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마오의 우한 시찰과 코로나19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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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마오의 우한 시찰과 코로나19 사태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0.02.23 1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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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존경하는 마오의 우한 시찰의 뜻을 되새겨 보길 권한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문재인 정부가 존경하는 마오의 우한 시찰의 뜻을 되새겨 보길 권한다. 사진제공=뉴시스
문재인 정부가 존경하는 마오의 우한 시찰의 뜻을 되새겨 보길 권한다. 사진제공=뉴시스

우한(武漢)은 중국 역사상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대도시다. 역사에 따르면 은나라 도시 유적으로 유명한 우창 황피구 방용성 유적지가 있다. 중국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상징하는 장강을 마주보는 우창과 한양이 발달하면서 중국 중부의 대표 도시로 발전했다.

명대에 이르러 우창과 한양을 합쳐 우한이라는 이름이 시작됐다. 또한 우한은 “아홉 개 주의 통로”라는 별칭이 붙여질 정도로 수많은 철로와 도로, 고속도로가 통과하는 사통팔달의 대명사다. 중국 대륙이 신해혁명과 외세의 침략으로 대혼란기에 빠진 지난 1927년에 우한이라고 명명됐다.

서구 열강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능욕당하고, 근대화의 세계사 조류를 거스르며 부정부패를 일삼던 청 왕조의 멸망을 이끈 신해혁명의 첫 봉기는 우창에서 비롯됐다. 중국 혁명의 발상지라는 칭호가 전혀 아깝지 않은, 중국 현대사의 새로운 출발점이 바로 우한이다.

또한 지난 1927년 장제스의 정적인 왕징웨이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의 수도였다. 당시 장제스가 일으킨 4·12 쿠데타로 중국 공산당 지도부와 당원들이 궤멸에 가까운 탄압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현대 중국의 양대 지도자인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는 각각 허난성 봉기와 난창 봉기를 주도하며 본격적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우한이 역사의 무대에 재등장한 시기는 중국의 공산화가 완성됐고, 마오쩌둥이 자신의 권좌를 지키고자 수천만 명을 희생시킨 문화대혁명기였다. 일본 <산케이신문> 특별 취재반이 마오쩌둥의 말년을 기록한 <모택동 비록>에 따르면 문화대혁명이 불붙기 시작한 지난 1967년 7월 13일 마오는 뜻밖의 결정을 내려 저우언라이와 린바오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한 시찰을 강행했다.

마오는 우한으로 떠나기 전인 이날 자신의 측근들을 데리고 연락회의를 개최해 “문혁은 1년 동안에 걸쳐 그 과업을 완수하기 위한 그 기반을 쌓고, 2년 만에 그 기초 위에서 장래를 내다보고, 3년 안에 끝낸다”고 밝혔다. 즉 문혁을 조기에 종료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주은래가 ‘매우 혼란스럽다’고 말한 대로, 무한(우한)에서는 인민해방군 무한 군구 사령관인 진제도가 지지하는 ‘백만 웅사’와, 그것을 ‘진정한 좌파가 아니다’라고 비판하는 급진파인 ‘공인 총부’라는 두 개의 커다란 혁명 조직 속에서 유혈 무력 충돌이 잇따르고, 긴박한 비상사태가 계속되고 있었다.”<출처: 모택동 비록 下권 p14>

당시 베이징에 붙은 대자보에 따르면 4월 19일부터 6월 3일 우한에서 120여 건의 무장 투쟁이 발생했고, 사상자 및 행방불명자는 700여명에 달하고 그 중 중상자는 160여 명이다.<출처: 모택동 비록 下권 p14>

마오는 최측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한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마오의 우한행은 내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심지어 양대 무장세력의 전투가 마오의 숙소까지 번졌다. 양 측의 치열한 전투는 7월 19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됐고, 자칫 중국 인민해방군 간의 대충돌까지 우려될 정도로 악화됐다.

결국 저우언라이는 마오를 구출하기 위해 우한으로 날라갔고, 무사히 구출했다. 마오는 우한 내전사태를 직접 목도하자 이를 계기로 자신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이 가져온 대혼란을 수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됐다고 <모택동 비록>은 분석했다. 후일 강경파를 지지한 린바오는 의문의 비행기 추락사로 생을 마감했고, 강청의 4인방은 마오 사후 숙청당했다.

2020년 우한이 전 세계를 죽음의 공포로 몰아가는 지옥의 도시로 역사에 재등장했다. 지난해 12월 말 우한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성 폐렴 환자가 급증하면서 중국 당국이 조사한 결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이를 일으키는 질병으로 판정됐다. 우한을 비롯한 중국 대륙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고, 우리나라도 연일 감염자 급증으로 온 국민이 초긴장 상태다.

마오쩌둥은 자신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이 초래한 내전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우한행을 강행했고, 현지에서 급진파의 과도한 행태를 목도하자 혼란 수습의 길을 선택했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은 코로나19의 급증세로 온 국민이 공포심에 휩싸인 상황 속에서도 자화자찬에 집중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현 집권층이 존경하는 마오의 우한 시찰의 뜻을 되새겨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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