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필담] 험지 출마에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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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필담] 험지 출마에는 이유가 있다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02.09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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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차원에선 ‘스펙’, 당 차원에선 ‘바람’ 기대…황교안·한국당도 성공할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결국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뉴시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결국 서울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뉴시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결국 서울 종로에 출마하기로 했다. 황 대표는 7일 오후 한국당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 황교안, 종로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다”며 “종로를 반드시 정권심판 1번지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로써 황 대표는 당초 자신이 공언한 대로 ‘험지(險地)’에 나서게 됐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험지에 나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험지의 사전적 의미는 ‘험난한 땅’으로, 정치에서는 선거에서 당선되기 어려운 지역구를 일컫는다. 즉, 험지 출마는 정치인들이 굳이 당선되기 어려운 지역구를 찾아 나선다는 말이 된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숨어 있다. 우선 개인 차원에서 험지 출마는 하나의 ‘스펙’이 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제안으로 통일민주당에 입당, 제13대 총선에서 부산 동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그는 3당 합당을 기점으로 YS와 결별하며 당적을 민주당으로 바꿨다.

당시만 해도 3당 합당으로 호남에 고립된 민주당이 영남에서 승리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민주당 소속 정치인에게 부산은 말 그대로 ‘험난한 땅’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지역구를 바꾸지 않고 제14대 총선에서 부산 동구에,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출마했다가 연이어 낙선했다.

1998년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 당선된 후에도 노 전 대통령은 험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2년 후인 2000년 제16대 총선에서 다시 부산 북구·강서구을 선거에 나서 패퇴, 부산에서만 세 차례 패배를 맛봤다.

그러나 ‘5공 청문회’로 스타덤에 올랐던 정치인의 계속된 도전과 실패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울림을 줬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끊임없이 지역주의에 도전한 뚝심 있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획득했고,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리고 이런 이미지는 노 전 대통령이 노풍(盧風·노무현 바람)을 일으키며 대통령에 당선되는 바탕이 됐다. 험지 출마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로 변환된 셈이다.

당 차원에서도 험지 출마는 선거 승리를 위한 전략으로 활용할 수 있다. 중량감 있는 인사(人士)가 험지에서 ‘바람’을 일으킬 경우 그 영향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제12대 총선에서 서울 종로·중구에 출마해 ‘신민당 돌풍’의 시발점 역할을 했던 이민우 총재의 사례가 그런 케이스다.

이때 YS는 ‘정치 1번지’에서 바람을 불러일으키면 전두환 정권에 대한 반감(反感)이 선거로 표출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이민우 총재에게 서울 종로·중구 출마를 요청했다. 당시 종로는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손자이자 민정당 원내총무와 사무총장을 지낸 이종찬, 원로 정치인 정일형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의 아들로 유명했던 정대철이 각각 민정당·민한당 후보로 공천됐던 험지 중의 험지였다. 당시 이민우 총재조차도 “나를 사지로 보내려 하느냐”라고 펄쩍 뛰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신민당이 당력을 집중해 이민우 총재를 지원하면서 선거는 알 수 없는 양상으로 흘러갔고, 종로발(發) 신민당 돌풍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제12대 총선에서 신민당이 얻은 의석수는 무려 67석. 당대표의 험지 출마가 전체적인 선거 판도를 뒤집어 놓은 것이다.

황 대표의 종로 출마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당은 황 대표가 종로에서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상대로 선전(善戰)할 경우 ‘정권 심판론’ 바람이 거세게 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황 대표 개인적으로도 ‘정치 1번지’ 종로에서의 승리는 정체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과연 황 대표의 ‘험지 출마 승부수’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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