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정당 생존일지] 반란은 시작됐다…“우리가 청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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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당 생존일지] 반란은 시작됐다…“우리가 청년이다”
  • 조서영 기자
  • 승인 2020.02.29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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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정당과 독자노선의 기로에 선 청년정당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선택의 기로에 선 청년정당 생존일지 4편을 담았다.ⓒ시사오늘
선택의 기로에 선 청년정당 생존일지 4편을 담았다.ⓒ시사오늘

이곳은 국회, 전쟁터다. 

왼편에는 진보, 오른편에는 보수라 불리는 이들이 서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어디쯤, 전쟁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 이들이 등장했다. 이들을 우리는 청년이라 불렀다.

그들이 기성정당의 총알받이에 그칠지 아니면 새로운 국면을 가져올지, 지금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여기서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강한 힘을 가진 기성정당의 손을 잡거나, 죽기 살기로 독자노선을 걷거나. 이에 <시사오늘>은 선택의 기로에 선 청년정당 생존일지 4편을 담았다.
 

1편. ‘젊은보수’ 생존일지

젊은보수 천하람 대표와 2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젊은보수 천하람 대표와 2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2019년 가을, 변호사‧의사 등 전문직부터 대기업‧중소기업 직장인, 자영업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평균 이상의 임금을 받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며 괜찮은 직장을 다니는 이들, 그들은 스스로를 ‘가난하지 않은 청장년층’이라고 일컬었다.

그들이 술 한 잔 기울이면서 공유했던 문제의식은 우리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변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유한국당이 이들을 대변해보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기존 보수정당에 100% 동화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보수는 수구였으며, 멋과 고급스러움(소위 ‘간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이 속하고 싶은 준거집단이 아니었다. 여기서 말하는 멋과 고급스러움이란 역사관과 법치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보수는 법을 지켜야 하고, 보수주의자는 기본적으로 법치주의자다. 보수주의자 입에서는 독재나 혁명은 절대 나오면 안 된다. 이는 헌법을 어기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5‧18을 민주화항쟁이라 못 부르는 건 말이 안 된다. 같은 맥락에서 작년 12월 한국당이 국회 경내에서 태극기 부대와 한 집회도 잘못된 거다.

또한 꼰대 이미지를 벗지 않는 한, 청년들에게 돈 몇 푼 쥐어준다고 통합당을 지지해주지 않는다. 청년들이 그렇게 값싼 사람들이 아니다.”

독재를 옹호하는 역사관과 시대 인식 등 뒤떨어진 꼰대 이미지를 넘어, 그들은 이 시대에 걸 맞는 담대하고 멀쩡한 보수정당을 만들어야겠다고 힘을 모았다. 2020년 2월, 젊은보수가 탄생했다.

그들의 핵심 주장은 ‘작아서 효율적인 정부’다. 핵심 정책은 △정부 세금 지출 25% 감축 △국가채무 160조 원 감축 △근로/종합 소득세 40% 감세 △법인세 40% 감세 등으로, 결국 감세와 규제개혁을 목표로 한다. 

그들이 내세운 총 10가지 핵심 정책은 제1당이 돼야만 실현 가능한 공약들이었다. 그래서 박형준 혁신통합위원장과 정병국 의원이 그들에게 통합당 합류를 설득하기가 상대적으로 쉬웠다. 그들은 현실을 아는 30‧40대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 사이에 ‘오히려 수구의 더러운 물을 우리에게 묻히는 것 아니냐’는 반대도 뒤따랐다. 하지만 그들이 통합당에 제시한 ‘조용히 하라고만 하지 말라’는 유일한 요구사항이 증명하듯, 젊은보수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당에서 비굴해질 생각은 없다며 추스르는 중이다.

보수 정책에 동의했지만 보수가 부끄러웠던 샤이(shy)보수들이 모여 만든 아재정당, 젊은보수의 생존일지다.

 

2편. ‘같이오름’ 생존일지 

같이오름 김재섭 대표와 25일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같이오름 김재섭 대표와 25일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여의도의 한 원룸에는 대여섯 명의 청년들이 모여 앉아 있다. 그들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기들로, 학내 정치토론연구회가 그들만의 정치 시작이었다. 몇 년 후 모임 앞에 ‘같이오름’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때처럼 머리를 맞대고 정책을 고민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시장의 힘을 믿었다. 국가의 비대화는 국가의 오지랖이자 정치인의 오판이라고 봤다. 국가의 역할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일할 수 있게 그저 활력만 주면 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가운데 생긴 부작용은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봤다. 이처럼 그들은 △작은 국가 △두터운 사회적 안전망 △활동력 있는 시장을 지향했다.

그런 그들에게 관심을 보인 건 통합당이었다. 지난 1월 같이오름은 박형준 위원장, 정병국 의원과 킥오프(kickoff) 미팅을 가졌다. 뒤이어 같이오름이 중심이 돼 다른 청년 단체들과의 연대를 시작했고, 2월 16일 최종적으로 그들에게 큰 스피커 역할을 할 통합당에 최종 합류했다.

하지만 합류를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내 주된 반대의 목적은 ‘보수당 싫다’였다. 그들은 독자창당을 통해 순수성을 지키는 것과 정책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인가를 생각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순수성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그들의 문제의식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그들은 통합당에 공천이나 비례가 아닌, 청년 정치 생태계를 위한 법문화된 조항을 요구했다. 당의 산하기관인 기존의 청년위원회나 대학생위원회와는 다른, 예산권과 의결권이 주어지는 일종의 독립된 자(子)당을 제안한 것이다.

“같이오름의 장점은 우리 청년 세대가 느끼는 현실적인 디테일한 문제의식을 정치에 반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해결까지는 담보하지 못하겠다. 다만 문제의식만큼은 훨씬 감수성 있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돼야 해결책이 잘 나오는 건데, 피상적이고 거시적인 이해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2월 26일 늦은 오후, 마스크를 턱에 걸친 미래통합당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의 입에서 그들이 그토록 기다렸을 말이 흘러나왔다. 

“서울 도봉갑, 김재섭”

도봉갑은 소위 보수당의 험지라 불리는 곳이었다. 386세대의 상징적인 인물인 故 김근태 의원의 지역구로, 민주당에서 장기집권해온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산업화, 민주화를 지나 차세대 정치 그룹으로서 새로운 아젠다를 제시하겠다며 도봉갑에 도전했다.

“저희는 저희 방식대로 이길 생각입니다. 반드시 이기려고요.”

공멸의 정치를 끝내고 행복한 사회에 같이 오르자는 의미의 ‘같이오름’과 우리가 옳다고 믿는 신념이 대한민국을 낫게 할 것이라는 의미의 ‘가치옳음’, 같이오름의 생존일지다.

 

3편. ‘브랜드뉴파티’ 생존일지

브랜드뉴파티 조성은 대표와 24일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브랜드뉴파티 조성은 대표와 24일 여의도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그는 한때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쳤던 사람이었다. 과거 국민의당 지도부로서 이를 당론으로 정하고 국정조사 위원까지 했던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한국당만은 절대 안 된다고 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돌연 통합당에 합류했다. 그에게 누군가는 변절자라 비난을 퍼부었고, 다른 누군가는 이런 결정을 하게 해 미안하다고 했다. 앞선 두 정당과 같은 날 합류를 선언했지만 그 과정에 이르기까지 가장 많은 내홍을 겪었던 정당. 이는 브랜드뉴파티의 이야기다.

“누군가를 때릴 때 자기 주먹도 아프지 않나. 민주당에게 잘못 가고 있다고 보내는 경고는 내게도 상처를 남긴다. 지금 반응은 ‘네가 어떤 마음으로 갔는지 알기 때문에 안타깝고 미안하다’는 민주당 의원, ‘아무리 그래도 갈 데가 따로 있다’며 비난하시다가 실망하지 않게 잘하라며 다독이는 호남 의원, ‘당 만들어서 통합당에 합류하려 그랬냐’는 당원들의 비난 등이 교차하고 있다.”

그는 본래 제3지대를 꿈꾸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양 기득권을 심판하길 기대했던 제3지대는 바다도 황무지도 아닌 갯벌이 됐다. 배를 띄울 수도 집을 지을 수도 없는 최악의 갯벌이 된 거다. 한편 민주당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그가 마음을 닫기 시작한 건 조국 사태였으며, 임미리 교수 칼럼 고발로 완전히 돌아서게 됐다.

그러던 중 2월 5일과 6일 같이오름 김재섭 대표의 제안으로 혁통위와 첫 만남을 가졌다. 이전까지는 같이오름과 뉴파티가 연대하는 방안을 주로 상의하던 터였다. 9일 혁통위와 뉴파티는 비공식적인 소통을 시작으로 16일 기자회견장에서 합류를 선언하기까지, 매일 수 시간 갈등하고 설득하는 협의 과정을 거쳤다.

한때 신뢰했고 애정을 가진 집단에 환멸을 느낀 그들은, 그렇게 통합당을 향했다. 그들이 가진 메시지가 뼈아프게 전달되려면 그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민주당과 호남3당에서는 선거를 앞두고 조국 비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통합당이 보여준 인적 쇄신에 대한 노력과 그가 가진 진보적인 가치까지 받아들이려는 태도, 그것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진보와 제3지대에 하나의 울림을 주기 위해 통합당을 향한 청년 정당, 브랜드뉴파티의 생존일지다.

 

4편. ‘시대전환’ 생존일지

시대전환 조정훈 공동대표와 27일 명동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시대전환 조정훈 공동대표와 27일 명동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10년, 그들은 2030년까지 자그마치 10년만 버텨보기로 했다. 그렇게 연구원부터 교수와 변호사, 정치부 기자까지, 30‧40대 전문가 40여명이 이곳에 모였다. 이는 2018년부터 2년간 준비해 올해 2월 창당한 정당, ‘시대전환’의 이야기다.

마지막 생존일기는 앞선 세 편의 이야기와는 다르다. 그들은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당대표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0일 손 전 대표는 “청년 정치그룹과의 통합을 추진됐으나 결렬됐다”며 대안신당‧민주평화당과의 통합 지연의 이유를 전했다. 그러나 정작 그 주인공인 시대전환은 “끝난 연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 게 예의가 아니겠냐”며 바른미래당과의 통합 결렬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다만 당대표를 포함한 당의 요직에 20~40대가 있는 첫 번째 정당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원칙에서 두 정당의 간극을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민주당을 이제 한 번 혼내줘야 하는데, 아직 박근혜 타령하는 통합당은 차마 못 찍겠는 층에게 우리가 대안이 되고 싶다. 우리는 떴다방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하려면 20~40대가 온전히 당에서 주도권을 가진다는 우리의 원칙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기성정당들이 말하는 ‘지분을 나누자’거나 ‘몇 자리 하라’는 제안에는 관심 없다. 그럴 거라면 시대전환으로 끝까지 한 번 가보고 싶다.”

누군가는 이들에게 제3지대 혹은 중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제3지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제3지대는 여전히 기존의 정치권이 쓰는 언어와 문법을 쓰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려는 정치는 A, B 다음 C가 아닌 ㄱ을 말하는 새로운 정치라 했다.

그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친(親)기업 친(親)서민 경제 철학 △정부 과잉 탈피 △작지만 강한 중립국 등의 몇 가지 핵심 정책을 내놓았다. 기업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면서도, 거기서 발생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기업이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경제 정책. 여기에 더해 행복을 누리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으로서의 30만 원의 기본소득. 작지만 강한 중립국 스위스를 지향하는 정책까지. 그들이 내놓은 정책은 기존의 진보‧보수가 내놓은 정책 방향과는 달랐다.

언젠가 투표용지에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그 다음 시대전환의 이름이 적힐 수 있을까. 그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들만큼 그들은 스스로 시대전환에 확신이 있었다. 이를 증명하듯 바른미래당‧대안신당‧민주평화당이 통합한 민생당이 소위 호남3당이 된 후, 영남권의 제3지대 시‧도당 위원장들 가운데 시대전환을 기대하는 움직임이 생겼다. 2월 26일 울산 남구을 고원도 예비후보가 당일에 시대전환에 동참할 것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은 날갯짓이 시작됐다.

막혀버린 정치라는 하수구를 뚫기 위해 독자노선을 택한 청년 정당, 시대전환의 생존일지다.

2020년, 청년 정당들의 반란(反亂)이 반란(斑爛)을 시작했다.ⓒ시사오늘 김유종
2020년, 청년 정당들의 반란(反亂)이 반란(斑爛)을 시작했다.ⓒ시사오늘 김유종

각자의 방법으로 국회에 자리한 네 개의 청년 정당, 그들에겐 두 가지 선택만 있었던 것일까. 기성정당 합류나 독자노선이 아닌, 청년들 간의 연대라는 새로운 생존일지를 쓸 수는 없었냐는 의문이다.

그들에게 청년 정당 연대라는 선택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청년이니까 연대하라’는 일종의 당위성은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있다. 우리는 그 어느 세대에게도 ‘어르신이니까 연대하세요’라는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연령대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함께해야 한다면, 자유한국당과 정의당도 함께 손을 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청년 정당들의 변론이다. 그들은 청년이라는 이유로 연대할 생각은 없었다. 그들은 그저 가치가 같으면 함께 할 뿐이다. 2020년, 청년 정당들의 반란(反亂)이 반란(斑爛)을 시작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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