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부실벌점 제도 강화를 환영한다
건설사 부실벌점 제도 강화를 환영한다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0.02.20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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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본질은 ‘예방과 방지’…여론 호도 안 돼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박근홍 기자)

문재인 정부가 건설공사 부실벌점 제도를 강화하겠다고 나서자 건설업계가 일제히 반대하고 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부실벌점 산정방식을 현행 평균(총 벌점을 현장 수로 나누는 방식)에서 합산 방식으로 바꾸고, 컨소시엄(공동도급)의 벌점은 컨소시엄 대표사에게 일괄 부과하는 내용의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부실벌점이란 건설사의 공사 과정에서 부실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상당한 경우가 있을 시 해당 업체에 벌점을 부과하는 제도다. 점수가 높을수록 입찰 심사, 사업 추진에 불이익이 주어진다.

업계는 강력히 반발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지난 19일 청와대, 국토부, 국회 등에 이번 개정안 철회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부실벌점 제도는 경미한 부실을 적발해 불이익을 줌으로써 부실시공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 이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경미한 사항에 대해서까지 사실상 기업에 사망 선고나 다름없는 처벌을 가하고 있는 개정안에 업계가 크게 동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개정안을 반대하는 핵심 이유는 부실벌점 산정방식을 평균에서 합산으로 바꾸는 대목 때문이다. 사업장별 벌점을 합산해 벌점을 부과하면 사업 현장이 많은 시공능력평가 상위권 건설사들의 부과 벌점이 급격히 높아져 사업 추진에 중대한 애로사항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컨소시엄 대표사에게 일괄적으로 벌점을 부과하는 부분도 헌법상 자기책임의 원칙에 위배되는 데다, 통상적으로 출자 비율이 높은 중대형 건설사에게 불이익을 줄 여지가 많다는 논리도 펼치고 있다.

사업 추진에 불이익이 될 수 있는 정부 규제에 민간업체들이 반발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재 건설업계가 내세운 논리에는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 사회에서 처벌의 의의와 목적을 따질 때는 인과응보가 아닌 예방과 방지에 더 무게를 둔다. 잘못을 저지른 특정 개인 또는 집단에 책임을 묻는 게 주된 목적이 아니라, 일정한 수준의 처벌로 사회 전반의 규범의식을 강화해 더이상 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개인이나 집단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방지하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즉, 범죄에 대한 응보가 아닌 재발 방지에 더 집중하는 게 현대적 처벌의 의의와 목적이라는 의미다.

처벌의 방향성이 예방주의로 가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때 가장 예로 많이 다뤄지는 게 바로 사형제도다. 사형제에 찬성하는 자들은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범죄 예방 기능을 극대화할 수 있으며, 무고한 피해자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처벌인 사형제가 어떻게 처벌의 현대적 의의와 목적인 예방주의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발전한 사회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과거에 비해 처벌의 정치적·경제적 악용에 따른 리스크가 줄어든 만큼, 심판자의 오판 가능성보다 범죄의 억제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이 사형제를 유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미래통합당 유의동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시공능력평가 상위 20위권 건설사들에 대한 소비자피해 상담접수와 피해구제 접수 건은 최근 3년 간 매년 증가했다. 또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미래통합당 민경욱 의원이 2018년 국감에서 공개한 자료를 살펴보면 아파트 부실시공 사업장도 매년 증가 추세다. 그러나 부실시공에 대한 처벌과 제재는 '솜방망이' 수준이다. 2016년부터 2018년 7월까지 37건의 부실시공 사업에 총 48건의 제재가 내려졌는데 이중 경징계가 66.7%에 달하며, 공사중지·영업정지·형사고발 등 중징계는 4.2%에 그쳤다.

이에 정부는 부실시공과 하자 문제에 대해 칼을 빼들었다. 지난해 5월 감사원은 '아파트 층간소음 저감제도 운영실태'를 공개하고 LH한국토지주택공사와 SH서울주택공사가 시공한 22개 공공아파트, '송파 헬리오시티'를 비롯한 6개 민간아파트 등 총 191가구를 대상으로 층간소음을 측정한 결과 114가구가 최소 성능기준에 미달했다고 밝혔다. 전체의 96%인 184가구는 사전 인정받은 성능등급보다 실측등급이 떨어졌다. 또한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같은 해 7월 전국 32개 아파트 건설현장을 대상으로 층간소음 특별점검을 실시한 결과 10개 현장에서 53건의 위반사항이 적발됐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반성과 성찰이 없었다. 국토부는 지난해 11~12월에 걸쳐 공정이 50% 이상 진행된 전국 12개 아파트 건설현장 특별점검에서 부실시공·하자 사례가 32건 적발됐다고 지난달 29일 밝힌 바 있다. 상황이 오히려 더 악화된 것이다.

컨소시엄 대표사 벌점 일괄 부과 부분도 마찬가지다. 컨소시엄을 구성한 건설사들이 책임을 미루는 일이 최근 연이어 발생하면서 이 같은 내용이 개정안에 포함된 게 아닌가. 실제로 최근 대우건설·현대건설·SK건설 컨소시엄이 지은 서울의 한 아파트에서는 시공사가 서로 하자보수 책임을 회피해 입주민들과 대대적인 갈등이 빚어진 바 있다.

부실시공이라는 잘못에 대한 현행법상 처벌이 예방과 방지는 물론, 응보 목적조차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자, 부실벌점 제도 강화의 필요성을 절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앞선 탄원서에서 "처벌 만능주의 규제 강화 정책으로서 제도의 근본적 문제점 해결 없이 제재 효력만 대폭 강화해 기업 생존까지 위협하게 된다"며 부실벌점 제도 강화 내용이 담긴 개정안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지금 처벌 만능주의를 운운할 상황이 아니다. 부실시공 사례는 더욱 증가했고, 기존 처벌은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애초에 개정안이 나오기 전에 자구책을 모색하고 스스로 계도했다면 없었을 일이 아닌가. 여론을 호도해선 안 된다.

무고한 피해자는 건설사가 아니라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힘들게 내 집을 마련한 입주민과 입주예정자들이다. 또한 부실시공은 자칫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재난이란 아무 예고도 없이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다. 미리 대비해서 나쁠 게 없다. 기업 생존이 아닌 국민 생존을 위해서, 그리고 내 집 마련을 꿈꾸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실벌점 제도 강화를 환영한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 및 재계를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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