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정치] 히틀러와 마오쩌둥의 집단 광기와 코로나19 폭증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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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로 보는 정치] 히틀러와 마오쩌둥의 집단 광기와 코로나19 폭증 사태
  • 윤명철 기자
  • 승인 2020.03.01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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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틀러과 마오쩌둥이 주도한 집단광기의 최후가 어떤 비극을 가져왔는지 깨달아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명철 기자) 

 히틀러과 마오쩌둥이 주도한 집단광기의 최후가 어떤 비극을 가져왔는지 깨달아야 한다. 사진제공=뉴시스
 히틀러과 마오쩌둥이 주도한 집단광기의 최후가 어떤 비극을 가져왔는지 깨달아야 한다. 사진제공=뉴시스

전체주의의 역사는 인류 스스로 치부를 드러낸 나쁜 증거다. 진시황의 가혹한 통치의 기반이 된 순자의 성악설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역설한 홉스의 정치사상에서 비롯된 인간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이 구체화된 체제가 전체주의라고 볼 수 있다.

아돌프 히틀러는 나치즘의 창시자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미·영·프의 사실상 속국이 된 독일인의 무너질 대로 무너진 자존심을 교묘히 악용하기 위해 나치즘을 만들었다. 특히 아리아 족의 천년 제국을 만들자며 제시한 독일식 인종차별주의는 패전국이라는 열등감에 휩싸인 독일인을 자극하기 위한 최고의 선동전술이 됐다.

히틀러는 최대 라이벌이자 베르사이유 체제 하에서 독일을 가장 많이 괴롭혔던 프랑스가 라틴족임을 부각시키며 인종의 쓰레기라고 선동해 독일인의 주류인 아리아족의 삐뚤어진 민족 자존심을 부활시켰다. 독일인들은 히틀러에게 광적인 지지를 보냈고, 집단 광기에 빠져 히틀러의 공범이 됐다.

히틀러는 독일의 경제권을 장악한 유대인을 가장 악질이라고 규정하고 탄압함으로써 유대인이 가진 富를 강탈했고, 공공의 적으로 만들었다. 독일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점령지역에 살던 600여만명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다. 

히틀러는 소련과의 결전장이 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도 집단 광기를 강요했다. 패전이 명확해지는 상황에서도 후퇴대신 결전을 강요한 탓에 독일군은 500여만 명 가까운 인명을 손실했다. 결국 히틀러 특유의 악마의 선동질에 넘어간 독일인들은 또 다시 패전국의 희생양으로 전락하게 됐다.

전체주의의 또 다른 괴물인 공산주의를 수용한 중국도 마찬가지다. 마오쩌둥이 집권하던 시기에 수많은 중국인들이 희생됐다, 마오는 1956년 헝가리 반공·반소 의거가 소련군의 무자비한 유혈진압으로 제압당하자 일단의 사상의 자유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른바 ‘백화쟁명·백화제방’이라는 쌍백 운동이 시작됐다. 

하지만 마오는 자신이 기대했던 중국 공산당의 정풍이 아닌 자신의 독재를 비판하는 민주화 운동이 전개되자 마녀 사냥식 반대파 제거 작전에 나섰다. 수십만 명의 중국 지식인들이 희생됐다.

마오가 야심차게 기획한 대약진운동마저 실패하면서 3000만 명이 넘는 중국인들이 굶어죽었다. 일각에서는 5000여만 명이라고도 추정한다. 마오의 비겁한 권력욕이 빚은 참극이다. 마오는 홍수와 가뭄과 같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대흉년과 소련의 원조 중단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자신의 실패를 전면 부인했다. 

심지어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인정하라는 평생의 동지 팽더화이의 충언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단칼에 숙청했다. 팽더화이는 한국전쟁 당시 우리의 통일을 무산시킨 중공군의 총사령관을 지낸 뼛속까지 공산주의자였지만 마오의 눈에는 그저 자신을 위협하는 주제 넘는 사냥개에 불과했다.

마오는 대약진운동 실패의 희생양이 필요했다. 공산주의자들의 교묘한 유화책은 달콤한 독배에 불과했다. 마오는 실용주의자 류사오치를 주석에 임명하고 잠시 일선에서 물러나는 정치쇼를 기획했다. 마오의 속내를 제대로 읽지 못한 류사오치는 중국의 현대화를 적극 추진했다. 

하지만 마오는 문화대혁명을 기획하고 있었다. 또 다른 사냥개 홍위병을 내세워 류사오치를 내쫓고 수많은 중국의 지식인을 희생시켰다. 마오의 선동술에 빠져 갖은 악행을 저질렀던 2000여만명의 홍위병들도 결국 실용주의자 사냥이 끝나자 린바오의 군대에 의해 제거됐다. 홍위병을 제거한 린바오도 얼마 안 지나 의문의 비행기 사고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대한민국이 코로나19로 전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 명씩 확진자로 확인되면서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우리 국민의 입국을 거절했다. 대한의사협회와 같은 전문가 그룹은 코로나19 전염 초기부터 최초 발생지인 중국인의 입국 금지를 요청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를 묵살했다. 결과는 비참했다.

심지어 문 정부는 조만간 코로나19가 조만간 종식될 것이라는 지나친 낙관론을 펼쳤고, 여권 인사들도 이구동성으로 정부의 방역 대책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구는 최초 발원지인 우한보다도 더 위험한 지역으로 떠올랐다. 대구 현지 전언에 따르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니 현지 상황의 심각성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문 정부 지지층은 코로나19 전염 초반 당시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에 대한 반대를 고수하며 대구 봉쇄와 같은 망언을 일삼고 있다. 히틀러과 마오쩌둥이 주도한 집단광기의 최후가 어떤 비극을 가져왔는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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