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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山되짚기(11)>김진하 전 통일민주당 태백 지구당 위원장
군정종식 도보대행진…경찰 감시 뚫고 YS 대통령후보 추대대회 참석
"태백 탄광 탄더미 뒤에 숨어있다가 6·10 민주화대회 합류…경찰 10여명 쫓아 올라와"
2011년 11월 15일 (화) 윤종희 기자 yjh_1120@sisaon.co.kr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종희 기자)

1987년 13대 대선을 앞두고 민주산악회(민산) 회원 5명이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걷기 시작했다. 이 도보행진을 주도한 사람이 김진하 전 통일민주당 태백 지구당위원장이다.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걸어서 간다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어쩌면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도보행진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과 달리 강원도에서의 민산활동은 보다 생동감 있게 전개됐다. 사람들의 눈과 귀가 많은 서울과 달리 강원도에서는 정권의 탄압이 노골적으로 자행됐다. 그 만큼 민산 활동 또한 역동적이었던 것이다.

2011년 11월 3일 태백에 있는 김진하 전 위원장 집을 찾아갔다. 김 전 위원장은 민산 회원들 사이에서 고생을 많이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순박함이 묻어나는 그의 얘기 속에서 말 그대로 '강원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강원도 높은 산 곳곳에 아직도 민주주의 함성이 메아리치는 것 같았다. 또 골짜기 골짜기 마다 압박과 설움이 녹아 있는 듯 했다. 인터뷰 중간 중간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김진한 전 통일민주당 태백 지구당 위원장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언제부터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함께 했나요.

"처음 YS를 알게 된 것은 1964년 민중당(민정당+신한당)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YS와 가까워진 시점은 1969년 말(末) '40대 기수론' 바람이 불 때였습니다. 저는 강원도 책임자로 YS를 지원했습니다. 7·5 동지회라고 있는데 김봉조, 하승룡, 김진억, 정봉철 및 저가 강원도를 맡아서 YS를 지원했습니다. 앞을 내다보는 것은 그 양반을 따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그 분 정치감각이 아주 대단합니다."

당시에는 YS를 따르는 사람들이 여러 모임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위원장이 얘기한 7·5 동지회도 그런 모임 중의 하나로 생각된다.

-1987년도 도보대행진에 대해 설명해 주시죠.

"그 때 태백에서 부산 수영만까지 도보대행진을 했습니다. 1987년 10월 10일 다섯명이서 조끼를 입고 출발했는데 조끼 앞 면에는 '군정종식 도보대행진'이라고 적었고 뒤에는 '기호 2번 김영삼'을 썼습니다. 제가 조끼를 입고 출발한 이유는 장면 박사 회고록 첫장에 보면 저희 삼척 선배들이 조끼를 해입었다고 나와 있습니다. 거기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그렇게 부산까지 도보로 행진했는데 원래는 삼척과 동해 지역 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출발하기로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경찰에게 붙들려서 출발을 할 수 없었고 저희들만 하게 된 것입니다. 삼척과 동해 지역 회원들이 합류했다면 도보대행진 참가자가 20여명이 됐을 겁니다. 그 당시 태백에만 7천여 명의 산악회 회원들이 있었습니다. 규모가 대단했지요. 하지만 도보대행진에는 여건이 가능한 일부만 참가했습니다."

"삼척·동해 회원들, 경찰 방해로 출발도 못해"

-도보대행진을 시작하니까 곧바로 경찰이 따라붙었다고 하는데요.

"말도 마십시요. 저희가 부산을 향해서 걸어가는데 백차(경찰차)가 계속 왔다갔다 하면서 어디를 지났고 얼마 만큼 간 지를 계속 위에 보고를 했습니다. 백차가 그런 식으로 왔다갔다 하니까 정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걸어가야 했습니다. 그 때는 시절이 그런지라 지나가는 차가 저희를 태워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걷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고 주변에 집도 없고 해서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울진을 지나가는데 경찰관들이 '주무시고 가라'고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이상했는데 나중에 김명윤 고향이 울진이라는 게 떠올랐습니다. 김명윤이 자신과 친한 경찰들에게 연락을 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경찰이 잡아 준 여관에서 하룻밤 묵었습니다. 김명윤은 신도환 씨 밑에 있다가 YS가 신민당 총재가 될 때 YS계로 들어왔습니다."

   
 군정종식 도보대행진은 고독한 행군이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의리 때문에 이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사진=김진하 제공

-부산 수영만에는 언제 도착했습니까.

"그렇게 도보대행진을 해서 10월 18일 아침에 수영만에 도착했습니다. 부산 쪽을 지날 때에는 많은 시민들이 환영해주셨습니다. 박수도 쳐주고 음식도 사주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가 어떤 때였습니까. 야당 정치인들에게 호의를 마음대로 베풀 수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김 전 위원장은 부산 수영만에 10월 18일에 도착했다고 기억했지만 실제로는 10월 17일이 맞는 것 같다. 이날 수영만에서 김영삼 대통령 후보 추대 국민대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수부지와 야산을 합쳐 50만평이 넘는 수영만에 모인 군중 수는 엄청났다. 외신들조차 150만 명에서 200만 명 정도로 보도할 정도였다. 김 전 위원장의 도보행진도 이날 국민대회를 목표로 진행된 것으로 YS바람을 전국적으로 일으키는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이날 행사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YS는 "나는 경선에서 지면 깨끗이 승복하고 지난날 김대중(DJ) 고문이 신민당 후보로 나섰을 때처럼 김 고문의 선거운동에 앞장 설 것이니 딴 생각 말고 군정종식만을 생각하고 경선합시다"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DJ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987년 대선에서 영부인·영애 안 쓰기 공약 제안"

김진하 전 위원장은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YS의 당선을 위해 열심히 뛰었다. 그는 당시와 관련해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줬다.
 
"그러니까 YS가 통일민주당 대선후보로 출마할 때입니다. 제가 전국의 선거운동 캠프 전화번호를 '0303'으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직접 '0303' 번호를 큰 돈을 주고 샀습니다. 저는 '0407'이라는 전화번호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0407'은 제 생일입니다. 나중에 전화번호가 두개나 필요하지 않아서 하나를 버려야 하는 데 저는 제 생일번호를 포기했습니다. 지금도 '0303' 번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때 YS가 대선공약으로 '대통령이 되면 영부인, 영애, 각하 같은 말을 쓰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것도 제가 제안해서 공약에 넣은 것입니다."

   
 김 전 위원장의 집 벽에는 아직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사진과 '민주광복'이라는 친필이 걸려 있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 전 위원장의 이 같은 아이디어 때문이었는지 선거 결과 태백에서는 YS 표가 제일 많이 나왔다.

그는 YS가 주도한 1987년 6·10 민주화 대회에 합류하는 과정에서 생긴 일화도 소개했다.

"제가 야당 활동을 강하게 하니까 강원도 경찰국장이 제 동기동창을 경찰서장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6·10 대회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서울시청 뒤에 YS 사무실이 있을 때인데 경찰들이 제가 서울에 올라가는 것을 막으려고 난리를 쳤습니다. 그래서 몰래 탄광 탄더미 뒤에 숨어 있다가 산을 넘어서 탈출, 6·10 대회에 합류했습니다.

이런 저를 잡으려고 경찰 10여명이 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경찰서장과 통화를 했는데 이 사람이 '상부에는 김진하가 강원도에 있다고 보고했다. 만약 당신이 6·10 대회에 참여하는 사진이라도 나오면 큰일 난다. 그러니 제발 강원도 원주까지만이라도 들어오라'고 부탁을 하더라구요. 어휴, 말도 마십시요. 저는 전두환 정권 때 가택연금을 4번이나 당했습니다."

"태백 민산 창립총회 때 경찰서장 불러 YS에게 큰절 시켜"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산에 오른 김진하 전 위원장. 김 전 위원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진 등 모든 민산 관련 자료들을 '김영삼 센터'에 기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김진하 제공
-태백에서는 민산이 언제 결성됐습니까.

"1984년 6월 9일입니다. 강원도에서는 우리가 2번째로 결성했습니다. 그 때 정치적으로 캄캄할 때였습니다. 삼척과 강릉은 결성도 못했습니다. 무슨 모임을 하려고 하면 밥도 안 팔았습니다. 하지만 태백에서는 민산 창립총회를 했습니다. 그 때 이화정 여관 신관과 별관을 제가 모두 예약했습니다. 2백여 명이 잘 수 있도록 했습니다. 창립총회 때 버스 2대가 왔습니다.

그리고 대구관에서 창립총회를 했습니다. 당시 대구관은 아가씨가 40여명이 있는 큰 요정이었습니다. 창립총회를 할 장소가 없어서 대구관에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제가 경찰서장을 불러서 YS에게 큰 절로 인사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YS와 회원들이 오는 길에서 경찰서장이 직접 진두지휘를 하며 교통을 정리했습니다. YS도 놀라워했습니다."

-민산 활동 자금은 어떻게 구했나요.

"민산 각 지부에서 자체적으로 회원 돈으로 운영했습니다. 따로 지원 받은 건 하나도 없습니다. '상도동 영감'은 돈에 대해선 모릅니다. 이쪽으로 YS와 회원들이 내려오면 우리가 염소도 잡고 해서 접대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YS가 정말 인덕 있는 양반입니다."

-군사정권 시절 힘들었던 야당 생활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나요.

"박통 시절인데 야당 사람들은 취직도 못하고 밥도 제대로 못먹었습니다. 그 때 야당 선전부장하던 사람이 남의 집 돼지를 키워주는 일을 했는데 그 집에서 사료를 훔쳐다가 개떡을 만들어서 애들에게 먹였는데, 그 애들 얼굴에 비늘이 펄펄 일고 그러면서 빈혈로 쓰러지기도 했습니다.

간혹 다방에 나가면 지방유지들이 '야당 하는 놈들은 아침부터 술이나 마시고 비틀거린다'고 욕했는데 내가 그 소리를 듣고 '당신들은 야당하라고 하면 할 수 있느냐. 우리가 아침 먹고 나온 줄 아느냐. 배가 고파서 술 한잔 한 거다. 빈 속에 마시니 금방 취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그때 삼일중학교 재단 이사장이 김관현이었는데 이 양반이 밤에 그 얘기를 듣고 쌀을 한가마니씩 줬습니다. 처음에는 누가 줬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알려졌어요. 지방에서 야당 생활하는 것은 참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YS도 이렇게 힘든 상황을 잘 알았습니다."

"야당 정치인 자식, 돼지 사료로 만든 개떡 먹어"

-야당 정치인들은 자식들 교육은 어떻게 시켰나요.

"그 말을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나중에 YS가 대통령이 되고 박정태가 도로공사 사장을 할 때 제게 이런 말을 하더라구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 사람들 취직 시켜달라고 부탁하는데 당신은 왜 아무런 소리도 안 하느냐'하고 물어요. 그런데 막상 야당 한 사람들 자식들 중에 전문학교나 대학을 나온 경우가 없는 겁니다. 밥도 제대로 못 먹는 판에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다 아는 친구 하나가 아들이 전문대를 나왔다고 해요. 그래서 어떤 자격증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운전면허증 하나밖에 없다고 해요. 그래도 제가 박정태에게 전화를 해서 '야당 자식들 사정 뻔히 알고 있지 않느냐. 운전하는 부서에라도 취직을 시켜달라'고 말했어요. 그 때 그 친구 아들이 지금도 도로공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박정태 전 사장과는 자주 만나나요.

"박정태는 제가 모임에서 두번 정도 만난 것 같은데, 별로 활동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YS 신세를 진 사람들이 모임에 잘 안 나와요. 동지들과 만나기를 꺼려하는 것 같습니다."

   
 김 전 위원장이 자신의 부인 박정순 여사와 함께 했다. 박정순 여사는 남편의 야당 생활과 선거 출마 등으로 가계가 어렵자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살림을 꾸렸다. 부부는 나이 차이가 많아 이상한 오해를 일으켰다고 한다. 심지어 오해를 받을까봐 김 전 위원장의 선거운동도 지원 못했을 정도라고 한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유신헌법에 반대해 고생했다는 얘기도 있던데요.

"제가 유신헌법을 반대하다가 도망쳐서 5개월 만에 태백으로 다시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아침 10시가 되면 사이렌을 울렸는데 그러면 연단에 올라가서 유신 찬성 연설을 하도록 했어요. 그런데 저는 연단에 올라가서 '유신 뜻을 잘모른다. 그런데 뭘 찬성하는가'하고 거부했어요. 그러자 형사들이 내려오라고 했는데 그 길로 저는 도망쳤어요. 그 때 김진만이 공화당 원내총무를 할 때인데 제가 반도호텔까지 찾아가서 김진만에게 항의하기도 했어요. 난리를 쳤어요. 어떻게 이런식으로 할 수 있느냐고."

김 전 위원장은 계속해서 탄압 받은 얘기를 늘어놨다.

"1967년도 8대 선거로 기억되는데 개표장에서 제가 1호로 수갑을 찾습니다. 야당 참관인으로 들어갔는데 선거 명부가 딱 반으로 나뉘어져 긴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 것을 확인하려면 참관인 두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양쪽으로 길게 나뉘어 있으니 한 사람이 두 개를 대조해 확인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제가 개표를 중단해야 한다면서 지서로 가서 신고를 했어요. 그러다 아침에 나오는데 경찰관 두명이 제게 수갑을 채우는 겁니다. 제가 '왜 그러느냐'하고 물으니 '우리도 모른다. 일단 경찰서로 가자'는 거에요. 제가 장천 경찰서에 가보니까 '난동을 피웠다'는 겁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담당 검사에게 얘기를 하니 그 양반도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해요. 그리고 검사가 선거관리위원회에 물어보니 저는 정식 절차를 밟아 개표장에 들어갔다고 하는 겁니다. 그럼에도 수시로 불려다니면서 조사를 받았고 결국에는 벌금형을 받았어요. 그 바람에 얼마 뒤에 있었던 선거에 출마도 못했어요. 정말 그 때는 탄압이 엄청나게 심했습니다. 나무도 못했다니까요."

"유신반대 이유로 5개월 동안 도피생활"

-선거 운동과정에서도 탄압이 심했습니까.

"어휴, 말도 마십시요. 그러니까…, 윤보선이 신한당을 만들어서 유세단을 꾸렸는데 그 때 김수한이 대변인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차 엔진오일 넣는 데다가 설탕이나 모래를 집어넣고 타이어에 구멍을 내고 했어요. 차를 이용 못하게 한 거지요. 그래서 어떤 동내에서는 스피커를 소 등에 올리고 했어요. 우리는 한 사람은 앞에서 스피커를 들고 다른 사람은 뒤에서 배터리를 짊어지고 그렇게 선거운동을 했어요."

-하지만, 박정희 정권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요.

"박해를 안 받아 본 사람들은 박정희가 산업을 발전시켰다면서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정말 박해 받고 고문 당한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 수 없지요. 어휴, 말도 마십시요. 야당 사람들이 얼마나 박해를 당했는데요. YS가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했는데 박정희가 독재자인 건 맞습니다. 유신 때 제 장인이 돌아가셨는데 조문객도 못 오게 했습니다. 경찰관들이 조문객을 막았습니다. 누가 조문 갔는지 통장들에게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40대 기수론 당시 김대중 씨는 이철승 씨 도움으로 대선후보가 됐습니다. 그런데 YS가 밀어주라고 해서 저도 열심히 도왔습니다. 그 바람에 제가 하던 운수사업이 망했습니다. 그 때 동양시멘트로부터 고정적으로 일을 받았는데 야당 후보를 도우니까 일을 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DJ에게 선풍기를 사다 준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뭐…, DJ에 대해서 얘기해서 뭐하겠습니까."

김 전 위원장은 DJ를 돕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이날 보여줬다. 기자가 이 사진을 기사에 올린다고 하자 '뭣하러 그러느냐'며 손을 저었다.

-YS의 3당 합당에 대한 평가는 무엇인가요.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3당 합당은 아주 잘 한 것입니다. 방법이 없었습니다. 3당 합당 안했으면 양 김씨가 대통령이 될 수 없었습니다."

-YS가 대통령이 된 뒤에 민산을 해체한 것은 어떻게 보나요.

"우리로서는 민산해체가 아쉽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큰 산악회인데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에 해체한 바람에 민산 회원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봉사단체로도 살려뒀어야 했다는 얘기가 많았습니다. 민산 해체 때문에 DJ에게 정권을 빼앗긴 겁니다. DJ가 대통령이 된 다음에 자기 사람들에게는 하다못해 화장실 청소하는 일이라도 다 줬습니다. 하지만 YS는 그렇게 못했습니다. 한정된 사람들만 챙겼습니다. 하지만 대국적인 견지에서 민산 해체는 잘한 일입니다."

"대국적 견지에서 민산 해체는 잘한 일"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박근혜에 대해서는 반대는 안 합니다. 제가 지금 한나라당 국책자문위원인데 지금 사람이 없습니다. 소위 좌파세력들에게 정권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강원도는 지금 박근혜에게로 많이 기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치라는 게 야구와 비슷해서 살았다가도 죽고 죽었다가도 살아나기도 하지요."

-YS가 내년 대선에 관여할 것으로 봅니까.

"아니요. YS는 내년 대선과 관련해 말을 안 하실 것으로 봅니다. 이 양반이 앞을 내다보는게 탁월하지만, 아마 말을 하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YS 영향력은 지금도 대단하다고 봅니다. 젊었을 때 YS 모셨던 사람들은 지금도 그대로 상도동 어른을 모시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내년 대선과 총선에는 참여 안 하실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상도동 어른이 내다보는 건 정확합니다."

-박 전 대표가 YS와의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박근혜가 YS를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후보가 된 후나 되기 전에 한번 찾아뵙는 게 원칙입니다. 상도동 어른이 자기를 안 찾는다고 뭐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저는 박근혜가 찾아 뵐 것으로 봅니다. 상도동계가 큽니다. 그 걸 알아야 합니다."

-이재오 의원이나 김문수 경기도지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민주동지회 모임에서 이재오가 쫓겨가다시피 한 적이 있습니다. 상도동계는 이재오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 상도동 어른이 이재오와 김문수를 발탁하기는 했지만 상도동계가 두 사람과 가깝지는 않습니다. 원래 우리 계파가 아니지 않습니까."

"박근혜, YS 찾아뵙는 게 원칙"

-YS에 대해 개인적으로 섭섭한 점은 없나요.

"저는 지구당 위원장도 해봤고 공천도 받아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도 했습니다. 특별히 섭섭한 점은 없습니다. 지금도 저는 누가 YS 욕하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YS를 욕하다가도 제가 나타나면 멈춥니다."

김 전 위원장은 13대 총선 때 통일민주당 후보로 태백에서 출마했다. 하지만 탄광 노조위원장 출신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다.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동생 전경환 씨의 새마을운동 중앙본부 비리가 터져나왔다. 이에 김 전 위원장은 선거유세에서 '전두환과 이순자를 즉각 구속하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당시에는 전경환 씨의 구속을 주장하는 야당 정치인들은 있었지만 대통령 내외의 구속을 언급한 것은 김 전 위원장이 처음이라고 한다. 자료=김진하 제공

-정치생활을 오래 하셨는데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비화가 있습니까.

"1967년 유진산이 신민당 당수로 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안국동 로타리에 신민당 당사가 있을 때입니다. 그 때 중정 분실이 삼척 읍사무소 뒷쪽에 있었어요. 거기서 '첩자' 비슷하게 활동하는 친구 한명이 있었는데 '선거를 위해 공화당에서 세금을 받지 말라'고 지시하는 비밀공문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이 얘기를 유진산이 듣고 '빨리 데려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이 친구를 데리고 갔고 유진산은 '틀림없느냐. 그러면 너에 대해서 보장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뒤에 이 친구가 이 문서를 훔쳐 나왔고 삼척 해수욕장에 가서 열어보니까 백지만 있는 거예요. 그 때 이미 유진산은 당사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최경식 삼척 지구당 위원장은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백지만 나온 겁니다. 그러자 이 친구가 '그 문서가 분명히 있다. 다시 들어가서 훔쳐나오겠다'면서 중정 분실 사무실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안 나오는 거에요. 나중에 중정 분실 다른 문으로 도망을 갔어요. 우리에게 잡혀도 맞아 죽을 것이고 중정에 잡혀도 그럴 테니까 도망간 것 같아요. 아마도 중정이 이 친구 행동을 눈치채고 백지를 넣어둔 것으로 생각이 들어요."

윤종희 기자 yjh_1120@sisaon.co.kr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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