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눈 덮인 덕유평전을 걷다
스크롤 이동 상태바
[칼럼] 눈 덮인 덕유평전을 걷다
  •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 승인 2020.02.17 09: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기영의 山戰酒戰〉 덕이 넉넉한 山…‘산이 참 좋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최기영 피알비즈 본부장)

덕유산 향적봉에서 바라본 절경 ⓒ 최기영
덕유산 향적봉에서 바라본 절경 ⓒ 최기영

전라북도 무·진·장(무주, 진안, 장수)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오지 중 하나다. 그중에서 진안은 나의 고향이다. 도시를 몰랐던 어릴 적, 마을 친척 누이가 무주로 시집을 간다고 했다. 다들 그런 깡촌에서 어떻게 살 거냐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만큼 무주는 진안 사람들마저도 더 깊은 두메산골로 생각했던 곳이다. 

덕유산은 전북 무주와 장수 그리고 경남의 함양과 거창까지 걸쳐있는 거대한 산이다.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1614m)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다음으로 높은 우리나라 4위봉이다. 덕유산 육구종주라고 해서 함양과 장수 경계에 있는 육십령 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해 무주 구천동으로 하산하는 32km의 산길은 지리산 주 능선과 설악산 서북능선길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험한 3대 종주 코스로 꼽힌다. 

그리고 덕유산은 겨울철 믿고 보는 상고대의 천국이기도 하다. 그만큼 아름다운 설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올겨울은 유난히 포근했다. 그런데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 즈음에 한파가 찾아왔다. 나는 갑작스러운 추위에 덕유산의 눈꽃이 생각나 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동엽령에서 향적봉까지 장쾌한 덕유평전이 펼쳐진다. 동엽령에서 백암봉으로 가는 길에 본 덕유평전의 모습 ⓒ 최기영
동엽령에서 향적봉까지 장쾌한 덕유평전이 펼쳐진다. 동엽령에서 백암봉으로 가는 길에 본 덕유평전의 모습 ⓒ 최기영

요즘은 무주로 들어가는 길도 잘 나 있다. 통영대전고속도로가 뚫렸기 때문이다. 나는 무주군 안성면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동엽령으로 가는 길은 편안하다.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계곡을 따라 함지박 모양의 일곱 개의 소가 사이를 두고 완만하게 폭포를 이루고 있는데 바로 칠연폭포다. 

칠연폭포삼거리에서 1시간 30분 정도를 더 걸으면 동엽령(1320m)에 도착한다. 그리고 드디어 향적봉에서 남덕유까지 이어지는 장쾌한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엽령에서 향적봉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이 덕유평전 길이다. 지리산의 세석평전이나 소백산 비로봉 산정에 있는 드넓은 초원에 견줄 만큼 아름답다. 그리고 겨울철에는 온통 하얀 눈이 덮여있는 설국(雪國)이 돼 혹독한 칼바람이 불어 닥치는 곳이기도 하다. 

비록 포근했던 겨울 탓에 기대만큼의 눈은 덮여있지 않았지만 그렇게도 높은 곳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정겨운 눈길을 걸으며 향적봉으로 향했다. 길을 걷자 사방으로 겹겹이 쌓인 산세가 보인다. 두메산골 진안 사람들마저도 무주를 깡촌이라고 말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중봉에서 남덕유산 방향으로  바라 본 모습이다. 굽이 물결이 흐르듯 산세가 이어진 모습이 압권이다. ⓒ 최기영
중봉에서 남덕유산 방향으로 바라 본 모습이다. 굽이 물결이 흐르듯 산세가 이어진 모습이 압권이다. ⓒ 최기영

그렇게 산세에 취해 사부작사부작 40여 분을 걷다 보니 송계삼거리에 있는 백암봉(1490m)이 나온다. 백암봉은 덕유산의 한가운데에 있는 봉우리다. 백두대간은 여기서 동쪽으로 가면 북쪽 대간길이고, 남쪽으로 향하면 지리산까지 이어진다. 그리고 거기서 20여 분을 더 가면 중봉(1594m)에 도착한다. 덕유산의 백미는 바로 중봉에 있다. 중봉에 서서 덕유평전과 좌우로 펼쳐진 산세를 볼 수 있는 조망은 진정 감동이다. 

우선 중봉에 서서 고개를 남덕유산 방향인 오른쪽으로 돌리면 무룡산 뒤로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이 물결을 친다. 경상도 방향인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가야산, 단지봉, 수도산 등이 보인다. 그리고 바로 앞에 서 있는 향적봉까지 막바지 덕유평전 길이 뻗어 있는 모습도 장관이다.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향적봉 바로 옆에 있는 설천봉까지 오를 수 있는데 그렇게 향적봉을 오더라도 꼭 중봉에 들려볼 것을 권한다. 향적봉에서 산책하듯 20여 분만 걸으면 중봉에 닿을 수 있다. 중봉에서 보는 장쾌한 고위 평탄의 산세와 지리산 주 능선의 모습은 그야말로 최고다. 

중봉에서 본 향적봉 모습. 막바지 덕유평전이 향적봉으로 솟아오른 모습이 장관이다.  ⓒ 최기영
중봉에서 본 향적봉 모습. 막바지 덕유평전이 향적봉으로 솟아오른 모습이 장관이다. ⓒ 최기영
덕유산 향적봉의 모습.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호젓한 향적봉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란 쉽지 않다.  ⓒ 최기영
덕유산 향적봉의 모습.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호젓한 향적봉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란 쉽지 않다. ⓒ 최기영

그렇게 중봉에서 한참을 머무르다 향적봉에 도착해보니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곤돌라를 이용해 올라온 사람과 나처럼 여기저기서 출발한 당일치기 등산객들이 모두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북적이던 향적봉을 떠나 백련사 쪽으로 길을 잡아 하산을 시작했다. 바로 그 유명한 무주구천동 계곡 방향이다. 백련사까지는 굉장히 가파르다. 백련사부터는 70리 구천동 계곡을 따라 나 있는 평탄한 포장길을 6km 정도 걷는 것이 몹시도 지루하다. 산길을 걸을 때는 포근하다고 생각했는데 구천동 계곡에 내려오니 겨울 골바람이 제법 매서웠다. 그저 부지런히 걸어서 남은 길을 줄이는 수밖에는 딱히 다른 방법이 없다. 

임진왜란 때 왜놈들이 이곳을 지나갈 때면 산은 어김없이 늘 짙은 안개로 자신을 덮고 있었다. 마치 산 속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더욱 꼭꼭 숨겨두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이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곳으로부터 은덕을 입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덕이 넉넉한 산이라 하여 이곳을 '덕유산'(德裕山)이라 불렀다. 실제 덕유산은 언제 찾아도 온화하고 포근하다. 걷다 보면 '산이 참 좋다'라는 느낌이 절로 든다. 

향적봉에서 백련사 쪽으로 길을 잡아 하산했다.  ⓒ 최기영
향적봉에서 백련사 쪽으로 길을 잡아 하산했다. ⓒ 최기영

이번 겨울은 몹시도 아쉽다. 나와 같은 주말 산행객들에게는 더욱더 그렇다. 어지간히도 눈이 귀했고 눈이 내렸더라도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입춘 한파가 지나고 금방이라도 봄이 올 것처럼 기온이 올랐다. 겨우내 쌓였던 덕유평전의 눈들도 땅속으로 녹아 들어가 곧 봄꽃을 피워낼 것만 같았다. 그리고 올해도 꽃이 피면 꽃이 피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덕유산은 언제나처럼 우리를 포근하게 맞이해 줄 것이다. 

기나긴 구천동 계곡 길을 다 내려오니 식당들이 모여 있는 상가동이 나타났다. 우리네 사이에는 '산 타는 사람들이 추천하는 맛집은 절대 믿지 말라'는 말이 있다. 산을 탄 뒤에 먹는 음식은 뭐든 맛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감히 추천한다. 구천동 계곡에서 한잔 술과 함께 능이버섯국밥을 꼭 드셔보시라고….

최기영은…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前 우림건설·경동나비엔 홍보팀장

現 피알비즈 본부장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