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총선 관전평③] 이광재의 실용주의 정치, 이번에도 통할까?
[4·15총선 관전평③] 이광재의 실용주의 정치, 이번에도 통할까?
  • 한설희 기자
  • 승인 2020.02.11 1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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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이 말하는 ‘左희정 右광재’
명분과 정통성의 安 vs 실리주의와 유연성의 李
“現 민주당, 이광재의 유연성 총선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한설희 기자)

안희정이 명분과 정통성을 중시한 원칙주의자라면, 이광재는 현실 파악과 목표 달성을 최우선으로 둔 실리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사오늘 김유종
안희정이 명분과 정통성을 중시한 원칙주의자라면, 이광재는 현실 파악과 목표 달성을 최우선으로 둔 실리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사오늘 김유종

‘원조 친노’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현 재단법인 여시재 원장)가 9년 만에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 역할로 정치권에 복귀했다.

이광재 전 지사(이하 이광재)의 행보는 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이하 안희정)와 동일 선상에서 비교돼 왔다. 두 사람 다 노무현 대통령의 ‘킹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좌(左)희정 우(右)광재’로 불렸으며, ‘노무현 캠프’ 대선자금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옥신세를 진 바 있다. 또한 둘 다 젊은 시절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DR)의 보좌관으로 일하면서 ‘DR계’란 수식어를 달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광재와 안희정을 광범위하게 ‘친노’, ‘386’으로 묶어 같은 부류로 취급해 왔다. 그러나 둘을 직접 겪은 사람들은 “두 사람은 결이 완전히 다른 부류”라고 평가하고 있었다.

DR은 2016년 11월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두 사람에 대해 이렇게 요약했다.

“안희정은 원칙을 따지는 사람이고, 이광재는 뜻하는 바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안희정이 명분과 정통성을 중시한 원칙주의자라면, 이광재는 현실 파악과 목표 달성을 최우선으로 둔 실리주의자라는 것이다. 

안희정은 3당합당이 원칙을 어겼다며 '민주당 외길' 인생을 걷는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안희정은 3당합당이 원칙을 어겼다며 '민주당 외길' 인생을 걷는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명분’과 ‘정통성’의 安 vs ‘실리주의’와 ‘유연성’의 李

안희정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구속됐다 88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후, 김영춘 의원의 소개로 당시 통일민주당 소속 DR의 비서관으로 들어가 약 2년간 일했다. 그러나 DR이 김영삼(YS) 총재와 함께 3당 합당을 주도하자, 이를 거부하면서 DR 의원실을 나와 당직자 신분으로 노무현·김정길·이철·홍사덕 등과 함께 일명 ‘꼬마민주당’에 잔류하게 된다. 

안 전 지사는 2016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3당 합당 당시 YS와 DR을 등진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3당 합당은 원칙도 없고 민주주의 대의에도 어긋나는 짓이다. 내게 YS의 3당 합당은 야당의 전선을 완전히 붕괴시킨 사건이다. 역사적 정통성, 정치세력으로서의 모든 것을 깨버렸다.”

정치에 대한 환멸을 느낀 그는 91년 말 사직서를 내고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이광재의 제안으로 노무현·이광재와 함께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운영하면서 다시 ‘민주당 외길인생’을 걷게 된다. 

한편 1988년 당시 초선 의원이던 노무현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광재도 노무현·안희정과 함께 꼬마민주당에 남았다. 이광재는 노무현의 곁에서 1992년 총선과 대선, 93년 최고위원 전당대회, 95년 지방선거, 96년 총선 등을 치르며 그를 보좌했다. 

반면 이광재는 오직 민주당에만 몸담지 않았다. 그는 노무현이 96년 총선에서 낙선하자 그가 비난했던 신한국당 소속의 DR에게 찾아가 그의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을 도왔다. 97년엔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조순 총재의 비서실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DR은 2017년 노병구 전 민주동지회장의 장례식에서 본지와 만나 이광재의 행보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97년 경선에서 이광재가 나를 열심히 도왔지만, 당시 정당(보수당)은 지역적인 색깔이 중요해서 호남사람인 내가 떨어지게 됐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이 구보수 위주의 ‘이회창 체제’로 돌아가게 되니까, 개혁보수를 지향한 이광재에겐 주요 당직이나 지역구 공천을 주지 않으려고 하더라. 그걸 지켜보던 이광재가 내게 ‘한나라당은 내가 지향하는 당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떠났다.”

이광재의 상대적 유연성을 보여주는 일화가 또 있다. 

이광재는 지방자치연구소 첫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삼성경제연구소 소속 전문가들을 발제자로 초청했다. 이는 당시 ‘반(反)재벌’ 색채가 짙었던 운동권 출신 안희정의 큰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는 또한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에서도 삼성과의 협업을 개의치 않았다. 이에 2004년 9월엔 의정연구센터를 통해 삼성경제연구소와 ‘경제 재도약을 위한 10대 긴급 제언’ 심포지엄을 열었고, 당시 진보 언론으로부터 ‘참여정부의 수구화’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광재는 사람 또는 조직의 색깔과는 상관없이 그것이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실용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어울렸다. DR과 조순을 통해 보수 정당의 체제를 ‘구보수’에서 ‘개혁보수’로 개선하려 했고, 진보 연구소에 보수 경제인들을 불렀다. ⓒ시사오늘
이광재는 사람 또는 조직의 색깔과는 상관없이 그것이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실용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어울렸다. DR과 조순을 통해 보수 정당의 체제를 ‘구보수’에서 ‘개혁보수’로 개선하려 했고, 진보 연구소에 보수 경제인들을 불렀다. ⓒ시사오늘

이광재의 유연성, 4월 총선에도 통할까?

과정은 달랐지만, 둘은 한 곳에서 만났다. 안희정과 이광재 두 사람은 결국 노무현과 함께했고, 이들은 2002년 민주당 대선캠프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으며 노무현을 대통령 자리에 올리는데 1등 공신 역할을 하게 된다.

이광재는 사람 또는 조직의 색깔과는 상관없이 그것이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실용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어울렸다. DR과 조순을 통해 보수 정당의 체제를 ‘구보수’에서 ‘개혁보수’로 개선하려 했고, 진보 연구소에 보수 경제인들을 불렀다. 

안희정은 민주화운동 끝에 정치에 입문하면서 “혁명가의 길을 가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안희정이 그의 진보정치 인생에서 ‘혁명가’를 자처했다면, 이광재는 체제와 조직 안의 진전을 꿈꿨던 ‘개혁가’인 셈이다. 

작년 연말 문재인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이광재 전 의원의 피선거권이 복권되면서, 그가 원주·강릉·평창 중 한 곳에 출마할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전 지사는 오는 4·15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강원 지역의 선거운동을 이끌 예정이다. 당 지도부로부터 ‘이광재 강원 출마설’이 제기되자, 그는 “고민해보겠다”면서 여지를 남겼다. 이번 총선이 ‘원조 친노(親盧)의 화려한 귀환’을 판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정세운 시사평론가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이광재의 유연성을 필요로 할 것”이라면서 “보수와 진보, 서초동과 광화문, 추미애와 윤석열 등 양극단으로 나누어진 현 정국에서 이광재의 유연성과 소장파 이미지가 총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 당직자도 이날 통화에서 “당이 적극적으로 (출마) 요구하고 있고, 본인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안다. 당에서는 강릉 출마를 권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연(柔軟) 친노’ 이광재는 과연 총선에 출마할 것인가. 출마한다면 유권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시사오늘〉이 제공하는 4·15총선 세 번째 관전포인트다.

담당업무 : 국회 및 더불어민주당 출입합니다.
좌우명 :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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