

민노총과 참여연대 등 진보성향 시민·노동단체와 함께한 이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범죄에 대한 양형 심리에서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결코 영향을 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재판부가 준법감시위원회 설치를 명분으로 재벌 총수(이재용 부회장) 구명에 나선다면 또 다른 사법거래, 사법농단, 법경유착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성명서 말미엔 “재판부가 공정하고 투명한 재판 운영을 통해 재벌체제의 혁신, 정경유착의 근절, 사법정의를 세우지 않는다면 국민들은 결코 재판의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재판부를 넘어 사법부에 대한 거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것이며, 사법정의 실현을 위한 국민적 저항이 일어날 것임”을 “분명히 경고”했다.

성명서 내용은 지난 4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노동·시민단체 주축으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또다시 강조됐다.

계속 이어지는 일부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주장의 요지는 결국 삼성그룹이 최근 설치한 준법감시위에 대한 우려다.

파기환송심 재판부 제안으로 만들어진 준법감시위가 오히려 이 부회장에 대한 면죄부로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어떤 법적 권한과 책임도 없는 외부 기구”가 이 부회장의 양형 조건으로 적용될 수 있다면 이는 “사법부와 재벌의 짜 맞춘 듯한 양형 봐주기”라는 논지다. 삼성 준법감시위에 대한 특검 시각과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분명히 규명돼야 할 점이 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에 선임된 김지형 전 대법관 또한 대표적 진보 성향 인사라는 점이다. 

김 전 대법관은 지난달 9일 기자간담회에서 위원장직 수락 과정상의 우여곡절과 고뇌를 토로했다.

김 전 대법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결국 삼성의 변화 조짐이었다. 이 부회장도 직접 준법감시위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약했다.

김 전 대법관이 직접 선임한 6명의 준법감시위원도 대부분 각계에서 ‘재벌개혁’ 선봉에 섰던 이들이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에서 일하다 숨진 이들의 유족이 추천했던 김 전 대법관 못지않은 이력들이다.

정작 현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을 ‘검찰개혁’ 명분으로 흔들며, ‘조국사태’ 등 일련의 사건에 대해선 옹호와 함구로 일관하는 여권 세력 모습이 중첩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들을 바라보는 많은 국민의 눈길도 그리 따사롭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

혹자는 3권 분립에 기초한 입법부의 사법부에 대한 견제라고 한다. 그러나 올바른 견제와 균형은 법적·제도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경고’ 등 입법부 구성원 일부가 쓰는 격한 표현은 오히려 사법부에 대한 압박과 간섭으로 인지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법원 및 법관에 대한 사실상의 재판(사법) 방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 차원이 아닌 개별적 판단을 원칙으로 참여했다”는 일부 국회의원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당론이나 입법부 전체를 대표하진 않기 때문이다. 일부 정치세력에 의해 모든 것이 정당화 되고, 사법정의와 재벌개혁이 주창될 수 없는 이유다.

많은 이들의 의구심을 해소하는 데엔 여야와 진영이 따로 없음을 먼저 납득시켜야 한다. 시민의 이름으로 사법부를 흔들고 있진 않은지 겸허히 되돌아 볼 일이다.

올바른 시민사회란 갈등을 봉합하고, 합의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창출된다.

격렬함만 있을 뿐인 일부 정치세력이 과연 온 국민이 공감하는 세련된 컨센서스(consensus)를 이뤄가고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1950년대에 만든 클래식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다시 한 번 들춰보게 하는 착잡한 입춘(立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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