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 , ˝DR에게 정직과 의리 배워…그 정신으로 오산에 뼈를 묻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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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 ˝DR에게 정직과 의리 배워…그 정신으로 오산에 뼈를 묻겠다˝
  • 윤종희 기자
  • 승인 2011.11.16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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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교수정치 밑천 두둑한 '빠떼루 아저씨'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종희 기자]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과 함께 유명인사가 된 사람이 있다. 바로 '빠떼루 아저씨' 김영준 교수다. 현재 경기대 스포츠과학대학원장인 김 교수는 당시 레슬링 중계 도중 "저 선수 빠떼루를 줘야 함다"라는 짧으면서도 힘 있는 멘트로 단박에 인기 스타가 됐다. 이런 김 교수가 내년 총선에 도전장을 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때 반짝 인기를 누린 사람이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것이다.

'레슬링 방송 해설' 하나 가지고 금배지에 도전한다는 게 무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김 교수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그의 정치적 밑천이 만만치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정치 철학도 나름 깊이가 있었고 현 정치 상황을 분석하는 능력도 상당했다. 인터뷰는 10월 31일 경기대 스포츠과학대학원장실에서 진행됐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기자가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을 때 김 교수는 자리에 없었다. 10여분이 지나서야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지금 군산대학에서 강의를 마치고 바로 왔습니다." 스포츠맨십이 녹아 있는 목소리였다. 오랜 세월 운동으로 만들어진 다부진 몸매도 눈길을 끌었다.

-경기도 오산에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면서요.

"예, 맞습니다. 제가 오산으로 온 지가 6년째 됐습니다. 6년 전 박근혜 대표 시절 오산을 전략지구로 정했고 제가 위원장으로 내려왔습니다. 제가 오산 당협위원장으로 있을 때는 한나라당 후보가 100% 당선되도록 했습니다. 지방선거에서 대선까지.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기 때문에 지난 번 공천에서는 실패했지만 이 번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오산 당협위원장 맡으면서 한나라당 후보 100% 당선돼

- 지난 18대 총선에서 공천을 못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던 파벌공천, 계파싸움 그런 게 아닐까요. 저 같은 경우는 계파가 없었으니까요. 분명한 것은 지난 6년 동안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지금은 어떤 경우라도 공천을 해줄만한 정도라는 것입니다. 지역 여론도 저의 성실함을 인정한다고 생각합니다."

- 오산에 호남 사람들이 많은 게 도움이 될까요.

"요즘 지역을 가지고 얘기하는 건 좀 그렇습니다. 제가 호남 출신이니까 뽑아달라고 말하는 건 좀 그렇죠. 하지만, 오산시에 호남출신 인구가 33% 정도 되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유리한 건 사실입니다."

김 교수는 전북 부안 줄포 출신이다. 한나라당에서 희귀한 호남 출신인 것이다. 전북 부안 줄포에서는 많은 인물이 배출됐다. 김상협 전 국무총리, 진념 전 장관, 바둑으로 유명한 조남철, 농구선수 박신자, 서정주 시인 등이 이 지역을 빛낸 인물이다. 아나운서로 유명한 봉두환 전 국회의원도 이 곳으로 피난을 와서 학교를 다녔다. 줄포는 평야와 산, 바다를 모두 가지고 있어 풍수적으로 훌륭한 고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정치인으로서 어떤 경쟁력을 가지고 있나요.

"저는 다양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고 이곳 저곳을 스치며 지나간 게 아닙니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대학교수도 12년 차 입니다. 또 LH공사에서 말단으로 시작해 홍보실장까지 27년간 근무했습니다. KBS, MBC, SBS에서 30여년간 스포츠 해설을 했습니다. 국가대표 선수와 감독도 했습니다. 1972년 뮌휀 올림픽에 출전했고 1984년 LA올림픽 때는 김원기·유인탁 선수를 감독했습니다. 6~7회 아시안게임 때도 국가대표였습니다."

사실 김 교수는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훨씬 이전인 1984년 LA 올림픽 때부터 방송을 탔다. 당시 유인탁 선수가 금메달을 따자 너무나 기쁜 나머지 무등을 태우고 경기장을 돈 장면은 오랜 기간 텔레비전 애국가 화면에 등장해 국민들에게 힘을 줬다. 많은 사람들이 유인탁 선수를 무등 태운 사람이 김 교수라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스포츠 분야 외에도 다양한 삶… LH공사 근무 '파괴력' 주목

-오산과 관련해서는 어떤 장점을 내세울 겁니까.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오산에 지금 도시계획 전문가가 없습니다. LH공사가 320만평을 1, 2, 3차로 개발하고 있는데 저는 그 부분에서 27년 간의 경험이 있습니다. 충분히 적임자입니다. 도시의 활성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데 대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체험을 해봤기 때문에 어떻게 개발해야하는 지를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김 교수는 LH공사에 근무하면서 대전 국방부 택지 조사부장을 하는 등 이 분야에서는 베테랑으로 알려졌다. 또 직접 지사장, 부지사장, 중개사업단 부단장 등을 맡아 실무 분야에서 쭉 일해왔다.

김 교수의 전공도 눈길을 끈다. 운동선수들이 대부분 체대에 들어간 것과 달리 한양대 상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석사 과정에서는 재무관리를 전공했다. 그러다 박사 과정에서 스포츠 경영을 공부했다. 그가 경기대 교수가 된 것도 공채를 통해서다. 특채가 아닌 공채로 대학교수가 됐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오산 토박이가 아닌 점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지난 6년 동안 정말 나름대로 충분히 노력해왔습니다. 저는 구렁이 담 넘어가 듯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之(갈지 자)로 걷지 않을 것입니다. 처음에 오산을 절대 안 떠난다고 약속했습니다. 단 한번도 이를 어기지 않고 뼈를 묻을 것입니다."

-스포츠계에서 오래 생활한 만큼 스포츠인들을 위한 생각도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가 스포츠 분야에서 세계 6대 강대국이라고 하지만 스포츠 인사가 제대로 국회에 발 딛은 경우가 드뭅니다. 운동선수를 하나의 기능공으로 취급하는 것 같습니다. 운동선수들 가운데 3~4%가 신분상승에 성공하고 나머지는 탈락자로 재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 부분에서 제가 대변인으로 충분히 활동할 자신이 있습니다."

화제를 바꿔 10·26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 대해 물어봤다.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 대해선 어떤 생각을 하나요.

"서울시장 선거 결과는 사람이 사람을 보듬을 수 없었다는 한계를 보여줬습니다. 나이 60을 먹어도 20~30대를 보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부분에서 약했습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제가 경기도 출신이지만 나경원 후보의 특보단장을 맡았었는데 조직 정비와 똘똘 뭉치는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반듯해…변화 따라가는 게 개혁

-이런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언제든지 삶이란 사람이 사람을 안고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는 인터넷에서 많은 젊은이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당에서 그 젊은이들을 보듬어 안고 가지 못했습니다. 대선 이후에 젊은이들을 보듬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소통이 제대로 안됐습니다. 그러니 지지를 잃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대학교수로서 요즘 젊은이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나요.

 

"우리 젊은이들은 괜찮습니다. 벽을 쌓은 사람이 누구냐가 문제이지요. 아이들은 정의로운 얘기를 많이 합니다. 아이들과 얘기를 해보면 반듯하고 올바릅니다. 이런 젊은이들을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60살 먹은 감독이라도 7살 아이를 가르칠 때는 자기 기준이 아닌 그 아이에 맞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가 다칩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한나라당에 이렇게 당부했다.

"20~30대를 버리고는 갈 수가 없습니다. 환경이 변하면 거기에 따라서 변해야 합니다. 변화를 따르는 게 개혁입니다. 각자가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울 수 있어야 합니다."

-한나라당 내 계파 갈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어려운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손해보고 산다면 큰 이익을 볼 수 있습니다. 좀 부족하게 살면 넉넉해진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컵에 물을 가득 넣고 가면 쏟아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70~80%만 채우고 가면 지저분해지지 않고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손해를 안 보려고 합니다. 모자란 듯 하는게 아름답습니다.

스스로 '내가 누군데…' 이렇게 생각하면 그 때부터 불행이 싹 트는게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굉장히 흘러넘치는데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서 조금 돌아서서 찬물에 세수하고 거울 바라보며 마음을 가다듬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오합지졸 민주당보다 한나라당이 더 좋지 않습니까. 너나 나나 모자란 듯 그렇게 했으면 합니다. 서로 화합했으면 합니다."

계파갈등 해소법은 좀 부족하게 사는 것

-박근혜 대세론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요.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현재 상황이 박근혜 대세론이라면 대세론이겠죠. 그러나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 것(박근혜 대세론)을 밑에서부터 잘 싸서 겨울을 잘 보내고 꽃도 피울 수 있도록, 그렇게 누가봐도 든든한 재목으로 만들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냥 허허벌판에 서있는 독보적 존재라고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닙니까.

 

요즘 신문을 보면 박 전 대표가 독보적이라고 하는데 그 걸 지키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한나라당과 박 전 대표가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당이 화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아닌 한나라당 내 다른 잠룡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문수 경기지사 등 다른 잠룡들이 한나라당의 지도급에 있다고 보는 건 맞습니다. 이 분들이 한나라당의 대권주자들서 큰 축인 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는 국민이나 지지자들이 만들어주는 만큼 스스로 열심히 일구고 해서 상품가치를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열심히 자신들의 가치와 능력을 보여줬으면 합니다."

-최근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수준인데요.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당선되고 4년동안 국회에서 합의된 게 없습니다. 야당은 투쟁해서 정권을 잡고 여당은 정권을 승계한다고 하는데 이는 70년대 구호가 아닙니까.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야당은 과거와 똑같이 투쟁해서 얻으려고 합니다. 반대를 위한 반대로 비칩니다. 국회에서 몸싸움을 레슬링처럼 하더라구요. 그런데 우리 레슬링 선수들은 경기를 하다가 실수로 눈 같은데를 건드리면 즉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합니다. 그런데 국회 몸싸움에서는 그런 것도 없는 것 같아요.

또 우리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함께 이룩했는데 그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많았습니다. 예전에는 공무원들이 월급만으로 6남매 공부를 못 시켰기 때문에 돈을 좀 받는게 관례처럼 있었습니다. 70년대에는 田(밭전 자) 형태였습니다. 담당계장, 과장, 부장 등 몇몇이서 나눠 가졌습니다. 80년대에는 日(날일 자)였어요. 한사람이 받아서 윗 사람과 나눠가진 것이죠. 요즘은 口(입구 자)입니다. 한 사람이 다 먹는다는 겁니다. 저도 정치 참여하고 있지만 짜증날 정도입니다. 순수한 학생들이 보면 울화통이 터질 것입니다. 이제는 바꿔야 합니다.

그리고 동네 노점상 문제가 있으면 대통령부터 욕합니다. 책임관할은 동장, 구청장, 시장 순인데 대통령부터 욕합니다. 전기가 안들어와도 대통령부터 욕합니다. '대통령이 정치를 뭐 같이 하니까…'라고. 그러나 이제는 분별할 때가 됐습니다. 요즘 TV에 술취한 사람이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 목을 잡고 흔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세상에 그런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는 질서의 문화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개헌을 통해 대통령 권력을 분산하자는 주장에 대해 찬성합니까.

"저는 개헌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당장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을 가지고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너무 집중되다 보니 무슨 일만 있으면 대통령 탓으로 돌리지 않습니까. 권력이 분산되는 게 좋다고 봅니다."

권력분산 개헌에는 원칙적으로 찬성

김 교수는 김덕룡(DR) 전 의원 계보로 분류된다. 그는 이날 김 전 의원의 인품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덕룡 전 의원과 절친한 사이라면서요.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김덕룡 의원이 정치적 스승입니다. 정직과 의리라는 정치적 덕목을 쌓는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덕목과 관련해선 조금도 부끄럼없이 살아왔습니다. 김덕룡 그 분도 실제로 그렇게 지키면서 살았습니다. 끝까지 함께 갈 사람입니다.

 

-DR과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빠떼루 아저씨'로 제가 한창 유명할 때였습니다. 어느 날 한나라당 9룡들의 방송 녹화가 있었는데 그 날은 김덕룡 의원 차례였습니다. 후배 한 사람이 김 의원이 고향(전북) 사람이니까 인사를 하라고 해서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가서 옆에 앉아있다가 나왔는데 다음날 아침 신문에 '빠떼루 아저씨가 김덕룡계가 됐다'고 큼지막하게 기사가 났습니다. 그렇게 제가 김덕룡 사람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제가 오히려 그 분을 도와준 셈입니다.

저는 김덕룡 의원과의 의리를 지켰습니다. 제가 인기가 좋았을 때 여기저기서 오라고 했지만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DR 주변에 인산인해 같던 사람들이 떠났을 때도 저는 끝까지 남았습니다. 지금은 DR 눈치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저희 사이에서는 정치적 유불리를 안 따집니다."

김덕룡으로부터 정직과 의리 배워…끝까지 함께 갈 것

-DR과 관련해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은 내용이 있나요.

"미국에서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 됐을 때 레드카펫을 처음 밟은 사람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미국에서는 대통령 취임식 전에 레드 카펫을 대통령 당선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걷게 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미국 의회에서 유능한 지도자를 뽑아서 대통령 당선자보다 먼저 레드카펫을 걷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클린턴 대통령 취임식 때는 김덕룡 의원이 레드카펫을 밟았습니다. 동양에서는 최초의 정치인이었습니다. 그 때 세계 점술가들이 많은 얘기를 했다고 해요.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김덕룡 의원은 아마 죽을 때까지도 이 얘기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당히 겸손한 사람입니다. DR은 교황청에서 교황이 여의도에 왔을 때도 젊은 지도자 3명중 한명에 뽑혔습니다."

-DR 외에 다른 인생의 스승이 있나요.

"세상을 살아가면서 제겐 세명의 스승이 있었습니다. 정치 부분에서는 김덕룡 의원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고인이 되셨는데 서예를 하신 강암 송석용 선생님입니다. 전주에 '호남제일문'을 쓰신 분입니다. 또 고등학교 시절 담임이셨던 김재심 선생님입니다. 제가 레슬링 선수임에도 상과대에 가도록 권유하셨습니다. 'TV는 사랑을 싣고'를 통해 뵙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인기만 가지고 (정치판에) 뛰어들면 심장마비가 걸립니다. 충분한 준비운동을 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인기 때문에 잘못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빠떼루 아저씨' 펜클럽이 제일 먼저 생겼습니다. 그 당시 PC통신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힘든 과정을 겪었습니다. LH공사와 해설위원 자리에서 떠난게 된 아픔이 있습니다. 인기만 가지고는 어렵다는 것을 체험했기에 한땀 한땀 6년 동안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도 스포츠 정신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포츠맨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직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정치적으로 많은 '탄압'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이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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