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도의 時代架橋] 봉준호 영화史 신기원, 문화 강국 도약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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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도의 時代架橋] 봉준호 영화史 신기원, 문화 강국 도약대로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0.02.15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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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아카데미 석권 역사적 성취
최고 수준 문화 콘텐츠 세계화 증거
‘자생’으로 이룬 쾌거...한국문화 位相 드높혀
非영어권 영화로 첫 작품상 기념비
한국 영화사 넘어 아카데미 역사까지 바꿔
콘텐츠산업 혁신 전환점으로 새 지평을
문화 창의성 과제, '한류 4.0시대' 기폭제 돼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영화 '기생충'의 성공으로 한국 영화와 문화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국제적 위상(位相)이 높아지고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 

한국 문화 콘텐츠가 세계 무대에 우뚝 선 기념비적 성과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으뜸을 다투는 문화적 성취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 스마트폰과 자동차, TV뿐 아니라 영화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 콘텐츠가 있음을 증거한 셈이다. 

'기생충'은 실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국제 언론들에서 연일 대서특필되고 있다. 열기가 식을 줄을 모른다. AP통신은 “‘기생충’의 수상은 오랜 세월 외국 영화를 낮게 평가하는 데 만족해 온 미국 영화상에 분수령이 됐다”며 “세계의 승리(a win for the world)”라고 평가했다. 

어지러운 정치적 상황과 경기 침체,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등 겹악재로 힘겨워 하는 국민들에게 모처럼 날아든 낭보다. 기생충의 거대한 성과는 국민들에 자긍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젊은이들에는 더 그렇다. 

한국 문화의 독특한 코드로 할리우드를 매료시켰다는 점은 이번 수상의 의미를 높인다. '기생충'은 한국어로 쓰고 한국자본으로 만든 ‘토종 한국영화’다. 

세상은 ‘글로벌 대중’ 시대다. 장벽이 없다. ‘기생충’의 성공 비결은 한국의 문제이면서 지구촌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빈부격차와 양극화 문제를 웃고 울리는 휴머니즘을 가미해 가장 한국적으로 풀어냈기에 가능했다. 

“가족 희비극을 넘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역대급 완성도의 문제적 걸작”이란 평가는 그래서 나왔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고 가장 구체적인 게 가장 보편적일 수 있음을 알린다.

영화 '기생충'의 성공으로 한국 영화와 문화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뉴시스
영화 '기생충'의 성공으로 한국 영화와 문화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뉴시스

세계 영화계 균형발전 명제(命題)

영화 '기생충'의 업적은 결국 한국 근현대사에서 획기적인 문화적 성취다. 영화에 관한 한 우리보다 오랜 역사의 일본이나 중국도 해내지 못했던 일이다. 우리 문화가 결코 변방이 아니며, 세계 문화산업의 중심부에 당당하게 입성했다는 뜻이다.

서양에서 발명된 영화가 1900년대 초 구한말에 처음 들어왔을 때 황성신문은 "귀신의 조홧속 물건"이라며 "우리는 어느 때나 이런 묘술을 배워 익힐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제 대한민국은 세계 50조원 영화 시장 가운데 30%를 차지하는 북미 최고 영화제에서 주요 트로피들을 거머쥐었다. 

한국영화 100년사의 획을 긋는 일이다. 1919년 '의리적 구투'로 시작한 한국 영화 101년 역사뿐 아니라 올해로 92년을 맞은 아카데미상의 역사도 새로 썼다. 전무후무한 대기록이다. 

세계 영화사(史)에도 신기원(新紀元)을 열었다. 비(非)영어권 영화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은 92년의 아카데미 역사에서 처음이다. 

'기생충'은 '백인 위주' 할리우드의 오랜 배타적 전통을 극복하고 아시아계 영화로는 기념비적인 성적을 거두었다. 이번 시상식은 앞으로도 세계 영화계가 각국의 고유문화와 국민성에 기반해 서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란 명제를 선보였다.

한국, 문화 강국 발판

'기생충'의 세계 각종 영화제 수상 퍼레이드 의미는 실로 눈부실 정도다.

모두 57개 해외영화제에 초청받아 55개 주요 영화상을 휩쓴것을 비롯 전 세계 각종 영화제에서 무려 127개 트로피를 들어올렸으며, 마침내 오스카상 4관왕으로 화룡점정 했다. 

영화인들의 꿈인 아카데미(오스카)상을 한두 개도 아니고 무려 4개 부문을 석권하는 대업을 일궜다. 특히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비영어 영화가 받은 것은 아카데미 사상 최초다. 세계 영화산업의 메카인 할리우드가 한국 영화를 인정한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봉 감독은 수상 후 회견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들로 가득 차서 오히려 가장 넓게 전 세계를 매료시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소감을 내놨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다 갖춘 영화를 배출하는 문화 강국으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 국내 문화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미래 준비 과제도

이번 아카데미 석권은 한국 문화와 영화의 새로운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과제도 남겼다. 

제2, 제3의 기생충과 같은 작품이 계속 나와야 한다. 그래야 수출 문화산업이 계속 성장해 나갈 수 있다. 지난해 100주년을 맞은 한국영화는 올해 두번째 100년의 역사를 시작한다. 그 시작점에 '기생충'이 있다.

잘 만든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이 자동차 수백만대를 파는 만큼 수익을 올린다는 말이 있다. 콘텐츠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비유다. 

이번 쾌거는 모든 장르의 예술이 ‘문화 강국 한국’을 전방위로 구현하는 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게 해야 할 막중한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한국 문화의 창의적 DNA를 앞으로 얼마나 잘 키워나가느냐가 관건이다. 우리는 영화 '기생충'이 주는 영화 외적(外的) 의미를 고민하고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영화계뿐 아니라 각계에서 제2, 제3의 봉준호가 나올 수 있다.

한국 영화 불멸의 기록

이번 성과는 한국 영화로는 불멸의 기록이 아닐 수 없다. '기생충'이 아카데미가 선호해온 할리우드 주류 영화와 달리 ‘빈부 격차와 계급 갈등’이라는 사회 비판적 이슈를 제기하는 영화라는 점에서도 봉 감독의 수상은 특별하다.

모두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기생충'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에 이어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까지 휩쓸었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지난달 할리우드의 골든글로브상을 차지한 데 이어, 이번에 최고 권위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트로피 4개를 거머쥔 것이다.

이로써, '기생충'은 앞서 오스카상을 받은 '벤허' '타이타닉' '대부' '마지막 황제' 등 국제적 대작(大作)과 함께 세계영화사에 나란히 기록될 것이다.

'기생충'이 국제영화상과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것은 오스카 역사상 처음이다. 64년 만에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 수상하고, 아시아 최초로 각본상을 받은 것도 신기록이다. 

이번 수상으로 봉 감독은 '월드 시네마'의 명실공히 거장으로 우뚝 섰다. 봉 감독이 수상 무대에 오르자 객석에서 전원 기립해 박수를 치는 장관도 연출됐다. 국민 모두의 마음이 똑같았을 것이다.

영화 환경 자신감 제공

이번 쾌거는 ‘충무로’에서 탄생한 한국 영화가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제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한국 영화가 스크린쿼터제 등 숱한 난관과 좌절을 딛고 꾸준히 달려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1962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국제영화상 부문에 출품된 지 57년 만의 일이다. 한국 영화로는 최종 후보에 지명된 것도, 수상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비(非)영어권 영화로도 처음이다. 보수적인 “아카데미 역사를 새로 썼다”(CNN)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세계 영화의 흐름을 바꿨다는 영화계 안팎의 평가가 따른다. 

'아카데미'는 이번에 할리우드 영화를 주류로, 그 밖의 영화를 비주류로 철저히 계층화하던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했다. 완벽한 비주류인 한국영화를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했다. 언론과 평단에서 일제히 “편협한 영화제란 오명을 마침내 벗었다”는 평가가 쏟아질 정도다. 

'기생충'은 북미 시장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산업적 성공도 이뤄냈다. 세계 40여개국 1억 6000만 달러(약 1901억원)라는 전례없는 흥행 기록을 세웠다. '기생충'의 해외 흥행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영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앞으로 수출, 배급, 합작 등 산업적 측면에서도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내용 면에서도 보다 자유롭고 창의적인 시도가 활발해질 것이다. 

탄탄한 구성력과 보편적 정서 주효 

'기생충'은 이번에 작품성과 예술성을 높이 평가하는 유럽 영화제에 이어 대중성을 중시하는 할리우드까지 접수, 명실상부한 최고의 영화로 인정받았다.

빈부 격차와 같은 보편적인 소재를 독창적 영화 문법으로 풀어낸 봉준호표 '기생충'의 성공은 '웰 메이드 인 코리아' 문화 콘텐츠를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통한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세계 영화인들에게 호평을 받은 이유는 탄탄한 구성력과 함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정서를 스크린에 올렸기 때문이다. 나와 내 이웃이 겪는 아픔을 글로벌 과제로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이번 쾌거의 주인공은 단연 봉 감독 자신이다. 봉 감독은 “자막, 그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들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고 했는데, 전 세계인이 공감하는 영화를 만들어냄으로써 명실상부한 세계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사실,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은 예견됐다. 지난해 제72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수상을 시작으로 시드니영화제 최고상, 밴쿠버영화제 관객상, 전미비평가협회 작품·각본상에 이어 지난 1월에는 오스카와 더불어 미국의 양대 영화상인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거둬들인 주요 상만 50개에 가깝다. 

‘편협한 영화제’ 오명 극복 계기

이와 관련, 지난 2002년 칸영화제를 통해 한국 영화인 최초로 해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던 원로 임권택 감독은 이번 ‘기생충’의 수상에 대해 “할리우드 영화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나라의, 따라잡을 수 없는 영화라고 생각해왔는데, 그 큰 성벽 안으로 들어가 수상한 것이 눈물겹게 고맙다”고 찬사를 보냈다. 

세계 영화의 주류에 한국영화가 들어섰고, 명실상부한 ‘한국 문화의 국제적 인정’이란 명제가 완성된 셈이다. 

외국 영화에 배타적이기로 악명 높은 오스카 무대가 비영어권 영화에 작품상을 준 것은 92년 역사상 처음인 만큼 아카데미의 변화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다. 

사실, 그동안 오스카의 키워드는 남성, 백인, 보수로 대변됐다. 미국 문화의 자존심 같은 상징적 이벤트였다. 한국인이 한국어로 말하는 영화가 오스카 트로피를 받는다는 것은 노벨 문학상 수상보다도 더 어려운 일로 여겨졌다. 오스카는 이제 비주류인 한국영화를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하면서 ‘편협한 영화제’란 오명도 마침내 벗었다.

지구촌 폭넓은 공감 끌어내

'기생충'의 성공은 이 영화가 표방하는 주제와 정서가 세계인들에게 공감을 얻은 결과다. 

빈부격차, 양극화라는 보편적 주제를 다루면서도 스릴러라는 장르적 틀 안에 이를 잘 버무려 오락성을 잃지 않은 것이 성공의 이유로 꼽힌다.

가난한 가족과 부유한 가족 간의 좁힐 수 없는 거리와 갈등을 봉 감독 특유의 유머와 휴머니즘 시각, 그리고 깨알 같은 디테일로 풀어낸 작품이다.

한국 현실을 모델로 세계 보편의 문제를 다루면서, 언어·인종 등의 차이 뛰어넘은 공감을 창출한 것이다. 

지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진 뒤 미국에선 '월스트리트를 점령하자'는 시민운동이 일어났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교수는 2013년 '21세기 자본'에서 빈부격차가 자본주의를 위협한다고 경고했다. '기생충'은 같은 맥락에서 '빈부격차'에 관한 지구촌의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냈다. 

계층갈등 공동체 문제 시사 주효

‘기생충’은 '격차'를 말했다. 가난한 가족이 부잣집의 높은 계단을 오르려다 다시 지하실 계단으로 굴러떨어지는 과정을 그렸다. 

빈부격차 문제를 신랄한 풍자와 어두운 스릴러로 영상화해 세계 곳곳에서 신드롬을 일으켰다.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가족과 저택에 사는 부자 가족의 대립 구도를 토대로 빈부격차와 계급갈등, 인간에 대한 예의와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다루었다. 

실제, 신자유주의가 낳은 양극화는 현재 세계 각지에 비슷한 문제를 던지고 있다. 국제사회가 하나 같이 공감하는 이야기가 한국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계층 구분선이 그만큼 짙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부유한 계층에 기생하는 삶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계층 이동 사다리가 끊어진 현실을 말해줬고, 부유한 가족과 가난한 가족을 선과 악으로 가를 수 없는 전개를 통해, 우리가 겪고 있는 계층 갈등이 옳고 그름을 넘어선 공동체의 문제임을 시사한 것이 주효했다. 

양적·질적 성장 누적 결과

일제 식민지 변방에서 어렵게 시작한 한국 영화는 이제 세계 영화의 중심 할리우드 무대에 우뚝 서게 됐다. 

'기생충'은 지금까지 40여 개국에서 개봉했고, 다른 디자인과 문구의 해외 포스터 등이 화제가 되면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 영화로서는 1990년대 대기업의 영화산업 진출·검열 폐지, 2000년대 충무로 뉴웨이브, 이어 해외 3대 영화제 수상·1000만 영화 시대 개막 등 양적·질적 성장의 누적된 결과로도 평가된다. 

인재와 자본이 ‘한국의 할리우드’인 충무로로 몰려들면서 ‘1000만 영화’가 속출하고, 자국 영화 점유율이 50%를 넘는 몇 안 되는 나라가 됐다. 아카데미 수상은 봉준호라는 한 천재뿐 아니라 영화계 전체의 성과이기도 하다.

봉 감독은 “내 앞에는 수많은 영화 선배님들이 계시다”며 기생충의 성공 배경에는 101년 한국 영화의 전통이 있음을 강조했다. 

한국 영화는 그동안 유럽의 3대 영화제에서는 10여 차례 수상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할리우드의 벽은 높았다. 비영어권인 아시아계 작가가 각본상을 받은 것도 기생충이 처음이다. 감독상은 대만 출신 리안 감독이 두 차례 수상한 적이 있지만 할리우드 자본과 배우들로 찍은 할리우드 영화였다. 

마침 할리우드는 대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백인·남성 위주라는 비판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중이다. 시상식을 주최하는 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수천명 회원을 두고 있다. 비밀에 가려진 이들 회원이 투표로 수상작을 뽑는다. 지난 몇 년간 AMPAS는 여성과 유색인종 회원을 늘렸다. 아카데미상을 미 국내용 잔치에서 세계적인 축제로 범위를 넓히려는 움직임도 있다. '기생충'은 이러한 변화에도 잘 들어맞았다.

영화토양 가꾸는 일도 시급

중요한 것은 우리 영화계가 이번 아카데미상 수상의 영예를 어떻게 이어갈 것이냐 하는 점이다. 

성공신화를 이어가기에는 한국 영화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도 적지는 않다. 스크린 독과점은 대표적이다. 

그간 우리 영화는 새로운 실험보다는 기존 흥행 공식에 안주해온 게 사실이다. 그것이 K팝·K드라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K무비가 부진했던 요인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는 ‘영화 한류’를 개척할 수 없다. 

매너리즘에 빠진 한국 영화계는 이번 수상을 자양분 삼아 제2, 제3의 ‘봉준호’ 배출에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영화 토양을 가꾸는 일도 시급하다. 대기업이 영화 제작·투자·배급·상영을 좌지우지하는 구조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또한 차세대 감독들을 배출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일도 중요해졌다.

진정한 힘은 '규제'아닌 '경쟁'에서

참여정부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자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대했다. 하지만 보호막이 없어진 뒤 오히려 한국 영화가 전성기를 맞은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봉준호 쾌거'는 콘텐츠의 진정한 힘은 규제가 아니라 경쟁에서 나온다는 점을 보여준다.

1988년 외화 직배의 빗장이 풀렸을 때, 2006년 스크린쿼터(한국 영화 의무상영 일수) 축소를 결정했을 때 ‘한국 영화의 죽음’ ‘문화주권의 상실’이라는 격렬한 반발이 나왔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과 도전 끝에 전성기를 맞았다. 임권택 이창동 김기덕 박찬욱 감독이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잇달아 낭보를 전해왔고, 국내 상영관의 한국 영화 점유율은 2000년 35.1%에서 지난해에는 51%로 뛰었다. 

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수상하기까지 수많은 감독, 배우, 작가, 기획자들의 노력이 뒷받침됐다. ‘한류 열기’를 타고 영화의 수출·배급·합작 등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 쾌거가 한국 영화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돼야 한다.  

세계 정상 보편성 획득

한국 문화는 이제, 방탄소년단의 빌보드 석권에 이어 '기생충'이 영화의 본류인 할리우드를 점령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세계 정상의 보편성을 획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쾌거는 내부 에너지 고갈로 고심하며 새로운 재능을 수혈하려는 서구 문화산업이 우리 문화콘텐트·문화인들의 창의성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문화 콘텐츠는 인간 보편의 문제와 가치를 말할 때 큰 공감을 얻는다는 사실을 '기생충'은 입증했다. 어떤 글로벌 제품 못지않게 한국 브랜드의 세계적 위상을 높힐 수 있음을 확인시켰다.
한국 문화는 지난 2000년 이후 대중음악과 드라마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인의 주목과 사랑을 받고 있으며 그 흐름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미 K드라마와 K팝이 대표하는 한류는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는 중이다. K팝에선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팝의 최대시장인 미국에서 자리를 굳혔다.

아시아는 물론이고 문화 상품 수출국이던 미국과 유럽에서도 이제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 K-팝을 즐겨 듣고 본다. 가수 BTS, 싸이,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등 최근 한국이 만들어내고 있는 문화 콘텐츠는 '한류' '신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 시장에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문화가 놀라운 자생력을 갖고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한 것이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다. 그것은 저력이다. 그런 한류의 동력에 ‘기생충’은 커다란 힘을 보태게 됐다.

고(高)차원 ‘한류시대’ 열어야

봉준호 감독 개인의 교훈도 각별하다. 기생충 탄생의 주역은 말할 것도 없이 봉 감독이다. 

끼니 걱정 속에 시나리오를 마련해 놓고도 제작사를 찾지못해 발을 동동 구른 20대가 있었고, 첫 상업영화(플란다스의 개)의 흥행참패로 좌절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10여년이나 보내고서야 2003년 살인의 추억의 성공으로 생활고를 벗어났다. 

이후 괴물과 마더, 설국열차 등으로 승승장구하지만 인고의 과정을 겪었기때문에 가능했다.

봉 감독은 첫 작품 '플란다스의 개'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영화 연출 능력과 배우를 알아보는 남다른 안목을 보여주었다. 이후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로 장르를 넘나들며 한국 영화의 거목으로 성장했고, '설국열차' '옥자'에서는 세계 영화자본과 할리우드 배우들을 끌어들여 국제적인 감독으로 떠올랐다. 

봉 감독은 “가장 모험적인 시도를 했을 때,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필됐을 때 가장 큰 파괴력을 가진다”고 했다.

지금 힘든 과정에 놓였더라도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오늘의 봉준호가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교훈적 메시지다. 창의력과 도전 정신으로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키워 가는 시도가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기생충’의 성취를 기폭제 삼아 더욱 차원 높은 ‘한류 4.0’ 시대를 열어갈 때다.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세계 톱클래스로 올려놓는다면 문화가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

국가 품격...새 출발점으로

영화 '기생충'의 세계적 성공을 만들어낸 봉 감독과 출연진·스태프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신한류가 세계 무대의 중심에 굳건히 서기를 기대한다.

이번 일이 좁은 한국 내 무대를 벗어나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가는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오스카의 기적은 새로운 출발점이다. 한국영화와 문화의 새 지평을 여는 계기가 돼야 한다.  진정한 국가의 품격은 문화의 힘에서 나온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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