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지침서3②] 황진솔 “탈북민과의 협력 사례, 통일에 꼭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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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지침서3②] 황진솔 “탈북민과의 협력 사례, 통일에 꼭 필요해”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0.02.12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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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솔 더 브릿지(The Bridge International) 대표
“더 브릿지, 개발도상국‧탈북민 창업‧자립 지원하는 회사”
“임팩트 기부, 기존 기부에 없는 존중과 신뢰 관계 생겨”
“느리지만 필요한 사회적 기업 지원, 단기보단 중장기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지난 6일 강남구의 한 사무실에서 청년지침서 시즌3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 황진솔 더 브릿지 대표를 만났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지난 6일 강남구의 한 사무실에서 청년지침서 시즌3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 황진솔 더 브릿지 대표를 만났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이곳은 가히 작은 통일 한반도였다. 통일을 당위적으로 원했던 남한 사람과, 목숨을 걸고 남한에 건너 온 북한 사람이 다리 위에서 만났다. 그들은 때로는 서로를 오해해 언성을 높였고, 때로는 안 볼 듯이 싸웠으며, 때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기대했던 장밋빛 통일은 없었다. 남과 북, 그들 사이엔 분명 커다란 간극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를 포기하지 못했다. 남한 사람이 갖고 있는 편견을 한 줌 내려놓았고, 탈북민이 갖고 있는 비교의식과 열등감을 한 줌 내려놓았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거치며 서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상생의 무대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는 더 브릿지(The Bridge International)의 이야기다. 

지난 6일 강남구의 한 사무실에서 청년지침서 시즌3의 두 번째 주인공으로 황진솔 더 브릿지 대표를 만났다.


더 브릿지와 탈북민
“더 브릿지, 개발도상국‧탈북민 창업‧자립 지원하는 회사”
“현실에 대한 인식 없는 장밋빛 통일은 굉장히 위험해”

황 대표는 더 브릿지를 "개발도상국과 탈북민 창업가의 주체적 자립을 돕는 회사"라고 소개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황 대표는 더 브릿지를 "개발도상국과 탈북민 창업가의 주체적 자립을 돕는 회사"라고 소개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먼저 더 브릿지가 어떤 회사인지 소개해 달라.

“더 브릿지는 개발도상국과 탈북민 창업가가 주체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통해 자금을 지원하고, 그분들의 사업을 컨설팅하고 있다.”

- 특별히 탈북민을 지원하게 된 계기가 있나.

“대학 시절부터 통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던 중 교환학생으로 연변과학기술대학교를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만난 조선족 친구의 아버지는 남한 사람인 나보다 익숙한 북한의 언어와 문화를 바탕으로 합법적으로 북에 들어가 비즈니스를 하고 계셨다. 반면 나는 북한을 잘 몰랐고, 한국인이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때 처음 내가 효과적인 방법으로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오니 탈북민이 보였다. 그중에서도 안정적으로 남한의 자본주의 사회에 정착하고 있는 북한 사람, 내게 그런 사람은 탈북민 창업가였다. 이들의 성장을 지원한다면, 이들이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다른 탈북민들을 지속가능하고 효과적으로 품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탈북민 창업가에 대한 연구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

- 탈북민 창업가는 실제로 얼마나 있나.

“정확히 통계에 잡히진 않지만, 우리나라에 3만 3천명의 탈북민 중 창업가는 1000여명 정도로 본다. 대부분은 자영업자로, 혼자 일하는 운수업이나 식당일을 많이 한다. 그중 우리가 타깃한 창업가는 다른 탈북민을 고용하고 사업을 키워나가는 분들로, 내가 생각하기에 150명 이내인 것 같다. 그중 60~70명을 만나봤다.”

- 탈북민들의 창업 소재는 우리나라와 비슷한가.

“20~30대 분들은 남한 청년들과 아이템이 비슷하다. 아무래도 남한 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빨리 적응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에서의 경험 때문에 대중 무역 관련된 창업을 많이 하는 편이다. 북에서부터 중국과의 물류 무역 사업을 통해 맺은 꽌시(关系, 관계)로 창업을 한다.”

-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탈북민 창업가들이 타격이 크겠다.

“맞다. 아예 스톱(stop)되신 분들도 있고, 영향이 있더라.”

- 통일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경제적 측면을 떠나 ‘반드시 통일이 돼야 한다’는 당위적인 생각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업으로 하다 보니 심정적으로 통일을 원하는 것과 현실은 괴리가 컸다. 비즈니스라는 건 이해관계가 돈으로 얽혀 있다 보니 서로의 바닥을 볼 수 있지 않나. 내가 가진 편견으로 나도 모르게 무시하는 단어를 쓸 때가 있고, 탈북민이 가진 열등감이나 비교의식으로 원치 않은 갈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현실에 대한 인식 없이 장밋빛 통일을 얘기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을 넘어 탈북민들과의 협력 사례들이 통일 과정에 꼭 필요하다.”


임팩트 기부
“우리의 목적은 유니콘 기업이 아닌 사회적 임팩트”
“임팩트 기부, 기존 기부에 없는 존중과 신뢰 생겨”

황 대표는 원래 정부와 대기업을 상대로 국제개발 쪽 컨설팅을 했다. 하지만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하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은 대부분 탑다운(top-down) 방식이었다. 그 방식이 때론 현지인에게 많은 피해와 상처 주는 모습을 보고 회의감이 든 황 대표는, 시민 주도의 건강한 사회적 금융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대출과 기부의 중간 어느 쯤에 있는 임팩트 기부(Impact Donation)가 그렇게 탄생됐다.

황 대표는 "더 브릿지와 탈북민이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고 답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황 대표는 "더 브릿지와 탈북민이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고 답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회사 운영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나.

“우리는 비영리 사단법인이기 때문에 임팩트 기부를 통해 기부금을 모으고, 이를 탈북민 창업가에게 수수료 없이 100% 전달한다. 특이하게 더 브릿지는 이들이 안정적 사업 운영을 통해 받은 기부금을 재 기부하는 걸 목표로 한다. 즉, 기부를 받는 수혜자가 기부를 하는 기부자로 정체성이 바뀌는 거다.

기존에 있는 용어로 하면 무이자 대출과 유사하다. 하지만 대출이 아니기 때문에 재 기부를 하지 않더라도 법적 구속력이 없다. 만약 재 기부하게 되면 50%는 더 브릿지에, 나머지 50%는 다른 탈북민에게 간다. 잘 자립해서 본인을 도와줬던 기부 단체에 본인이 기부하는 꼴이 되는 거다. 더 브릿지와 탈북민이 서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할 수 없겠다.

“탈북민이 잘돼야 더 브릿지가 성장하는 거니, 우리는 함께 성장하는 거다. 탈북민들 역시 ‘이 사람들(더 브릿지)이 내가 불쌍하고 못나서 기부금을 주는 게 아니라 나를 신뢰해서 자금을 지원하는구나’라는 걸 알게 된다. 이 안에 기존의 기부와는 다른, 존중과 신뢰 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 처음에 영리로 시작하지 않았다. 우리는 유니콘 기업이 돼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다. 우리에겐 사회적 임팩트가 훨씬 중요하다. 그들이 자립에 실패해 재 기부를 못할 경우, 우리 수익은 0이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과정 중에 서로에게 신뢰 관계가 생겼다면, 그것으로 미션을 달성한 거다. 그래서 비영리로 창업하면서 돈 벌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다(웃음).”

- 임팩트 기부를 통해 만들고 싶은 세상이 있나.

“궁극적으로 더 브릿지를 통해 탈북민을 존중하고, 친구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국제개발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좋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현지인에게 적합하지 않아 피해나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리 역시 처음 프로그램에 참여한 탈북민에게 비슷한 피드백을 받았다. 더 브릿지가 방향성은 좋지만, 탈북민을 너무 모른다는 거였다. 나는 당연히 적합하다고 생각한 프로세스가 탈북민에겐 아닐 수 있었다.

그래서 역제안을 드렸다. 다음 프로젝트 때는 자문위원으로 참가하셔서 같이 기획하자고. 그랬더니 엄청 좋아하셨다. 대부분 남한 사람의 방식대로 탈북민을 이해하고 도왔지, 탈북민의 이야기를 듣고 반영한 적이 거의 없었던 거다. 탈북민이 직접 다음 프로그램을 기획하니 주인의식도 생기고, 2기 모임에 참가한 탈북민들의 신뢰도가 올라갔다. 서로에 대한 존중과 관계에서 오는 이런 소소한 에너지가 너무 행복했다.”

- 활동하면서 기억에 남는 임팩트 기부가 있다면.

“조인트 벤처(joint venture)까지 함께 꿈꿨던 탈북민이 기억난다. 임팩트 기부를 하며 만난 탈북민 창업가 중 가장 사업성 있고, 대화가 잘되는 분이었다. 그래서 함께 남북합작 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근데, 그 과정 중 수많은 갈등이 있었다. 정말 끝까지 갔다.

사업은 단순히 서비스를 구매하거나 기부금을 전달하는 정도가 아니지 않나. 정말 절망스럽고, 포기하고 싶었다. 내가 탈북민을 보는 스펙트럼 중 중간쯤 와 있는 사람이라면, 그 친구도 탈북민 중 남한 사회를 보는 스펙트럼 중 중간쯤 있었다. 어떻게든 우리가 소통하고 협력하는 모델을 만들지 못하고 갈등하면, 양극단은 물론이고 중간마저 잃을 것 같았다. 정서적으로 통일을 원하는 남한 사람과 남한 사회를 건강하게 이해하려는 탈북민이 협력하지 못하면, 통일은 정말 어렵겠구나 싶었다. 둘 다 그 사실을 알기에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지금은 더 깊은 신뢰 관계를 갖게 됐다.

이렇듯 그 친구와 싸우고 관계를 회복한 일련의 사건들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도 탈북민과의 협력은 늘 두려움 반, 기대 반이다. 그래서 정직하게 장밋빛 통일은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꼭 좋은 협력 사례를 만들어내고 싶다.”

- 그렇다면 탈북민과 가장 많이 부딪치는 부분은 무엇인가.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공통적인 느낌은 문화적 차이다. 특히 시간관념에 대한 부분이다. 남한에서는 시간을 쪼개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나. 기업에서 시간은 신뢰다. 하지만 북한 사회는 다르게 인식돼 있다. 조금 늦는 것에 대해 왜 이해하지 못하냐는 입장이다.

또 표현 방식이 다르다. 북한은 악센트가 강하고 직설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들을 때 기분이 나쁠 때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분들은 왜 돌려서 말하냐고 한다. 예의 갖추느라 에둘러 말하는 걸 신뢰가 없다고 본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공감하고, 서로의 것을 쌓아가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청년 창업가
“느리지만 필요한 사회적 기업 지원, 단기보단 중장기로”
“아이템과 미션뿐만 아니라 조직 운영과 문화도 중요해”

창업한 것에 후회는 없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황 대표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황 대표는 창업이 참 힘들었다고 말하면서도, 명확한 미션을 30대 초반에 찾은 것만으로도 스스로 ‘행운아’라고 평가했다. 이 사업을 시작하기 직전까지도 창업을 할 생각이 없었다던 황 대표의 청년 창업가로서 느낀 생각을 담았다. 

황 대표는 "우리나라가 조금 더 건강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느리지만 필요한 사회적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황 대표는 "우리나라가 조금 더 건강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느리지만 필요한 사회적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 스타트업을 하면서 느낀 청년에게 필요한 정책이 있다면.

“사회적 경제 기업은 기술 기반의 일반 영리회사와 비교할 때, 단기간에 큰 수익을 창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최소 1~2년은 사람과 신뢰를 쌓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내야 하는 사업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정부 지원이 6개월, 1년 단위로 끊기기 때문에, 그 안에 수익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면 지원금을 뱉어내야 하거나 지원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있다. 따라서 사회적 경제 기업을 중장기적으로 지원할 인내자본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우리나라가 조금 더 건강한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조금 느리지만 필요한 사회적 기업이 많아져야 한다.”

- 창업을 하려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꼭 좋은 말이어야 하나(웃음). 나는 창업이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과정일 줄 몰랐다. 지난 30년 동안의 고민이 한 번에 정리되는 것 같은 짜릿한 순간이 있었고, 반드시 창업을 해야 한다는 확신도 있었다. 지금 20~30대 청년이 창업을 한다고 하면, 나는 최대한 빠른 실패를 경험하라고 하고 싶다. 단기간에 창업을 경험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이를 통해 본인의 사업에 대해 빠르고 객관적으로 검증했으면 한다.

두 번째는 스타트업 인턴을 통해 현실을 보는 거다. 창업가는 아이템에 꽂히거나, 미션에 꽂힌다. 하지만 현실은 월급 줘야 하고, 직원들이 일하는 게 행복해야 하고, 소통이 잘 되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 내게는 그게 가장 큰 과제로 느껴진다. 미션이 중심이 된 비영리이자 사회적 기업에 일하는 사람들이 절망하거나, 힘들어하면 어떤 것으로도 보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턴십을 통해 일만 보는 게 아니라 그 조직도 봤으면 한다.”

후원 및 활동을 원할 경우 더 브릿지 홈페이지(https://www.thebridgeint.com/) 혹은 더 브릿지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thebridgetogether/)를 참고하면 된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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