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비대면 고객은 모를 수 밖에 없다, 어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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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비대면 고객은 모를 수 밖에 없다, 어려우니까”
  • 정우교 기자
  • 승인 2020.03.03 15: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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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서비스의 콘텐츠는 이용자 시각에서 설계돼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우교 기자]

상기 이미지는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pixabay
상기 이미지는 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pixabay

요즘 금융업계의 '비대면 서비스'를 보고 있노라면 과거의 일이 떠오른다. 

6년 전이다. 당시는 기자가 아닌, IT업계에서 웹·앱 기획을 배우고 있었다. 초보였기 때문에 주요 업무는 서비스되고 있는 애플리케이션의 사용현황을 모니터링하는게 전부였고, 때로는 간단한 서비스 업데이트가 맡겨지기도 했다.

다른 선배들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았기에, 업무가 끝난 후에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당시 업계에서는 홈IoT(사물인터넷)서비스가 연이어 출시되고 있었고, 각 통신사들의 경쟁이 시작되고 있는 참이었다. 이에 프로젝트의 기획을 총괄하는 기획자들은 수시로 개발자, 디자이너, 퍼블리셔들과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회의를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의 회의과정을 보면 참 치열했다. 서비스 속 모든 콘텐츠(텍스트, 이미지)를 반복 검수하고 이것이 앱에서 완벽히 구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러다보면 새벽을 넘겼고, 회의는 술자리로 이어졌는데, 그곳에서도 이들의 고민은 한 가지였다. 이용자가 최소한의 클릭으로 자신이 보고 싶은 콘텐츠를 접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구축하는 것.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와 이미지는 더욱 직관적이고 명확해야 했다. 

프로젝트는 한번에 끝나지 않았다. 서비스 출시 이후에도 고객이 제기한 부정적 이슈를 모니터링하고 업데이트(개선)하는 작업이 끊임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PC나 모바일에서 서비스를 완벽히 구현하는 일은 그만큼 어려웠다. 

하지만 최근 일부 금융사의 '비대면 서비스'를 보고 있자면, 이용자를 위한 최소한의 고민도 없어 보인다.

'데이터 3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개인정보 보안 이슈가 더욱 높아지고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기자가 최근 취재한 금융사들은 이러한 목소리에 둔감한 모습이었다. 

구체적으로, A사가 B사 멤버십에 제공하는 '무료보험'이 B사의 약관에는 '부가서비스'라는 애매한 단어로 설명돼 있었다. B사 멤버십을 이용한 고객은 이후 A사에서 '보험에 가입됐다'는 식의 메시지를 받게 되면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긴 것이다. 이 과정에서 A·B사의 서비스와 약관에는 이용자가 오인할 수 있을만한 요소들이 포함돼 있었지만, 실제로 이들에게 개선의 의지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일각에서는 무엇이 문제냐는 의견도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A사의 보험이 무료라는게 문제가 아니라, '보험'이라는 이름에도 다른 곳에서는 '부가서비스'로 설명되고 있고, 이로 인해 몇몇의 고객이 오인했다는 것이 초점이다.

하지만 이를 구체적으로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양사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을뿐더러, 혜택을 받기 원치 않는다면 그제서야 탈퇴해도 된다는 식의 설명에는 어디까지 인내심을 가져야만 할까.

이처럼 꼭 읽어야 할 내용이 찾아보기 힘들고 이해하기도 어려우니, 고객은 금융상품의 세세한 사안을 당연히 모를 수 밖에 없다.

적어도 과거 IT 업계의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모른 척하지 않았다. 주52시간 근무제 없이 새벽까지 회의해야했고, 스트레스를 술로 투박하게 풀어야 했지만, 자신의 애플리케이션은 여전히 불완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이같은 고집이 현재 홈IoT시장을 키운 토대라고 생각한다. 

금융업계도 진정 고객에게 혜택을 주는 '비대면' 체계를 구축하고 싶다면, 한번쯤 자신들의 콘텐츠에 '의문'을 가져보기 바랄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서비스에 포함되는 콘텐츠(텍스트, 이미지)는 제공자가 아닌, 이용자의 수준에 맞게 설계돼야 한다.

 

담당업무 : 증권·보험 등 제2금융권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우공이산(愚公移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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