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차지철의 비참한 최후와 대망론
[역사로 보는 정치] 차지철의 비참한 최후와 대망론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0.02.16 13: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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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철, 삐뚤어진 大望은 한 순간에 大亡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겨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기자)

유신 몰락의 촉진제 차지철은 삐뚤어진 大望은 한 순간에 大亡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사진제공=뉴시스
유신 몰락의 촉진제 차지철은 삐뚤어진 大望은 한 순간에 大亡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교훈을 남겼다. 문닫은 청와대(사진 좌) 사진제공=뉴시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비참한 최후는 차지철 경호실장을 절대 신임한 탓이 크다. 개발도상국 독재 정치의 끝판인 유신체제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지만 박정희 특유의 용인술의 최대 실패작인 차지철도 몰락의 촉진제였다.

차지철은 박정희 정권의 전위부대인 정규 육사 엘리트 장교로 구성된 하나회 출신도 아닌 일반 장교 출신이다. 한 마디로 변방 중의 변방인 차지철이 권력의 핵심에 등장하게 된 계기는 1961년 5·16 군사쿠데타다. 차지철의 벼락 출세는 아이러니하게도 5·16 쿠데타 이후 反혁명세력으로 숙청당한 쿠데타 주체 박치옥 공수여단장이 박정희 장군에게 소개한 덕분이다. 

차지철은 박 장군의 경호장교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돼 박정희의 신임을 얻고 정치에 입문해 1962년 육군중령으로 예편해 유신 본당인 민주공화당 4선 의원을 지냈다.

1974년이 되자 차지철에게 또 하나의 천운이 들어섰다. 문세광의 육영수 여사 저격사건으로 박 정권의 영원한 경호실장으로 군림했던 박종규가 물러나자 대통령 경호실장이 됐다, 

5·16의 설계자이자 박정희 18년 체제의 2인자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이하 JP)는 자신의 회고록 <김종필 증언록>을 통해 차지철의 전횡에 대해서 자세한 기록을 남겼다.

“차지철이 벌인 기행은 한둘이 아니었다. 매주 토요일 열린 경호실의 국기하강식은 차지철을 위한 한 편의 쇼였다. (중략) 차지철은 군악대의 우렁찬 연주에 맞춰 지휘봉을 들고 초청인사들과 함께 입장해 단상에 앉아 지켜봤다, 정부 부처 장·차관과 국회 상임위 위원장들은 물론이고 기업과 학계, 언론계의 주요 인사들까지 조를 이뤄 이 행사에 초대됐다. 대한민국에서 이름 좀 알려진 인물은 죄다 불려 갔다고 보면 된다.”

JP의 회고에 따르면 당시 국회의장인 정일권 전 총리도 불려갔는데, 차지철은 초청 인사들에게 “대통령께서 일하시는 데 방해되는 일을 일으키면 보고만 있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유신정권 2인자는 바로 자신이라는 점을 각인시키는 전횡도 서슴지 않았다. 박정희 이후 자신의 대망(大望)을 성취하기 위한 행보 그 자체였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또 다른 라이벌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치열한 권력투쟁을 벌였다.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총기를 잃은 절대 권력자 박정희는 차지철의 강경론을 지지했다. 차지철은 김재규를 무시하고 YH사건이 터지자 김영삼 신민당 총재 의원직 제명을 주도했다. 하지만 YS의 제명은 민심의 분노를 터뜨린 도화선이 됐고, 그해 10월 16일 부마항쟁이 일어나자 강경진압을 주장하고 공수여단 투입을 주도했다. 

김재규는 불안해졌다. 자신은 박정희의 육사 동기이자 육군 중장 출신인데, 기껏 육군 중령 출신인 차지철에게 밀리고, 절대 권력자의 신임마저 잃게 되자 결국 10·26사태를 일으켰다. 이날 차지철은 경호실장이라는 본분도 망각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을 지키지 못하고 김재규의 총탄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차지철은 10·26사태 이후, 나쁜 권력을 수호하려는 잘못된 2인자의 대명사로 부활했다. 정치권에선 장세동, 유시민, 최순실, 임종석 등등을 ‘제2의 차지철’이라고 지칭하며 정권 몰락의 경고등으로 비판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좌충우돌 행보가 여권 내부에서 조차 비판이 나오고 있다. 추 장관은 살아있는 권력을 향한 윤석열 검찰총장의 칼날을 제거하기 위한 검찰인사 개입 의혹에 이어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공소장 미공개를 단행했다.

최근에는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해야 한다는 화두로 윤석열 총장의 공개적인 반발을 초래하며 법조계 혼란의 주인공이 됐다. 법무부 장관은 법조계의 모든 혼란을 수습할 최종 책임자이다. 하지만 추 장관은 정반대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5선의 경력과 집권 여당 대표를 거친 정치인 추미애가 자신의 정치적 비중에 비해 격이 낮은 법무부장관을 선뜻 수용한 이유에 대해서 자신의 큰 꿈을 성취하기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추미애 장관이 大權을 꿈꾸고 있다면, 차지철의 비참한 최후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삐뚤어진 大望은 한 순간에 大亡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교훈을 차지철이 남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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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2020-02-18 11:54:49
절대공감합니다....제2의 차지철이 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